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회사에 다니게 된 나의 전 남자친구(현 남편)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 “회사 안 가고 싶다”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는데, 남편은 꽤 오랫동안 퇴직 말고 휴직을 꿈꾸어 오던 사람이었다.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는 올해, 마지막으로 쓸 수 있는 육아 휴직 기회를 놓칠 수가 없어 눈 딱 감고 지른 사람. 그리고 제주도로 이사까지 감행한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나의 자랑스런 남편 되시겠다.
“우리 둘 다 육아 휴직하고 제주도 같은 데서 1년 정도 살다 오면 어떨까?”
둘이 손잡고 걸을 일이 있을 때면 이따금씩 툭툭 던지던 남편의 이 말. 내 입장에서는 정말 뜬구름 같은 말이었다.
분명 그 말의 청자는 나였겠지만, 왠지 모르게 남편은 혼잣말처럼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느낌이었다.
이 말을 실현하려면 나의 동의가 필요한 걸까, 내가 동의하지 않아도 남편은 무조건 하고야 말까,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아마 머릿속에 떠오른 현실적인 걱정들 때문이었으리라.
우리가 둘 다 휴직하면 돈은 누가 벌어 오지? 둘 다 논다면 생활비는 어디서 어떻게 충당할까? 이미 집 사느라 대출이 만땅인데 이자는 어떻게 갚아 나가나?
이런 질문들이 떠오르자 나는 속으로 답을 내렸다. 남편의 저 말은 어차피 실현되지 못할 거라고.
“그러면 좋지, 진짜 좋고 말고지! 무조건 가자! 나는 적극 찬성!”
또 내가 누구인가. 주변 사람들 모두가 인정하는 리액션 부자! 내가 남편의 버킷 리스트 중의 하나일 것만 같은 그 일에 대해 감히 “꿈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하며 초를 치고 싶진 않았다.
내 사랑하는 남편이 힘든 현실을 살아갈 소소한 희망 한 줌으로 쥐고 있는 모래알들일 텐데… 어차피 손에서 스르르 빠져나갈 모래알들…
남편이 아무리 꽉 쥐고 있으려 노력해도 손가락 사이사이로 빠져 나갈 모래알들이라면, 그 손 위에 내 손을 포개어 조금이라도 모래알들을 더 오래 쥐고 있게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마음이 아마 오랫동안 묵묵히 일만 해온 남편을 사랑한 아내의 배려이지 않았을까.
그래서 걱정되는 마음과는 달리 늘 환하게 웃으며 “적극 찬성” 멘트를 날려 댔던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아무래도 나의 오두방정 리액션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아내의 열렬한 지지에 힘을 얻은 남편은 지난 여름, 정말로 육아 휴직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아차, 나는 그제야 잊고 있던 남편의 재주가 떠올랐다!
나처럼 말은 많이 하고 행동으로는 덜 옮기는 사람은 절대 가질 수 없는 재주 한 가지.
(그래서 남편이 붙여준 내 별명은 ‘말만이’다. 말만 한다고^^)
남편은 자기가 한 말은 99% 행동으로 옮기는 엄청난 재주를 가진 사람이었다.
(사실,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라고 쓰고 싶었지만, 남편이 그런 사람이 어디 있냐며 타박을 줘서 1%의 인간미는 남겨 두었다.)
저 멀리 바다 위로 보이는 성산일출봉보다 더 큰 신뢰감을 주는 남편
남편의 이 재주가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여전히 새벽부터 일어나 각자 출근을 하고,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이미 출근하고 난 썰렁한 집에서 차려둔 아침밥을 깨작깨작 먹으며 1시간 정도 자기들끼리 지내다가 등교를 했겠지.
해가 질 무렵까지 여러 학원들을 부지런히 돌던 아이들이 5시쯤 귀가하면 부랴부랴 엄마인 내가 등장! 나는 아이들에게 눈길 줄 시간도 없이, 출근했던 옷차림 그대로 머리만 질끈 묶고 정신없이 저녁밥을 만들며 ‘아.. 피곤하다, 쉬고 싶어’ 생각했겠지.
이미 에너지가 소진돼 버려 한껏 예민해진 나는 아이들이 투닥거리며 싸우는 소리에도 신경질이 나 벌컥 화를 내며 ‘엄마 힘든 거 안 보여?’의 자세로 내내 아이들에게 미소 한 번 지어주지 못했을 테고.
이 모든 힘듦은 아직도 집에 오지 않는 남편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며, 한참 뒤 나보다 더 지친 얼굴로 퇴근해서 들어오는 남편에게 원망 가득 담긴 눈빛을 쏘아 댔겠지.
하루가 24시간인데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은 고작 아이들이 자러 가기 직전 1~2시간 뿐이었던 때. 맞벌이 부부인데도 내가 좀 더 시간이 많다는 이유로 집안일과 육아를 도맡아 하며 억울한 감정을 자주 느껴야 했던 때. 남편과 아이들을 곱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지 못했던 때.
뭔가 늘 흐리고 우중충했던 것 같은 그 때의 우리 집 날씨, 대부분 쌀쌀했던 우리 집 온도.
지금 여기 제주에선 그런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온 가족이 하루종일 붙어 지내는 중인데, 맙소사! 가족들 얼굴 위로 햇살이 찬란하게 내려앉은 것만 같다. (이사 오고 일주일 내내 비가 왔는데도)
하루하루가 어쩐지 농밀하고 짙어진 느낌. 함께 하는 모든 시간이 웃음으로 가득하고 여유가 넘치는 느낌. 집에 불을 켜두지 않았는데도 따사로운 햇살이 환하게 우리 가족만을 비춰주고 있는 그런 느낌.
남편과 내가 휴직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느끼지 못했을, 우리 집의 달라진 공기.
자신이 뱉은 말은 꼭 지키려고 하는 남편이, 그래서 꿈처럼 느껴지던 제주에서의 1년 살이가 실현된 것이 새삼 고마워진 순간이다.
남편 손가락 사이사이로 빠져나가고 있던 희망의 모래알들을 맥없이 보고만 있지 않고, 얼른 내 손도 보태어 최대한 모래알들을 움켜쥐고 있을 수 있게 도운 나, 칭찬해! (쓰담쓰담)
덕분에 올해는 진짜 제주 바닷가에 앉아 원도 없이 모래알들을 움켜쥘 수 있게 되었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모래알들이 빠지거나 말거나 크게 신경쓰지 않고, 다시 신나게 다른 모래알들을 그러모아 쥐면 그만이다. 작은 희망의 모래알들을 모아, 우리 가족만의 튼튼한 모래성을 쌓으며 행복한 1년을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