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색을 배우는 아이

삶을 배우는 엄마

by 엘사 B

잘 키운 딸, 열 디자이너 안 부럽다더니
이젠 우리 아가가 내 옷 색까지 골라준다.
엄마는 화이트, 아빠는 버건디.
쇼핑몰 한복판에서 색 조합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그 눈빛이
어쩐지 너무 믿음직했다.


11살.
미술을 좋아한다.
생각해보면 아주 어릴 때부터였던 것 같다.
워킹맘이라 주말이면 늘 피곤했지만,
그래서 더 자주 했던 건 그림 그리기 놀이였다.
수채화 키트를 펼치고, 명화 색칠하기 키트를 사다 같이 칠하던 시간들.
별 거 아니었는데 그 시간이 참 좋았다.

그때부터였나 보다.
색에 대한 감각이 자라나기 시작한 게.


사인펜도 꼭 32색 이상은 사주고 싶었고,
같은 톤끼리 모아서 같이 색칠놀이하넌 그 장면이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핑크 하나에도 다섯 가지가 있다는 걸
알려주면 곧잘 이해하고 파랑색도 초록색도 잘 찾아내서

꼬불꼬불, 지그재그 채워넣기를 했었다.


좋아하니 어릴때부터 꾸준히 미술학원에 보냈다.

잘 배우니 조금 더 잘 그리게 되고, 그래서 재밌으니 틈틈히 연습도 많이 하다보니

또래들 보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소문이 나고,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도 자신감이 생긴 듯하다.

미술학원에서도 두 시간씩 몰입해서 그린다.


화가가 되고 싶다고, 웹툰 작가도 하고 싶다고 말하는 요즘,
아이의 손끝이 제법 단단해졌다.

하지만 공모전은 안 나간다.
상장은 탐낼 법도 한데,

미술학원 가기싫다고 하는 날은 샘들이 공모전 준비하자고 한 날이다.


“나는 거기에 그리고 싶지 않은데 선생님이 자꾸 그리래”란다.


자기 그림이 아니라는 그 말,
작지만 큰 목소리였다.
그래서 우리는 약속했다.
공모전은 안 나가는 대신, 좋아하는 미술은 계속 하기로.


요즘 선생님이 그러신다.
“물이 올랐어요. 확실히 달라졌어요.”
그럴 때면 괜히 내가 뿌듯하다.

가끔은 아이가 그려주는 밑그림에 나는 색칠을 한다.
그 시간이 요즘 나에겐 제일 좋은 힐링이다.


말없이 나란히 앉아,
하나는 창의력을 그리고, 다른 하나는 감정을 물들인다.

아이를 키우며 알게 된다.
한 가지라도 좋아하는 게 있다는게 얼마나 든든한 일인지.
그걸 꾸준히 해내는 집중력이 있다는 건
살아가며 마주칠 수많은 갈피마다
큰 힘이 된다는 걸.

그리고 어쩌면,
아이 옆에서 그 집중을 바라보는 내가
더 단단해지는지도 모르겠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건 아인데,
그 옆에서 나는 매일
마음의 밑그림을 다시 그려본다.


오늘 쇼핑몰에서 색을 고르던 그 작은 손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우리아가가 많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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