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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뽀 Sep 25. 2024

뜨거운 여름 제주를 차갑게 보내는 재주(3)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뛰어들고 본다.


언제부터 바다로 뛰어들 수 있을까?


제주로 이사 온 2월부터 쭉 궁금했다. 집에서 훤히 내다 보이는 저 바다에 언제부터 뛰어들 수 있을까 하고. 제주에 딱 일 년만 머무를 수 있기에 더 애가 탔던 것 같다.


의외로 바다 물놀이를 할 수 있는 날은 많지 않았다.


날이 더워지기만 기다렸는데 막상 바닷물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서 입수를 못한 날도 있었고, 풍랑주의보가 내려진 날이나 비 오는 날도 잦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바다에 안 들어가고 싶어 할 때도 많았다. 그럴 때는 가까운 실내 수영장을 찾았고, 육지에서 놀러온 지인들과 함께 해수풀장이나 호텔 수영장에 가서 놀기도 했다.


내 36년 인생을 통틀어 가장 많은 물놀이를 한 여름으로 기억될 올해! 연일 폭염주의보에 열대야도 극심했지만 물놀이 덕분에 제주의 강력한 더위를 이겨낼 수 있었다.


물놀이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에도 여러 번 걸렸던 나.. 하지만 독한 감기약을 먹어 가면서도 입수만큼은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다! 


덕분에 나의 피부는 구릿빛으로 아주 멋지게(?) 골고루 태워졌다. 남편은 이런 나를 흑돼지 같다고 놀려대지만, 나는 여름 제주를 잘 즐긴 댓가라고 생각해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꿀꿀 -00-)


어느덧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로 변하기 시작한 요즘, 정말이지 뜨거웠던 올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었던 나만의 재주가 뭐였을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건 아마도,


온몸이 시꺼매지는 것쯤은 아랑곳하지 않고, 물만 보이면 첨벙 뛰어들고 보는 '대책 없음' 덕분이지 않았을까.


제주의 여름은, 뜨겁고도 아름다웠다 :)



그냥 걷기만 해도 좋았던 표선 바다


제주에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상태로 결정한 제주 일년 살이였다. 그런데 이사를 앞두고 갑자기 제주 사는 지인이 생겨 버렸다. 육지에서 오래 알고 지내던 후배가 제주로 이주를 하게 된 것!


후배랑 각자의 아이들을 데리고 다같이 만나기로 한 날은 5월 중순이었다. 후배는 낮 기온이 높을 예정이라며 바다 물놀이를 하자고 제안해 왔다. 덕분에 내 예상보다 훨씬 빨리 '첫 바다 입수'를 할 기회가 왔다.


제주에서의 첫 물놀이 장소는 내가 가장 많이 찾던 바다, 표선 해수욕장이었다. 이 날 이후로도 수많은 물놀이를 표선 바다에서 했는데, 수심이 얕고 파도가 잔잔해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어 정말 좋았다.


5월의 표선 해수욕장, 아직 바닷물은 차가워서 모래 놀이 위주로 놀았지요!


6월의 표선 해수욕장, 육지에서 놀러온 지인들과 모래놀이 삼매경^^




요즘 맨발로 걷는 게 유행인 듯 하다. 제주에서는 바닷가 모래 사장을 맨발로 걷는 분들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것을 '어싱'이라고도 한다.


어싱(Earthing) : 지구(Earth)에서 파생된 용어로 '접지'를 의미함. 신발을 벗고 맨발로 땅과 직접 접촉하여 지구의 에너지를 흡수하고 건강을 증진하는 활동을 말함.


나는 유행을 따르고 싶어서가 아니라, 지나갈 때마다 표선 바다가 날 꼬셔서(?) 준비없이 '어싱'을 하게 된 날이 많았다. 신발은 냅다 벗어 던지고, 치맛자락은 무릎 언저리까지 올려서 꽉 잡은 채, 맨발로 걷던 순간들..


모래 속으로 푹푹 꺼지는 발을 힘겹게 꺼내 올려 한 걸음씩 내딛는 맛이 있었다. 발바닥에 느껴지는 모래는 촉촉하니 부드러웠고, 발목 언저리까지 찰랑이며 드나드는 바닷물을 튕겨내며 걷는 재미도 쏠쏠했다.


표선 바다만 보이면 신발 벗어 던지고 맨발로 걷기..♡
흐린 날의 표선 바다도 좋다며 또 맨발 걷기!


그동안 제주로 여행 올 때마다 단 한 번을 찾지 않았던 표선 바다였는데, 올 여름엔 셀 수 없이 많이도 찾았다. 바다 멍만 때리던 날도, 바닷물에 발만 담그던 날도, 맑은 날도 흐린 날도 다 좋았던 표선 바다!



월정리, 세화, 금능... 어딜 가도 예쁜 제주 바다!


표선 해수욕장 다음으로 많이 찾았던 곳은 월정리 해수욕장! 서핑을 배우는 동안 일곱 번을 갔는데도 갈 때마다 감탄사가 나왔다. 표선 바다의 푸르딩딩한 물빛과는 다른 에메랄드빛 바다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작 서핑만 하느라 월정리에서의 물놀이는 두어 번 정도에 그쳤지만, 해파리에 호되게 쏘이는 아픈 기억도 있지만, 그래도 월정리 바다는 눈이 시리도록 예쁘고 좋았다.


