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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뽀 Apr 25. 2024

고사리를 잘 찾아내는 재주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고사리야 너도 그렇다.

어? 고사리 찾았다! 이거 좀 봐~ 고사리 맞는 거 같지? 그치?


남편의 고사리 타령은 꽃샘 추위가 채 가시지도 않은 3월 초부터 시작되었다. 4월 하순에 접어 든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남편의 설레발은 빨라도 너무 빨랐다.


제주도 야생 고사리 채취 시기 : 기온이 20도 이상 오르는 4월 초순부터 5월 중순 사이에 이뤄짐.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3월부터 우리 부부는 둘이서 본격적인 제주 탐방에 나섰다.


그 중에 대부분의 날들은 오름을 오르는 데에 열중했는데, 가장 먼저 갔던 오름이 바로 우리 동네에 있는 오름이다. 유명한 오름은 아니었지만, 동네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오름이 있다는 게 좋아서 한껏 들뜬 상태로 오름을 올랐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문득 시선을 낮춰 길 옆을 내려다 보니, 고사리 잎들이 많이 보였다. 그 무렵 나는 도서관을 갈 때마다 제주와 관련된 책들만 빌려 읽고 있었는데, 마침 책에서 자주 봤던 고사리 꺾는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여보! 제주 사람들은 봄 되면 다들 고사리 꺾으러 간대~ 나야 고사리 나물 안 좋아해서 별 관심은 없지만, 왜 그렇게 고사리를 꺾으러 가는 거지?”


“돈 주고 고사리 사려면 되게 비싸~ 귀한 거니까 잘 꺾어다 나물 해 먹으면 좋지! 우리도 제주 사는 기념으로 올 봄에 고사리 한 번 캐 볼까?”


그렇게 남편이 드릉드릉~ 고사리 꺾기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고사리 잎이 많이 보이던, 3월의 동네 오름!




사실 나는 내 손으로 살림을 시작한 이후(무려 12년간), 직접 고사리를 사 본 적이 없다. 당연히 고사리를 직접 꺾어본 경험도 전무하다!


왜 한 번도 고사리 나물을 만들 생각은 안 해 봤을까? 새삼 놀라웠다. 식당에 가서 비빔밥 먹을 때 고사리 나물이 섞여 있으면 맛있게 잘 먹으면서 말이다.


그러니 이번에 고사리를 꺾어 본다면, 그건 내가 살면서 처음 해보는 일이 될 것이었다. 그렇게 직접 꺾은 고사리로 나물을 만들어 본다면, 그 또한 내가 살면서 처음 해보는 일이 될 것이었다.


중요한 사실은 이 정도로 고사리에 관심이 없었다 보니, 야생에 돋아난 생 고사리가 어떻게 생긴 건지, 어떤 고사리를 꺾어야 하는지 전혀 감이 없었다는 거다.


고사리에 문외한인 나만큼 남편도 고사리에 관심 없이 살아온 건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이상하리만치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본인도 고사리 꺾기는 처음이라면서, 고사리 잎들 사이로 삐죽 올라온 본인이 생각하는 고사리를 몇 개 꺾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본인이 꺾은 고사리를 사진으로 찍어, 어머니께 전송하며 고사리 감별을 요청했다.


“엄마, 이거 고사리 맞지?”


어머니는 훌륭한 고사리 감별사로 손색 없는 분이셨다. 어머니께서는 아들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고사리와 관련된 다른 이야기부터 꺼내셨다. 제주는 벌써 고사리가 나냐, 아직 시기가 아닐 것 같은데, 보통 4월은 되어야 고사리 순이 올라오지… 등등.


“아니, 그래서, 내가 지금 꺾은 거 고사리 맞냐고!!”


남편은 답답했는지 어머니 말씀을 끊고, 본인이 가장 궁금한 본론을 물었다. 어머니는 단호하게 이렇게 말씀하셨다지.


“땡! 그건 고사리가 아니라 개고사리야!”


남편은 어머니와의 전화를 끊더니 시무룩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엄마가 이건 개고사리라고 하시네… 이런 개…”


(남편의 뒤엣말은 생략하기로 한다. ㅋㅋㅋ)


그 후로도 똑같은 장면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남편은 오름을 오를 때마다 고개를 숙이고 땅만 쳐다보며 걷다가, 본인이 생각했을 때 고사리인 것 같으면 꺾어서 고사리 감별사인 어머니께 사진을 찍어 보냈다.


“땡~ 그건 고사리가 아니야~”


“이번에도 땡~ 고사리는 갈색 빛깔도 좀 나고, 줄기가 매끈해~”


“아이고… 한 번만 고사리 꺾어 보면 그 다음부터는 잘 알 텐데… 안타깝네! 땡!”


연이은 ‘땡’에 포기할 법도 한데, 남편은 고사리 찾기에 실패할 때마다 다시금 전의를 불태웠다.


“이제는 오기가 생겨서라도 내가 진짜 고사리 찾아 내고야 만다!!”


