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체리뽀 Dec 20. 2024

태어나줘서 고마운 당신과♡

10코스, 남편 생일을 축하하며 걷는 길


여보, 미안해... 생일에 올레길을 걷게 해서^^;


남편에게 수줍은 사과부터 건네야 했다. 열네 번째 올레길을 걷기로 한 날은, 하필이면 사랑하는 남편의 생일이었기 때문이다.


토요일마다 아이들과 수업 듣는 게 있어서 일요일에만 올레길을 걸을 수 있었는데, 지난 주에도 비가 와서 걸은 터라 이번 주에는 꼭 걸어야만 했다.


"생일에 올레길 걷는 것도 올해만 할 수 있는 거니까 나쁘지 않아!"


생일에 쉬지도 못하게 해서 미안했는데, 남편은 늘 그렇듯 쿨하게 답해 주었다. 그래서 남편의 생일 파티는 올레길 걷기 전날에 성대하게 치뤄졌다. 


"아빠, 오늘은 아빠 생일이니까 힘들어도 울지 않고 잘 참아볼게!"


"나도! 아빠한테 덜 찡찡댈거야~ 약속!"


아이들은 아빠의 생일인 오늘만큼은 올레길을 덜 짜증내며 완주하겠다고 다짐도 했다. 아빠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담긴 딸들의 선물이었다.


오늘의 올레길은... 아름답기로 소문난 10코스!


오늘은 날씨가 아주 좋을 때 가려고 아껴둔 10코스를 걷기로 했다. 하늘도 우리 남편의 생일을 축하해 주려는지 날씨가 정말 좋았기 때문이다.


시작 스탬프를 찍고 있으려니 올레 안내소 직원 분께서 사진도 찍어 주셨다. 덕분에 올해 남편의 생일은 제주에서 보냈다는 걸 확실히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산방산을 향해서 걷기 시작!




11월인데 구름 한점 없이 맑아서 덥다는 생각까지 들던 날이었다. 육지에 살 때는 남편 생일마다 엄청 추웠는데, 제주에서 맞은 남편 생일은 따뜻해서 신기했다.


"엄마... 11월 맞아? 오늘 너무 더운데?"


아이들도 11월답지 않은 날씨에 적응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제주에 살아 보니 육지에서보다 한 템포 늦게 계절을 맞이하는 기분이 들 때가 많은데, 이 날은 유독 더 그랬다.


나중에 올레길을 다 걷고 나서 보니 맨살이 드러났던 모든 부위가 햇빛에 그을려 시뻘겋게 탔더라! 나 포함 우리 가족 모두^^;


썩은다리 입구에서 덥다며 주저앉은 아이들^^;
서로의 목소리가 메아리로 돌아오길래, 계속 '야호~'를 외치던 곳!


왼쪽으로는 바다 위에 뜬 형제섬이, 내 앞에는 웅장한 산방산이 있었다. 이런 풍경을 동시에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또 행복해서 걸을 맛이 절로 나는 10코스였다.

 

아름다운 바다 한 번 감상해 주고,
산방산을 보며 행복하게 걸어 나갑니다 :)
아이들이 좋아하는 시원한 숲길을 통과하자,
산방산이 내려다 보고 있는 황우치 해안이 나왔습니다 :)


나 혼자 뒤쳐져 걷다가 도착한 황우치 해안. 아이들은 평평한 돌 위에 한 명씩 자리잡고 앉아 있었다.


"근데 너희는 왜 돌 위에 앉아 있어?"


"아... 우리 너무 힘들어서 쉬고 싶은데 흙보다는 돌에 앉는 게 나으니까?"


황우치 해안을 배경으로 앉아 쉬고 있는 아이들 :)
윤슬에 반짝이는 바다, 그보다 더 반짝이는 아이들^^
돌멩이 가지고 노는 자매 :)


아이들에게는 올레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자연물이 장난감이었다. 앉아서 쉬는 내내 돌멩이로 무얼 그리 열심히 하며 놀던지... 다시 걷자고 하기가 미안할 정도였다.


그래도 뚜벅뚜벅, 가던 길을 다시 가 봅니다!
멋진 해안 절벽을 바라보며 오르막을 오르니,
우리가 걸어온 길과 멀리 한라산까지 보이는 전망대 도착!


