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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뽀 6시간전

겨울 올레길 걷기의 시작

15-B코스, 우리 가족의 추억이 깃든 길


자, 이제 엄마가 돌아왔으니 다시 올레길 걸으러 가볼까?


11월이 올레길 걷기에 가장 좋은 달이었는데, 애석하게도 올레길을 딱 한 번밖에 못 걸었다. 내가 오랫동안 친정에 다녀올 일이 생겨 그렇게 되었다.


아빠랑만 지내게 된 아이들이 엄마의 부재를 슬퍼할 거라 예상하셨다면 No~! 아이들은 엄마가 없는 덕분에 주말마다 올레길을 안 걷고 아빠랑 놀게 되어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흑흑ㅠㅠ)


"11월에 못 걸은 올레길, 엄마가 돌아왔으니 다시 걸으러 가야지?"


12월 첫날, 우리 가족의 겨울 올레길 걷기가 시작되었다. 올레길 걷기 전에 날씨를 보니 제주 전역에 비 예보가 내려져 있었다. 딱 한 군데, 애월읍만 빼고!


"유일하게 비 안 오는 애월로 가보자! 우연의 일치로 15번째 올레길은 15코스입니다!"


15번째로 걷게 될 올레길은 15코스입니다^^


15코스는 3코스처럼 두 개의 코스로 나뉜다. 아름다운 한담해안 산책로를 걷고 싶기도 했고, 길이도 13km로 비교적 짧은 B코스를 걷기로 했다.


한림항에서 정방향으로 올레길 걷기 시작 :)


걷다 보니 바다 위로 비양도가 보였다. 비양도는 지난 달에 직접 다녀와서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섬이었다.


"엄마, 우리 저번에 비양도 갈 때 배 탔던 곳에서부터 올레길이 시작되네!"


"그러게! 가봤던 비양도라서 더 반갑고 좋다!"


얼마전에 가봐서 더 반갑게 느껴진 비양도!
11월, 비양도 투어 덕분에 처음 가본 비양도에서^^


한림쪽을 걸으니까 4년 전에 여기서 보낸 여름이 생각나네!


잠시 4년 전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때는 바야흐로 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맹위를 떨치던 때이다.


큰 딸은 만5세, 작은 딸은 만3세, 남편은 입사 10주년을 맞아 모처럼 긴 휴가를 받게 된 그 해 여름! 애석하게도 꿈꿔 왔던 해외 여행을 갈 수 없을 때라 차선책으로 제주도 2주 여행을 가기로 했다.


여행 출발을 이틀 앞둔 날, 큰 딸이 다니던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다. 부모라면 모두 공감하겠지만, 아이가 다니는 기관에서 전화가 오면 십중팔구 안 좋은(?) 연락일 가능성이 높다.


"어머니... ㅇㅇ이가 도서관에서 책 읽다가 방석을 밟고 미끄러졌는데 발목을 살짝 삔 것 같아요!"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2주간의 긴 여행을 앞두고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급히 아이를 데리고 정형외과에 데려가 보니 발목 인대가 늘어났다며 반깁스를 해주셨다.


오.마이.갓...! 아이들과 2주동안 뜨거운 제주 바닷가에서 주구장창 물놀이를 할 계획이었는데... 깁스한 아이를 데리고 물놀이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수소문 끝에 개방형 깁스 형태의 오픈 캐스트를 해준다는 정형외과를 다시 찾아갔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어린 아이일수록 부주의해서 캐스트가 금방 깨질 수도 있다고 경고하셨지만, 무조건 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2주간의 지옥 훈련(?), 아니 4명 완전체로는 처음으로 제주도 여행을 가게 되었다.


둘째를 낳은 후로 처음 비행기 타던 날... 공항까지 가는 길도 고역이었다...ㅠㅠ


사실 둘째 임신 극초반, 둘째를 가졌을 줄은 꿈에도 모르고 18개월 된 첫째랑 야심차게 제주도로 여행을 갔던 적이 있다. 아기와 함께 처음으로 여행 간다는 사실에 설렜던 건 아주 잠깐뿐...


