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학교에 간 평일, 미세먼지가 유달리 심했던 날! 엄마와 올레길의 시초인 1코스를 함께 걸었다. 말미오름과 알오름에 올라 우도와 성산일출봉이 펼쳐지는 절경을 감상하고, 아기자기한 종달리 마을길을 따라 걷다가 에메랄드빛 종달리 바다가 한없이 펼쳐지는 구간에 이르렀다.
거의 4시간 정도 쉼없이 걸었던 것 같은데, 엄마는 꽤 잘 걸으셨다. 마음은 완주까지 하고 싶었으나,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 임박해져서 얼른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은 고성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라, 엄마께 오일장 구경을 시켜 드리려고 성산 쪽으로 다시 갔는데! 어차피 여기까지 온 김에 어제 못 끝낸 1코스 길을 마저 걷기로 했다. 오조포구가 있는 2코스 길도 조금 걷다가 광치기 해변까지 무사히 완주했다.
"올레길 너무 좋다. 내 발로 걸으면서 보니까 속속들이 제주를 알아가는 기분이 들어."
엄마는 그렇게 올레길의 묘미에 푹 빠지셨다.
엄마와 함께 맞이한 첫 주말에는 비 예보가 있었다. 토요일에는 하루종일 비가 내렸고, 일요일에는 오전에만 비가 온다고 해서... 아이들과 올레길 5코스 걷기를 계획해 두고도 망설이던 중이었는데!
아이들이 우비를 입고서 올레길을 걸어보고 싶다고 했다. 과감한 녀석들!!! 그래서 우리는 우중 올레길 걷기에 도전!!!
나와 엄마, 그리고 나의 두 딸들, 이렇게 3대가 함께 올레길 5코스 완주에 성공했다. 엄마는 우리 아이들과 걸으니 더욱 즐겁고 행복했다는 소감을 전해 주셨다.
비가 많이 오던 평일에는 우리 집과 연결된 올레길 4코스도 양쪽 방향으로 산책 삼아 다녀왔고... 비가 그친 평일에는 야심차게 '런던 베이글 제주점'에 찾아 갔다가, 함덕해수욕장까지 이어진 올레길 19코스도 걸었다. 완주는 못 하고 돌아왔지만, 느낌상 3분의 1 정도는 걸었던 것 같다^^
대망의 하이라이트는 올레길 7코스였는데... 이유는 너무 힘들어서...ㅋㅋㅋ
엄마와 함께 한 두 번째 주말은 해가 쨍쨍, 날씨가 좋았다! 첫째 아이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7코스를 걷자고 해서 야심차게 걷기 시작했는데...ㅎㅎㅎ 아이들이 좋아하는 숲길과 돌길보다는 잘 가꿔진 산책로나 아스팔트 길이 많아 좀 더 힘들었다(?)
엄마도 나와 함께 걸은 올레길 중, 가장 별로라고 말씀하실 정도였으니^^; 겨우 밤 8시가 다 되어 우여곡절 끝에 올레길 완주에 성공하고...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도착해서 보니, 그 날 3만 5천보를 걸었더라. ㄷㄷㄷ
나보다 연세 있으신 엄마 무릎이나 발 상태가 걱정이 되었는데... 다음날 굉장히 힘들어 하긴 하셨지만, 하루 잘 쉬고 나니까 엄마도 금세 체력을 회복하셨다.
올레길을 세 코스나 완주한 우리 엄마... 연세도 있으신데, 진짜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아직 이렇게나 건강하다는 걸 알 수 있었던 시간.
엄마, 지금처럼 체력 관리 잘 하셔서 다음에 또 올레길 도전합시대이^^
엄마와 걸었던 여러 올레길을 기억할게요..^^
3. 엄마는 미술관 나들이를 좋아하신다.
