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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가벼운 불행

by 례온

어젯밤, 요가 수업이 끝난 뒤 집에 와서 샤워를 했는데 머리를 말리는 그새를 못 참고 또 땀이 났다


긴 머리를 말리려면 오랜 드라이 시간은 필수, 그마저도 어떻게든 줄여보려고 뜨거운 바람을 키면 결국 땀이 나고야 만다.


깨끗하게 씻었음에도 다시금 얼굴에 달라붙는 머리카락들을 다 잘라버리고 싶은 심경이었다.


덥고 습하다며 짜증을 바락바락 내는 날 조용히 바라보던 엄마는, 옷방에 들어가 뭔가를 부스럭 거렸다.


그렇게 올해 처음으로 선풍기 비닐을 깠다.


아직 5월, 초여름이 올락 말락한 날씨, 내 짜증 한 마디에 엄마는 선풍기 비닐을 벗기고 정성스레 먼지를 닦아 내 앞에 가져다 놨다.


강한 선풍기 바람을 맞으니 땀이 식으며 무척이나 시원해졌다.


그전까지의 불쾌함은 선풍기 바람에 날려버리고 어느샌가 내 입에서는 '행복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때 문득, 행복하기 참 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선풍기 바람 따위에 날아가버릴 짜증, 뭐 하러 그렇게까지 신경썼나 싶었다.


내가 단순한 건지 삶이 단순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젯밤 너무 행복한 마음을 안고 잠들었다.


하루 끝이 행복하면 그걸로 된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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