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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뽀 Apr 11. 2024

포기를 모르는 재주

남편은 쉽게 포기하려는 나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남편과 ‘한라산 대첩’을 치뤘던 게 불과 2주 전의 일이다.


한 달에 한 번씩 가족과 한라산을 가고 싶다던 남편의 바람을 ‘욕심’이란 말로 치부했다가 엄청 욕을 먹었던 사건. 앞으로도 쭉, 그 때 그 부부 싸움은 ‘한라산 대첩’이라 명명하고자 한다.


(6화, 남편과 잘 싸우는 재주 편을 참고해 주세요^^)


그 때는 남편이 나의 강한 반항에 못 이겨 한라산 예약을 취소해 주었고, 나는 3월의 ‘한라산 대첩’에서 승리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경기도 ‘오산’이었을 뿐.


남편은 ‘포기’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이 분명했다. 우리 집 아이들도 종종 “엄마! 포기라는 말은 배추 셀 때나 쓰는 거지~”라고 말하는데, 그게 다 아빠한테 배운 거다.



"3월에는 한라산 못 갔다 치고, 4월에 다시 가볼까 하는데… 너는 어떻게 할 거야?"


4월로 달력을 한 장 넘기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남편이 물어 보았다. 또 시작된 ‘한라산 가자’ 공격!


저번에는 일방적인 ‘한라산 가자’ 폭격을 감행했다면, 이번에는 넌지시 던지고 내 의중을 살피는 ‘한라산 또 갈 건가 그대?’ 회유책으로 전술을 바꾼 남편이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던가…


나는 청개구리 심보가 있어서 누가 자꾸 하자고 조르면 더욱 하기 싫어하는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런데 누가 뭐 좀 같이 해보자고 조심스럽게 제안하고 계속해서 부탁을 하면 이상하게(?) 마음이 쓰여서 해주게 된다.


그러니 나에게는 직접 대놓고 말하기보다는 간접적으로 돌려 말하기가 더 잘 통하는 편이다.


남편이 이번에야말로 청개구리 심보를 가진 나를 간파하고, 아주 교묘하게(?) 한라산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남편은 원래 핵심만 말하고 돌려 말하는 것 따윈 딱 질색하는 스타일인데, 이번엔 좀 달랐다.


“니가 한라산 안 가고 싶으면 안 가도 괜찮아. 그냥 너 빼고 나랑 애들만 예약하면 되니까 편하게 말해줘.”


어랏? 나는 이런 방식으로 말하는 사람 앞에서는 다시 청개구리로 변하고 만다. 안 해도 된다고 말하면, 은근히 더 하고 싶어서 안달 나는 청개구리 심보 발동!


“아니, 뭐, 내가 죽어도 못 가겠다는 건 아니고… 성판악 코스가 너무 지겨워서 거기로 또 가기는 싫거든… 어차피 한라산을 또 갈 거면 차라리 관음사 코스로 가는 건 어때? 새로운 길로 가는 거면 한 번쯤 더 가보는 것도 나쁘진 않지…”


으악…!! 저게 진짜 내가 한 말이란 말인가? 내가 뱉은 말에 나조차도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백록담으로 가는 단 2개의 코스 중에서도 난이도 극상이라는 관음사 코스를 내 입으로 말하다니! 내가 뱉었던 말을 다시 주워 담으려는 찰나, 기회는 이 때다 싶었던 남편이 속사포처럼 화답했다.


“오, 그거 좋은 생각이네! 그럼 이번에는 관음사 코스로 가보자~ 이번 주 토요일에 우리 가족 4명 이름으로 예약할게!”


남편은 빛의 속도로 한라산 탐방 예약을 완료했다.


아… 내 입이 방정이지! 아니면 청개구리 심보를 가진 내가 문제야 문제! 그렇게 가기 싫다던 한라산을, 그 어렵다는 관음사 코스로 갈 생각을 하다니…


후회해도 소용 없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 그렇게 나는 체념한 채로, 우리 가족과의 두 번째 한라산 등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내가 한라산을 다시 오르기 싫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내 무릎 상태 때문이었다.