제주는 의외로 비가 많이 내린다. 엄마가 제주에 머물렀던 많은 날들 중 절반은 비가 내렸던 것 같다. ㅎㅎ 비가 오는 날에는 엄마와 함께 미술관 나들이를 갔다.
김영갑 두모악 갤러리, 왈종 미술관, 빛의 벙커, 이중섭 미술관, 기당 미술관
모든 곳이 좋았다.
김영갑 두모악 갤러리는 남편과 연애하던 13년 전에 방문했던 곳인데... 그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김영갑 작가님이 사진으로 찍은 제주의 오름은 여전히 멋있었고, 야외 정원은 비 오는 날의 운치를 느낄 수 있어 더욱 좋았다.
왈종 미술관은 작가님 특유의 재치와 아이디어가 듬뿍 들어 간 제주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미술관 옥상에 올라서 내려다 본 섶섬과 서귀포 앞바다가 너무 아름다웠다. 제주에서 만나는 미술관은, 늘 멋진 야외 풍경을 품고 있어 두 배로 볼 것이 넘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빛의 벙커에서는 샤갈의 매혹적인 그림을 음악과 함께 만나볼 수 있었는데, 역시나 야외 정원도 만만치 않게 멋있었다. 왈종 미술관에서 이미 보고 온 이왈종 작가님 그림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음악과 함께 보니 더욱 귀엽고 천진스러운 그림들이었다.
이중섭 미술관은 남편과 지난 달에 방문했는데, 또 와도 좋았다. 배가 고파 서귀포 바다에서 잡은 게로 끼니를 해결하며, 게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셨다는 이중섭 화백님... 덕분에 이중섭님 그림에서는 수많은 게를 찾아 볼 수 있었다.
엄마와는 이중섭 미술관을 시작으로 이어지는 작가의 산책길도 함께 걸었다. 그 길 위에는 다양한 조각상과 예술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 산책길이 너무나 예쁘니 추천합니다^^
마지막으로 엄마와 함께 간 미술관은 기당 미술관! 기당 강구범 선생님께서 서귀포시에 시립 미술관으로 기증했다는 독특한 모양의 미술관인데! 변시지 작가님의 상설 전시가 특히 마음에 와닿았다. 제주의 아름다운 모습을 외롭게 형상화한 그림들이 많았다.
기당 미술관 내부 형태에 감탄하다가, 아트 라운지로 가 보면! 기가 막힌 한라산 뷰가 펼쳐진다. 아이들이 그림 그리며 놀 수 있는 작은 놀이 공간도 마련돼 있으니, 이곳은 영유아 부모님이 오시면 딱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튼 이렇게 엄마와 여러 미술관을 다닌 덕분에, 엄마에게 예술적 감성이 가득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도 미술 실력은 젬병이지만, 아름다운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꽤나 좋아하는데... 역시 피는 못 속인다는 걸 느낄 수 있었지요 :)
엄마와 함께 간 제주의 미술관들을 기억할게요..^^
엄마와 함께 한 2주가 쏜살 같이 지나고, 예정된 날짜에 스위스 여행을 마친 남편이 돌아왔다. 다시 한 번 사위와 장모는 바톤 터치를 하게 되는데...
기분 탓인가... 두 사람 사이에 이런 대화가 눈으로 오간 것만 같은 기분은...?
'장모님, 2주간 고생 많으셨죠...? 철없는 제 와이프이자, 막무가내 딸내미와 함께 지내느라 정말 고생하셨어요!'
'아니 이서방, 2주가 왜 이렇게 길던지... 다시 한 번 느끼지만 이렇게 부족한 내 딸과 살아 주느라 참말 고생이 많소! 미안하지만 이런 내 딸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이서방 뿐이네... 고맙구먼!'
허허허, 그저 웃지요^^;
엄마! 이번 어버이날 선물은... 딸과 사위 모두 백수(?)인 관계로 ㅎㅎㅎ 미리, 제주의 봄을 선물한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제주에서든, 육지에서든, 우리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