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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뽀 May 17. 2024

제비와 함께 사는 재주

제비 부부에게 기꺼이 우리 집 처마 밑을 내주었다.


봄바람이 살랑 불어올 때쯤, 겨우내 꽉 닫고 살던 창문을 열어 두기 시작했다.


그러자 우리 동네에 살고 있는 온갖 새들의 지저귐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새들은 쉴 새 없이 재잘댔고, 그 소리는 마치 즐거운 음악을 틀어둔 듯 집안을 가득 채웠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유난히 크게, 아주 가까이서 새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새의 정체가 궁금해 창문 너머로 고개를 내밀어 보니, 제비 한 마리가 인기척에 놀라 파다다닥 날아가고 있었다.


새에 관심이 전혀 없는 나도, 그 새의 정체가 '제비'라는 건 단 번에 알 수 있었다. 흥부가 제비 다리를 고쳐주니 복이 든 박씨를 가져다 주고 놀부가 제비 다리를 부러뜨리니 불운의 박씨를 가져다 주던, 그 영리한 제비!


우리 집에도 제비가 박씨를 물어다 주려나?


혼자 김칫국부터 마시려던 찰나, 며칠 전 남편이 했던 행동과 말들이 번뜩 떠올랐다.




남편이 뭔가 결심한 듯, 처마 밑에 의자를 둔 채 밟고 올라 서서는 한창 어떤 작업(?)을 하던 날이었다.


바닥으로는 정체 모를 흙덩이가 우두두 떨어져 내렸고, 남편은 바닥에 떨어진 흙덩이들을 쓸어 모아 깨끗이 치우기까지 했는데... 내 눈엔 남편의 행동이 몹시 이상해 보였다.


"여보, 뭐한 거야 지금?"


"우리 집 처마 밑에 제비 집이 2개나 있어서... 혹시 몰라 없앴어!"


"왜?"


"제비집 놔두면 제비가 와서 살텐데, 그럼 바닥에 새똥이 엄청 묻을 거라서.."


"아하... 그렇구나!"


우리가 이사 오기 전부터 처마 밑에 제비집이 2개나 있었던 모양이다. 물론 나는 남편이 제비집을 허물던 그 때야 비로소 그게 제비집이란 걸 알았지만...^^;


굳이 힘들게 '빈' 제비집을 부수는 남편을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아직 제비가 온 것도 아니고, 새똥이 떨어지면 얼마나 떨어진다고? 이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며칠 뒤, 남편의 수고가 무색하게도(?) 제비 부부 한 쌍이 우리 집 처마 밑을 들락날락하기 시작했다. 바닥에는 남편이 경고한대로 하얗고 까만 새똥이 찍찍- 뿌려지기 시작했고.


아, 이래서 남편이 제비집을 미리 허물었구나! 제비가 집을 짓는 순간 새똥 천지가 될 게 뻔해서! 그제야 남편의 선견지명에 깊이 탄복하던 나였다.ㅎㅎㅎ


방에서 창문을 조용히 열어둔 채 처마 밑을 올려다 보니, 남편이 미리 허물어 버려 흔적만 남은 제비집 터에 제비 한 마리가 다시 둥지를 짓고 있었다.


"하... 어쩌나... 벌써 새똥이 한가득이네... 다시 제비집 허물어 버릴까?"


남편은 처마 밑에 날마다 와서 둥지를 짓기 시작한 제비를 올려다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냥 놔두면 안돼? 집까지 짓기 시작했는데 부수는 건 너무 잔인하잖아..."


"그럼 새똥은 어쩔 거야? 니가 치울 거야?"


앗... 남편에게 말려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나보다 더 동물을 좋아하는 쪽은 남편이었다. 제비가 찾아오기 전에 제비집을 허무는 건 어렵지 않았겠지만, 막상 열심히 만들고 있는 제비집을 허물지는 못할 위인이었다.


그렇다면 남편은 그저 새똥 치우는 귀찮은(?) 역할을 누가 맡느냐가 중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제비집을 그냥 두자고 말한 사람의 몫이 될 게 뻔했고... 남편의 속내를 눈치챘지만, 나는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어! 새똥은 내가 치울게! 그러니까 제비집 그냥 두자!"


