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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뽀 Oct 10. 2024

자꾸만 더 걷게 되는 재주

제주에서는 그렇게 싫어하던 걷기마저 좋아졌다.


걷는 걸 싫어하던 한 사람이 있었다.


그녀도 처음부터 걷는 걸 싫어한 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달리기를 못했던 그녀는 차라리 걷는 것을 조금 더 선호하는 편이었다.


그녀는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할 때마다 자연스레 깍두기 역할을 맡아야 했다. 달리기가 워낙 느려 술래에게 순식간에 잡히기 일쑤였고, 술래가 된 그녀에게 잡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날은 해마다 열리는 가을 운동회 날이었다. 대여섯 명의 친구들과 달리기 시합을 했다 하면 무조건 꼴찌였는데, 그것도 한참이나 동떨어진 채 결승선을 통과하는 꼴찌였다.


"얘, 걷지 말고 뛰어야지! 너 때문에 다음 순서 애들이 한참 기다리고 있잖아~"


온힘을 다해 뛰었건만 결승선에 있던 낯선 어른이 왜 뛰지 않았냐며 뭐라 하셨을 때, 그녀는 깨달았다. 그녀가 아무리 열심히 뛴다 한들 다른 사람 눈에는 그저 걷는 걸로나 보인다는 것을.


그 때부터 그녀는 절대로 뛰지 않았다.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 남들보다 못 달리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걷는 데에 집중하기로 했다. 만약 '느리게 걷기 대회'가 있다면 1등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녀는 느릿느릿 걸어 다녔다.


2024년 봄, 이중섭 미술관으로 가던 길에 마주한 두 아이의 엄마 모습... 마치 날 보는 듯 했던!




언제부턴가 그녀의 걷기 속도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하나 둘 생겨났다. 바로 그녀가 낳은 딸들이었다. 딸들이 아장아장 걸음마를 할 때만 해도 그녀의 걸음은 아이들과 맞춰 걷기에 딱 알맞고 좋았다.


그러나 그녀는 곧 아이들이 달려 나갔다 하면, 자신의 걸음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어느덧 훌쩍 커버린 딸들이 엄마인 그녀보다 잘 달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엄마, 초록불 깜빡이니까 얼른 건너자!"


횡단보도에서 초록불이 깜빡일 때면 딸들은 그녀의 손을 잡고 빠르게 건너려고만 했다. 그러나 그녀는 매번 아이들만 먼저 가도록 손을 놔주고는 꼼짝없이 멈춰선 채로 다음 신호를 기다릴 뿐이었다.


그녀는 절대로 뛰지 않았다. 아니, 뛰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초록불이 빨간불로 바뀌기 전에 횡단보도를 무사히 다 건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본인의 엄마가 달리기를 매우 못한다는 걸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항상 변명처럼 '엄마는 뛰는 것보다 걷는 게 좋아~ 너희 먼저 가~'라고 말했지만 아이들은 눈치가 매우 빨랐다.


그래도 그녀는 꿋꿋하게 자신만의 속도를 유지하며 걸었다. 잘 뛰지는 못 해도 잘 걷는 사람은 되고 싶어, 느리지만 부지런히 걸어 다녔다. 그런데 그녀는 한 순간, 걷는 것마저도 잘 못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녀의 '발' 부상 일지>

2018년, 왼쪽 네 번째 발가락 골절 및 인대 파열로 수술 받게 됨.
6주 동안 철심이 박힌 발에 깁스를 하고, 집 안에서도 휠체어를 타고 다님.
그 후로 1년 동안은 걸을 때마다 극심한 통증을 느껴, 병원에서 수시로 물리 치료를 받음.

2019년, 수술했던 발가락에 관절염 증상이 생겨 걷기 힘들 정도로 아파 한동안 깁스 신세.

2022년, 빗길에 미끄러지며 오른쪽 발을 삐끗해서 한동안 깁스 신세.