올레길 후기를 볼 때면 10코스는 역방향으로 걸으라는 추천이 많았다. 전망대에 올라 뒤쪽을 바라보는 순간, 그 이유를 몸소 깨달을 수 있었다.


한라산, 박수기정, 황우치 해안, 산방산까지 한 눈에 쏙 들어오는 황홀한 뷰가 파노마라로 펼쳐져 있었다. 걷다가도 자꾸만 뒤돌아 보고 싶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풍경이었다.

 

정말 너무나 멋진 풍경에 소름이 돋았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걸어 가니,
익숙한 그 곳! 용머리 해안이 나왔다.


"용머리 해안은 엄마 아빠가 연애할 때 같이 왔던 곳인데! 13년만에 찾은 추억의 장소로구만!"


첫째랑 둘이서만 걸으며 남편과의 연애썰을 풀기 시작했다. 숨겨진 목적은 4학년이 된 큰 딸의 '연애사 파헤치기'와 '이상형 알아보기'였다.


"ㅇㅇ이는 좋아하는 남자친구 없어?"


"나? 나는 없어~ 그냥 반 애들이랑 다 친하게 지내!"


흠... 연애는 안하는 듯 하군! 오케이, 패스!


"그럼 ㅇㅇ이는 나중에 어떤 사람 만나고 싶어?"


"나는 아빠 같은 사람!"


아이의 입에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온 말에 흠칫 놀랐다. 나도 어릴 때 입버릇처럼 '아빠 같은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었기 때문이다.


"우와... 너희 아빠 어디가 그렇게 좋아 보여?"


"요리 잘하고, 다정하고, 착하고, 잘 생겼잖아! 나도 그런 사람 만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돼?"


아빠로서 딸에게 이상형으로 꼽히는 것만큼 기쁜 일이 또 있을까. 나중에 남편에게 따로 이 말을 전하니, 남편은 굉장히 좋아하면서도 묵직한 책임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음... 엄마도 우리 아빠 같은 사람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더니 아빠보다 쬐끔 더 좋은 사람 만나게 된거거든! 너도 계속 아빠를 이상형으로 생각하면 아빠보다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날 거야!"


"근데 엄마... 아빠보다 더 좋은 사람이 세상에 어딨겠어?"


그랬다. 아빠 바보인 우리 큰 딸에게 아직 자기 아빠보다 좋은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 거였다. 엄마가 말도 안 되는 소리 해서 미안...^^;


딸에게 이 정도로 사랑 받고 사는 내 남편, 오늘만이 아니라 매일매일이 생일처럼 행복하지 싶다!


아빠를 바라보고 있는 작은 딸 눈에서도 꿀이 뚝뚝 흐릅디다...


생일 맞이한 어린이, 청소년, 어른 꽁짜?!


용머리 해안을 나오는 길에 생뚱 맞게도 바이킹이 하나 있었다. 오래돼 보이는 그 바이킹은 꼬마 손님과 가족들을 태운 채 정상 운행 중이었다.


"와! 이게 얼마만에 보는 바이킹이야? 나, 제주 와서 놀이기구 처음 봐!"


제주로 이사 오기 전까지만 해도 놀세권(놀이공원 역세권)을 누리던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에버랜드와 가까운 곳에, 초등학생이 된 후로는 롯데월드와 가까운 곳에 산 덕분이었다.


제주에 와서 일년을 사는 동안 아이들의 불만은 딱 하나였다. 생일 때 놀이공원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는 것! (신화월드 같은 곳에 가면 되지만, 아이들에겐 제주에 놀이공원이 없다고 말해두었다...^^;)


"아빠... 우리 오랜만에 바이킹 타면 안돼? 너무 재밌어 보여!"


"그래, 여보야! 애들 올레길도 잘 걷는데 바이킹 본 김에 다같이 타고 가자!"


참고로 우리 집 경제부 장관은 남편이다. 나와 딸들은 갖고 싶거나 하고 싶거나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조건 남편을 잘 설득해야 한다^^;


"어? 엄마, 이것 봐! 오늘 생일인 사람은 꽁짜라고 써 있어!"


