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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epina Oct 06. 2019

헌 집 주면 새 집 줄 거야?

집은 삶의 목표일까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부터 잠을 못 자기 시작했는데 돌아와서는 산재된 여러 가지 밀린 일들을 처리하느라 마음은 급하고 몸은 바빴다. 엉망이 된 수면 패턴이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아 한의원 건물을 들어서는데 아는 얼굴이 보였다.(주변 못 보고 다니기로 유명한데 어째 이날 봤음) 부동산1 아줌마였다. 쓱 스쳐 지나쳤는데 알은척을 할까 말까 하다가 뒤따라가서 말을 걸었다.

 "저기, 사장님?"

 "어? 어어!"

 "집은... 나온 게 없나요?"(이것이 나의 주 용건이었다. 얼굴 도장 찍으려고. 아줌마 나 안 잊었죠? 집 나온 거 있음 잊지 말고 연락 주셔야 해요! 의 말을 하려고.)

 "어어~그때 그 집은 말이야...(중간 생략).. 여긴 왜  왔어?"

 "아..한의원이요."(부동산1 아줌마도 이 한의원을 다닌다 하였다. 여기 선생님이 참 친절하다며...)

 "아... 그래.. 여기 다닌다고 했지.. 근데 있잖아. 저기 시장에 있는 OO한의원 있는데 여자 선생님인데.. 침 되게 잘 놔.. 나 여기가 아팠는데 말이야.. 맞고 나니까 너무 괜찮은 거야.. 여자 선생님인데...."(이하 생략)

 "하하.. 네... 잘 맞는 곳을 찾으셨나 봐요."(제 용건은 끝났습니다만?)

"그 선생님이 진~짜 좋다니깐? 침 값도 더 싸고.. (이 얘긴 여기 한의원에서도 하셨던걸로;) 너무너무 침을 잘 놓는 거야...(불쑥) 같이 가자. 거기 가서 맞자." 

"네??"(저 여기 진짜 오래 다닌 VVIP(?)인데요.. 굳이 옮길 생각도 없구요...같이 가자시면서 또 우리 아들 결혼 안 했단 얘기 하시려고 그러시나요? 아들 연봉 얘기하면서? 안물안궁인데 이미 지난번에 다 얘기하셨잖아요.. 대로변에 저랑 친구 세워두고서요.... 한참 동안요...)

"아... 아니요... 저 여기 갔다가 마트도 가야 하고.."(아차. 논리적 오류를 범했다. 가자고 나를 끌던 그 NEW 한의원은 마트 바로 옆에 있는 곳이었다. ㅋㅋ)

"(뭔지 모르게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그으래? 알았어..."(휴... 무사히 넘어간 것 같다.)

 집이 나오면 잊지 말고 연락 달라고 다시 한번 강조를 하고 한의원으로 입장했다. 왜지. 나 짧은 시간 내에 피로해진 것 같다. 환자가 많아 누워서 의사 선생님을 기다리며 잊고 있던 집 문제를 떠올린다.

 그렇지. 나에겐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 더 있었지. 그런데 생각하기가 싫다.

 닥치지 않은 일. 그리고 내가 도저히 알 수도 없고, 해결할 수도 없는 문제들은 그 어떤 예측도 추측도, 예단도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는 요즘이다. 나에겐 이 자체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라 꽤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생각하지 않으려 침을 맞고 잠을 청해 본다.


 집에 돌아와서 마카오에 가 있는 동안 첫 방송이 된(엄밀히 말하면 다시 부활된)  KBS 드라마 스페셜 다시 보기를  이제야 눌러본다.

제목이 '집우 집주'다. 응? 집에 대한 얘기네. 나 왜 오늘 하필 이거 보는 거임? 나 오늘 그냥 피곤해야 하는 날이구나.(포기)                           

[집우 집주] 어릴 적부터 ‘초라한 집’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는 수아. 갑작스러운 남자 친구의 프러포즈에 상견례를 하게 되고, 누추한 본가를 남자 친구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수아는 대형 사고를 치게 되는데..
-kbs 홈페이지-

 덜덜거리는 고물 차를 바꾸지도 않고 타는 짠돌이 남자 친구와 신혼집을 구하러 다니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 물이 줄줄 새는 낡은 집을 두고 부동산 중개업자는 "이 가격에 이런 매물은 드물다"는 말로 입막음을 시도하고 좀 이상쩍다 싶어 볼펜을 놓아본 집에서는 펜이 집의 기울기에 맞춰 데구루루 굴러간다. 마음에 쏙 드는 신축건물은 터무니없이 비싸다. 똑같은 경험은 없지만 얼추 울적한 마음이 이해가 된다. "부자들도 집 구할 때는 우울하대."란 말로 남자 친구는 주인공을 위로한다. 