어떤 오름을 가든지, 고사리를 찾아 보느라 분주했던 남편^^;




그러다 3월 중순부터 승마 수업을 가게 되었고, 승마장 근처에 유명하지 않은 오름이 있어서 승마 수업이 끝난 후 한 번 올라가 보기로 했다.


나는 오름 정상에 올라 잠시 숨을 고르며 쉬고 있었고, 남편은 여전히 고사리 찾기에 몰두한 채로 저만치 나무 덤불 뒤로 사라진 뒤였다.


“고사리 찾았다!!!!!!!!!!!”


별안간 남편이 소리쳤다. 감정 기복이 크지 않은 남편이 잔뜩 신난 목소리로 덤불을 헤치며 나타났다. 손에는 고사리로 추정되는 풀을 소중히 들고서. 누가 보면 산삼이라도 캔 줄 알았을 것이다. ^^;


남편은 이번에도 고사리 감별사인 어머니께 당장 사진을 찍어 보냈고, 어머니 답장을 기다리는 그 잠시도 못 참고 냅다 전화를 걸어 다급히 물어댔다.


“엄마, 사진 봤어? 이번엔 진짜 고사리 찾은 것 같은데 맞지? 그치?”


“어… 잠깐만 있어봐, 아직 사진을 못 봐서…”


남편은 잔뜩 기대에 찬 얼굴로, 또 한편으론 초조한 얼굴로, 어머니의 대답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보나마나 이번에도 ‘땡’일 텐데, 우리 남편 짠해서 어쩌나…


그런데, 이번엔 휴대폰 너머로 어머니 목소리가 무척 크게 들려왔다.


“오! 딩동댕이다~ 그게 고사리야. 이번엔 제대로 찾았네.”


남편은 아이처럼 헤벌쭉 웃으며 좋아했다. 7전 8기 끝에 얻어낸 값진 성공이었다.


남편이 처음으로 진짜 고사리 찾기에 성공한 날! 심지어 나에게 기념 사진을 찍어 달라고 요청하셨다^^;




며칠 후, 우리 부부는 동네 오름을 다시 오르기로 했다. 처음 갔을 때는 보이지 않던 고사리가 왠지 보일 것 같다는 남편의 촉(?)을 확인하러 가는 것이었다!


남편은 이전보다 한층 더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고사리를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남편이 싱글벙글 웃으며 고사리를 꺾는 모습을 보니, 이상하게 나도 한 번 고사리를 꺾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여태껏 고사리 꺾기에는 남편만 열정적이었을 뿐, 나는 뒷짐 지고 시큰둥한 태도로 일관하던 참이었다. 고사리를 찾으려면 허리를 깊이 숙여야 했고, 풀숲을 자세히 들여다 봐야 했고, 쭈그리고 앉은 자세를 자주 취해야 했는데, 그런 과정들이 영 귀찮아 보였기 때문이다.


좋아하지도 않는 나물을, 그만큼의 수고와 정성을 들여 찾아보고 싶지는 않았는데! 감정 표현이 뚜렷하지 않은 남편이 저렇게나 해맑은 표정으로 고사리를 찾아 다니는 이유가 뭘지, 몹시 궁금해졌다.


그 이유는, 내가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절대 모를 일이었다. 그러니 이상은 물러설 곳이 없었다. 나고사리를 꺾어 보는 수밖에!


남편은 저만치 앞서 걸으며 고사리를 탐색 중이었고, 나도 그 뒤를 따라 걸으며 고사리로 추정되는(?) 녀석들을 조금씩 꺾어 보았다. 고개를 계속 갸웃거리며...^^;


“이거 고사리 맞아?”


오름 정상에 올라 남편에게 내가 꺾은 고사리들을 넌지시 내밀며 물어 보았다. 남편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시 한 번 고사리 감별사님의 도움이 필요한 때였다.


어머니께서는 사진 속 수많은 고사리 중에 딱 1개만 진짜 고사리라고 알려주셨다. 꺄악!!!!! 순간 너무나 기뻤다. 내가 내 손으로 고사리를 꺾었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신기해서.


그 날 내가 꺾은 단 1개의 고사리는 마치 행운의 네잎 클로버처럼 느껴졌다. 제주에서만큼은 네잎 클로버를 찾는 행운보다 '고사리'를 찾는 행운을 누리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그렇다면 더 많은 행운을 누리기 위해서라도 고사리를 찾으러 다녀야만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드릉드릉~ 남편에 이어, 나 역시도 고사리 꺾기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내가 처음 찾은 단 하나의 고사리 / 너무 좋아서 그 고사리와 찰칵^^




고사리에 전혀 관심 없던 내게 고사리가 의미 있는 존재로 와닿은 순간, 갑자기 김춘수님의 시 ‘꽃’의 앞 구절이 떠올랐다. 중학교 1학년 때 국어 선생님께서 첫 시간에 읊어 주신 시였는데, 내 마음을 울린 몇 안 되는 시 중에 하나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 시에서 말하는 '꽃'이 나에게는 바로 '고사리'였다. 한 평생 고사리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살던 내가, 고사리를 발견한 순간 첫눈에 반하고야 말았다.