진짜였다. '산방산 바이킹' 감사 이벤트로 생일을 맞이한 사람은 꽁짜라고 써 있었는데, 마침 오늘이 우리 남편의 귀 빠진 날이 아닌가!


이건 필시, 바이킹을 꼭 타라는 하늘의 개시였다!


생일을 맞이한 남편은 꽁짜! 덕분에 즐겁게 타게 된 '산방산 바이킹'


"사장님, 오늘 우리 아빠 생일이예요!"


"오, 그럼 아빠 분은 꽁짜! 그리고 우리 공주들 이름은 뭐예요?"


바이킹 사장님께서 아이들 이름을 왜 물어 보시는지 궁금했는데, 바이킹을 타게 되자 단번에 궁금증이 풀렸다. 바이킹을 타는 내내 방송으로 아이들 이름을 크게 불러주셨던 것!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사랑스런 딸, ㅇㅇ이 만세! 그런 딸을 만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빠도 만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엄마도 만세!"


산방산까지 쩌렁쩌렁 울리도록 아이들 이름을 불러 주시고, 남편의 생일을 축하해 주시던 사장님! 덕분에 우리 가족은 정말 기분 좋게 바이킹을 탈 수 있었다.


사계 해안으로 가는 길 :)


바이킹을 타고 나니 엔돌핀이 팡팡 돌아, 다시 걸을 힘이 가득 채워진 느낌이었다.


"오늘 아빠 생일이라 좋은 일이 진짜 많은 것 같아!"


"타고 싶던 바이킹도 탔고! 아빠는 생일 주인공이라 공짜로 타는 행운도 얻었고!"


아이들은 아빠의 생일에 하필 10코스를 걸었고, 그 길목에 생일 주인공을 공짜로 태워주는 바이킹이 있었다는 게 너무 신기했는지 한참을 재잘거렸다.


사계 해안을 따라 걷습니다^^


엄마! 산방산 말야... 잘 보면 녹차 빙수 같지 않아?


산방산을 뒤로 한 채 사계 해안을 걸을 때 둘째가 불쑥 말했다. 산방산이 녹차 빙수 같다는 그녀의 말을 듣고 다시 보니, 말차 가루와 팥이 골고루 뿌려진 녹차 빙수 같았다.


"어머, 정말이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대?"


"지난 여름에 엄마 아빠가 녹차 빙수 시켰잖아! 그 때 그 녹차 빙수랑 너무 닮아서~"


"하하하~ 이제부터 산방산만 보면 녹차 빙수부터 떠오르겠다!"


올레 10코스는 둘째 아이가 '녹차 빙수'라고 부르던 산방산을 아주 즐겁게 관찰하며 걷는 길이다. 멀리 보이던 산방산에 바짝 다가섰다가, 다시 등지고 걸으며 서서히 멀어지게 되는 산방산!


그동안은 귀여운 종 모양이라고만 생각해 왔던 산방산인데, 표현력이 풍부한 둘째 덕분에 산방산에 새로운 별명을 붙여 주게 되었다. 녹차 빙수 같은 산방산! 


둘째가 녹차 빙수라 부르던 '산방산'
녹차 빙수를 닮은 산방산을 원없이 볼 수 있는 10코스 :)
산방산 옆에 한라산, 그 옆에 박수기정, 그리고 사계 해안!
좋은 날씨 덕분에, 이 모든 풍경을 누릴 수 있었던 :)


때로는 두 형제가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는 듯,
때로는 여덟 형제가 복작대는 듯, 형제섬!


10코스의 첫 번째 주인공이 산방산이었다면 두 번째 주인공은 '형제섬'이었다.


사계리 마을을 걷다가 본 '형제섬' 이야기


"얘들아, 출발할 때부터 계속 보이던 저 섬 이름이 형제섬이야!"


"근데 왜 형제섬이라고 한 거래? 우리처럼 자매섬이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러게! 저 거친 바다에서 형제들끼리 서로 꼭 붙어 있는 모습 같았나 보지~"


"엄마, 우리가 더 사이 좋아! 볼래?"


