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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유 Oct 05. 2022

당신의 전화. 당연하지 않다.

나의 엄마, 그리고 나

소중한건 애틋하고 귀하다. 생각을 해보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에게는 엄마가 그렇다.


나이든, 이제 더 이상 아주머니가 아닌  나의 늙은 엄마. 우리 엄마. 너무 곱고 너무 사랑하는.


정말, 엄마는 아빠와 다르다. 집집마다 사정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그렇다. 이상하게 애틋하고 귀하고 그래서 때론 슬픈 마음이 울컥 든다. 자주 떠올리기 힘들다.







여느 평범한 이야기다.  철모르는 아가씨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젖을 먹여 키우며 겪는 여러 가지 고생. 몸고생, 마음고생. 아이가 없었다면. 제 한몸만 건사하면 하지 않았을 많은 어려움들.


우리 엄마도 그랬다. 세상의 모든 엄마가 그렇듯. 나도 세상 모든 자식들처럼 우리 엄마가 제일 고생한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이 많은 바보 같은 사람, 그래서 안쓰러운 사람 우리 엄마. 엄마의 자식인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맡겨놓은 것, 내놓으라는 것 마냥 여러 가지를 엄마에게 요구하고 제공받고, 엄마는 또 자신이 가진 것 이상으로 베풀고 베풀고 또 베풀고.


엄마의 골육으로 일궈진 그 사랑을 자연스럽게, 자랑스레 훈장처럼 받아 챙겼지, 마음 한켠 묵힌 늘 희생만 하는 엄마의 모습까지 당연하게 여기지는 못했다.


'엄마도 여자고, 엄마도 사람인데.
 엄마도 귀한 딸인데. 이건 엄마 몫인데'


그 죄의식은 항상 가슴 한구석에 조용히 모르는채  위치하고 있다가 이상하게 나 잘났다고 엄마와 불같이 싸운 날, 별안간 일시불로 몰려온다.


학교 다닐땐 성당으로 달려가 고해성사를 했다. 엄마에게 지은 죄를, 엄마가 아닌 신부님에게 미안하다며 용서를 구했다. 그때 신부님이 이런저런 얘기 끝에 말씀하셨다.


"딸은 엄마의 꿈입니다."


그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다짐했다.


잘 살아야겠다. 나는 엄마의 꿈이니까. 엄마의 꿈이 찬란하게 빛나도록 내가 반짝반짝 빛이 나야겠다. 내가 우리 엄마 꿈을 이뤄줘야지.

엄마, 기다려줘. 


그런데 학교를 다니면 다니는대로, 직장을 다니면 다니는대로, 늘 핑계가 있어 그냥 살게 됐다.


'언젠가는 효도할 수 있겠지. 이 고개만 넘으면 넘으면 그땐 정말.'


그렇게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다가 스스로 타협하게 됐다. 오늘이 됐다.


'그냥 다 이러고 사는거지. 다들 그렇잖아.'


그새 나도 나이가 들고 엄마도 나이가 들었다. 엄마가 나이 드는 줄 알았다. 나는. 모르지 않았다. 엄마가 늙는 줄도 알았다. 아빠가 나이가 많다는 것도 알았다. 그런데, 그저 그뿐이었다. 숫자 그 이상 이하도 아닌 느낌, 그 어떤 자각도 없었다. 한해 한해 나이는 달라지지만 내 엄마고 내 아빠였다. 그냥 내 옆에 있는, 나이가 많으시면 많으신대로, 편찮으시면 편찮으신대로. 나에겐 한없는 엄마고 아빠니까. 그렇게 어쩌면 그 모습 그대로 영원할 것을 믿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문득 영원하지 않을 거란 당연한 사실이 불쑥 내몸에 들어와 뒤흔들었다. '아! 어느날. 별안간 갑자기. 그 순간이 닥칠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랬다. 이 평화로운  아무렇지 않은 일상의 공기를 뚫고, 그 불안과 공포가 들이닥쳐도 이제 이상하지 않은 나이구나. 엄마도 아빠도, 나도.


우리 모두에게 그런 시간이 서서히, 절대 물러남이 없이 따박따박 오고 있음을 나는 애써 여태 모르는 척 한걸까? 현실을 자각한 이상, 상상하지 않아도 들이닥칠, 기어코 다가오고야 말 미래가 눈앞에 적나라하게 순식간에 그려졌다. 그 이별이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 


어릴 때와는 달리 별수 없다는 생각마저 들지 않고 그냥 받아들여졌다. 지금껏 부정하느라 시간을 허비했으니, 이제라도 받아들이는 수 밖에. 대신 마음이 아주 조급해졌다. 남아있는 시간은 아무리 넉넉 잡아도 그렇게 여유있지 않은 것 같은데 나는 아직 보여드린게 아무 것도 없는데ᆢ





그런 생각을 하며 오늘도 길을 걷는데 엄마 전화가 왔다. 나에게 아무런 기대도, 바람도 없이 그저 무탈하기만을 바라는 우리 엄마, 그냥 딸 목소리가 듣고 싶을 뿐인 우리 엄마. 엄마의 꿈이 이렇게 그냥 그저 이렇게 서 있는데, 그저 그것만으로도 좋은 우리 엄마. 나에겐 '미완', 아직 이뤄지지 않은 꿈이라 생각하지만, 그마저도 꿈처럼 애달프고 예쁘다고 말하는 속절없는 우리 엄마. 이대로 좋을까. 나도 엄마도. 생각하며 전화를 받는다.


언젠가 당연하지 않을 전화. 내 엄마의 반갑고 고마운 전화. 일상처럼 걸려온 엄마의 전화를 길을 걷듯 자연스럽게, 조급하지 않게, 보채지 않고  반가운 선물처럼 받아야 겠다.


소중한 사람의 전화를 당연하게 자연스럽게 받을 수 있는 오늘이 좋다. 오늘이 행복하다. 


나 자신과의 타협이라 해도 좋다. 그냥 오늘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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