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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뽀 Sep 12. 2024

뜨거운 여름 제주를 차갑게 보내는 재주(1)

서핑, 그거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올 여름엔 우리 가족 다같이 서핑 배워 볼까?


여름이 시작될 무렵, 남편의 제안으로 배우게 된 서핑이었다. 남편을 잘 둔 덕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서핑'이란 걸 해보는 호사를 누리게 된 나!


슬픈 사실을 먼저 고백하자면, 나는 열심히 배우려는 의지는 강했으나 6회차 강습을 다 받았는데도 여전히 서핑을 잘 못한다는 것이다...ㅠㅠ


마음만은 패들링을 해서 거침없이 바다로 나아간 뒤, 하얀 포말이 일어나는 높은 파도를 잡아타고, 서핑 보드에 사뿐히 선 채로 파도에 몸을 맡기며 바람을 즐기는 그런 '진정한 서퍼'로 거듭나고 싶었는데 말이다. 쩝!


다른 글에도 썼지만, 나는 아마 엄마에게 유전 받은 희귀 질환을 앓고 있을 확률이 높다. 발가락이 유독 많이 구부러진 모양이라 평평한 땅에서 넘어져도 발가락이 두 번이나 골절된 전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나니까.


이 질환을 가진 사람은 몸의 균형을 잘 못 잡는다더니, 나 역시 균형 감각이 없어도 너무 없다. 고등학교 때 평균대에 오르자마자 바로 떨어져서 체육 수행평가 0점을 받았던 아픈 기억이 떠오르는군...


서핑은 균형을 잘 잡고 보드 위에 서는 게 가장 중요했다. 균형 감각이 제로인 나는 열 번을 보드 위에 오르면 한 번이나 설까 말까였고, 대부분은 몸의 중심을 잃고 바다로 풍덩 빠지기 일쑤였다.


그래도 난생 처음 해본 서핑은 정말이지 재밌었다. 잘하는 자보다 즐기는 자가 일류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해본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37살 아줌마의 첫 서핑 도전기,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서핑 강습 1회차 : 월정리에 있는 '바즐 서핑'에서 기본 자세를 배우다.
월정리에 있는 <바즐 서핑> 이 곳에서 6회에 걸쳐 서핑을 배웠다.


강습 시간에 맞춰 서핑샵으로 갔다. 뒷마당 위쪽으로 해를 가릴 천막이 드리워져 있었고, 그 아래 커다란 서핑 보드 하나가 덩그라니 놓여 있었다.


햇빛에 그을려 구릿빛 피부를 자랑하시는 사장님께서 몸소 시범을 보이며 기본 자세를 알려 주셨다. 내가 첫날에 배워서 몸으로 익힌 서핑 자세는 다음과 같다.


1. 보드 위에 발 뒤꿈치를 모으고 엎드려 누운 뒤, '준비' 소리에 맞춰 손을 가슴 옆쪽으로 짚는다.
2. 강사님이 '하나'라고 외치면 팔꿈치를 쫙 펴서 요가할 때의 코브라 자세를 취한다.
3. 강사님이 '둘' 하시면 오른쪽 무릎만 바깥으로 당겨와 90도가 되게 위치한다.
4. 강사님이 '셋' 하시면 왼쪽 다리를 휙 당겨 보드 앞에 두고, 윗몸을 수직으로 일으켜 세운다.
5. 이 때 주의할 점은 시선을 보드 아래쪽 대신 멀리 앞쪽에 두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머리로 아무리 잘 숙지한들, 이 자세를 바다 위에서 실제로 수행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흔들리는 파도 위에서 보드는 사정없이 기우뚱거렸고, 내 몸 역시 자세를 취하기도 전에 바다 위로 빠져댔으니까.


올 여름, 서핑 덕분에 자주 가게 된 아름다운 월정리 바다♡


낮 최고 기온이 35도까지 치솟았던 7월의 첫 주말, 월정리 바다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리고 서핑을 하는 두 시간 내내 바닷속에 있느라 더운 줄도 몰랐다. 마지막엔 춥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


나는 긴장한 채로 내 차례를 기다렸다가 서핑 보드에 서는 것반복했고, 아이들은 몇 번만에 금세 파도를 타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엄지척을 날릴 수밖에 없었다.


