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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뽀 Apr 18. 2024

제주에서 배운 말 타는 재주

처음으로 승마를 배우며 인생도 같이 배웠다.


제주 사는 동안 한 번쯤 승마 배워 보는 거 어때?


아직 육지에 살 때, 제주 일년 살이를 준비하던 남편이 ‘승마’라는 단어를 툭 던진 적이 있다.


승마…?


40년 가까이 살면서 한 번도 배워 보려고 시도조차 해 본 적이 없는 운동이었다. 승마라는 단어가 어찌나 낯설게 느껴지던지, 내가 말을 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조차 어색했다.


“승마? 말을 탄다고? 내가? 하하하…”


내가 생각하는 승마는 뭐랄까… 부자들이 어릴 때부터 배우고 즐기는 고급 취미의 느낌이 강했다. 살던 곳 가까이에 승마장이 흔하게 있지도 않았고, 승마를 취미로 배운다는 사람도 접해 본 적이 없었던 터라, 승마는 정말 멀고 먼 느낌의 운동이었다.


“제주에는 워낙 말이 많잖아. 그래서 승마장도 근처에 좀 있다 그러고, 거기서 승마도 배울 수 있다네? 너가 생각 있다고 하면 같이 배워 볼까 해서!”


남편이 나에게 이렇게 물어 본다는 건, 본인에게 하고 싶은 마음이 웬만큼 있다는 뜻이었다. 아무리 제주라고 해도 승마 강습비라면 꽤 들 텐데, 허튼 돈을 안 쓰는 남편이 승마에 투자하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지!!


“응! 그럼 나도 승마 한 번 배워 볼래! 신청하게 되면 나도 같이 해줘~”


그렇게 남편은 제주에 사는 일 년 동안 해야 할 일로 승마를 순위권에 올려 두었고, 제주로 이사 오자마자 승마 강습을 신청했다고 알려주었다. 강습비가 궁금해서 물으니, 주 2회로 총 10회를 배우는데 1인당 25만원이 든다고 했다.


나는 강습비를 듣고 입이 ‘쩍’ 벌어졌다. 부부가 둘 다 백수인 주제에 거금이 드는 운동을 배운다는 게, 조금 주제 넘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살고 있는 시에서 지원금이 나와서 그나마 저렴해진 액수라고 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우리 부부가 다시 육지로 돌아갔을 때, 승마를 직접 찾아가 배울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제주에 살고 있는 지금, 우리 부부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일 듯한 승마 강습에 이 정도 투자라면 꽤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너무 망설이지 말고, 돈 아깝지 않게, 즐거운 마음으로 승마를 배우기로 했다.


승마 첫 수업 날, 떨리는 마음으로 시작^^




그렇게 떨리는 마음으로 간 승마 수업 첫날!


말을 탈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이론 수업만 받고 끝이 났다. 아쉬운 마음에 강사님 허락을 받고, 말들이 있는 곳으로 남편과 잠깐 구경을 갔다.


말들은 생각보다 키가 컸다. 키가 큰 편에 속하는 남편 키마저도 훌쩍 넘는 말들을 보니 압도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다음 수업 시간부터는 이렇게 큰 말 위에 내가 직접 올라 탄다고?'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 들었다.


나는 균형 감각이 부족한 탓에 평지에서도 넘어져 발을 수없이 삐거나 부러져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이런 내가 과연 달리는 말 위에서 균형이나 잡을 수 있을런지, 덜컥 겁이 났던 것이다.


물론 내가 겁을 먹거나 말거나, 두 번째 수업부터는 어김없이 말에 올라 타야만 했다. (다행히 걱정한 것처럼 낙마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나에게 배정된 말의 고삐를 잡고 말과 나란히 걸으며 연습장으로 들어갈 때부터 긴장이 되었다. 말은 순한 동물이라지만, 나보다 훨씬 큰 동물이 바로 옆에 있으니 괜히 가슴이 쪼그라 드는 게 사실이었다. 내가 워낙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더 그랬을 수도 있다.