그 때의 제주도 여행은 솔직히 내 생애 최악의 여행이었다. 환경 변화에 민감했던 첫째는 밤새 울며 잠을 못 잤고, 낮 동안에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 내내 칭얼거렸기 때문이다.


그 당시엔 몰랐지만 둘째를 임신해서 내 몸 상태도 좋지 않았다. 생전 안하던 차 멀미를 계속 했고, 임신 호르몬 탓이었겠지만 제주까지 와서도 육아만 하고 있다는 사실이 슬퍼서 눈물만 났다.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뒤 둘째 임신을 알게 되었고, 그 때 우리 부부는 굳은 결심을 하나 하게 된다. 최소한 둘째가 기저귀 떼기 전에는 절대로 먼 여행을 가지 말자고!


둘째는 어느새 쑥쑥 자라 세 돌을 넘겼고, 기저귀도 떼게 되었다. 첫째도 18개월 때 비행기 탔던 기억은 전혀 없기에, 두 아이 모두 비행기를 처음 타본다며 엄청 기대하던 여행이었다.


제주에 도착한 첫날, 비양도가 보이는 숙소 근처 바다에서 :)


우리 가족이 2주 동안 묵게 된 숙소는 비양도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빌라 3층이었다. 예약할 때만 해도 숙소의 엘리베이터 유무는 전혀 상관이 없었는데, 깁스한 아이와 함께 하니 얘기가 달라졌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그 빌라에서 머무는 2주간, 남편은 외출할 때마다 땀을 한 바가지 흘리며 3층까지 첫째를 업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해야 했다. 한 여름에 고생도 그런 고생이 없었다.


비양도가 훤히 보이던 그 때 그 숙소... 뷰는 정말 좋았는데...


제주에서의 첫날 저녁, 일은 또 터졌다. 집이 아닌 새로운 곳에서 자게 되어 몹시 흥분한 두 딸은 엄마 아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침대 위를 마구 뛰어 다녔는데...


"빠지지직-"


아이들이 놀던 방에서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보지도 않았는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아이 발에 해둔 오픈 캐스트가 깨진 것이었다.


남편과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오픈 캐스트가 깨질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제주에 온 지 하루만에 깨질 줄은 몰랐던 것! 게다가 아이는 깁스한 발이 아닌 반대쪽 발이 또 아프다고 했다.


"엄마! 침대에서 내려오면서 삐끗했는지 왼쪽 발목도 아파..."


우리의 찐 고난은 그 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제주에 있는 정형외과에 가보기 전, 잠시 들른 금능 해수욕장! 저멀리 비양도...


깁스가 깨진 오른발도 문제였지만, 새롭게 통증을 호소하는 왼발도 걱정이었다. 그러나 일요일에 문 연 정형외과가 없었기에 월요일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덕분에 첫째는 금능 해수욕장에서 아주 짧게나마 물놀이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날 잠깐이지만 첫째 발을 바닷물에 담가보게 한 건 아주 잘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 다음 날부터 아이는 휠체어를 타는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월요일에 가본 정형외과에서 아이는 '양발 모두 반깁스'를 하게 되었다. ㅠㅠ

  

양쪽 발을 동시에 깁스하게 된 아이를 본 적 있으신가요...?


제주 여행 3일차부터 아이는 양발에 깁스를 하게 되었고, 제주시에서 빌린 휠체어에 태워 다녀야만 했다. 우리의 남은 제주 여행은 정말, 매일매일이 고행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때만 해도 '어떻게 양발을 동시에 다칠 수가 있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리고 하필이면 제주도까지 여행 와서 양발을 모두 다쳐버린 아이가 조금은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가 양발을 다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이유를 알게 된 건 정확히 1년 후였다. 아이가 선천성 고관절 탈구였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되었고,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과 2학년 때 큰 수술을 두 차례 받아야 했다.


고관절 수술 후 휠체어를 타고 다녔던 아이...


내 짐작으론 아이가 자라면서 어설프게 걸려있던 왼쪽 다리뼈가 그 때쯤 서서히 고관절에서 빠져 나가고 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아이가 초1이 되고 나서야 처음으로 다리를 절뚝인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유치원에서도 아이는 선천적으로 약한 왼쪽 다리보다 오른쪽 다리에 더 힘을 싣고 걸었던 것 같다. 실수로 넘어지면서도 튼튼한 오른쪽 다리에 기댔을 테니 그 쪽 발목부터 삔 게 아닐까...