와, 우리 딸들 너무 잘한다! 진짜 멋지다!


헌데 나는 선천적으로 균형 감각이 없어서 그런다치고, 서핑을 함께 배우는 남편도 보드 위에서 허우적대기는 마찬가지였다! 멀쩡한 남편에게도 어려운 서핑이라고 생각하니 그나마 위로가 좀 되었다.


서핑은 은근히 전신 근력을 다 쓰는 운동이었다. 두 시간 내내 팔굽혀 펴기를 했다가, 스쿼트 자세를 했다가, 균형을 잡기 위해 코어 근육을 썼다가, 바다로 떨어지면 깔짝 수영도 했다가, 무거운 보드를 팔 근육으로 들고 옮기기도 하면서 엄청난 체력 소모를 느껴야만 했다.


그래서 첫 서핑 강습이 끝나자마자 가족 모두의 입에서 동시에 이 말이 나왔다. "배.고.파!!!!!!"


뭐 먹고 싶냐는 물음에 아이들은 입을 모아 또 외쳤지. "컵라면! 물놀이 후엔 라면이지!"


그렇게 우리 가족은 첫 서핑 강습이 끝난 후, 근처 편의점으로 달려가 컵라면을 후루룩 먹었다. 나는 거기에 시원한 캔맥주까지 한 잔 곁들이니, 캬아! 이 맛에 서핑하는구나 싶었다...ㅋㅋㅋ


서핑 후에 먹는 컵라면과 캔맥주 조합... 최고였다.


내가 만약 서핑하면서 식단 조절까지 했다면 지금쯤 몸짱 아줌마가 됐을 수도 있다... (설마?ㅋㅋ) 그러나 서핑 강습만 받고 나면, 나는 여지없이 배고픈 하이에나로 변해 있었다.


서핑 후에 먹는 음식은 정말 꿀맛 of 꿀맛이었다. 진짜 꿀꿀이가 돼도 상관 없을 만큼 '꿀꿀'맛이었으니, 나는 서핑을 하면서부터 다이어트는 진즉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서핑 강습 2회차 : 잘생긴 강사님으로부터 서핑은 '똥폼'이 중요하다는 걸 배우다.
2시간 강습 중, 쉬는 시간에 잠깐 찍은 사진^^


서핑 2회차, 여전히 월정리 바다는 예뻤다. 파도를 타는 수많은 젊은이들 사이에 서핑 한 번 해보겠다고 낑겨 있는 그 자체로도 좋았다. 내 비록 서핑 실력은 하찮디 하찮았지만...


오늘의 강사님은 얼굴도 잘 생긴데다 몸도 너무 좋으셨다. 상의까지 탈의하고 계셨는데, 보드 위에 엎드린 채 준비 자세를 취하고 있노라면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


심지어 바다 위로 계속 다이빙만 해대는 나에게 백만불 짜리 미소를 보여 주시며 "어머님, 잘하셨습니다! 겁먹지 마세요~"라고 용기를 주시던 몸짱 강사님!


그리고 서핑 보드 위에 곧잘 서는 우리 집 아이들에게는 꿀팁을 하나 전수해 주셨다.


어린이들! 서핑은 팔을 양 옆으로 뻗고 타면 멋있어 보이지 않아요~ 서핑은 약간 똥폼 잡는 게 중요하거든요! 균형이 잡히면 손을 차렷해서 타 볼까요?


아이들은 강사님이 알려주시는 대로 점차 자연스럽게 서핑을 타기 시작했다. 저 멀리 모래 사장이 있는 곳까지 스르륵-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딸들의 모습은 내가 꿈꾸던 '진정한 서퍼'의 모습이었다.