2023년 마지막날, 빙판길에 미끄러지며 왼쪽 엄지 발가락 골절 돼서 한동안 깁스 신세.

 


달리기를 못해서 걷기라도 잘하고 싶었는데, 두 번의 발가락 골절과 여러 번의 발부상으로 인해 걷기마저 잘 못하게 된 그녀가... 바로 나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나는 발가락이 두 번이나 부러졌다.


처음 왼쪽 넷째 발가락이 골절됐을 때는 뼈도 조각난 데다 인대까지 끊어지는 바람에 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그 작은 발가락 하나 부러졌을 뿐인데 후유증은 엄청 컸고, 대단히 오래 갔다.


수술 이후, 왼쪽 발로 땅을 딛는 모든 순간이 고통스러워 오른쪽 발에만 무게 중심을 둔 채 걷기 시작한 게 또 문제였다. 걸음걸이가 비뚤어지니 골반도 틀어졌고 허리도 아팠다.


결국 오른쪽으로만 치우쳐 걷던 나는 빗길에 또 넘어지며 오른쪽 발등을 심하게 삐어 한달 동안 깁스 신세를 져야만 했다.


왼쪽 발가락 골절, 오른쪽 발등 염좌까지만 겪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제주로 이사 오기 딱 한 달 전이었던 올해 1월에는 빙판길에 넘어지며 왼쪽 엄지 발가락이 또 부러지고야 말았다.


번번이 부러지는 내 발이 원망스러웠고, 자꾸 넘어지는 내가 너무 한심스러워 우울하기까지 했다.


나는 선천적으로 튼튼하지 못한 발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고, 평생 잘 걷지 못하는 사람으로 살게 될 거라는 부정적인 생각에 오랜 시간 사로 잡히게 되었다.


남편은 이런 내 생각을 완전히 바꿔주고 싶어 했다. 잘 못 걷는 나... 아니, 잘 못 걷는다고 생각하며 걷는 것 자체를 두려워 하는 나를!


남편은 내 발이 선천적으로 약하다면 오히려 후천적으로 더 단련을 시켜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다시는 작은 충격에도 쉽게 부러지지 않도록, 더 많이 그리고 더 오래 걸어서 발을 단단하게 만들어 보자고 했다.


그렇게 제주로 이사 온 직후부터 남편의 주도 하에 ‘내 발을 튼튼하게 만들기 위한 걷기’가 시작되었다.


제주에 온 뒤로, 매일 1만보 이상 걷게 된 나...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 :)




첫 도전은 과감하게도 한라산 정상 등정이었다. 아직 백록담 정상에 눈이 쌓여 있던 2월, 한라산 성판악 코스를 가족 모두 오르기로 한 것이다.


나는 왼쪽 엄지 발가락 골절에서 회복된 지 한 달도 채 안 된 시점이었기 때문에 절대로 정상까지는 못 갈 거라 내심 판단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나보다 더 산행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초등학교 4학년이 된 큰 딸이었다.


아이는 ‘선천성 고관절 탈구’라는 병을 가지고 태어나는 바람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두 번에 걸쳐 왼쪽 고관절과 다리 쪽에 큰 수술을 받았다.


전신 마취 수술 이후 가슴부터 발 끝까지 통깁스를 한 채 6주간 꼼짝 없이 누워 지내야 했고, 휠체어를 타고 학교를 다니기도 했던 아이였다.


철심을 박아둔 뼈가 잘 붙어야 해서 6개월 이상을 잘 걷거나 뛰지도 못했던 아이가, 막상 한라산에 오르니 가장 앞서 나가며 잘 걷고 있었다!


자신의 신체적 한계에 갇히지 않고 씩씩하게 한라산을 오르는 아이를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강인한 생명력으로 한 걸음씩 내딛는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덕분에 나는 눈보라를 헤치고 한라산 정상에 우뚝 서는 짜릿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한라산 등정을 계기로 나도 조금씩 걷기에 자신감이 생겼다.


