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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epina Feb 20. 2022

긍정 마일리지는 모두 소멸되었습니다.

현실이 못된 건지 내 생각이 나쁜 건지

 좁은 간격을 유지하며 서 있던 가장 끝의 도미노가 넘어졌다. 당연하게도, 기다렸다는 듯 아슬아슬하게 서 있던 모든 도미노가 소리도 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것이 최근의 내 모습이었다.

 사소한 일로(깊이 따지면 사소하지 않다.) 촉발된 문제는 나  스스로 수습할 시간도 주지 않고 다음 문제를 연쇄적으로 가지고 왔고 저항 한 번 못하고 나는 맥없이 쓰러졌다.

 책망한 사람도, 비난한 누구도, 바뀐 현실도 없었다. 그저 내가 새삼 현실을 자각했을 뿐이었다. 무능력한 나와 행동하지 못하는 한심한 나를 더 이상은 모른 척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애쓰다가 애쓰기를 포기했고 기분과 마음은 그런 채로 쭉 누워 있었다.

 브런치도 멀리했다. 쓸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읽을 수 없었다. 아니, 읽고 싶지 않았다. 잘 쓰인 글, 나 빼고 모두 잘 사는 것 같은 괴로움을 굳이 온라인에서까지 느끼고 싶지 않았다. [소박하게, 그리고 감사하기]를 되뇌던 그동안의 나는 긍정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안주하기에 급급했던 패배자의 변명 같아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몇 년 만에 친했던 지인을 만났다.

빈 말은 하지 않는, 그러나 칭찬에 인색하지 않은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에 내 마음은 조금 들떠 있었다. 아마도 어떤 달콤한 말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이내  후회했다.

 지금 내가 처한 이 상황이, 괴로움이, 결국은 내가 만들어온 삶의 결과란 것을 그녀도 부정하지 않았다.

 나의 결점을 찾아내는 것이 마치 내 삶의 사명인 것처럼 몇 시간 동안 스스로를 비난하는데 시간을 쏟는 동안 그녀는 묵묵히 듣고 있었다.

 긴 시간을 지내는 동안 바뀌지 않는 레퍼토리를 반복하는 나를 보며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심하다 여겼을까? 답답하다 생각했을까? 또는 지겨워 이 자리가 끝나기만을 기다렸을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가감 없이 속 얘기를 꺼내놓은 내가 물색없이 느껴져 비참한데 초라하기까지 했다. 동시에 내 상태가 생각보다 좋지 않다는 것도 자각했다. 그녀는 내가 상처받을 만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중간중간 '잘하고 있네'라는 말도 분명히 했다. 그런 반응은 모두 거른 채 알 수도 없는 그녀의 생각과 속 마음까지 지레짐작하고 확신하는 나를 보며  부정 편향이 심한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도 나는 아주 적극적으로 그녀가 내 상황과 생각을 부정해주길 바랐나 보다.

이를테면 이런 것.

 좋은 친구는 내가 믿지 못하는 것을 대신 믿어준다. 좋은 친구는 나를 잘 부정해 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내가 불안해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봐 몸서리칠 때 "그런 일은 없어, 바보야. 네 생각은 근거가 없다고, 멍청아"하고 내 생각을 부정해 주는 사람. 내가 불안해할 때 "나라도 불안하겠어"라고 말하며 함께 벌벌 떠는 공감은 나의 공포를 정당화하고, 확실시하기 때문에 불안의 증폭에 기여한다. 그래서 감정이입이나 공감보다 부정의 파이팅이 더 효과적일 때가 있다.

 -문보영, '준최선의 롱런'-

하지만 이런 태도로 일관되게 살아가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여전히 나는 타인의 인정과 칭찬 없이는 스스로를 세울 힘이 없는 나약한 사람이구나..

 결국 위기 순간엔 이렇게 주저앉는 것 밖엔 할 줄 아는 게 없는 인간이구나..

 조금은 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게 착각이었던 걸까..

주변의 충고 하나에 휘둘리고, 비껴나는 눈빛 하나에 휘청이면서도 괜찮다는 말을 갈급하며 답정너를 요구하는 내가 너무 별로라 그런 나를 견뎌내는 것이 힘에 부치는 나날들이었다.



교수님, 저는 좋은 사람이에요.
저는 교수님이 알고 계시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이니까 저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세요.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2, 11회 中-

 저 장면을 보다가 충격을 받아 일순간 숨이 멈추고 눈물이 차올랐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전하는 고백의 말이 신선해서가 아니다.

 내가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확신.

 타인에게 그것을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는 자신감.

저런 말을, 저런 대사를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내가 백번을 다시 태어난다 해도 똑같은 나로 태어난다면 절대 생각해 낼 수 없는 그런 이야기.

그랬다. 나는 저 드라마를 내 배우 때문에 보기 시작했지만 생각해보면 수많은 캐릭터 중에 가장 좋아했던 건 거침없이 저 대사를 뱉었던 민하였다. 밝고, 꾸밈없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그 감정을 드러냄에 주저함이 없는, 실수와 잘못에 좌절하기보다 '다음에 잘하지 뭐'라고 하던 건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이룰 수 없는 곳에 닿아있는 이상향 같은 사람.


횡단보도 한가운데 서서 오도 가도 못한 채 초가 줄어들고 있는 보행자 신호를 지켜보는 기분이다.

양쪽 차선의 차들은 슬금슬금 움직이며 나를 조급하게 만든다.

사람이 만나고 싶은데 만나고 싶지 않기도 하고,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하기 싫기도 하다.

집이 너무 편하지만 나가고 싶기도 하고, 나가고 싶어도 지금은 갈 수도, 갈 곳도 없다.

브런치 작가님 카페에 다시 느닷없이 방문해서 말을 걸어주시면 이야기를 나눠볼까, 그냥 내버려 두시면 온종일 멍만 때려볼까도 생각해봤다.

 역시 생각으로 끝냈다.

주말은 살기 싫은 사람처럼 12시간 가까이 잠을 자고, 요즘 평일은 생업에 헐떡이느라 연차를 내기도 쉽지 않으니까.

 나를 옥죄어 오는 차들의 경적이 울리기 전에 난 이 길을 무사히 건너갈 수 있을까. 혼자 잘 도착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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