주말마다 찾아 갔던 월정리 해수욕장..♡


스노클링을 하려고 찾아갔던 세화 해변과 금능 해변 역시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좋았다. 제주 바다의 아름다운 속살을 보여준, 몰디브 못지 않은 곳! (아직 몰디브 안 가본 1인^^;)


엄마를 모시고 또 간 바다, 세화♡
비양도가 내다 보이는 금능 바다♡



바다가 지겨워진 아이들은 수영장으로!


아이들을 위해서 여름 한시적으로 마당 수영장도 개장했다. 친구들이 놀러오면 마당 수영장에서 해질 때까지 첨벙거리며 놀던 우리 집 아이들! 나름 바다뷰(?)도 갖춘, 아이들의 만족도가 높았던 수영장이다.


방학을 맞이해 친구들과 마당 수영장에서 놀던 날 :)


여름 방학이 시작되자 육지의 지인들이 많이 놀러 왔다. 한 번은 남편 친구네와 바다가 보이는 해수풀장에 가서 놀았는데, 아이들이 굉장히 좋아했다. (하지만 내 기준엔 물이 매우 차갑고 짜더라는..ㅠㅠ)


 신천리 해수풀장, 반나절 재미있게 놀았던 곳^^


또 한 번은 내 친구가 우리 가족을 호텔로 초대해 준 덕분에 함께 물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 막상 제주에 집이 있으니 호텔에 묵을 기회는 없었는데, 친구 덕분에 누린 호캉스였다.


토스카나 호텔에서 보낸 2박 3일... 초대해 준 친구에게 고마웠던^^


친언니네 가족이 놀러왔을 때는 함께 '다카포'라는 카페에 갔다. 모두의 음료 값만 지불하면 마당에 있는 슬라이드 수영장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카페였다.


안전 요원분이 계셔서 아이들은 마음껏 물놀이를 즐기고, 어른들은 음료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수 있어 모두가 행복해지는 공간이었다.


추석 연휴 때도 너무 더워서 우리 가족끼리 한 번 더 방문했는데! 체력 좋은 우리 집 아이들, 11시부터 5시까지 주구장창 놀다 온 거 실화냐? ㅎㅎ (심지어 제발 집에 좀 가자고, 겨우 어르고 달래서 나옴^^;)


표선에 있는 다카포, 마당 수영장이 있어 좋았던 카페 :)



9월의 늦더위 타파를 위해, 계곡과 섬으로!


9월이 되어도 식을 줄 모르는 열기에 지쳐 찾아간 곳은 돈내코 계곡과 원앙 폭포였다. 다녀오신 분들의 말씀에 의하면 한낮에도 얼음장처럼 물이 차가워서 발만 담그고 있어도 온몸이 서늘해질 거라고!


이끼 낀 바위가 많아 자칫 잘못하면 미끄러질 수도 있어 집중해서 걷느라 더 많은 땀이 났다.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해 돈내코 계곡 물에 발을 넣어보니, 명성대로 차갑고 시원했다. 흐르던 땀방울이 쏙 들어갈 정도로!


아름답기로 유명한 원앙 폭포도 보러 갔다. 콸콸- 쏟아지는 폭포의 물줄기만 봐도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오래 머물기엔 너무나 치명적이었던 모기의 습격으로 인해 후다닥 돌아 나와야 했다.


제주도민들은 음력 7월 15일 백중날, 물맞이를 하러 원앙 폭포에 많이 간다고들 한다. 이 날 폭포 물을 맞으면 백 가지 잔병이 사라진다는 말이 전해져 온다고...^^


돈내코 계곡 & 원앙 폭포


올 여름 제주에서 마지막으로 첨벙거리며 놀았던 곳은 섬 속의 섬, 아름다운 '우도'의 바다였다. 추석 연휴 마지막날, 친정이 우도라고 하시던 큰 아이의 친구 어머니께서 초대를 해주신 덕분이었다.


우도 안에 있는 비양도 근처 바다에서 반나절을 신나게 놀았다. 아이들은 친구와 노느라 신이 났고, 나는 우도 안에 있는 바다에서 처음으로 해수욕을 해봐서 더 신이 났다.


우도에서의 마지막 해수욕으로 화려하게 마무리한 올 여름 :)




그동안 나에게 여름은 그저 '최악의 계절'일 뿐이었다.


덥고 습하고 짜증나고 입맛 없고 축 쳐지고 산책조차 어려워지는 그런 계절! 그런데 제주에서 찐하게 여름을 보내고 나니, 여름이 좋아지고야 말았다.


제주의 여름은 정수리가 녹아내릴 만큼 뜨거운 태양과 바다에서 불어오는 습한 열기로 가득차 있다. 그래서 제주의 여름을 조금이라도 시원하게 보내려면 어디로든 '첨벙' 뛰어드는 수밖에 없었다.


그 곳이 바다든, 수영장이든, 계곡이든 상관 없었다. 그저 물만 보이면 뛰어 들고 봤더니 온몸이 짜릿해질 정도로 시원했고, 물 위에 떠 다니며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제는 육지로 돌아간 뒤에 보내게 될 내년 여름이 어쩐지 좀 두렵다. 제주에서 보냈던 여름이 너무나도 뜨겁고 아름다웠기에, 첨벙- 뛰어들 만한 바다가 가까이에 없다는 사실에 적응을 못할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내 생애 이토록 행복한 여름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육지에 가서도 물만 보이면 어디든 뛰어 들고 보는 나의 '대책 없음'을 어떻게든 뽐내 봐야지!


나에게 여름이란 계절을 오롯이 느낄 수 있게 해준, 제주의 여름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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