나는 보드에 서자마자, 혹은 서지도 못하고 "악!"하며 바다로 처참히 가라앉을 뿐이었는데... 흑흑ㅠㅠ


서핑 강습 시간은 총 2시간이었는데, 중간에 10분 정도 쉬는 시간이 있었다. 기회는 이 때다! 서핑하는 동안 멀리 물 밖에 두었던 휴대폰을 가지고 와서 서핑 보드와 함께 기념 사진을 팡팡 찍어댔다.


그리고 '진정한 서퍼'를 꿈꾸던 나는 보드 위에서 계속 자세 연습도 해봤다. 그런데 가만히 있는 서핑 보드 위에서도 내 몸은 왜 이렇게 좌우로 마구 흔들리던지...ㅠㅠ


아무래도 균형 감각 없는 나는 이번 생에 서핑을 잘 하긴 틀렸나 보다.


쉬는 시간에 보드 위에서 자세 연습 중!!


약간 사기가 떨어진 채, 집 근처 맛집으로 향했다. 내 씁쓸해진 마음을 위로해 줄 음식이 필요했으니까! 오늘 먹은 음식은 유린기, 짬뽕, 짜장면, 그리고 맥주 한 병이었다...ㅎㅎㅎ


참고로 내 남편은 알콜 분해 능력이 없어서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인데, 유린기를 맛보더니 "어, 이거 딱 맥주 안주인데? 너 목 마르면 맥주 하나 시켜~"라고 말해줘서 맥주도 한 병 득템할 수 있었다.


서핑 후에 마시는 맥주 맛은 말해 뭐해ㅠㅠ 서핑 내내 바다에 던져지느라 너덜너덜해진 내 몸은 아주 빠르고 맛있게 모든 음식들을 흡수했다.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 그리고 오.먹.완.(오늘도 먹방 완료) ^^*


유린기, 짬뽕, 짜짱면, 그리고 맥주.... 천국의 맛!




서핑 강습 3회차 : 무서운 풍랑주의보, 더 무서운 해파리의 습격!
풍랑주의보가 내려진 바다, 어린이들 입수 금지된 날ㅠㅠ


아니, 오늘 풍랑주의보 때문에 어린이 서핑 강습은 취소 된다고 문자 드렸는데 왜 오셨어요?


7월의 어느 토요일, 열심히 월정리 바다로 갔더니 사장님께서 강습 취소됐는데 왜 오셨냐고 하시는 거다. 알고 보니 남편 번호가 누락된 채로 '풍랑주의보로 인한 강습 취소' 문자를 보내셨던 것.


바다는 한 눈에 봐도 파도가 높긴 했는데, 어른들은 잘만 타고 있었다. 궁금해서 이유를 여쭤 보니 풍랑주의보일 때는 파도가 워낙 세고 높아서, 아이들 안전상의 문제로 취소 된다고 하셨다.


우리는 아쉬운대로 월정리 해수욕장에서 바다 물놀이라도 하고 가기로 했다. 워터파크의 파도풀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천연 파도풀이 개장한 상태였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바다 위에 떠서 쉼없이 밀려드는 거친 파도를 온몸으로 맞으며 재미있게 놀 수 있었다. 아이들은 이 날만큼은 서핑보다 맨몸으로 파도 타기가 훨씬 재밌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집에 가는 길에는 아쉬움이 남았는지 "아, 지금 파도 세서 서핑도 재밌을 것 같은데 왜 우리만 못 하게 하는 거야?"라며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리고 파도가 높을 때 어린이들이 서핑을 하면 안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날 서핑을 하며 비로깨달을 수 있었다. 파도의 매운 맛을 직접 맛보고 나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더라!


파도가 이렇게 높으면 아이들의 서핑이 금지됩니다...


바로 다음날에 풍랑주의보가 해제됐다는 말을 듣고 다시 서핑을 하러 갔다. 서핑 보드를 끌고 바다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파도의 심상치 않은 위력에 압도 당했다.


아이들의 키를 넘기는 파도가 계속해서 덮쳐오자 아이들은 바다로 한 발짝씩 나아가기는 커녕, 오히려 서핑 보드와 함께 모래 사장 쪽으로 떠밀려 와서 계속 제자리 걸음이 되었다.


