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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유 Oct 21. 2023

각자의 입장  

난 우리아빠 딸, 당신은 내 시어머니 아들

똑같은 내 밥을 놓고 양쪽의 입장은 판이하게 다르다.


먼저 시어머니의 입장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내가 임신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몸이 무거웠던 시절, 남편은 매일 밖에 나가먹는 점심식사에 회의를 (하필! 그때!) 느끼고 굶기로 한다.  


눈에 콩깍지가 제대로 씌였던 나는 그의 몸이 축 나는 게 걱정돼 도시락을 싸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시어머니가 올라오셨다.  


잠이 많기로 유명한 며느리(나)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싸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게 되신거다.  


시어머니를 의식한 듯, 메뉴를 조금 더 신경써 그날은 '두릅 채끝 소고기초밥'을 싸기로 하고 두릅을 데치고, 소고기를 굽고, 조물조물 밥을 뭉치기 시작한다. 조신하게 조신하게.


며느리는 생각한다.  


'몸이 무거운 며느리가 매일 아들 도시락을 싸는 모습을 보시면 감동하시겠지? 훗!'  


하지만 그녀는 싱크대에 턱을 괴고 조리과정을 잠자코 보다 한마디 건넨다.  


"이걸 요렇게 하면 더 맛있을 텐데. 다음에는 그렇게 한번 해봐. 과일도 한종류 넣으면 입가심하고 좋지 않을까? 매일 다른거 해주지? 같은 거 먹으면 질릴텐데."  


며느리는 뼈저리게 느낀다. 아...아무리 딸 같은 며느리도 딸 '같은'이지.. 딸은 아니구나...   




요즘 남편은 바쁘다. 매일 야근이다.


하는 업무상 1년에 한번 시즌이다. 앞으로 한달은 그래야 한다.  


그런데 저녁을 거기서 해결할 줄 알았는데... 집에 와서 먹는다.  


뭐, 회사에서 먹으면 참 좋겠지만 한달간 고생하는 남편인 짠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 늦게까지 대기해야 하는데 중간에 집에 와서 밥을 먹고 가면 바람도 쐬고 시간도 잘 가겠구나.'  


더구나 내 남편은 집에 들어설 때, 특히 밥을 먹을 때가 되면 유난히 해맑다. 탄수화물, 단백질이 공급될 생각은 상상임신처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급 당이 올라가는 모양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또 예상치 못하게 발생한다. 어른들에게 안부인사를 잘하는 예의 바른 우리 남편이 그제 아빠에게 전화를 한 모양이다.  


"장인어른! 야근을 당분간 해야될 것 같아서 잠깐 집에 밥 먹으러 갑니다!"  


오늘 낮, 엄마가 전화가 왔다.  


"아니, 야근을 해서 고생스러운 건 알겠는데.. 그래도 회사에서 먹고 오지. 니가 또 오라고 한거 아냐? 괜찮다고 했지? 너무 그러지 마라. 이럴 때라도 니가 쉬면 좋잖니."  


"아냐, 가끔 오는 거야. 어제도 회사사람들이랑 먹고 늦게 들어왔어 (쉴드 쳐주려고 시간도 뻥쳤다). 오늘도 늦게 온대. 아휴, 고생이야."  


저녁에 아빠와 영상통화를 하는데 다혈질 아빠가 또 흥분한다.  


"아니, 사람들이랑 어울려서 한그릇 먹고 오지! 마누라 고생하는 것도 모르고. 그걸 자랑이라고 나한테 얘길 하냐, 뭐! 그렇게 얘기하면 내가 좋아할 줄 아나보지!(버럭버럭 노발대발 대발이 아빠는 저리가라)"


"아이참.. 아빠는 내가 좋으니까 보고 싶나보지. 그치? 아들??"


"응! 엄마!!"


아빠가 손주를 보고 표정이 급 변한다. 예뻐 죽겠단다.  


"거봐, 예쁘잖아. 아들도 예쁘고 마누라도 예쁘고. 집에 두고 일하려니 얼마나 애가 타겠어."  


딸의 넉살에 아빠가 못이기는 채 웃는다.  


"그래도 니가 너무 힘들다."  


근데 띠리리리~


현관 번호키 소리가 들린다.  


해맑게 남편이 들어온다.  


"아이쿠, 장인어른! 안녕하십니까. 저는 저녁 먹으러 잠깐 왔습니다."

 

아빠엄마도 빵 터진다. 못말린다. 정말.. 아휴....





나이가 들어도 내 새끼가 예쁘다. 내 새끼 배우자가 아무리 예뻐도, 내 새끼의 안위가 걸리면 아닌건 아니라고 얘기하고 싶은거, 눈감아 줄 수 없는게 부모 마음인가보다.  


남편 입장에서는 "우리엄마, 짱!" 든든한 상황이고, 내 입장에서는 "역시! 우리엄마아빠는 내편!"이다. 아직 편 들어주고 응석 부릴 부모가 있다는 게, 그것 자체로 너무 감사하고 좋은 나이가 됐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끼리 아끼며 잘 살게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라는 이야기는 못했다.


고령의 부모님에게 "내가 알아서 할게!"는 말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힌 문제가 아니니 그냥 대충 넉살 좋게 "알았어! 알았어! 그래, 그래. 그렇게 할게! 걱정하지 마" 얘기해 본다.


다, 나 잘 되라고. 나 예쁘다고 하는 진심은  잘 알아 들었으니까.     


누구나 내 새끼가 귀하다, 그게 당연한 이치다. 내 남편도, 나도 서로서로 누군가에게 귀한 자식이다.


그걸 알면 서운할 것도 없다.


반대의 입장에 섰을 때 우리 엄마아빠라도 내 편을 들어줬을거야 생각하면 서운할 일이 없다. 내 편에 선 부모를 보면 왜 저러시지, 보다 그저 감사한 마음, 그 애틋한 진심만 잘 받아들이면 된다.


이 당연한 이치를 거슬러 남의 자식을 대할 때 내 자식을 대하듯 하면 감동은 두 배, 세 배가 되어 내 자식에게 돌아온다.


이타적인 마음으로 사는 일, 혼인관계로 맺어진 가족관계에선 정말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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