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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Feb 16. 2021

여행이 멈춘 시간, 여행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본다

여행은 고단하다. 어린 아이와 하는 여행은 특히 더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꾸역꾸역 짐을 쌓던 것은 일상에서 느끼지 못하는 자극이 잠시나마 나를 잊게 해주기 때문이다.      


짐을 꾸리면서부터 이미 여행은 시작된다. 현지에 가면 뭘 먹을까. 관광으로는 어디를 갈까. 휴양으로는 어디가 좋을까. 일정에 맞게 동선을 짜고, 아이와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알아본다. 그곳에 다녀온 적이 있는 지인에게 맛집과 투어 추천을 받는다. 밤늦게까지 후기를 보고 있으면, 나는 이미 그 곳에 가있는거나 다름이 없다. 새하얀 침대보가 깔려있는 호텔 특유의 냄새를 맡으며 며칠간 묶게 될 ‘나의 집’에 입성하는 기분은 꽤나 흥분된다. 그곳에서는 차려주는 밥을 먹기만 하면 된다. 설거지도, 세탁도, 청소도 할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에선 맡을 수 없는 냄새와 먹을 수 없는 음식, 낯선 사람들. 오토바이가 즐비하거나 고급 차들로 가득 찬 도로들, 열악한 호텔 방 또는 고급진 패밀리룸. 놀랍도록 싼 물가 또는 손 떨리는 비싼 물가. 기대 이상의 음식 또는 입에 맞지 않는 음식.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다양한 인종의 여행객들. 이래서도 좋고 저래서도 괜찮은 것이 여행이다. 그 모든 게 추억이 되고 안줏거리가 된다. 인생이 여유로워진 듯한 착각도 일으킨다. 

     

그렇게 여행에 신이 났을 때는 집으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다음 여행지를 알아보고 항공권 프로모션을 찾아다녔다.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옳았다. 일탈과 자극이 좋았다. 하지만 남편과 딸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아이는 이동시간 내내 언제 도착하냐며 수백 번 물어봤다. 외국의 감흥보다는 눈앞에 물놀이에 신이 났다. 아이에게 장소는 중요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목욕탕 욕조도 동남아 휴양지 부럽지 않았다. 남편도 아이가 클 때까지 잠시 쉬자고 했다. 나만 좋자고 가족을 끌고 다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로 움직일 수 없게 되면서 여행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독일에서는 비행기가 만들어 내는 환경 오염 문제로 해외보다는 국내 여행을 지향한다고 한다. 젊은 층들이 그러한 의식을 가지고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나는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코로나19가 종식된다고 해도 당분간은 해외여행을 가지 않을 것 같다. 우리나라의 가보지 못한 명소들부터 둘러볼 생각이다.     


아무 목적 없이 떠나는 여행도 즐겁고, 한 달 살기도 좋고, 역사의 현장들을 둘러보는 것도 의미가 깊다. 멀리 떠나는 여행도 설레고, 가까운 거리의 여행도 힐링이 된다. 여행에 여러 유형과 목적이 있는 것처럼 그 의미도 다양하다. 가끔은 아무런 이유를 붙이지 않는 것 그 자체가 의미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무겁게 강약을 조절하여 나만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여행을 꿈꿔 본다. 역설적이게도 여행이 멈춘 순간, 여행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는 값진 시간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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