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그랬어.
네이버에 오늘의 운세를 쳐본 적 있으신지.
나는 사실 엄청 자주 찾아본다.
결과 발표나 시험을 앞둔 날마다 찾아보기도 하고, 그냥 문득 불안함이 덮칠 때도 간혹 검색해보고는 한다.
운세가 좋으면 안심하는 거고, 나쁘면 빨리 잊어버려야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사주도 가끔 본다.
어차피 바뀌지 않는 생년월일로 매년 그걸 알아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 하지만, 이것은 실제 내 운세를 점쳐보는 행위 보다는 위안을 얻기 위한 기도에 가깝다.
그리고 나의 이러한 습관은 엄마를 꼭 빼닮았다.
우리 엄마는 내게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가령 고등학교 입시, 대학교 입시, 그리고 이제는 취업준비가 닥칠 때마다 중독 수준으로 사주를 보러 다녔다.
같은 생년월일이어도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서 달라진다며, 허겁지겁 전화번호를 눌러 사주를 봤고, 1시간 가량의 통화가 끝난 뒤에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에게 와선 "다 잘 된대."라고 말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건, 난 그 말에 위로를 받았다.
그래, 잘 되겠지. 잘 될 거야. 사주 팔자가 그렇다잖아.
그런 생각으로 내 불안을 달랬다.
서양에 플라시보 효과가 있다면 동양에는 사주팔자 효과가 있는 게 분명하다.
사주 선생님이 말씀하신 건 왜 그리 믿음이 가고 안심이 되는지 모르겠다.
실은 나도 안다.
매번 돈을 내고, 사주를 보는 이 패턴이 썩 건강하지 않은 소비 습관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를 말리지 못한다.
단 한 번도 자기 생년월일을 말하지 않고 딸의 생년월일시부터 말하는 엄마의 마음을 나무랄 수가 없다.
엄마에게 사주를 보는 건 미래를 점치는 게 아니라 현실의 불안을 달래는 의식같다는 생각을 한다.
얼마나 불안하면 그럴까, 얼마나 걱정되면 저럴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차마 말리지 못한다.
어제도 엄마가 사주를 봤단다.
또 나의 어떤 모습이 엄마를 불안하게 했을까.
혹여나 내 현재의 불확실성이 엄마의 불안을 촉발한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미안해진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