갑자기 어깨동무를 하며 딱 붙어서 걷기 시작한 자매들^^ 형제섬을 보면서 우애를 다지는 아이들을 보니 귀여워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형제섬을 배경으로 우애를 다지는 자매들!
형제섬을 보며 기분 좋게 걸어 나갑니다 :)
돌하르방을 따라 하하하 크게 웃어도 봅니다^^




형제섬이 보이는 뷰 좋은 식당에서 피자를 먹으며 점심을 해결했다. 산방산, 그리고 형제섬에 이어 세 번째 주인공을 만나러 갈 시간이었다. 바로, 송악산이었다!


올레 표식 너머로 우리가 가야 할 송악산이 보입니다^^
송악산을 오르려고 하니, 갑자기 지쳐 하던 아이들^^;


얘들아, 송악산 둘레길은 공사 중이라 못 걸을 수도 있어!


오늘 10코스를 걷기로 하면서 가장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었다. 송악산 둘레길이 보수 공사가 필요해져서 11월 말까지 통제 된다는 소식을 접한 터였다.


송악산 둘레길을 너무 걷고 싶었던 나로서는 정말 아쉬운 일이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걷는 구간이 단축될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뛸 듯이 기뻐했다.


"와! 송악산 둘레길을 못 걷게 되는 거네~"


"어휴~ 나야 너무 걷고 싶은데, 공사 때문이라면 어쩔 수 없지!"


최근에 송악산 둘레길을 다녀오신 분들의 후기에도 조금 걷다가 길이 통제돼서 다시 되돌아 나왔다는 후기가 많았다. 그래서 길이 통제되기 전까지만이라도 걸어가 보기로 했다.

 

산방산, 한라산, 형제섬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송악산 :)
기막힌 풍광을 바라보며 송악산 둘레길을 걷습니다..


"엄마, 근데 언제까지 여기 걸어? 조금만 가면 길이 막혔을 거라면서?"


"그러게, 이상하다... 아직 공사 중이라 올레길도 어디선가 짧게 우회하는 줄 알았는데..."


"아, 좋다 말았네! 공사 다 끝났나봐!"


그랬다! 보수 공사는 이번 달 말까지로 잡혀 있었는데, 생각보다 일찍 공사가 끝난 모양이었다. 송악산 둘레길 전 구간 어디도 통제된 곳 없이 잘 뚫려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남편의 생일을 기념하여 송악산 둘레길도 특별히 길을 터준 듯 했다. 하하하! 송악산 둘레길을 못 걸을 거라 생각했는데 걸을 수 있게 되다니, 깜짝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물론 아이들 입장에서는 좋다 말았을 테지만... 미안하다 아그들아...^^;


바다 위로 보이는 왼쪽 섬이 마라도, 오른쪽 섬이 가파도입니다^^
뒤를 봐도 앞을 봐도 옆을 봐도, 절경의 연속!
아직 못 가본 마라도, 그리고 두 번이나 가본 가파도를 바라보며 :)


송악산 둘레길은 생각보다 길었다. 아이들은 지칠 법도 한데 제법 잘 걸어 주었다. 아무래도 아빠 생일이라 힘든 내색을 최대한 숨기며 걷고 있는 게 느껴져서 더 기특했다.


"아... 너무 심심하니까 요즘 학교에서 준비하고 있는 연극 연습이나 해야겠다!"


4학년인 큰 딸이 연극 대사를 실감나게 뱉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등장 인물의 대사를 줄줄 읊어대는 딸아이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던 남편과 나...


"너는 극 중에서 무슨 역할이야?"


"나? 아까 딱 한 마디만 하던 선생님! 내가 그거 한다고 했어~"


"근데 왜 다른 애들 대사까지 다 외웠어?"


"그냥, 재밌잖아!"


남편과 내 입장에서는 이렇게 연극 대사를 다 외우는 아이도 신기했고, 그렇게까지 잘 외우면서도 딱 한 마디만 하는 역할을 맡은 것도 신기했다.


"나는 막상 무대 앞에 서면 떨려서 잘 못할까봐 무서워~ 그래서 대사 많은 역할은 안 맡고 싶었어!"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표현해 주었다. 올레길을 걸으면서 가장 좋을 때가 바로 이럴 때이다. 아이의 학교 생활을 자연스레 알게 되고 덕분에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을 때.