사리는 마치 아기가 손을 움켜쥔 것처럼, 아직 잎을 피우지 않은 채 오므리고 있는 형상이었는데... 우리 딸들 아기 때 손처럼 앙증 맞고 솜털이 보송보송한 게 무척이나 귀여운 모습이었다.


어릴 때부터 엄마는 유난히 작은 내 손을 보실 때마다 꼭 ‘고사리 같은 손’ 이라고 말씀하시고는 했는데! 솔직히 내 손을 왜 고사리와 비유하는지 이해를 못했던 게 사실이다. 고사리를 본 적이 없었으므로...^^


'고사리 같은 손'의 참뜻을 제주에 와서 직접 고사리를 꺾어 본 지금에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참 재밌는 일이지! 한 번 고사리를 알아차리기 시작했더니, 계속 고사리가 눈에 들어왔다. 대신 귀여운 아기 모양의 고사리를 발견하려면, 허리를 최대한 숙이고 시선을 한껏 낮추어 길에 난 수많은 들꽃과 풀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 했다.


심지어 평탄한 길가에는 잘 보이지 않고, 가시 덤불이 있는 약간 어두운 곳에 숨어서 피어 있을 때가 많았다. 그러니 고사리를 만나고 싶다면 겸손하게 자세를 낮춰야 했고, 어느 정도의 위험을 무릅 써야만 했다.


그런 노력 끝에 만나게 된 고사리는 더할 나위 없이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고사리야 너도 그렇다..^^




가시 덤불 속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는 고사리를 마주할 때마다 굉장히 짜릿한 기분이었다. 마치 나에게 하이파이브를 청하고 있는 것만 같았던 고사리!


반가운 마음 반, 미안한 마음 반 담아, 고사리를 톡 하고 꺾으면 또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었다. 와… 이래서 사람들이 고사리 꺾는 재미에 빠져드는 거구나! 알 수 있었다.


고사리 꺾는 매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4월의 반절은 고사리를 찾으러 여러 오름을 오르내렸던 것 같다. 유명하지 않은 낯선 오름일수록, 인적이 드물수록, 고사리를 만날 확률이 높았다.


초반에는 준비해 간 봉지가 무색할 만큼 조금밖에 못 꺾다가, 나중에는 준비해 간 봉지를 가득 채운 채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 더 많아졌다.

 

고사리 꺾는 매력에 빠져, 오름을 헤매이던 4월의 여러 날들




나름 고사리 하수를 벗어나 중수가 되어 가고 있던 우리 부부! 아이들과 올레길 9코스를 걷던 4월의 어느 날, 군산 오름에서도 심심찮게 고사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고사리를 소개해 주었고, 아이들 역시 처음으로 고사리를 꺾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역시나, 고사리 꺾기는 어른보다 아이들에게 더 재미있는 일이었다. 오름을 내려가는 길목마다 멈추며 고사리 꺾는 데 혈안이 된 아이들! 고사리 같은 손으로 고사리를 꺾어다가 나에게 보여주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해 지기 전에 올레길을 완주해야 했기에, 갈 길이 멀다는 핑계를 대며 겨우 고사리 꺾기를 멈추게 했는데... 그래도 날은 올레길을 걷는 내내 곁눈질을 해가며 고사리를 찾는 아이들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엄마! 우리가 오늘 꺾은 고사리로 나물 반찬 해줘요~"


"그래~ 우리가 꺾은 고사리로 나물 해 먹자!"


아이들에게 고사리 나물을 해주겠노라 단단히 약속하고 올레길을 마저 걸었더랬다.


한라산이 보이던 군산 오름에서, 고사리 꺾는 아이들 모습^^




우리가 꺾어 온 고사리는 남편이 직접 삶고 옥상에 말려서 건고사리로 만들어 두었다. 고사리 나물을 만드는 데에 이렇게 큰 수고가 든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이 고사리들이 너무 소중해서 아직 반찬으로 만들어 먹지도 않은 채 바라만 보고 있는 건 비밀...^^

 

직접 삶은 고사리, 그리고 말린 고사리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고사리를 알고 나니 고사리만 눈에 들어오는 신기한 경험을 했던 나날들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 아닐까. 한 사람의 존재를 인식하는 순간, 그 사람이 계속 보이게 되는 것.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해 깊이 알고 싶다면 내 몸을 낮추고, 그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 자세히 들여다 봐야 한다는 것.


고사리를 잘 찾아내기 위해 썼던 재주를 내 사람을 찾을 때도 잘 발휘해야겠다고 다짐하며, 김춘수 님의 '꽃'의 마지막 구절을 덧붙이는 바이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화려한 꽃다발보다 더 소중한, 내가 꺾은 고사리로 만든 다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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