엄마인 내가 도와주려고 해도 잘되지 않았다. 파도의 힘 앞에서는 내 보드도 자꾸 뒤집어질 참이라 그것만 잘 붙잡고 있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작은 몸으로 서핑 보드를 컨트롤 하느라 무척 힘들어 했다.


남편도 낑낑대는 아이들의 서핑 보드를 같이 잡아 주려고 해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아이들 보드를 잡느라 본인 보드가 먼저 뒤집혀 날아가는 바람에 첫째 아이의 뒷통수를 치는 작은 사고가 나기도 했다.


아이는 아파서 울고불고 난리였다. 모래 사장으로 데려 나가서 살펴 보니 뒷통수에 큰 혹이 나 있었다. 그래도 첫째 아이는 계속 서핑을 하겠다고 했고, 아까처럼 파도를 헤치고 험난한 바다로 되돌아 갔다.


어찌저찌 보드를 가지고 서핑 시작 지점까지 가더라도, 큰 파도가 오면 모두의 몸이 바닷물 속에 푹 담궈지기를 반복했다.


키 작은 둘째 아이는 서핑 보드와 함께 물 속에서 두 바퀴를 구르기도 했는데, 아이는 물을 한가득 먹었는지 켁켁-대며 울기 시작했다. 물 속에서 몸이 패대기 쳐지는 기분이 너무 무서웠다고 말하기도 했다.


혹시라도 높은 파도에 사고라도 날까봐 남편과 나는 긴장한 채로 아이들을 봤고, 파도 때문에 힘들면 그만 하자고 해도 아이들은 끝까지 서핑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어쩔 수 없이 성난 파도를 맞아가며, 아이들을 계속 주의시키며, 내 차례를 기다리던 어느 순간... 갑자기 총에 맞은 것처럼 불에 덴 듯 뜨겁고 따가운 통증이 왼쪽 발목에 확- 느껴졌다.


"악!!!!! 아파!!!!! 뭐야?"


너무 놀라서 바닷속 내 발 아래쪽을 보니... 해파리가 있었다. 그것도 엄청 큰 해파리!!!!!


사실 지난 서핑 때 남편이 해파리 쏘임을 먼저 당했었다. 남편이 그 때 보여준 반응과는 비교도 못할 만큼, 나는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안 그러고 싶었지만 정말 너무너무 아팠고,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었다.


"강사님!!!! 여기 해파리 있어요ㅠㅠ 여보, 애들 이쪽으로 못 오게 해줘!!!!"


너무 아팠지만, 그 순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이들은 절대 물리면 안돼'였다. 그래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해파리가 있음을 알렸고, 강사님 두 분이 오셔서 해파리를 끌어내 모래 사장에 묻어 주셨다.


나는 그동안 서핑 보드를 끌고 뭍으로 나가, 내 발과 연결해 둔 리쉬를 풀고 왼쪽 발목을 살폈다. 채찍으로 맞은 것처럼 쫙-쫙- 발목에 빨간 선이 여러 겹으로 그어져 있었다. 통증은 계속 됐고, 당장 처치가 필요했다.


"많이 아프세요? 해파리 물린 상처는 그냥 물에 씻으면 안 되고, 계속 바닷물로 소독해야 돼요~"


강사님께서 알려주신 처치 방법은 해파리에 물린 부위를 바닷물에 담그는 것뿐이었다. 뾰족한 다른 수가 있을까 싶어 휴대폰으로 검색해 봐도 그 뿐이었다...ㅠㅠ


발목 주변이 마비된 듯한 느낌과 찌릿찌릿 따가운 느낌은 반나절 정도 지속되었는데, 집에 와서 피부 연고제를 듬뿍 발라주니 조금씩 진정이 되었다.


해파리에 처음 물린 날... 저 상처는 계속 가렵거나 따갑다가 3주 넘으니 서서히 가라 앉았음ㅠㅠ


"괜찮아?"


강습을 마치고 물가로 나온 남편이 내게 물었다. 나는 존경심을 가득 담아 말했다.