그래도 승마장에서 훈련을 받아 온 말이라 그런지 초보자(?)를 당황시키는 행동은 전혀 하지 않아 주었다. (고마워!) 그저 내 발걸음에 맞춰 잘 따라와 주는 것만으로도 황송할 따름이었다. (다시 한 번 고마워ㅠㅠ)


심지어 가까이서 본 말의 두 눈은 어찌나 크고 예쁘던지… 무거운 내가 그 녀석 등 위에 올라타는 게 너무 미안해졌다. 나는 말의 귀에만 들리게 ‘내가 좀 무거울 거라 미리 미안해~ 오늘 하루만 잘 부탁해!’ 라고 말하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말을 타기 전에는 복대가 타이트하게 잘 고정되었는지 확인하고, 내 다리 길이에 맞춰 등자 길이를 조절한다. 등자가 수평으로 잘 맞춰졌으면, 등자에 한쪽 발을 끼운 채 말에 휙 올라 다른 쪽 발도 등자에 끼우는 것으로 기승 완료!


고삐를 팽팽하게 잘 잡고, 말의 배 부분을 가볍게 발로 툭 치면 말이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그렇게 말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내 인생에도 ‘승마’라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남편 키보다 훨씬 큰 말들을 보며, 이 말 위에 어찌 올라 타나 겁이 났던 날!




말 위에 실제로 앉으니 예상보다 훨씬 더 시야가 높았다. 말은 자신의 걸음을 천천히 옮길 뿐인데, 내 몸은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 마음대로 흔들렸다. 자꾸만 옆으로 고꾸라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던 나는, 고삐를 쥔 손과 온 몸에 힘을 빡! 주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승마에서 가장 중요한 게 바로 ‘몸에 힘을 빼는 것’이었다.


나를 태우고 걸어 가는 말의 움직임에 맞춰 내 몸이 자연스럽게 따라 가도록 하려면, 몸에 힘을 빼는 게 최고이자 최선의 방법이었던 것!


“힘 빼세요! 고삐 잡은 손에 너무 힘 들어 갔어요! 다리에도 힘 주지 마세요~”


강사님께서 힘 빼라고 누누이 소리치셔도, 힘 빼는 법을 도통 모르겠는 게 문제였다. 힘 빼면 당장이라도 말에서 떨어질 것만 같은데 어떻게 힘을 빼나요…? 인생에서도 힘을 주는 것보다 힘을 빼는 게 훨씬 더 어려웠다구요…ㅠㅠ


다행히 말을 타는 횟수가 늘수록 긴장이 풀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힘 빼는 법을 알게 되었다. 다만 몸에서 힘 빼는 법을 익히기 전까지는 승마 수업이 끝나면 온몸이 쑤시는 마라맛 근육통을 맛봐야만 했다.


승마를 통해 배운 인생의 진리 하나, 고통을 줄이고 싶다면 몸에 힘을 주는 대신 힘 빼는 법을 익혀야 한다는 것…^^


휴대폰은 두고 승마 수업에 참여했기에, 말 타는 모습은 강사님이 찍어주신 이 사진이 유일하다...^^




승마에서 또 중요한 것은 ‘바른 자세’였다. 허리를 곧게 펴고, 무릎은 가급적 아래쪽을 바라보게 낮추고, 등자에 올린 발가락에는 힘을 빼고, 발 뒤꿈치는 최대한 아래로 내리는 게 바른 자세인데…!


나는 다른 건 다 되는데, 딱 하나가 되지 않았다! 아킬레스건이 짧아도 너무 짧아서, 아무리 해도 발 뒤꿈치가 내려가질 않았던 것이다.


“발 뒤꿈치 낮추세요~ 아래로 더 낮춰야 해요~”


수업을 받는 동안,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지적 중에 하나였다.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나는 정말로 아킬레스 건이 짧아 치명적인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학창 시절 체육 시간마다 선생님께서 운동장에 쭈그려 앉으라고 하면, 아킬레스건이 짧은 탓에 그 자세가 되지 않아 엉덩방아를 찧으며 벌러덩 뒤로 넘어 졌을까…ㅋㅋㅋ


승마를 배우면서 내 몸의 구조라든지 자세에 대해 계속 인식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몸의 바른 정렬과 더불어 꼭 필요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내 시선을 두는 위치였다.


“시선은 말머리 보지 마시고, 정면 멀리 보세요!”