주로 사용하던 오른쪽 다리를 깁스 때문에 못 쓰게 되자, 고관절 탈구가 진행되고 있어 약했던 왼쪽 다리만으로는 몸을 지탱하기 힘들었을 아이! 그러니 균형을 못 잡고 왼쪽 발목마저 다친 게 아닐까...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아이가 양발 모두 깁스했을 때 좀 더 정밀한 검사를 받아 보게 했더라면...' 이런 생각으로 두고두고 내 가슴을 치며 후회했던 것도 이제는 다 지난 일이 되어 버렸다.


양발에 깁스한 아이를 휠체어에 태운 채 제주를 여행하던 4년 전...




4년 전의 제주도 여행 이야기를 하다 보니 깜빡 올레길을 놓쳤다. 우리가 그 때 묵었던 숙소가 보이자 추억에 잠기는 바람에 올레 표식을 못 보고 지나친 것!


한참을 돌고 돌다가 간신히 올레길 표식을 찾을 수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서 허둥대다가 다시 길 위의 이정표를 보니 안심이 되었다.


어쩌면 내 아이의 고관절 수술이 잘못되어 아이가 영원히 다리를 절게 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졌던 때가 있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는 기분이었다.


아이의 발레 공개 수업을 보는 내내 펑펑 울었던 나... 감동적이었던 순간!


그 어두운 길 위에서 나의 이정표가 되어준 건 반짝이는 아이의 눈동자였다. 아이의 맑고 큰 눈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세상의 모든 근심과 걱정이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아이는 그저 밝은 희망으로만 가득차 있었다. 아이는 전보다 훨씬 더 잘 걷게 될 미래의 자신만 떠올리며 모든 고통의 순간을 묵묵히 견뎌내고 있었다.  


"엄마, 올레길 표식 여기 있네! 나만 믿고 따라와~"


4년 전 여기 제주에서 두 발 모두 다쳐 휠체어를 타고 다녔던 그 작은 아이는, 2년 전 고관절 수술을 받고서 오랫동안 또 휠체어를 타고 다녔던 그 여린 아이는, 그 누구보다 단단하게 자라고 있다.  


열다섯 번째 올레길 완주를 향해, 튼튼해진 두 다리로 성큼성큼 앞서 걸으며 나의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는 그녀...♡


사랑하는 딸, 니가 씩씩하게 걷는 모습만 봐도 엄마는 정말 행복하구나!

 

잠시 길을 잃었다가 다시 찾은 올레 표식^^
무성하게 잘 자란 양배추 밭을 구경하다가,
두 갈래 갈림길에서 B코스 쪽으로 갑니다^^




고즈넉한 마을길을 벗어나 바당길로 접어 들었다. 바다 위로 바람개비 모양의 풍력 발전소가 설치된 게 보였다. 비는 안 왔지만 날씨는 구름이 가득해 매우 흐림이었다.


바람개비 모양 풍력 발전소를 구경하며 걷는 길
의자만 보이면 잠깐 쉬어 갑니다.
시시각각으로 맑았다 흐려졌다 하던 하늘
12월 첫날인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따뜻했던 날씨 :)


엄마, 이거 선인장이야? 원래 바닷가에도 피나?


아이들이 걷다 말고 바다쪽을 보며 멈춰서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귀여운 선인장이 옹기종기 피어 있었다.


천연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어 유명한 '제주 월령리 선인장 군락'은 우리가 걷는 곳보다 아래쪽인 올레 14코스 쪽에 있다고 들었는데, 여기서도 선인장을 볼 수 있어 신기했다.


다음에 올레길 14코스를 걸을 때 더 많은 선인장을 만날 수 있길 바라며 가던 길을 계속 걸어 나갔다.


바닷가에 핀 선인장을 보며 신기해 하던 아이들^^


우와! 여기 바닷길 너무 예쁜데, 같이 사진 찍을까?