지난번에 한라산을 내려오며 오른쪽 무릎이 시큰시큰 많이 아렸는데, 지금도 여전히 조금은 아픈 상태. 이러다 혹시 무릎이 아작이라도 날까 봐 겁이 났다.


남편은 다시 한 번 한라산을 오르겠다고 결심한 나를 위해, 무릎 통증을 줄여 준다는 무릎 보호대를 사주었다. 제발 이번 한라산에서는 저번만큼 무릎이 아프지 않길 바라며!




어느새 한라산 가기 하루 전날이 되었고, 아이들과 마트에서 한라산 등반하며 먹을 간식을 좀 사기로 했다. 남편과 나는 내일 아침으로 대충 뭘 먹을지 상의 중이었는데, 이야기를 듣고 있던 큰 아이가 불쑥 말했다.


“저번에 한라산 갈 때는 성판악 휴게소에 도착해서 김밥 먹었잖아! 엄마가 싸준 김밥! 거기서 먹으니까 진짜 꿀맛이던데~ 이번엔 안 싸?”


흐엑! 한라산 가기 전날에 김밥을 싸는 건 큰일이었다. 저번에도 밤 늦게까지 김밥을 싸고 다음날 새벽 5시에 일어나 한라산을 오르려니, 이미 기운을 다 쓴 느낌에 매우 힘들었다. 내 체력을 조금이라도 더 아끼려면 김밥을 만드는 일만은 피해야 했다.


“딸내미, 이번엔 김밥 안 쌀 거야! 엄마 힘들어서 안돼~ 정 먹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문 연 김밥 집 찾아 가서 사든지 하자~”


내가 강경하게 김밥을 안 싸고 싶다는 의견을 표명하자, 이번에는 맛.잘.알. 미식가 둘째가 끼어들며 말했다.


“나는 사먹는 김밥은 별로 내 입맛 아니야… 나는 엄마가 싸주는 김밥이 훨씬 더 맛있는데! 아 벌써 군침 돈다! 엄마가 싸준 김밥 또 먹고 싶어…”


포기를 모르는 우리 집 남편에 이어 포기를 모르는 우리 집 아이들 등장! 장화 신은 고양이 눈빛을 한 채로 엄마 김밥이 얼마나 맛있는지를 번갈아 예찬하며, 엄마 입에서 김밥을 싸겠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효녀(?) 들.



“알았어~ 김밥 재료 사 가서 김밥 만들어 줄게! 엄마가 졌다 졌어~”


포기하지 않는 마음으로 나를 한라산에 다시 데려가는 남편이나, 포기하지 않고 나에게서 김밥을 얻어내는 딸들이나, 아주 부전여전이 따로 없지 싶었다.


나의 한라산 등반 준비는 저번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역시나, 하루 전날에 김밥 10줄을 만드는 것으로 끝이 났다.


(왠지 이게 한라산 가기 전날의 루틴으로 자리 잡을 것 같은 건… 기분 탓이겠지?)


관음사 야영장 주차장 도착, 간밤에 열심히 싼 김밥을 아침으로 먹고 출발!




한라산 등반 당일 아침의 루틴도 있다. (아직 두 번 밖에 안 해봤지만 루틴이라고 해두자!) 소개하자면 대략 이렇다.


5시에 일어나서 씻고 옷 입고 등산 가방을 꾸린 뒤 5시 30분쯤 차에 올라 탄다. 출발 지점에 도착하면 6시 30분 전후. 주차를 하고 차 안에서 싸온 김밥을 야무지게 먹는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출발 게이트에서 신분증과 예약 QR 코드를 제시한다. 출발 게이트를 통과하면 본격적으로 한라산 등반이 시작되는데, 그 때가 늘 7시쯤이다.