 진짜로? 그 말에 내가 위안을 받으려는 찰나, 그다음 순간엔 좀 맥이 풀린다. 

 부모에게서 도움받지 않고 살기 위해 애써온 건실한 남자 친구의 집은 으리으리한 부잣집이었다. 얼마나 만났길래 저 정도로 잘 사는데 모를 수가 있나? 남자가 철저하게 검소한 생활을 하면 모를 수도 있나? 아니. 그래도 그렇지 가족 얘기를 한 번도 안 했다고? 의문부호가 연달아 붙어가고 있는데 심지어 저 시댁에선 반대도 안 하는데 부우자 시어머니는 굉장히 나이스 하기까지 하다. 부자고 아니고를 떠나서 적어도 나는 아직까지 저런 시어머니를 주변에서 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데?? (내가 모르는 세계에 많기를 바란다.)

 우리 종종 백화점에서 샤핑 하자.라고 말하며 교양 있는 예비 시어머니는 제발 우리(부자 시댁) 도움을 받아서 버젓한 집을 마련하라고 말한다. 

 "요즘 시대엔 어느 동네, 어떤 집에서 사는지가 신분이야"라는 말을 덧붙이며. 악의 없이.

 닥칠 일도 없는 미래 건만 나였으면 어땠을까... 를 또 가지치기로 이리저리 생각해보다 그래도 어찌 됐건 결국엔 주눅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을 것 같다. 낯선 사람에게 동네와 집의 형태를 말하기를 꺼려하는 이유가 단박에 내 상황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걸 놓고 보면 집이 내 신분을 말한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다행이라면 그래도 주인공처럼 집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진 않다. 

 남자 친구에게 기죽기 싫어 집의 낡은 소파를 급히 교체하고 급기야 갑자기 집으로 찾아오겠다는 남자 친구 얘기에 일을 봐주고 있던 친구의 럭셔리한 예비 신혼집을 자기 집처럼 소개하고 만다. 엄마 아빠까지 불러들여서. 친구가 들이닥치면서 금방 탄로 나고 말지만.

 어디 살고, 부모님 뭐 하시는지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는 그런 사람으로 보이냐고 화내는 남자 친구의 말에(근데 요즘에 이런 남자 있음? 본 적 있음 좀 알려줘 봐요 ㅋㅋ) 주인공은 너와 상관없이 내가 부끄러워서 그랬다고 고백한다. 내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사람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는지 아느냐며.

 응. 알아. 하지만 연극과 거짓은 너로 끝냈어야지, 부모님까지 끌어들인 건 니가 잘못했지. 결국엔 부모님이 살아온 인생을 부정하고 부모님까지 부끄러워한 게 돼버렸으니까.(주인공한테 혼자 떠드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살아온 인생이 아니니 함부로 단정할 순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기구나. 여기가 우리 집이구나. 그런 집을 만나게 될 거야. 아.. 내 집이구나 싶은 집."

주인공 어머니의 말에,

'내 집이었으면... 이 아닌 내 집이구나 싶은 집을 과연 만날 수 있을까?'라고 주인공은 의구심을 갖는다.

 물론 마지막에 그런 집을 만난다. 희망을 말해야 하는 드라마의 엔딩이므로.


 흔히들 취업과 연애를 비슷하다고 얘기하는데 그 어떤 험난한 과정을 거쳤든지 간에 결국엔 1승만 하면 성공이란 뜻이다.  노력, 적당한 타이밍, 그리고 운이라는 삼박자가 맞아떨어져야 한다고들 하고 아무리 남들이 좋은 곳,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내 느낌이 오지 않으면 인연이 아닌 것이라 한다. 집도 결국 같은 의미가 아닐까 싶다. 신혼집을 구했던 친구의 말을 들으면 진짜로 '여기다' 싶은 느낌이 딱! 오는 곳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또 엄마는 '너의 집이 되려면 결국엔 되게 되어 있다'라는 의견을 피력했는데 무슨 말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다만 느낌은 알 것도 같다.  그러고 보면 삼포세대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모양이다. 셋 모두 결국엔 비슷한 패턴과 물고 물리는 접점이 있으니 하는 말이겠지. 주인공 엄마의 대사에 집 대신 '회사' '사람'을 넣어도 다 말이 되는 걸 보면.  셋 중에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룬 바 없는 나는 객관적으로 루저라고 불러도 할 말이 없다. 

 알고 있다.

 똥차 갔다고 누구에게나 벤츠가 오는 것 아니고

 두꺼비한테 헌 집 줬다고 새집 받은 얘기는 들은 적 없지만

 내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부분들만 남아 있다면 때론 견뎌내는 시간만으로 인생을 채워야 하는 때가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헌 집이라도 있어 몸 뉘일 곳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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