바다를 향해 예쁘게 난 길은 보통 동네 해녀 분들이 물질하러 가기 편하게 만든 길이라고 알고 있다. 마침 구름이 걷히고 해가 반짝 나왔길래 사진을 찍을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한 나!


"ㅇㅇ아! 엄마 여기서 사진 찍을 건데 같이 찍게 얼른 와~"


첫째는 한참을 앞서 걷던 중이었는데, 엄마인 내가 부르자 하는 수 없이 되돌아 와야 했다. 엄마인 내 손도 잡아주는 둥 마는 둥 하며 잔뜩 심통난 표정을 짓고 있던 첫째...


"아, 진짜! 다음에는 미리 말하던지, 먼저 갔는데 다시 돌아오라고 부르지 좀 마!"


참고로, 그녀는 자기만 빼고 사진을 찍어도 엄청 뭐라 한다. 그래서 둘째랑만 사진 찍으려다가 첫째도 부른 건데, 가뜩이나 힘든데 더 걷게 만들었다고 엄청 화를 내고 있었다.


오른쪽 그녀는 매우 화가 나 있습니다...


"왜 이렇게 화를 내~ 사진 찍기 싫으면 안 오면 되지! 다음에는 사진 찍자고 부르지 말까?"


"아니..."


"다음에는 엄마가 불러도 니가 싫으면 오지마! 알았지?"


아직 분이 안 풀린 모양인지, 첫째는 총총 걸어가 버렸다. 엄마인 나도 뒤늦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올레길을 걷다가 멋진 풍경이 나타났을 때 날씨까지 좋은 경우가 흔한 줄 아니? 그리고 엄마는 양쪽에 내 딸들 손을 잡고 사진 찍는 게 좋단 말이야! 흥~'




"엄마! 여기가 귀덕 인어 마을이래~ 인어 공주라도 살고 있나?"


오! 나에게는 살짝 사춘기가 온 듯 까칠한 4학년 첫째 딸있지만, 여전히 다정하고 살가운 2학년 둘째 딸도 있었지!


"둘째야, 여기서 엄마랑 인어 공주인 척 하고 사진 찍을래?"


"엥? 나는 별로 안 하고 싶은데, 엄마만 해!"


쩝... 그리하여 '귀덕 인어 마을 버스' 표지판 앞에서 인어 공주 포즈를 취한 건 철없는 엄마뿐이랍니다! 그래도 엄마 외로울까봐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 둘째야!


인어 공주인 척 하는 엄마와, 그걸 바라보는 둘째...
해안 도로를 따라 걸어가는 자매 :)




"엄마... 아까는 내가 미안해... 다리 아픈데 다시 되돌아 가려니까 화나서 그만..."


먼저 가던 첫째가 속도를 늦춰 내 발걸음에 맞춰 걷는가 싶더니 갑자기 사과를 건넸다. 아이들을 키우며 울컥 화나는 순간도 많지만 불쑥 감동을 받는 순간도 정말 많은 것 같다.


"응! 괜찮아~ 엄마는 같이 사진 찍고 싶어서 그런 건데, 싫으면 언제든 거절하면 돼!"


"엄마, 그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아... 내가 거절하면 엄마가 맘 상해 할까봐..."


"엄마는 니가 벌컥 화내는 게 더 속상해. 그러니까 싫으면 싫다고 먼저 말해줘!"


"알았어, 엄마! 앞으로는 그렇게 해볼게~"


4학년인 첫째는 곧 사춘기가 올 것만 같다. 어릴 때는 엄마의 말이라면 다 들어야 하는 줄 알았다면, 이제는 엄마 말이 틀린 줄도 알고 자기 생각대로 하고 싶기도 한 나이! 


하지만 오늘처럼 아이가 나에게 버럭 화를 내면 멘탈이 몹시 흔들리는 나라서, 아이의 사춘기가 아주 약하게 지나가기만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엄마가... 잘할게... 딸내미야!


딸들의 사춘기가 순탄하게 지나가기만을 바랍니다.
외관이 독특했던 '카페 콜라' 앞도 지나고,
영등 할망 신화 공원도 지나고,
복덕개 포구도 지나 갑니다...