지난 2월에 성판악 코스를 출발할 때는 아침 7시에도 사방이 칠흑 같이 어둡고 캄캄해서 보이는 게 거의 없었다. 겨울이라 해가 늦게 떠서 그랬겠지. 그 때는 아침 기온도 어찌나 낮았는지 오들오들 떨며 출발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똑같이 7시에 출발하는데도 이미 해가 뜬 뒤라 주변의 모습이 환하게 잘 보였다. 아침 기온도 그렇게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 이렇게 봄이 온 거구나!' 


같은 시각에 올려다 본 하늘의 색깔과 확연히 느껴지는 온도의 차이로 계절이 바뀌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4월의 한라산 관음사 코스 입구, 7시에도 이미 해가 떠서 환하다^^




남편은 얼른 한라산을 가고 싶었던 모양인지, 자신의 휴대폰으로 받은 본인 예약 코드만 보여주고 훌렁 게이트를 먼저 통과한 뒤 저만치 멀리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내 휴대폰으로 받아 둔 나와 아이 2명의 예약 코드를 차례로 보여 드리고, 등본으로 아이들 이름도 확인시켜 드려야 해서 시간이 좀 걸렸다.


그런데 관음사 초소를 지키고 계시던 직원 분께서 우리 세 사람을 너무나 걱정된다는 듯이 바라보기 시작하셨다. 아무래도 나와 딸 2명, 이렇게 셋이서만 산행을 간다고 오해를 하신 듯 했다.


“여기 관음사 코스 길 알고 가시는 거죠?”


“아니요~ 처음 가봐요~”


직원분께서는 꽤나 당황스런 눈빛으로 나와 아이들을 번갈아 쳐다 보셨다.


“관음사 코스가 어린 아이들에게는 꽤 어려울 겁니다. 가파른 경사가 많아서 어른들도 힘들어 도중에 포기하고 내려 오거든요. 괜찮으시겠어요?”


“아… 2월에 성판악 코스로 백록담까지 다녀온 적 있는 아이들이예요! 이번에도 도전하고 싶어 해서 천천히 가보려구요~”


그래도 여전히 염려가 된다는 얼굴로 아이들에게 직접 물어 보시던 직원 분.


“얘들아, 성판악 코스보다 길이 더 힘들 텐데, 그래도 갈 거니?”


두 아이 모두 자신만만한 얼굴로,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네! 저희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저희보다는 엄마가 더 못 올라가요~ 저희는 잘 갈 수 있어요!”


(흠… 얘들아, 그게 사실이긴 하지만! 굳이 내 얘기까지 할 필요는…^^;)


“그래! 그럼 올라가다가 너무 힘들어지면 엄마한테 꼭 아래로 돌아가자고 말해야 돼! 무리하지 말고 가다가 힘들면 내려오렴!”


“네! 저희는 끝까지 갈 건데, 엄마가 힘들어 하면 먼저 내려 가라고 할게요~”


아주 이 녀석들이…ㅋㅋ 엄마 놀리느라 바빠서, 정작 관음사 코스에 대한 직원 분의 경고 말씀에는 관심도 없어 보였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쉬엄쉬엄 조심히 올라 가고, 사슴도 많이 만나고 오렴~”


자신의 손주들 보듯 걱정해 주시던 초소 직원분의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우리 가족은 4월의 한라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맑은 공기를 한껏 들이 마시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내 안의 다른 내가 모습을 드러낸 것도 바로 그 때였다.


한라산 가기 싫다고 그토록 구시렁대던 나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봄의 한라산을 만난다는 사실에 한껏 설레어 하는 낯선 내가 그 길 위에 서 있었다.


한라산의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는 순간, 아이들과 함께 걷는 순간, 모든 순간이 행복...




지난 성판악 코스가 온통 하얀 세상이었다면, 이번 관음사 코스는 온통 초록으로 물들어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남편이 극찬해 마지 않던 하얀 눈으로 가득한 겨울 한라산보다 싱그런 초록 빛깔이 번져가고 있는 봄의 한라산이 훨씬 좋았다.


저번에는 너무 추워서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춥지 않아서도 좋았다. 날씨가 얄궂지 않으니 오르는 길이 아무리 험하다 한들, 눈보라 치는 미끄러운 눈길보다는 전혀 힘들지 않게 느껴졌다.


