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읽는 니체』(장재형)에서 찾은 답
내 관심은 언제나 삶에 있었다. 우울증의 늪에 빠져 있던 시절에조차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곤 했다. 우울이라는 것이 결국엔 삶을 향한 의지였던 셈이다. 『마흔에 읽는 니체』는 니체의 저술을 바탕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길라잡이가 되어준다. 제목은 마흔을 살아가는 이들을 타겟팅하고 있지만, 결국 생을 살고 있는 모두에게 해당하기도 한다.
나를 받아들이는 것
니체의 사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초인의 개념이다.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 인간 너머의 인간은 자기 자신을 극복함으로써 나다운 삶을 사는 존재다. 니체는 초인이 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하라고 말한다.
독일 소설 수업을 들을 때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수업을 한 적이 있다. 그때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사랑의 뿌리가 자기 자신에 있다는 것이었다. 나를 인정하고 단단해질 때 타인과의 관계도 잘 뻗어나갈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책에서 말하는 니체의 사상과 결을 같이 한다. 자신을 먼저 존중하지 않으면 자신을 극복할 수 없다. 극복한다는 건 필연적으로 이전의 상태를 받아들인다는 것을 포함하고, 수용은 사랑할 때에만 가능하다. 우리는 사랑하지 않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결국 나를 사랑한다는 건 나의 현재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수용한다는 건 되고 싶은 나, 지나버린 내가 아니라 이 순간에 서 있는 나로 사는 것이다. 이것이 나답게 사는 첫 번째 열쇠다.
고통을 받아들일 것
니체는 고통 혹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힘을 조형력이라고 일컫는다. 니체에 따르면 조형력은 과거의 상처가 만들어낸 고통과 시련을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드는 힘이다. 결국 고통의 구렁텅이에 빠져 살지 말고, 그것으로부터 의미를 발견해내야 한다.
고통을 받아들인다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을 가지는 것이다. 절망스러울지라도 삶을 긍정하는 것,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해내는 것은 더 깊은 사유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끔 한다. 그리고 우리는 사유를 통해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다. 고통이 없다면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니체는 "깊은 고통은 사람을 고귀하게 만든다"라고 했다. 이는 우리가 고통을 마주했을 때 우리 자신과 삶을 돌아보고 내면을 탐색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다양한 실패들을 통해 나는 삶에서 인과관계가 꼭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또 여러 실패 뒤에 만난 성취는 상승과 하강의 반복이 곧 인생이라는 깨달음을 주었다. 실패했다는 절망감에 매몰되어 있을 때보다 실패를 통해 무언가를 얻었을 때 인생을 배웠고 나를 더 돌보게 되었다. 나를 돌본다는 건 나를 탐색하고 사유하는 것이기에, 고통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는 나답게 사는 길을 걷는 것이다.
나답게 산다는 건 결국 수용이다. 이때 내가 받아들여야 할 것은 나의 존재 그리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다. 좋은 것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쁜 것까지도 수용하여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 때 진정으로 나답게 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