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물안궁근황 이야기
"너는 제발 계획 좀 세우지 마!"
계획만 세웠다 하면 여봐란듯 그렇게 세상에게 수없이 뒤통수를 휘갈겨 맞는 나를 보고 주변 사람들은 안타까운 마음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곤 했다.
그러나 하루 일과도 시간표대로 촘촘히 계획을 짜는 나는 그 배냇버릇 버리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큰 일을 앞두면 여지없이 나름의 계획을 세웠고 어김없이 배신을 당했다.
'호오.. 그래.. 네가 감히 또 계획이란 걸 세웠단 말이지?' 마치 내게 앙심을 품고 있던 악마가 기다렸다는 듯이 세상에 고자질을 하는 것처럼.
일상이 없어졌고 내 시간을 잃었다.
눈을 뜨면 일어나고 걸어 다녔지만 좀비처럼 육체만 움직였을 뿐 그 안에 나는 없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이것저것의 문제 해결을 했지만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인식할 틈이 없었다.
"제일 못하는 거 하고 다니고 있네?"라고 가까운 지인이 팩폭을 했다.
그랬다. 나는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했고 내 불안이 미친 듯 증폭되고 있음에도 주변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태연한 척했으며 부정적인 생각과 감각이 온몸을 휘감고 있는 와중에도 세상에서 가장 긍정적인 단어와 어휘만을 골라 열심히 말하고 다녔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의존적인 성격이라 위로받고 싶고 의지하고 싶었지만 현실의 상황은 주변 많은 이들이 내게 의지하고 있었으며 날 허브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고 그럴 상황이었다. 나는 여전히 미성숙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이었지만 어른인 척했고 그 모든 걸 당연히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감내하고 감당하고 있었다.
'이제부터 사소한 글이라도 쓰겠어요'라고 말한 계획도 당연히 엎어질 수밖에 없었고 쓰는 건 사치, 읽을 수조차 없었다.
마음을 다스리려 책이라도 펴면 눈만 글을 읽어 문단을 돌아가길 여러 차례, 도저히 글을 읽어낼 수가 없었다. 간신히 읽어내던 몇몇의 브런치도 힘에 부쳤고 어느새 못 읽는 글이 많아졌다.(제가 안 읽은 게 아닙니다...)
그리고 미성숙한 자아는 결국은 엉뚱한 방향으로 폭발하고 말았다.
다른 이들이 봤을 때는 급발진으로 보일 만한 상황이었지만 극심한 스트레스가 한계치에 도달한 나는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평소 답지 않게 가까운 이들에게 아주 크게 분노했고 화를 냈으며 주변의 어떤 이야기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만 24시간이 지나도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다. 분하고 억울했다. 서운하고 화가 났다.
내가 얼마나 많은 나의 계획과 일상을 포기하며 희생한 시간인데 이렇게 한 순간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 수가 있나... 내가 이러려고 그동안의 말 못 할 스트레스를 참아왔던 것인가...
자주 글을 쓰겠노라며 서랍에 쓰다만 발랄한(?) 글들이 몇 개나 되는데 그 글을 읽어낼 기력조차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몇 시간의 자유시간(?)이 생겨 컴퓨터 앞에 앉아본다.
괜찮은 척하려다 보니 진짜 내가 괜찮다고 착각을 했었나 보다.
내가 느끼는 이상으로 내 몸은 격렬한 스트레스 반응을 이곳저곳에서 보내왔지만 급급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 애써 무시했더니 결국 온몸이 소리를 내지르며 이렇게 주저앉고 말았구나 싶다.
가끔은 아주 이기적으로 굴어야만 할 때가 있다는 걸 깨닫는다. 누군가를 보살피고 마음을 쓰는 일도 결국 내 안의 에너지를 꺼내야 하는 일일 터, 내 안의 여유와 힘이 없으면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상황에 부딪치고 만다.
나는 조금 더 내 안을 들여다보고, 나를 다독이고, 가끔은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이렇게 애를 쓰고 있음을 생색내리라 마음먹는다.
내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하는 일이라고 주변 사람들도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 되는 거라고.
모두에겐 각자의 시간과 일상이 소중한 거라고.
나는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을 위해 앞으로도 기꺼이 그리 하겠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것에 무뎌지면 안 되는 것이라고. 고마워해야 맞는 것이라고.
* 브런치 글을 못 읽는 게 마음에 걸려서(소심 소심) 쓸데없는 근황을 남겨보았습니다.(변명일지)
틈틈이 시간 나는 대로 읽어볼게요.(읽는 중에 새 글이 더 쌓일 것 같지만..)
*개인적인 약속을 못 지키고 있는 분들께도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호시탐탐 약속 지킬 시간을 엿보고 있으며 발행한다고 약속한 글도 잊은 게 아니라고 또다시 변명을 해봅니다.
*추석 연휴 잘 보내세요.(갑자기 공식 발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