"해파리 물리면 이렇게 아픈 거였어? 난 지난 주에 여보가 별로 안 아파해서 별 거 아닌 줄 알았는데... 이건 와... 이상하게 너무 아픈데? 여보는 어찌 그리 잘 참았대?"


남편은 '뭘 그 정도 가지고~'라는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남편의 참을성은 넘사벽인 듯 하다. 나는 해파리 물린 부위가 아픈 와중에도, 애교 섞인 말을 덧붙였다.


"여보 혼자만 해파리 물리면 억울할까봐 나도 오늘 따라서 물린 거야! 여보의 고통을 이렇게라도 나누고 싶어서~ 내가 안 물려 봤으면 이렇게 아픈 줄도 몰랐을텐데, 잘했지? 부부는 일심동체!"


남편은 어이 없어 했지만 싫지는 않아 보였다. (일방적인 내 느낌?!ㅋㅋ) 그 날 이후 우리 부부는 커플 문신을 한 것처럼 각자의 발목에 선명한 붉은색 자국을 새긴 채 3주 가량을 지내야 했다.


거친 파도를 헤치며 끝까지 서핑을 한 우리 집 아이들과 해파리에 물려 발목이 얼얼했던 나는 급작스레 허기를 느꼈고, 당장 피자를 먹으러 달려 갔다.


피자를 와구와구 먹으며, 아이들은 오늘 경험한 '파도의 위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엄마, 왜 파도가 센 날에 어린이가 서핑을 하면 안되는지 알았어! 어린이들에게 높은 파도는 진짜 무시무시한 존재이기 때문이야!


파도에 온몸을 뚜들겨 맞았어도, 해파리에 물렸어도, 피자는 맛있었다...




서핑 강습 4회차 : 서핑 실력이 도통 늘지를 않는다.


서핑 강습 4회차에 만난 초면의 강사님, 의도하신 건 아니겠지만 나를 좌절하게 만든 뼈 아픈 말씀을 한 마디 날리셨으니...


어머니! 이 정도면 훌륭하신 겁니다! 만약 4회차 인데도 아직 보드 위에 못 서는 거면 문제가 있겠지만, 2회차면 충분히 잘 하시는 거예요~


나는 그 말씀을 듣자마자 울상이 되어 이렇게 대답했다.


"저... 죄송하지만, 오늘이 4회차예요..."


당황하신 강사님의 얼굴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강사님은 나를 보드 위에 서게만 해주시려고 무던히 애를 쓰셨다. 그리고 어쩌다 가끔 보드 위에 서기라도 하면 물개 박수를 치며 환호와 응원을 보내주셨다.


나의 자세를 보면서 문제점을 하나씩 파악하시고, 바른 자세로 설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르쳐 주시던 강사님께 너무 감사했던 날!


그러나 다시 한 번 깨달았지. 나는 서핑을 즐겨 타러 다니는 사람이 될 수는 없겠구나...라고^^;


모래 사장은 뜨겁지만, 바닷물에 들어가는 순간 시원합니다^^




서핑 강습 5회차 : 파도가 잔잔할 때는 패들링을 해야 한다.


다섯 번째 서핑 강습일엔 파도가 하나도 없었다. 높은 파도에 크게 데여 본 아이들은 서핑이 무섭다고까지 말했던 터라, 오늘처럼 잔잔한 바다에서 쉬엄쉬엄 서핑하는 것도 좋을 듯 했다.


그런데 파도가 없어서 서핑도 하기 쉬울 거라고 생각했던 건 나만의 착각! 오늘은 처음으로 여자 강사님께 배우게 되었는데, 강인한 포스가 절로 느껴지시는 분이었다.


모두 뒤돌아서 바다를 한 번 볼까요? 파도가 아예 없죠? 이럴 때는 직접 패들링을 해야 돼요! 오늘은 패들링만 집중적으로 연습해 봅시다!


패들링 (paddling) : 서핑을 할 때 양손으로 물을 저어 보드를 전진시키는 일


그렇게 시작된 패들링 연습! 내 손을 마치 배 젓는 '노'처럼 움직여야 하는 동작이었다. 보드에 엎드려 상체만 든 채로, 양손을 번갈아 수직 방향 물 속으로 꽂아 넣고 힘차게 뒤로 저어야 했다.


