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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뽀 Mar 07. 2024

재주 부리는 곰 남편과 곰 아내

재주는 곰 남편이 부리고 제주는 내가 누리게 되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받는다는 말이 있다.


열심히 일한 사람 말고 다른 사람이 그 보상을 받는다는 뜻의 속담인데, 아무래도 지금 상황의 우리 부부를 빗대어 표현한 말이 아닌가 싶다.


‘재주는 곰 남편이 부리고 돈은  아내가 받는다’는 말로 살짝 바꾸면, 그야말로 찰떡 비유!


만 14년을 성실히 다니던 회사에 1년간 육아 휴직을 하겠다고 용감하게 말한 것도 남편, 그 시간 동안 제주도에서 살아 보자고 제안하며 구체적인 방법들을 모색한 것도 남편, 제주도로 무사히 이사 오기까지의 많은 과정들을 짊어지고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한 것도 다 남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결혼한지 12년만에 처음 알게 된 내 남편의 정체는 바로, 엄청난 재주를 부리는 곰이었다! (곰 남편아, 곰마워..♡)




남편이 곰이라면 나는 조금 부끄럽게도 곰의 주인(?)이자, 곰의 아내이다.


남편 곰이 현란한 재주를 부린 덕분에, 마법처럼 여기 이 곳 제주에 와서 1년이란 시간을 보내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염치가 있는 주인이다 보니, 남편 곰이 혼자 재주를 부려 얻게 된 이 시간들을 날름 받아만 먹기엔 좀 미안해졌다.


온갖 재주를 부려 제주도까지 가족들을 데리고 와준 남편 곰을 위해 아내 곰인 나도 작은 재주를 한 번 부려 보기로 했다.


내가 그나마 잘하는 것이 있다면 꾸준히 기록을 하는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일기장에 나의 하루를 끄적이는 것을 좋아했다. 두 딸 아이를 위해서는 태어난 그 날부터 세 돌 생일을 맞은 날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각자의 책으로 만들어 두었다. 아이들에게 본인이 기억하지 못하는 갓난 아기 시절 이야기를 선물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토록 징(?)하게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우리 가족이 꼭 붙어 지내게 된 1년 간의 제주 살이 여정을 글로 남겨 보려고 한다.


그리하여 1년 뒤면 원래 살던 육지로 돌아가 있을 우리 가족이 이따금씩 제주에서의 시간들을 마치 어제 일처럼 떠올릴 수 있도록.


혹시라도 되돌아간 그 곳에서의 삶이 고단하거나 녹록치 않을 때, 알사탕처럼 하나씩 꺼내어 읽으며 이 곳에서의 시간들을 달달하게 추억할 수 있도록.




곰 남편의 현란한 재주 부리기 덕분에 시작된 1년간의 제주 살이.


우리 가족에게 주어진 이 선물 같은 시간이 다 끝날 즈음엔 “재주는 곰 남편도 부리고 곰 아내도 조금 부렸습니다” 라고 당당하게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제주로 이사하던 날, 제주 공항에서 :) Hello Je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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