눈 내리던 2월, 처음으로 한라산 정상 등반에 성공했던 날을 잊지 못한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매일 걷기 시작했고, 조금씩 거리를 늘려 나갔다.


보건소에서 안내해 주셔서 알게 된 <탐나는 걷기 챌린지>에도 매달 도전하게 되었는데, 덕분에 하루 7천보 이상은 꾸준히 걷는 습관을 만들 수 있었다.


내가 채워야 하는 매일의 걸음을 걷는 배경이 되어준 곳은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이었다.


멀리 갈 수 없는 날에는 우리 집 앞 바다를 기점으로 오른쪽인 표선으로 가거나 왼쪽인 남원으로 가면서 끝없이 펼쳐진 아름다운 바닷길을 감상하며 걸었다.


왼쪽으론 빨간 동백꽃, 오른쪽으로는 파란 바다! 눈이 절로 행복해지는 집 근처 산책로 :)




체력이 차츰 좋아지는 게 느껴지면서는 오름도 오르기 시작했다.


토산망 오름부터 베릿내 오름, 물영아리 오름, 여절악, 영주산, 민오름, 대록산, 가세 오름, 까끄래기 오름, 통오름, 독자봉, 따라비 오름, 모지 오름 등등..


아름다운 오름을 오를 때면 바다도 보이고 한라산도 보이고, 더불어 나의 걷기 실력 향상도 보여서 정말 뿌듯하고 좋았다.


제주의 수많은 오름들을 오르며... 행복했던 순간들




벚꽃이 아름답게 피어나던 3월에는 우리 가족 모두 ‘신풍리 벚꽃길 걷기 대회’에 참여하여 가족이 함께 꽃길을 걷는 즐거움과 낭만을 만끽하기도 했다.



기세를 몰아 4월에는 관음사 코스로 한라산도 다시 올라가 겨울 산행 때는 눈보라가 몰아쳐서 볼 수 없었던 백록담까지 직접 보고 오는 기쁨을 누렸다.



더 걷고만 싶은 욕심에 작가의 산책길을 걷거나 아름다운 공원들을 찾아가 걸었고, 머체왓 숲길과 한남 시험림, 서귀포 치유의 숲처럼 공기 좋은 숲길을 걷는 일도 잦았다.



제주로 이사 오기 전까지 아픈 발을 핑계로 거의 걷지 않고 지내던 내가, 고작 몇 달 만에 매일 1만 보는 거뜬히 걷는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도시에 살 때는 걸을 만한 공간과 시간이 부족하다는 적절한 핑계라도 댈 수 있었는데, 제주에서는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좋은 공기를 마시며 행복한 기분으로 걸을 수 있으니 핑계댈 것도 없더라 :)


제주에서는 걸으면 걸을수록 더 오래, 그리고 더 많이 걷고 싶은 욕심이 절로 생겨난다.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려면, 내 두 발로 걸으며 찬찬히 둘러보는 게 최고라는 걸 경험으로 깨달은 덕분이다.


주말에는 아이들과 함께 올레길도 걷고 있다. 올레길 완주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제주를 속속들이 내 두 발로 걸으며 두 눈으로 생생히 담을 수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큰 행복을 맛보고 있다.


딸들과 올레길 걷는 얘기가 궁금하시다면?

http://brunch.co.kr/brunchbook/cherrybbong



드디어 강렬한 태양에 타 죽을까 싶어 걷기를 조금 쉬어야 했던 여름은 가고, 걷기 참 좋은 계절인 가을이 왔다. 아마 제주에서 온전히 누리는 첫 가을이자 마지막 가을일 될 것만 같은데...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 제주의 드넓은 초원을 누비는 말 구경 많이 다니면서 더이상은 살이 찌지 않도록 야무지게 걸어 다녀야겠다.


반갑다 제주의 가을아! 덕분에 선선한 바람 느끼며 많이 걸어 다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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