성판악 코스에서 컵라면을 먹은 곳이 ‘진달래 대피소’였다면, 관음사 코스에서 컵라면을 먹은 곳은 ‘삼각봉 대피소’였다. 아이들이 컵라면 먹을 생각으로 열심히 걷고 걸어서 당도한 그 곳. 압도적으로 웅장한 모습의 삼각봉이 우리를 맞이해 주고 있었다.


우뚝 솟은 삼각봉이 보이기 시작! 이제 백록담까지 얼마 안 남았다!




삼각봉 대피소에서 따뜻한 라면 국물에 남은 김밥까지 든든히 먹고서는 다시 백록담을 향해 출발! 여기까지 온 마당에, 백록담까지 가는 건 이제 시간 문제였다.


심지어 그 곳부터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풍광이 파노라마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성판악 코스를 걸을 때는 눈보라가 하도 세차게 불어서 그랬나, 새하얀 눈 외에는 볼 수 있는 풍경이 매우 제한적이었다. 이번에는 코스가 달라서 그런가, 계절이 달라서 그런가, 더 넓은 시야로 한라산의 여러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어 좋았다.


오르면 오를수록 멋있었던 한라산




관음사 코스가 어른들에게도 혀를 내두를 만큼 힘들다고 악명이 높다더니, 성판악 코스 때는 간혹 보이던 아이들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 날 관음사 코스를 오르던 아이들은 오직 우리 집 아이들 뿐이었다.


그 덕분에 지나가는 모든 어른들의 관심과 응원을 한 몸에 받게 된 아이들. 폭풍처럼 쏟아지는 많은 분들의 칭찬에 힘입어 더욱 신난 아이들은 힘차게 잘도 걸었다. 그런 아이들이 대견하다며 가지고 계신 간식 꾸러미를 통째로 넘겨주시는 분도 계셨다^^;


아이들에게 한라산을 오르는 건 여러모로 유익한 일이었다.


낯선 이들의 응원과 칭찬을 듬뿍 받으며 으쓱해지는 일, 엄마 아빠가 잘 사주지 않는 달콤한 간식을 얻는 기쁨을 맛보는 일, 제주에 오래 살던 반 친구들도 못 올라 갔다는 백록담에 가봤다고 자랑할 수 있는 일. 그래서 아이들은 한라산에 가는 것이 좋다고 했다.


우리 가족의 신남이 느껴지는 점프샷^^




나도 2월의 한라산을 오를 때보다 한층 성장한 나를 느낄 수 있었다.


우선 높은 산을 하루 종일 오른다는 것 자체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오르락내리락 산길을 걷는 것이 모처럼 재미있게 느껴졌다. 보는 각도마다 시시각각 다르게 펼쳐지는 한라산의 모습도 너무나 경이롭고 다채롭고 아름다웠다.


겨울 한라산은 눈이 덮여 있어 미끄러웠고, 눈보라가 너무 거칠게 불어 닥쳤고, 온몸이 덜덜 떨리게 추웠고, 발가락은 꽁꽁 얼어서 아프기까지 했고, 눈꽃이 내려앉은 나무들이 보이는 것의 전부여서 좀 아쉬웠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봄의 한라산은 한결 온화하게 나를 품어 안아주는 느낌이었다. 발이 푹푹 빠지던 눈도 다 녹아서 없었고, 불어오는 바람도 거칠지 않았다. 그래서 겨울의 산을 오를 때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걸음을 옮기는 게 수월했다.


아이들이 힘내라고 건네준 껌! 용띠인 나에게 더 의미가 있는 용띠 해, 2024년^^




제일 좋았던 구간은 백록담에 오르기 직전, 제주시와 그 앞바다까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부터 시작되었다. 날이 흐렸는데도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며 제주 섬의 경계가 한 눈에 들어 왔다.


그리고 몇 발짝을 옮겨 걸었더니 금세 동쪽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수많은 오름들이 보였다. 그러다 조금 더 발걸음을 옮기니 제주 동남쪽 바다와 서귀포시가 드넓게 펼쳐진 채 모습을 드러냈다.


