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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뽀 Jun 13. 2024

제주 수국을 색깔별로 만나는 재주

6월의 제주는 몽글몽글 소담한 수국으로 가득하다.


6월이 시작되자 오색 빛깔 아름다운 수국이 제주 곳곳을 수놓기 시작했다.


봄에는 유채꽃이랑 벚꽃을 부지런히 보러 다녔는데, 여름이 되자마자 수국이 "이번엔 내 차례야!" 하며 앞다퉈 피어나고 있었다. 나와 남편의 결혼식 부케이기도 했던 수국, 그만큼 내가 정말 좋아하는 꽃이라 더욱 신나게 구경을 다니고 있는 요즘이다.


처음 수국을 발견했던 건 집 앞 바닷길 산책에 나섰던 5월 초의 일이다. 제주로 이사 온 뒤 짧은 겨울과 온전한 봄을 보내면서 무수히도 자주 걷던 산책 길이었는데! 내가 늘 스쳐 지나가던 그 길 위의 초록 잎파리가 바로 수국의 잎이었다는 걸, 꽃이 핀 그제서야 알아챌 수 있었다.


초록 잎파리만 보일 때는 깻잎인 줄 알았던... 미안하다 수국아! 그동안 몰라 봤다!


사진 찍은 날짜를 확인해 보니 5월 12일인데, 그 때는 제주 여기저기를 가도 꽃 피운 수국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던 때다. 이르게 꽃 피운 수국, 그걸 우리 동네 산책길에서 항상 볼 수 있다니!


그 날부터 나는 산책길에 핀 수국을 눈 여겨 보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조금씩 꽃망울을 피워내는 수국을 보며, 여름이 점차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2024년 5월 27일, 집 앞 바닷길 수국 모습! 활짝 피어날 6월을 기대하며^^




6월이 성큼 다가오자, 어디를 가도 길가에 수국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색깔은 또 얼마나 다양하던지, 하얀색 하늘색 보라색 노란색 진분홍색 연분홍색 빨간색 파란색 등등... 그야말로 총천연색 아름다운 빛깔의 향연이었다.


"우와! 수국 색깔 진짜 다양하다! 다 다른 색깔로 심어둔 걸까? 어떻게 이렇게 색깔이 많을 수가 있지?"


"그러게, 색깔별로 다 다르게 심으려면 그것도 일일 텐데 신기하다!"


남편과 나는 거리에 핀 오만가지 수국 색깔에 감탄하며, 색깔별로 다른 종류의 모종을 심었을 거라고 추측했다. 그러다 우연히 수국 명소 검색을 하던 중, 다른 분이 올려둔 수국에 대한 내용을 읽고 깜짝 놀랐다.


수국은 물을 좋아하는데, 수국의 '수'가 물 '水'자이다. 6~7월 무렵 가지 끝에서 둥근 모양의 청보라색, 자색, 분홍색, 흰색, 빨간색 등의 꽃이 핀다. 꽃은 처음에 흰색으로 피기 시작하지만 점차 청색이 되고 다시 붉은 색을 더하여 나중에 보라색으로 변한다. 토양이 알칼리 성분이 강하면 분홍빛이 되고, 산성이 강하면 남색이 되므로 땅의 성질을 바꾸면 꽃의 색깔도 바꿀 수 있다.
                                                                                                    <위키백과 사전 참조>

 

아니, 이렇게 신박한 꽃을 다 봤나! 흙의 성분에 따라 꽃 색깔이 변하다니! 동물에 비유하자면 그야말로 카멜레온이잖아? 그 사실을 알고 나서 보니, 더욱 더 수국 하나하나의 색깔이 오묘하고 신비롭게 느껴졌다.


5월 30일, 올레 3코스 산책 중에 만난 하늘색 수국 :) 거의 다 필랑말랑~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6월로 달력이 넘어 갔다. 남편과 나는 그동안 수국이 활짝 피어날 때까지 적절한 시기를 보고 있었다. 6월로 들어서자 확실히 길가의 수국들이 활짝 핀 느낌이었다.


"여보, 지금이야! 이제 수국 예쁘다고 소문난 곳으로 출동해 보자!"


"어디 가고 싶은지 말만 해~ 가서 수국이랑 사진 찍어 줄게!"


우리 부부가 진짜 제주에 쭉 살고 있던 도민이라면 수국 보러 간다고 이 정도로 설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올해, 단 일 년뿐! 지금 제주에 핀 수국을 많이 봐두지 않으면, 내년에 다시 육지로 돌아가서 땅을 치고 후회할 지도 모를 일이었다.


도민이지만 일 년만 살 수 있는 시한부 도민 신세인 우리, 현지인이지만 여행자처럼 살고 있는 우리, 제주에서 보내는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고 허투로 날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우리!


그러니까 제주에서 살 수 있는 중에서도 지금만 있다는 수국을 원도 없이 질릴 때까지 보러 가기로 다짐했던 것이다. 그렇게 6월부터 우리 부부만의 '수국 투어'가 시작되었다.




1. 수국길의 원조, 종달리 수국길 (2024.6.3.방문)
우도와 바다를 배경으로 찍을 수 있어 특별한 수국 명소가 된 듯 :)


남편과 처음으로 찾아 간 수국 명소는 바로 수국길의 원조인 "종달리 수국길"이었다. 너무나 오래 전부터 들어왔던 곳이라 한 번쯤은 꼭 가보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사진 찍기에는 어려운 느낌이 있었다.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하니까 차를 타고 가며 수국길만 눈으로 감상해도 좋을 것 같고 :) 중간에 차를 세울 만한 공터가 보이면 차를 대고 내려서 사진을 찍어도 좋을 듯 싶다.