몇 번만 해도 어깨와 양팔이 저릿저릿 아팠다. 그런데 또 내가 힘차게 젓는 만큼 더 빨리 보드가 나아가자 재미도 있었다. 그래서 쉼없이 패들링해서 바다로 나아갔다 되돌아오길 반복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보드 위에서 파도를 타는 것보다 패들링하는 게 훨씬 재미있었다. 그러다 힘들면 보드 위에 잠시 앉아 먼 바다를 바라보는데, 망망대해에 나홀로 떠있는 그 느낌이 참 좋았다.


아이들도 잔잔한 바다 위에서 패들링하며 유유자적 바다를 즐겼던 오늘이, 다이나믹하게 서핑을 탔던 다른 날만큼이나 재밌었다고 소감을 전해 주었다.


패들링 하고 있는 남편 포착^^


이 날 서핑 후에 먹었던 중국집이 진짜 맛있었는데, 허겁지겁 먹느라 사진 한 장 없다는 게 아쉽다. 다음에 또 가려고 찜콩해 둔 세화의 홍성원! 간짜장, 짬뽕, 볶음밥, 군만두... 모두 너무 맛있었다!


나는 훌륭한 안주를 외면할 수가 없어 나홀로 '막걸리' 병도 곁들였는데... 패들링을 너무 많이 덕분인지 막걸리 알콜이 혈관 속을 쭉쭉 뻗어 나가는 느껴졌고, 결국 오는 안에서 기절했다는 사실...


낮술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아니, 서핑하고 마시는 술이 이렇게 위험합니다! ㅎㅎㅎ


패들링이 힘들어서 기절한 거라고 말하고 싶으나... 막걸리에 취함... 심지어 한낮...ㅎㅎ (남편의 몰카)




대망의 서핑 강습 6회차 : 우리 아이들만큼은 서핑을 잘 타게 됐으니, 이거면 충분하다.
보드 위에서 자세 연습 뒤, 바다로 들어가는 아이들^^


오늘은 우리 둘이서 보드만 가지고 따로 놀까?


남편이 솔깃한 제안을 해주었다. 안 그래도 서핑 잘하는 우리 집 아이들과 다른 집 아이들 앞에서, 번번히 바다 위로 다이빙만 하는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려니 자존심이 좀 상하던 바였는데...


"오, 좋다 좋아! 오늘은 애들 사진도 좀 찍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자~"


그동안은 바다에서 나도 같이 강습 받느라 아이들의 서핑하는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남길 기회가 없었다. 내내 아쉬웠는데, 오늘은 '진정한 서퍼'로 거듭난 아이들의 모습을 마음껏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파도를 몰고 오는 그녀! 멋지다 멋져!


아이들은 사뭇 진지한 태도로 열심히 서핑 마지막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파도는 그다지 높지 않아 딱 좋았고, 바다는 여전히 에메랄드 빛으로 아름답고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쉬는 시간 동안 아이들에게 둘러 싸여 '행복한 왕자님' 동상이 된 남편..ㅋㅋㅋ


열심히 패들링 하고, 보드 위에 앉았다가 드러누워 쉬기도 하며 서핑을 즐기는 남편도 열심히 찍어 보았다. 바다 위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그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수평선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서핑하는 남편 모습,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 :)


나는 내 키보다 훨씬 큰 서핑 보드와 아름다운 월정리 바다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남기는 것으로 서핑 마지막 시간을 마무리했다. 서핑은 여전히 못하지만, 도전해 봤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푸른 바다, 하얀 파도, 오렌지빛 서핑 보드, 그리고 나^^



서핑, 그거 아무나 잘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내 인생에도 서핑을 해본 여름이 한 번쯤은 있다는 게 좋았다. 뜨거운 여름 제주를 시원하게 보낼 수 있게 해주었던 서핑, 이제는 뜨겁게 너와 이별하련다...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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