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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epina Aug 25. 2019

독일은 사죄하고 일본은 인정하지 않는 이유

반드시 가져야 할 '부끄러움'

"유럽은 종교적인 영향이겠지만 원죄라고 하면 죄를 짓는 순간부터라고 봐요. 내가 잘못한걸 신이 안다는 거지. 근데 일본은 뭐냐면 내가 잘못한 걸 다른 사람들이 알았을 때, 그때 죄라고 하는 거야. 그러니까 일본은 지금 인정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자꾸 숨기는 거지. 드러나는 순간 나는 죄를 짓게 되는 거거든."

언젠가 알쓸신잡에서 들었던 얘기다. 좀 더 정확한 표현을 찾으려고 검색을 해봤지만 찾아지지 않는다.(그때그때 기록해야 함을 다시금 느낀다. 반성)

 독일에 갔을 때 했던 얘기였던 것 같은데 그래도 파편적 기억이라도 남아 있는 걸 보니 나름 깨달은 바가 있었던 모양이다. 

 타인에게 드러났을 때야 잘못이 된다니...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부끄러움'과 '죄의식'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언제부턴가 내 정신건강을 해할 것 같은 이야기들은 의식적으로 피해왔다. 요즘은 뉴스가 그중 하나인데 땡! 하고 시작하는 첫머리 시작의 여러 개 뉴스는 나를 또 화나게 하기 때문에 음소거를 하는 방식으로 듣는 걸 회피했다. 그런데 이젠 그마저도(자막만 봐도) 너무 화가 나 다른 채널로 돌렸다가 초반 정치 경제 뉴스가 지나고 사건사고 시간대에 돌아오거나 아예 뉴스를 거르고 있다.

 그와 같은 이야기로 최애 프로 '그것이 알고 싶다' 이번 주 방송을 볼까 말까 망설였다.

 '누가 소녀상에 침을 뱉는가' 제목만 봐도 무슨 내용인지 짐작이 가고 화가 날게 뻔했기 때문에. 결국 보는 것을 선택했고 역시 화가 났고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일본, 혹은 일본인이 그러는 거였으면 그러려니 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제 다룬 내용은 이른바 신종 국내 친일파들의 경악스러운 발언과 행적들이었다. 백번 양보해서 철없는 유투버들의 행동은 역사교육의 부재나 왜곡된 역사인식으로 치부할 수 있었으나 그들이 그 같은 발언을 하는 근거지는 이른바 배운 사람, 지식인, 우리나라 최고 대학의 전, 현직 교수들이 시작점이었다는 데에 문제가 있었다. 그들은 말한다. 학자로서 소신을 가지고 아닌걸 아니라고 말하는 것뿐이라고. 정말 그럴까? 취재진의 종착점은 돈에 다다른다. 그들은 일본 기업으로부터 연구비를 받아 기업이 원하는 주제의(일본 식민지가 대한민국 근대화에 이바지한 바 따위의) 연구를 했다. 연구 주제만 정해줬을 뿐 결과에는 간섭받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정말? 국내 기업의 가습기 살균제 연구용역도 기업이 원하는 결과를 도출했는데 일본에서 돈을 받고 하물며? 행여나?


 내가 슬펐던 건 어떻게 배웠다는, 잘났다는 사람들이 그럴 수가 있어?라고 분개한 것이 아니라 그제야

'그럼 그렇지.'로 고개를 끄덕였다는 것이다.

 그 잘난 사람들이 넘치는 곳에서 10년 넘게 있었다. 숱한 사람을 봤고 말도 안 되는 사람을 정말 많이도 겪었다. 더 이상 이상한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 또 있고, 더 있고, 화수분 같았다. 신기한 건 같은 캐릭터도 없었다. 가지가지로 또라이었고 각자는 신처럼 군림했다.(내가 이 이야기로만 상/하 책 2권은 쓸 수 있는데 내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죄다 기득권 세력인 대한민국에서 신변 위협을 받을 것 같아서이다. 훗!)

 낯설지가 않다. 을사오적도 모두 당시 장관들이었지 않나.(찾아보니 오늘날 교육부, 행정안전부, 외교부, 국방부, 농림축산부 장관이란다.)

 뉴스 첫 꼭지를 보지 않는 이유와 딱 맞아떨어지기도 하다. 한쪽에선 친일, 한쪽에서는 내로남불의 극치를 보여준다. 싹 다 꼴 보기 싫다. 그 잘났다는 분들에게 정말 환멸이 느껴진다.


 먼 일이 아니다. 나도 불과 몇 달 전 이런 말을 들었다. 

 "일본이 왔다 갔던 거 잠깐이야. 그동안 엄청 변했지. 이렇게 많이 발전했잖아?"

 순간 내 귀를 의심했지만 이미 그전에 나는 심한 모멸감을 겪은 터라 '저 xx 뭐라는 거야.' 정도로 그 얘기에 집중하지 못했다. 놀란 다른 교수가 그 말을 제지하려 하자 더 큰 목소리로

 "잠깐 왔다 간 거라니까. 그동안 우리나라가 얼마나 변했어?" 라며 한 번 더 힘주어 말했다. 

그가 나에게 준 정신적 충격에서 좀 벗어나고, 7월에 일본 관련 뉴스가 한참 뜨거우면서 그때 그 말을 나는 다시 떠올렸다. 

부끄러운 줄 알아.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너 이 xx  삼대가 불운의 홍수를 맞으라고 내가 저주할 테다. 저주한다고 저주가 내려지는 건 아니니 이건 죄가 아니다.


 얼마 전  영화 '동주'를 보았다. 그리고 그 영화를 평했던 '방구석 1열'을 찾아보았다. 패널 중 누군가 말했다.

"시 밖에 못 쓰는 자신을 계속 부끄럽다고 하잖아요. 근데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부끄러운 사람이 아니 거든요. "

 맞는 말이다. 뻔뻔한 사람이 자신이 뻔뻔한 걸 알고 인정한다면 뻔뻔한 사람이 아니 듯이.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조금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앞으로 함께 할 새로운 '윗사람'이 있다면 존경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정말 '위'에 있을 만한 사람이 '윗사람' 이길 바라는, 당연하지만 어쩌면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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