다음은 종달리 수국길에서 남편이 나름(?) 심혈을 기울여 찍어준 사진들!


사랑하는 남편아? 나 예쁘다더니 수국에만 초점을 맞춰 사진을 찍어 뒀네유? -_-
바다 위로 우도가 보여서 더 멋진 풍경! 그런데 꽃은 강렬한 태양에 약간 타들어간 느낌 ㅠㅠ
바다 반대쪽은 인도가 없고 꽃나무가 도로와 맞닿아 있으니 차와 부딪치지 않게 조심!




2. 새파란 수국의 향연, 혼인지 (2024.6.4.방문)
새파란 수국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수국 명소, 강추하는 혼인지 :)


종달리 수국길은 우리 집 앞 수국길을 하도 봐서 그런가, 별 감흥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혼인지에서는 쨍한 푸른색의 수국이 무성하게 많은 느낌이어서 좋았고, 한옥과 함께 수국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어서 훨씬 예뻤다.


산책로가 너무 잘 되어 있고, 가는 길마다 포토존! 어떻게 찍어도 예쁜 곳 :)
여기가 혼인지 안에서도 가장 유명한 포토 스팟!
사람이 많아서 사람을 피해 사진을 찍는 게 큰 미션 ㅎㅎㅎ (이 사진은 미션 실패!)




3. 숨은 수국 맛집, 제주 민속촌 (2024.6.9.방문)
고즈넉한 초가집 돌담 앞에 핀, 빨갛고 보라보라한 수국 :)


앞서 소개한 종달리 수국길과 혼인지의 장점은 입장료가 무료라는 것이다.


세 번째로 우리 부부가 찾은 수국 명소는 그에 반해 입장료가 있는 '제주 민속촌'이다. 우리 가족은 민속촌이 위치한 표선면에 살고 있기 때문에, 면민 할인을 받아 입장료에 대한 부담이 없다.


입장료를 내야 하는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민속촌에 간다면! 혼인지와는 또 다른 매력의 새빨간 수국을 초가집 배경으로 만나 볼 수 있다. 민속촌에 가면 흑돼지도 볼 수 있고 다양한 민속 놀이도 경험할 수 있어 의외로 재밌으니 한 번쯤은 방문해도 좋을 듯 싶다.


산책로 중간쯤 위치한 엄청난 수국밭! 꽃받침하고 아이들과 사진 찍기~
붉은 계열의 수국이 한 데 모여 있는 하트 포토존! 화려한 수국 색깔이 포인트 :)




4. 제주 허브 동산 (2024.6.11.방문)
찐한 보라색 수국을 많이 볼 수 있었던 제주 허브 동산!


제주 허브 동산도 우리 가족은 면민 할인을 받아 입장하지만, 일반분들에게는 입장료를 받는다. 자그마한 야외 식물원이라 생각하면 되고, 계절마다 예쁜 꽃들을 심어두어 소소하게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특히 이 곳은 밤이 되면 LED 조명을 켜두어 야경이 정말 예쁜 곳인데! 수국과 사진 찍을 목적이라면 자연광이 있는 낮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중간에 작은 의자가 있으니 여기 앉아서 수국에 파묻힌 것처럼 찍으면 더 예쁘다 :)




5. 곧 수국 핫플이 될 것만 같은 성산일출봉 입구, 동암사 옆 수국 (2024.6.12.방문)
갈까 말까 하던 곳인데, 고민한 게 무색할 만큼 성산일출봉과 수국의 조화가 끝내주게 예뻤던 :)


남편과 성산 일출 도서관을 자주 가는 편이다. 오늘도 글을 쓸 목적으로 도서관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성산일출봉 앞 수국 명소에 들르기로 했다.


언제 봐도 웅장함을 자랑하는 성산일출봉이, 앞에다가 앙증맞은 수국을 두니 모처럼 사랑스럽게 보이는 느낌이었다. 높게 펼쳐진 수국 담벼락에 붙어서 사진을 찍어도 쁘고, 더 아래쪽에서 올망졸망 핀 수국과 함께 찍어도 쁘고, 광치기 해변이 보이게 찍어도 쁘더라!


지금은 많이 안 유명하지만, 곧 입소문이 나서 떠오르는 수국 핫플이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드는 곳이다.


아래쪽 수국 덤불에서 찍으면 이런 느낌 :)
아예 수국 담벼락에 붙어 찍으면 성산일출봉 머리 부분만 깔짝 보임^^;
경사면의 위에서 아래로 찍으면 광치기 해변 뷰 :)
바로 옆에 위치한 동암사 입구에는 이렇게 찐분홍색 수국도 가득!




사실 집 근처에서도 아름다운 수국은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가 제주에 사는 사람으로서, 멀리 육지에서도 힘들게 찾아와 보고 간다는 아름다운 수국 명소를 안 가 보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는가!


덕분에 제주로 수국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께 수국 명소를 살포시 추천해 드릴 수도 있게 되었으니, 나름 현지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뿌듯한 마음도 든다.


그리고 굳이굳이 남들이 간다는 수국 명소를 찾아가지 않더라도, 6월에 제주에 오게 된다면 어딜 가나 소담하게 피어난 수국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몽글몽글 몽실몽실, 형형색색의 어여쁜 수국을 만난다면... 충분히 즐기고 만끽하시길^^


나에게도 6월의 제주는 '수국'으로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다.


6월의 어느 날 아이들과 동네 산책 중, 해가 저문 바다와 수국을 함께 바라보며 산책할 수 있어 행복했던 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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