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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뽀 Mar 21. 2024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노는 재주

여기 제주에서는 맘껏 뛰놀지 않을 수가 없다.

뛰지 마!!!!

아이들의 와다다다 쿠당탕탕 소리가 들리자 반사적으로 외쳤다. 뛰지 마.


“엄마, 왜 뛰지 마?”


아이들은 되물었고, 나는 그제야 책을 보던 시선을 거두어 아이들을 보았다. 아이들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놀란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멀뚱히 선 아이들 뒤로 서서히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창문 너머로 우리 집 마당과 돌담이 보였다.


아, 맞다! 여기 1층이었지.. 심지어 아랫집, 윗집도 없는 단독 주택.


“엄마! 우리 아파트 안 살잖아~ 왜 아랫집도 없는데 뛰면 안 돼?”


아이들이 한 번 더 나를 향해 물었다. 뛰면 안 되는 다른 이유가 있는지 정말 궁금한 눈치였다.


“미안 미안. 그러게 엄마가 왜 뛰지 마라고 한 거니.. 하던 대로 다시 놀아요!”


이 에피소드는 제주로 이사 온 지 2주 정도 됐을 때의 일이다. 내가 주택에 산다는 게 아직은 낯설어서 무의식적으로 나온 말이었겠지만, 그만큼 그 말은 입에 오랫동안 달고 살던 말이기도 했다.


뛰지 마라는 말. 아이들 귀에 박히도록 지겹게 했던 말. 사실은 하기 싫었던 말.


아파트에서만 10년 동안 두 아이를 키우며, 그 말은 필수 불가결한 말이었다. 아파트는 엄연한 공동 주택이었고, 내 아랫집과 윗집에 층간 소음이 전달되면 큰 피해를 끼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내가 뛰지 마라고 말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뛰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상황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악역을 자처하며, 하루에도 여러 번 뛰지 마라고 소리쳐야 했다.


그래도 운이 좋았던 건지, 그동안 이사하며 만난 아랫집 분들은 정말 좋은 이웃들이었다.


“저희 집 아이들이 많이 뛰죠? 뛰지 마라고 항상 얘기하는데도 안 될 때가 있어요.. 시끄러우시면 바로 말씀 주세요!”


아랫집 분들을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나는 죄인의 심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정중히 말씀드리고는 했다.


“허허 괜찮습니다! 이맘때는 뛰는 게 당연하지! 우리는 괜찮으니 맘껏 뛰라고 하세요!”


엄마 뒤에 숨어서 긴장한 채 서 있던 아이들은 매번 넉넉한 인품을 지니신 아랫집 어른들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환히 웃으며 소리치고는 했다.


“감사합니다!!!!!”


먼저 괜찮다고 말씀해 주시는 좋은 이웃분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더욱 엄격하게 아이들이 뛰지 않도록 자제를 시켰다. 공동 주택에 사는 사람이라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와 규칙을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여기 제주에 와서는 단독 주택에 살게 되었지 않은가. 뛰지 마라는 말은 이제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말이 되었다. 유효 기간은 딱 1년 뿐이긴 해도.


앞으로 1년 동안은 뛰지 마라는 잔소리를 구기고 구기고 구겨서, 아주 작은 종이 뭉치처럼 만든 뒤, 내 맘 속 깊은 곳에 쑤셔 넣어둘 것이다. 아이들이 뛰는 소리만 들려도 반사적으로 튀어 나오려고 할테니, 꽉꽉 눌러 밟아서 절대로 못 나오게 해야지.


어느 날 저녁, 아이들은 갑자기 음악에 맞춰 체조를 좀 하고 싶다고 했다. 며칠 동안 비가 내려서 밖에 나가 놀지 못해 몸이 찌뿌둥했던 모양.


핑크퐁 유튜브 채널에서 키가 쑥쑥 체조, 태권 파워 체조, 동물 요가 등을 골라 따라 하는데.. 세상 파워풀하게 동작을 따라하는 아이들. 아파트에 살 때는 발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뛰는 동작이 나오면 최소화하는 게 기본이었다.


(쿵쿵대는 소리만 들렸다 하면, 엄마인 내가 “뛰지 마!!!”라고 할 게 뻔하니까.)


특히 점프 체조를 따라 할 때는 ‘토끼처럼 뛰어봐, 캥거루처럼 뛰어봐, 펭귄처럼 뛰어봐, 개구리처럼 뛰어봐, 더더더더 높이! 뛰어 뛰어!' 가사에 맞춰 얼마나 높이 점프를 해대는지! 이제야 비로서 성장판 자극이 일어나는, 체조다운 체조를 하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은 원래 뛰면서 큰다. 아니, 뛰어야 큰다.


도시에 살면서는, 특히 아파트에 살면서는, 맘껏 뛰어다닐 공간을 찾는 게 어려웠다. 주말이 되면 아이들이 맘껏 뛰놀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다니기 바빴다.


그런데 여기 제주에서는 문만 열고 나가면 된다. 우리 집 마당에서 뛰어 놀고, 심심하면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돌다 오고, 심심하면 집 바로 앞 바닷가 산책을 나가 돌을 밟으며 논다. 혹시 날씨가 궂어 나가기 어려우면 집 안에서 뛰어도 OK~


아이들은 태어나 처음으로 집 안에서 뛰지 마라는 말 대신 맘껏 뛰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원래도 텐션 업이던 아이들은 더더욱 파워 업! 방방 뛰다 못해 날아 다닌다.


그래 바로 이거지, 주택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혜택. 층간 소음으로부터의 해방.


얘들아, 여기서는 고삐 풀린 망아지로 살려무나. 그게 원래 너희가 지닌 엄청난 재주였지 않니. 너희들의 고삐였던 ‘층간 소음’의 스트레스는 놓아 버리고, 맘껏 뛰고 구르며 지금 이 시간을 오롯이 즐기려무나.


알았지, 귀여운 우리 망아지들^^


학교 가는 길에도 뛰고 / 학교 운동장에서도 뛰고 / 집앞 마당 돌담에서도 뛰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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