제주에서는 어느 곳에 가도 날만 맑으면, 한라산 꼭대기가 보이는 법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한라산 꼭대기 부근에서는 제주 섬이 다 내려다 보인다는 뜻이었다.


워낙 높은 곳에 있다 보니 여기서는 몇 걸음 더 옮기고 덜 옮기는 것에 따라, 제주시도 보였다가 금방 서귀포시도 보이는 게 신기했다. 새삼 내가 엄청 높은 곳에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된 순간이었다.


한라산 꼭대기에 오르면 불과 몇 초 안에 제주도 전체를 둘러볼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와 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알 수 있었으랴!


흐린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제주 땅과 바다의 경계가 보여 좋았던 구간^^




내 발 아래로 펼쳐진 제주도를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빙 둘러 보며 걷고 있자니, 어느새 정상에 다다른 듯 했다. 먼저 뛰어 올라간 아이들이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와! 도착했다! 엄마 아빠, 오늘은 백록담 보여~~~”


드디어! 내 인생 최초로 ‘백록담’을 만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백록담을 내 두 눈에 오롯이 담을 수 있다니! 정말 꿈만 같았다.


분명히 해도 나지 않는 흐린 날씨라 백록담이 보이려나 걱정하며 올라 왔는데, 의외로 백록담이 아주 잘 보였다. 일 년 중에 백록담이 보이는 날은 손에 꼽는다는데, 날씨운이 따라 준 덕분이었다.


지난 2월에는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어서 백록담을 코 앞에 두고도 전혀 알아볼 수가 없었는데, 그 때의 아쉬움을 만회할 만큼 두 배로 맑고 영롱한 백록담을 만날 수 있었다.


하늘과 맞닿은 듯 드넓게 펼쳐진 백록담 / 정상에 도착해서 잠시 쉬는 아이들




백록담을 볼 수 있었던 행운만큼, 남은 제주에서의 날들도 행운이 가득하길 바라며, 우리 가족은 천천히 하산했다. 하산하다가 다시 들른 삼각봉 대피소에서는 사슴을 만나는 행운까지 얻었다!


한라산에 사는, 눈이 예쁜 사슴...^^ / 하산은 빛보다 빠르게 하는 우리 집 아이들




하산하는 길에는 가장 어린 막내가 날아가듯 빠르게 제일 먼저 내려 갔고, 나와 첫째는 끝나지 않는 끝말 잇기 놀이를 하며 천천히 뒤따라 내려 갔다.


약 5시간의 등산, 그리고 5시간의 하산, 총 10시간의 길고 긴 한라산 등반이 마무리 된 시각은 오후 6시 남짓. 그래도 첫 한라산 등반 때 힘없이 후들거리던 내 다리가, 이번에는 여전히 단단하게 잘 버텨주는 느낌이 들어 뿌듯했다.


약 한 달만에 저질 체력에서 나름 업그레이드 된 나의 체력에 감동하고 있으려는 찰나, 먼저 도착해 있던 남편이 다리를 절뚝이는 게 보였다.


“여보, 어디 아파? 다리를 왜 절뚝이고 있어?”


“내려오다가 살짝 삐끗했는데… 한 쪽 무릎이 좀 많이 아프대? 그래서 내려올 때 신경 써서 걷느라 다른 쪽 다리까지 아프더라…”


잔뜩 겁 먹은 채로 산에 올랐던 나는 오히려 다리가 멀쩡한 편이었고, 하산 후에도 늘 멀쩡했던 남편이 이번엔 무릎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다행히 남편은 하룻밤 자고 나니 무릎 상태가 괜찮아졌다.)


“여보, 무릎 보호대 하니까 무릎 안 아프고 좋더라! 여보도 다음에 한라산 갈 때는 나처럼 무릎 보호대 하는 게 낫겠어~”


내 말을 듣고 놀란 남편이 자신의 무릎 통증도 잊은 채 더할 나위 없이 신난 얼굴로 종알거리기 시작했다.  


