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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뽀 Oct 22. 2024

사교육을 안 시키는 재주

제주에 사는 동안 아이들은 학원을 다니지 않기로 했다.


제주로 이사 가면 애들 교육은 어떻게 해?


제주 일년 살이 계획을 말할 때마다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아이들 교육에 대한 그 물음 속에는 초등학교 4학년과 2학년이 되는 두 아이의 학업 공백에 대한 우려가 섞여 있었다.


"학교는 시골 학교로 전학 시켜서 다닐 거고, 학원은 주변에 없으니까 겸사겸사 안 보내려고!"


나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지인들은 다소 놀란 표정이 되고는 했다. 본격적으로 공부만 시켜도 모자랄 시기에 학원도 없는 제주 시골에 가서 아이들과 1년을 지내고 오겠다니! 누가 봐도 시대에 역행하는 행보였다.


하지만 나와 남편의 생각은 확고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맘껏 뛰놀게 하며, 아이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해 주는 것! 그게 바로 제주 일년 살이를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기 때문이다.


제주에서 살 집을 구할 때도 아이들의 학교를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아이들은 원래 한 학년에 반이 10개나 있고, 같은 반 친구 수가 30명 가까이 되는 그런 큰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전교생이 50명밖에 안 되는, 한 학년에 반이 딱 한 개뿐인, 같은 반 친구들의 숫자를 열 손가락으로 다 셀 수 있는 지금의 학교가 마음에 쏙 들었다. 아이들 역시 1년 가까이 대만족하며 다니는 중이다.


심지어 등교하면서는 한라산, 하교하면서는 바다가 보이는 학교라니!! 아파트로 빽빽이 둘러싸인 원래의 등하굣길을 다시 걷게 됐을 때쯤에야 아이들은 지금의 아름다운 등하굣길을 그리워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등교할 때는 한라산을, 하교할 때는 바다를 볼 수 있는 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



엄마, 제주에서는 진짜로 학원 안 다니는 거야?


아이들은 진심으로 궁금해 했다. 제주 사는 1년 동안 진짜로 학원에 안 가도 되는지를. 그동안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자마자 학원에 가는 것이 당연했어서, 막상 학원을 안 가는 게 어색한 모양이었다.


우리 부부는 사실 '최소한의 사교육'을 지향하는 편이다. 그러나 맞벌이를 하면서 사교육을 최소화 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적어도 엄마인 내가 퇴근할 때까지는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는 게 필수였다.  


여기서 잠깐, 우리 집 아이들의 사교육 연대기를 간단히 살펴 보겠다.


첫째는 초등학생이 되면서부터 처음으로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3년 동안 피아노, 미술, 발레, 수영, 태권도 학원을 순차적으로 다녔고, 3학년 2학기부터 영어 학원도 다니고 있던 와중에 제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둘째 역시 초등학생이 되면서 처음으로 피아노, 미술, 수영, 태권도 학원을 고루 다녔는데! 2학년이 되기 직전에 제주로 이사를 오면서 짧았던 1년간의 학원 생활을 마무리 짓게 되어 다소 아쉬워 했다는 후문이다.


수학과 영어만큼은 집에서 최소한의 공부를 시키기로 했다. 이과 출신 아빠는 '수학 선생님' 그리고 문과 출신 엄마는 '영어 선생님'을 맡아 아이들의 집공부를 돕기로 했고, 지금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매일 수학 문제집 풀고 아빠 선생님께 검사 받기 & 매일 30분씩 엄마 선생님과 영어 책 읽기! 꾸준히 잘하는 중 :)

 


방과후 수업을 신청만 하면 누구나, 심지어 무료로 받을 수 있다고?


막상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게 되자, 엄청난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원래 다니던 육지 학교에서는 치열하게 수강 신청해야 겨우 들을 수 있었던 방과후 수업을 여기서는 신청만 하면 누구나 들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원래 학교에서는 분기별로 방과후 강습비를 내는 게 당연했는데, 아이들이 다니게 된 제주의 학교는 읍-면-리 단위에 속해 있어서 방과후 강습비가 전액 무료라고 했다! 정말 놀랍고도 기쁜 소식이었다.


아이들은 사실 학원에 다니는 걸 굉장히 좋아했다. (물론 예체능 위주로 다녔으니 당연히 재밌었겠지만^^;) 그래서 제주에서 학원을 다니지 않게 되어 약간은 아쉬워 하는 눈치였는데...


학교 방과후 수업이 그 아쉬움을 채워주게 되었다. 과목도 피아노, 플룻, 미술, 바둑, 컴퓨터, 탁구, 영어, 독서 논술, 영어 그림책 읽기까지 9개나 돼서 아이들이 알차고 즐겁게 방과후 시간을 보내고 다.


제주 민속촌에 놀러 갔더니, 바둑 방과후 수업 때 배웠다며 대국을 펼치던 자매 ㅎㅎㅎ



바다는 우리 집 아이들의 놀이터


제주로 이사를 왔더니 현관문만 열면 바다가 보였다. 집 앞에 펼쳐진 이 드넓은 바다가 우리 아이들의 전용 놀이터가 되어 주었다.


아이들이 바다 놀이터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채집'이었다. 썰물 때 드러난 돌 위를 걷다가 바위 위에 붙은 이름 모를 조개와 보말 등을 따는 걸 굉장히 재미있어 했다.


성산 바다 쪽 오조리에 가서 조개를 가득 캐 올 때도 있었는데, 아이들은 자기가 직접 바다에서 가져온 것들이 음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신기해 하며 더 맛있게 잘도 먹어 주었다.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식재료를 구해 오는 기쁨을 알게 된 아이들^^ 제주에서만 느낄 수 있는 큰 배움이 아닌가 싶다.


바다에서 조개와 보말을 직접 캐오는 아이들, 바다에서 보물 찾기를 하는 것 같아 재미있다고...^^




아이들은 썰물에 드러난 드넓은 백사장을 마치 운동장인냥 뛰어 다니는 것도 매우 좋아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바닷물에 잠겨 있던 곳이었기 때문에 발을 딛으면 푹푹 빠지는 느낌이 재밌을 법 했다.


여름에는 신고 간 샌들을 벗어 던지고 맨발로 바다에 들어가기 일쑤였다. 입고 있던 바지가 물에 젖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흙을 파내어 모래성을 쌓거나 기어다니는 작은 게를 잡는 일은 아이들의 일상이었다.


잘 닦여져 있는 바닷길을 산책할 때도 아이들은 돌 위를 걷고 싶어 안달이었다. 큰 돌을 넘어 다니다가 넘어져서 다칠까봐 걱정하는 건 겁 많은 엄마뿐... 아이들은 돌길 탐험을 짜릿한 모험의 하나로 여겼다.


흙과 돌을 밟으며 걷는 재미를 아는 아이들을 볼 때면 도시의 잘 닦인 아스팔트 길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길을 걸을 기회를 만들어 줄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다.


흙과 돌을 밟고 걷는 자체가 즐거운 놀이이자 짜릿한 모험인 아이들 :)



제주에서는 애써 사교육을 시키지 않아도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하게 많더라!


* 아이들과 제주에서 배우고 경험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편에 계속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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