남편은 만족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열심히 보금자리를 만들고 있는 제비를 가까이서 보게 된 게 처음이라 그저 신기하고 기특했던 나는, 어느새 제비 부부에게 푹 빠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새똥... 그 까짓 거, 내가 치우지 뭐

 

제비가 집을 짓기 시작하던 4월 중순 어느 날^^
새똥이 쌓이는 제비집 아래 바닥에... 종이 박스를 깔아두기 시작했어요^^;




제비는 참새목 제비과의 철새이다. 벼랑이나 처마 밑에 진흙으로 만든 둥지를 만들어서 번식하며, 곤충을 잡아 먹는다. 집을 지을 때는 해조류나 진흙을 이용해, 자신의 침과 섞어 수직벽에 붙도록 짓는다. 오늘날에는 제비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위키 백과 사전]


제비의 비행은, 정말 빠르고 유연했다. 어찌나 잽싸게 날아가고 날아오는지! 어쩔 때는 벽에 박을 것처럼 훅 날아오는데 방향을 기가 막히게 잘 돌려서 목표 지점에 내려 앉는, 비행의 고수였다.


제비의 모습에 감탄하며 순간순간을 포착하고 싶었는데! 날쌘 제비를 사진으로 담는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동영상을 찍는다고 휴대폰 카메라를 켜두어도, 제비가 워낙 빨라서 내 손이 제비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딱 한 순간, 제비가 집을 짓는 중에는 사진을 맘껏 찍을 수 있었다. 제비 부부 역시 내가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잔뜩 경계하는 눈치이긴 했지만, 집을 빠르게 짓는 게 더 중요했던지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덕분에 나는 매일매일 제비집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목격하는 행운을 얻었다.


수직 하강하듯 비행하는 제비 목격! 제비집 바닥 부분이 조금 만들어졌어요~
천장에 금방이라도 부딪칠 듯 쏜살같이 날아드는 제비!
날개를 활짝 펴고 비행하는 제비... 날갯짓이 너무 이뻐요^^
우리 집 앞 전봇대 주위를 빙글빙글 선회 비행하는 제비 부부 :)
꽤 많이 지어진 제비집!!
부부가 힘을 합해 집 짓는 모습... 힘내라 제비 부부야!
둥지가 어느 정도 만들어지니까 한 녀석은 둥지를 지키고, 한 녀석만 집 지을 재료를 물고 오더군요 :)
지푸라기, 흙 등을 끊임없이 물고 오던 제비 :) 덕분에 바닥은 흙과 새똥 무더기로 가득...ㅎㅎㅎ
제비집 거의 완성! 다 만들어지고 나니까 제비가 둥지 속으로 쏘옥 들어가 버려서 얼굴 보기가 힘들어졌어요ㅠㅠ
암컷은 알을 낳고 품는 중인지 둥지에, 수컷은 먹이 사냥 겸 정찰을 위한 건지 집 앞 전깃줄 위에 ㅎㅎ
가끔은 둘이 나란히 전깃줄 위에 앉아 있기도... 내가 보고 있어서 둥지에 못 돌아오는 걸 수도?
빼꼼, 얼굴만 내밀어 자신을 보고 있는 나를, 지켜보는 제비...ㅎㅎㅎ




오늘도 새벽부터 제비 부부는 부지런히 재잘거리고, 열심히 날아 다니고 있다. 아직 새끼들이 태어나지는 않은 것 같은데, 확인해 볼 길은 없다.


둥지를 어찌나 철옹성 같이 잘 지어놨는지, 둥지 안이 전혀 들여다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생활 보호에 만전을 기한 제비 부부의 집짓기 기술, 칭찬해!! ^^*


우리 가족도 1년간 이 집에 연세를 내고 사는 세입자, 제비 부부도 이 집 처마 밑에 세 들어 사는 세입자, ㅎㅎ 같은 세입자끼리 제주의 강한 바람을 맞아가며 꿋꿋이 살아가 봅시다!


월세는, 많은 벌레들을 잡아 먹어주는 걸로 대신 받을게요~!! 직접 지은 보금자리에서 모진 비바람도 피하고, 귀여운 새끼들도 많이 낳고, 오손도손 알콩달콩 잘 지내요 제비 부부...♥


(+) 덧붙이는 사진!!

아침에 글을 올린 뒤 오후에 삼각대를 이용해 조심히 둥지 안을 촬영해 본 결과... 제비 새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네요^^ 무럭무럭 잘 자라라 아가들아♡


서너마리 쯤으로 추정되는! 제비 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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