처음에는 말에 탄 자체가 불안하고 무섭다 보니,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인 채 말머리만 보는 자세를 취하고는 했다. 그런데 수업 받는 회차가 쌓이고, 말 타는 게 익숙해지니까 여유롭게 시선을 멀리에 둘 수 있게 되었다. 시선을 멀리 둘수록 말 타는 데에 더 자신감이 붙고, 주변의 달라지는 풍경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인생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어떤 일을 처음 시작할 때는 불안하고 겁이 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겁 난다고 땅만 쳐다 보고 다가는 더 큰 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 내 앞에 놓인 장애물을 미리 봐두지 못해 부딪칠 수도 있고, 잘못된 길로 들어서서 일이 아주 꼬여 버릴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승마의 기본기를 탄탄히 다지듯이, 고개를 들어 내 앞에 놓인 길을 멀리 그리고 넓은 시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야 내 길을 가로 막는 장애물을 확인했다가 잘 피해 갈 수 있고, 내가 생각했던 길로 잘 가고 있는지도 계속 점검해 볼 수 있을테니까.


승마를 통해 배운 인생의 진리 둘, 불안하고 여유가 없을수록 땅만 보느라 푹 숙였던 고개를 들어 더 먼 곳에 시선을 두고 당당히 정면을 봐야 한다는 것...^^


승마를 배운 뒤로는, 길 가다 만난 모든 말들이 반갑고 친구 같더라는...^^




승마의 진짜 재미는 ‘평보’에서 ‘속보’를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말이 다그닥다그닥 속도를 붙여서 달리기 시작하는데, 그 때부터는 마치 몸이 붕 떠서 날아가는 것만 같았다.


말이 속도를 높일수록 얼굴을 휙휙 스치는 바람이 시원했고, 말 위에서 통통 튀어 오르는 내 몸의 균형을 아슬아슬하게 잡는 그 느낌도 짜릿했고, 이제야 진짜 ‘내가 말을 타고 달리는구나’ 싶은 생각에 세상의 모든 굴레를 벗어 던진 듯한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놀이기구를 타는 것보다 더 흥분되는 느낌의 연속이랄까!


말을 타고 달릴 때마다 나는 아이처럼 함박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래서 한 번 말 타는 데에 재미가 들리면 계속 타는 거구나!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승마를 배우는 동안 가장 보람 있고 뿌듯했던 순간은, “강습 받는 네 분 중에서 ㅇㅇ님이 가장 자세가 좋으시고, 말 타는 리듬을 잘 아시네요!”라고 강사님이 한 사람을 콕 집어 칭찬하셨는데…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는 것!!!


태어날 때부터 운동 신경이 없어도 너무 없었던 나! 무슨 운동을 배워도 잘 한다는 칭찬을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던 나! 균형 감각도 없고, 달리기도 늘 꼴찌여서, 학창 시절에도 체육 교과에서만 안 좋은 점수를 받았던 나!


그랬던 내가 승마에서는 무려 4명 중에 제일 잘 한다고 칭찬을 받게 된 것이었다. 살면서 이런 감개무량한 순간이 오다니!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이 정도면 내 적성에 맞는 최초의 운동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승마였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된 셈이었다!!


승마를 통해 배운 인생의 진리 셋, 해보지 않으면 내가 그걸 잘하는지조차 알 수 없으니 두려워 말고 용기 내서 도전해 봐야 한다는 것...^^


승마 수업이 모두 끝나던 날, 승마장 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며...




승마를 배우는 5주간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기쁨, 하늘을 달리는 듯한 쾌감, 나도 잘하는 운동 하나쯤은 있었다는 뿌듯함을 느끼며 진심으로 행복했다. 기마 자세를 쉼 없이 많이 취한 덕분에, 허벅지 근육의 탄탄함까지 얻었으니! 승마의 매력에 퐁당 빠질 수밖에…


이 매력적인 승마라는 운동을, 다음 달부터는 우리 집 아이들도 주말마다 배울 예정이다. 남편과 나는 또 다른 운동에 도전하기 위해서, 승마는 여기까지만 배우기로 했다. 승마에 대한 아쉬움은 아이들이 승마하는 것을 보며 대리만족 하기로…^^


말은 꼴랑 10번만 타 본 셈이지만, 그 짧은 과정 속에서도 인생의 큰 진리를 배울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래서 더욱 값지고 특별했던 경험이 아니었을까!


육지에 돌아갔을 때 누군가가 제주에서 배운 것 중 가장 좋았던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승마를 꼽을 것만 같다. (아직 승마밖에 안 배워 본 건... 비밀 ㅎㅎㅎ)


인생에 한 번쯤은 승마를 배워 보시길, 왕초보 승린이가 감히(?) 권해 보며 오늘의 글을 마치는 바이다.


말만 보면 말 타고 싶다고 노래 부르던 우리 집 아이들... 다음 달부터 즐겁게 배워 보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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