엄마! 엉덩이가 따끔하길래 보니까 도꼬마리가 옷에 붙어 있었어~


화장실도 들를 겸 쉬게 된 정자에서 아이들이 한 손 가득 도꼬마리를 가져와서 보여 주었다. 한동안 재미있게 가지고 놀 장난감을 획득하게 된 것을 축하한다, 얘들아!

 

아이들 옷 여기저기에 붙은 도꼬마리들!
아빠, 팔찌 하나 해줄까? 하면서 아빠 옷에 도꼬마리를 다 붙이던 효녀들 ㅋㅋ
바지를 도꼬마리로 장식하고는 사진 찍어 달라던 첫째 ㅋㅋ


아이들이 도꼬마리를 갖고 노느라 힘든 줄도 모르고 걷는 사이, 중간 스탬프 지점인 '금성천' 옆에 도착하게 되었다. 스탬프도 찍고 기념 사진도 남긴 뒤, 다시 길을 나섰다.


중간 스탬프 꽝꽝!


오늘은 오랜만에 걷는데도 이상하게 안 힘드네?


한 달만에 걷는 올레길이라, 내심 아이들이 힘들어 하면 어쩌나 걱정을 좀 했었다. 그런데 아이들 모두 걷는 내내 쌩쌩하다 못해 날아다니는 느낌이었다.


올레길을 걸을 때 가장 중요한 건 뭐니뭐니 해도 날씨였다. 햇빛은 뜨겁지 않고 바람은 약하게 불며 온도는 적당해야 했는데, 오늘이 딱 그런 날이었다.


게다가 올레길 코스도 매우 순탄했다. 경사진 오름 하나 오르지 않고 평지 길만 걸으면 되는 데다가, 길이도 평소보다 짧다 보니 아이들 체감상 힘들지 않았던 것 같다.


곽지 해수욕장을 따라 걷는 길
마치 남편에게 하늘이 개시를 내리는 듯 했던 빛내림 현상!
곽지 잠녀의 길을 따라 걷습니다.




"여보야! 한담애월 산책로 걷고 싶어서 유모차에 18개월 첫째 태우고 걸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걔가 벌써 초등학교 4학년이야!"


"그러니까... 4년 전에는 양발 깁스한 애 데리고도 굳이 여기를 또 왔었잖아? 바다 보고 싶다고!"


헤헤, 그러니까 올레 15-B코스는 우리 가족의 추억이 가득 담긴 길이었다. 아기였던 첫째랑만 왔을 때도, 귀여운 둘째까지 함께 왔을 때도 여기 바다는 참 예뻤더랬다.


그 쪼꼬만 아이들이 쑥쑥 자라서 둘 다 초등학생인 것도 신기했고, 유모차나 휠체어에 아이를 태운 채로만 걸어봤던 이 길을 아이들과 다같이 걷게 된 것도 감회가 새로웠다.


4년 전 곽지 해수욕장 앞에서 딸들과 아빠 / 그리고 4년 후 같은 곳에서
이 길을 다함께 걷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우리 모처럼 일찍 다 걸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당 충전하러 갈까?


올레길 걷기의 묘미는 맛있는 밥 먹기 혹은 간식 먹기가 아니던가! 마침 한담애월 산책로 근처에 '랜디스 도넛'이 있어 당 충전 겸 쉬었다 가기로 했다.


예쁜 도넛 트리와 찰칵 / 바다를 보며 당 충전 제대로!


도넛을 맛있게 먹고 다시 걷게 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당 충전이 제대로 된 모양인지 아이들이 부스터를 켠 듯 빠르게 달려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얘들아~ 엄마 아빠랑 같이 가자! 천천히 좀 가!"


애타게 불러도 소용 없었다. 그녀들은 가득 충전된 에너지를 안 쓰면 큰일날 것처럼, 부모인 우리와 계속 거리를 벌리며 걸어갈 뿐이었다.


빠른 걸음으로 뒤쫓아도 좁혀지지 않는 거리...


지금 필요한 건 뭐다? 스피드!!!