“오? 이제 다리도 안 아파? 무릎 보호대만 있으면 또 한라산 간다는 거네? 그럼 5월 한라산도 예약할게~ 그 땐 무슨 코스로 가지?”


아뿔싸,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한 걸까. 한라산의 ‘한’자만 들어도 치를 떨던 나였는데! 하산하자마자 ‘다시는 한라산 가나 봐라~’를 해야 정상인데… 내가 봐도 너무 낯선 내 모습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엄마와 뒷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발을 잘못 디디며 크게 접질러서 오랫동안 통깁스를 했던 경험이 있다. 그 때부터 산에 오르는 게 무섭고 싫었던 것 같다. 산에 가면 또 발을 다칠 것만 같은 생각이 일종의 트라우마처럼 자리 잡았던 것이다.


‘어차피 올라가면 그대로 내려와야 하는 산을 뭣 하러 올라 가?’ 이런 생각도 깊이 박혀 있었다. 등산이란 행위 자체가 부질없는 일이라고 여기며 아주 오랜 시간을 산과 등지고 살아온 나였다.


내가 산에는 죽어도 못 가겠다고 계속 땡깡 부리면, 아무리 독불 장군 우리 남편이라도 나랑 등산하는 걸 포기할 줄 알았다. 그런데 처음에도 이야기 했다시피, 우리 남편은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특히 자신의 건강만큼 아내의 건강을 중시하는 사람이었기에, 자신이 산을 오른다면 꼭 나와 함께 올라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해 왔다. 혼자만 건강해지는 게 아니라, 너도 같이 건강해져야만 한다고 했다.


나는 그런 남편의 강요(?)가 족쇄처럼 느껴질 때가 더 많았다. 그래서, 제발 나를 버리고 혼자 등산 가라고 애원해 보기도 했다. 그래 봐야 남편은 들은 체도 안 했지만^^;


“여보는 등산이 좋아?”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었던 적이 있다.


“아니, 나도 등산 싫어.”


“근데 왜, 도대체 왜, 자꾸만 산에 같이 가자고 하는 거야?”


“너랑 늙어서도 오래오래 같이 할 수 있는 취미를 만들고 싶어서…”


본디 등산을 좋아하지도 않는다는 남편. 나와 늙어서까지 함께 즐길 수 있는 취미를 만들고 싶었다는 남편. 그래서 내가 산에 오르는 것에 익숙해질 때까지 억지로라도 산에 끌고 간 남편. 내가 진심으로 등산을 좋아하기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려준 남편.


남편은 나중에 오랜 시간이 흘러 할아버지가 된 자신의 곁에, 함께 산에 올라주는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금도 어디를 가나 내 손을 꼭 잡아주는 남편은, 꼬부랑 할머니가 된 나의 주름진 손도 꼭 잡은 채로 산에 함께 올라줄 것이 뻔했다.


그러니 남편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먼훗날에도 나란히 손을 잡고 산을 오르는 노부부가 된 우리 모습을 상상하며.


고맙게도 남편은, 산에 오르는 것을 두려워 하며 번번이 포기하려는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 주었다.


그의 노력 덕분에 나는 이제야 비로소 산에 오르는 것이 즐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산에 오르는 과정과 결과가 모두 너무나 값지게 여겨졌고, 산을 오를 때마다 체력이 늘어나는 게 신기했고, 한계를 넘어서는 방법을 배우고 깨닫는 게 좋았다.




“여보야, 다음 5월에는 한라산 정상 가는 코스 말고 다른 코스로도 가 보자! 그 때쯤 꽃이 아주 예쁘게 핀다는 영실 코스 어때?”


먼저 한라산 다음 코스를 추천하는 나를 보며 남편이 방긋 웃고 있었다.


그리고 여보, 다음에는 커플 무릎 보호대 차고 산에 갑시다! 오래오래 무릎이 건강해야, 꼬부랑 할아버지 할머니가 돼서도 산을 오를 수 있지요!


안 그래요, 나의 사랑스런 영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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