"응! 들어 보니까 연극 너무 재밌겠다~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 하렴!"


딸아, 주인공이 아니어도 괜찮아. 무대에서 실수해도 괜찮아. 아무리 작은 역할이라도 무대에 올라 최선을 다 한다면, 그것보다 더 소중한 경험이 어디 있겠니 :)


열심히 연극 대사를 읊으며 걷던 딸아이 :)
덕분에 둘레길 후반부를 더 즐겁게 걸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 수 있어 좋은 올레길 :)




송악산 둘레길을 다 걷고 나니, 이번에는 '다크 투어리즘'을 경험할 수 있는 길로 접어 들었다.


아픈 역사의 현장을 살펴볼 수 있는 길로 갑니다!
녹차 빙수야 안녕! 이제는 바다를 뒤로 하고 산쪽으로 가는 길 :)
일본군이 만들어 둔 비행장과 진지를 살펴 보러...
섯알오름 일제 고사포 진지에 들어가 본 아이들
많은 사람들이 학살되었다는 섯알오름을 지나 중간 스탬프 지점에 도착!
알뜨르 비행장, 모형 비행기가 격납고 안에 들어 있었다.


역사적 지식을 최대한 동원해 아이들에게 일제의 만행에 대한 설명을 했다. 지난번 19코스를 걸을 때도 그랬듯 아이들은 역사 이야기를 아주 진지하게 잘 들어 주었다.


아이들과 올레길을 걸으면 좋을 때가 또 이럴 때이다. 함께 역사의 현장을 바라 보면서 자연스럽게 역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


늘 아기 같아 보이던 아이들이 어느새 자라서 엄마 아빠와 함께 국제 정세와 외교, 정치, 역사, 사회 전반의 문제 등을 논하게 됐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머지 않은 언젠가 너희들이 엄마 아빠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아는 만큼 잘 행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단다!
 
길 위에서 알게 모르게 배우는 많은 것들!


서쪽 방향으로 걷다 보니 오후 내내 햇빛을 보며 걸어야 했다. 그래서 후반부에 찍은 사진에는 강렬한 태양이 꼭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모 해수욕장에서 :) 뒤로 보이는 강렬한 태양!
가파도에 갈 때 배를 탔던 운진항을 지나고,
마을길로 접어들기 전 마지막 바닷길 :)


"엄마... 나 솔직히 말하면 지금 되게 다리 아프고 힘들어!"


"아고, 그랬어? 엄마랑 쉬엄쉬엄 천천히 걷자!"


"근데 아빠 생일이니까, 울지도 않고 짜증도 안 내려고 엄청 노력했어!"


"그러니까! 우리 딸, 오늘 진짜 멋있다~ 힘든데 티도 전혀 안 내고!"


"아빠는 생일인데도 걷고 있는데, 내가 울면 안 되지~ 그래서 엄마한테만 몰래 말하는 거야!"


어느새 몰라 보게 의젓해진 큰 딸이었다. 어릴 때부터 조금만 속상해도 큰 소리로 울어버리던 아이였는데, 올레길을 걸을수록 씩씩함과 튼튼함을 탑재해 나가는 게 느껴졌다.


"우리 딸이 이만큼 멋지게 성장한 게 아빠한테는 가장 큰 생신 선물일 거야!"


아이는 엄마의 응원을 받으며 아픈 다리를 이끌고 무사히 10코스 종점까지 완주했다. 올레길을 걸으며 아이가 배운 가장 큰 덕목이 있다면, 바로 '인내'가 아닐까 싶다.


우리 가족은 오늘도 잘 인내하며 걸은 덕분에 완주 인증 사진과 스탬프 3개를 선물로 얻게 되었다. 2024년의 남편 생일에 완주했던 올레 10코스는 두고두고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다.


아름다웠던 10코스도 무사히 완주!


여보! 세상에 태어나 줘서, 이렇게 아름다운 제주에서 일년을 살게 해줘서, 덕분에 올레길도 함께 걸을 수 있어서, 정말정말 고맙고 사랑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