남편은 자꾸만 느려지는 내 손을 꼭 잡고 달리듯 걸었다. 아이들이 시야에서 사라져 불안했던 건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많이 걸어서 지친 내 다리는 마음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헥헥... 나 너무 다리 아파, 날 버리고 먼저 가라 여보야!"


"애들은 알아서 잘 가고 있을 테니 걱정마! 애들도 아마 내가 엄마를 잘 끌고 오길 바라고 있을 거야~"


흑흑... 나는 남편에게 버려지지도 못한 채, 하는 수 없이 무거운 발걸음을 재촉해서 걸어야 했다. 겨우 아이들을 따라 잡은 곳은 '애월 오누이'라는 식당 앞에서였다.


애월 오누이 식당 앞에서, 쉬고 있던 아이들을 겨우 따라 잡았다...


"엄마, 우리 되게 잘 걷지?"


"어... 헉헉... 너희 왜 이렇게 빨라? 엄마 진짜 거의 뛰다시피 따라 오느라 힘들었어..."


"그러게, 우리 당 충전 제대로 됐나 봐! 지금도 힘이 샘솟아!"


아... 도넛을 너무 많이 먹였나 보다. 부작용도 이런 좋은(?) 부작용이 나타날 줄이야!


"이제 좀 천천히 같이 가자! 너희가 안 보이니까 너무 불안해~"


"알았어, 우리가 엄마 속도에 좀 맞춰 줄게!"


"아빠, 느린 엄마 좀 부탁해! 우리는 우리끼리 걸을게~"


그녀들은 아빠에게 나를 떠넘기고서(?) 편안히 길을 나섰다. 나보다 더 올레길을 잘 걷는 아이들을 뒤에서 보고 있자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와... 우리 애들 진짜 다 컸네, 다 컸어!"


애월항 근처를 지나고,
애월초등학교 뒷길로 이어지는 길을 걷다가,
올레 간세가 붙어 있는 골목길을 쭉 따라 가니,
목적지와 가까운 고내 포구에 도착!
올레 안내소에 계시던 직원 분이 찍어주신 가족 사진 / 비양도 완주 스탬프도 쾅!




"버스 타고 출발 지점 가서 차 가지고 올게~"


남편만 홀로 차를 가지러 떠난 후, 아이들과 나만 남게 되었다. 화장실이 가고 싶다던 아이 말을 듣고 직원 분께서 화장실 위치를 알려 주셨는데, 경사진 언덕을 한참 올라가야 나온다는 게 아닌가.


"아... 나 너무 에너지 많이 써서 이제 다리 아픈데...ㅠㅠ"


둘째는 언니랑 발 맞춰서 속도 높여 걷느라, 이제야 다리가 아픈 듯 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화장실은 가야 하니 언덕을 걸어 올라가는 수밖에!


그런데 깔딱 고개를 겨우 올라가자, 운명의 장난처럼 '리치 망고' 애월 본점이 눈앞에 나타났다. 화장실은 좀 더 올라가야 하는데, 아이들은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춘 채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다리 많이 아파? 여기서 망고 쉐이크 사먹고 화장실 쓸까?"


"와, 엄마 최고! 너무 좋아!"


"엄마, 나 진짜 더는 못 걷겠다고 말할랬는데... 너무 고마워!"


아이들은 그대로 리치망고 가게 화장실을 이용하고 자신들이 먹고 싶은 망고 쉐이크를 골랐다. 도넛으로 충전된 당은 다 쓰고, 이번에는 망고 쉐이크로 당 충전을 하던 아이들!


화장실 가다 말고 들르게 된 '리치 망고'


"엄마, 망고 쉐이크는 예나 지금이나 너무 맛있어!"


"이거 내가 다섯살 때 제주도 여행 와서 처음 먹어 본 그 맛 그대로야!


맛있다며 망고 쉐이크를 먹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려니, 문득 4년 전에도 똑같은 장면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처음으로 맛본 망고 쉐이크에 두 눈이 똥그래졌던 귀여운 아이들...♡


태어나 처음 망고 쉐이크를 먹어 본 4년 전의 아가들 :)


그거 아니? 너희들도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정말 귀엽다는 거! 올레 15코스 걷느라 정말 수고 많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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