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런 검사 수준 안 맞아서 못하겠어요! 무슨 수업할 건데요? 제 영어점수 만점으로 올려줄 수 있어요? 아님 필요 없어요."
가서 뒷통수를 한대 후려칠까 고민하다가 눈 찔끔 감고, "선생님은 너 공부하는 거 도와주고 알려주러 온 거야, 50분은 선생님한테 주어진 시간이고, 네가 한다고 부모님과 동의해서 수업 신청한 거니까 검사를 하고 수업을 해야 해!" 내 살다 살다 이런 아이는 처음이다. 도대체 왜 신청한 거니? 넌 사장, 아니 회장님이시고 난 청소하며 굽신거리는 직원인 줄 알았다. 다행히 담임선생님께 약간의 정보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멘탈이 탈탈 흔들린다. 내가 느린 학습자를 학습코칭하고 있지만 싹수가 노란 아이를 감당할 힘이 나지 않는다. 게다가 나한테 담임선생님 험담과 욕을 퍼붓는다.
사실 느린 학습자 아동들이 다 이러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랑과 애정이 결핍되어 메마른 거 같다가도 조금만 정을 나누고 오픈하면서 친해지고 맞춤 수업을 코칭해 가며 학습과 더불어 각종 보드게임, 놀이 거리를 맞추어 자연스레 놀이수업에 빠져 즐거운 수업을 한다. 온전히 일대일로 맞춰 수업하다 보면 마지막 수업 때는 정이 들어 또 하면 안돼요? 내년에도 계속할 수 있어요? 라며 앙코르클래스가 된다.
여러 가지 상황들로 기초학습이 부진하고 교과부진한 친구들을 일대일로 돕는 내 일은 참 많은 변수들이 부여된다. 한 학기에 24회의 수업시간은 때론 버겁기도 하고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기도 한다. 초등 2~3학년 아이임에도 아직 글 읽기가 어렵고 받침을 모르는 아이도 많다. 5학년이어도 구구단을 몰라 한 학기 내내 구구단을 게임, 놀이 온갖 방법으로 쇼를 해보지만 마무리 짓기가 쉽지 않다. 인지가 늦고 기초가 부족하여 난독증, 주의력 결핍에 따른 ADHD 증세를 갖고 있는 친구도 많다. 이런 아이들과 책을 읽고 몸부림치는 그 시간은 아이가 조금만 관심과 흥미를 보이면 있는 거 없는 거 다 사다 주고 갖다 주며 알려주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다.
최근 두 해를 맡은 중등친구는 나에게 충성스러운 학생이다. 중2임에도 맞춤법이 초2 수준으로 맞는 철자가 거의 없었다. 이혼하신 부모님, 그리고 재혼가정, 사춘기감정에 젖어 어머니에 대한 분노 짜증 원망이 뒤섞어 수업이 끝나고도 아이의 속풀이 시간은 이어졌다. 그렇게 두서번의 속 나눔과 소통으로 어느새 절친처럼 끈끈한 사이가 되어 이제 공부해 보자! 라며 책을 소리 내어 읽고 내용을 갖가지 방법들로 표현하고 받아쓰기도 하며 하나하나 집어갔다. 예의 깍듯한 아이라 군사령관을 모시듯 나를 대했다. 부담스럽기도 하면서 기특하기도 하면서 초등 저학년의 수준의 수업들을 꾸준히 진행했다. 하지만 부끄러워하거니 힘들어하지도 않으며 성실하게 잘 따라와 주었다. 그리고 다음 해 가을 다시 이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작년 겨울 헤어지면서 열심히 공부해서 꼭 성공해서 맛난 거 대접하겠다며 대견함을 보이고, 방학엔 전화 와서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이야기, 또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말로 자신감이 뽐뿌 되고 있었다. 그런 아이를 다시 만났으니 어찌나 반가웠던지 이제 고등학교도 올라가고 너의 진로를 진짜 준비해야니까 더 열심히 해보자는 각오와 함께 무한충성심으로 나아온다. 역사책을 읽고 마인드맵으로 정리를 한 번 두 번 하니 엉망이던 맞춤법들이 어느새 눈 씻고 찾아봐도 틀린 철자가 없다. 무슨 매직쇼도 아니고 진정 이것이 네가 한 거란말이냐라는 말에 선생님 제자인데 제가 연습 좀 했죠라며 노력의 결과를 알려준다. 게다가 마인드맵정리를 어찌나 꼼꼼하고 글씨도 다소곳하게 예쁘게 쓰던지 두 눈 부릅뜨고 쳐다봐도 흠이 없었다. 그러며 정보고를 합격했다고 신이 나 자랑하고 수행평가, 기말고사 점수가 올랐다며 행복해하는 순수한 웃음을 보여준다.
가정의 환경, 부모의 이혼, 결손, 경제적 상태가 다시금 중요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이러한 상황들이 충족되어도 인성, 정서가 불안정하고 어긋나 학습보다 사람이 되기가 시급한 친구들이 많다. 학습과 정서를 양끝에 놓고 저울질을 해가며 그 중심에 서있는 친구들은 없었다. 수업을 마치고 진이 빠져 집에 들어오면 빠르거나 특출나진 않아도 그저 내 아이들이 그토록 소중할 수가 없다. 연산 한 장을 안 풀도 놀이터에 놀고 있어도 옳고 그름은 알고 생각할 줄 아는 아들이 있으니 감사하고, 친구들과 놀기 위해 아침에 스터디를 마치고 학교 간 딸아이는 천재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에게도 친히 읽어주는 책을 우리 아이에게는 못할게 무엇이냐며 다 큰 아이들을 양쪽에 앉혀놓고 드라마 액션 쇼를 하며 책을 읽어준다. 또 수업에 가서 할 보드게임을 미리 우리 아이들과 리허설을 하며 피터지는 전쟁을 한다. 그 덕에 우리 집 아이들은 오늘도 까르르까르르 그저 좋단다. 학습과 정서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서 잠시 속도를 늦춰 천천히 나아가려 한다. 사실 우리 집 아이도 지극히 평범하고 태권도, 줄넘기 학원만 다니는 무지한 아이들이다. 하지만 나는 엄마표로 이젠 자기주도학습으로 열심히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공부를 잘한 들 인성이 없으면 망하는 거고, 공부를 못하는데 인성이 그나마 있으면 한번 부딪혀볼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 덕에 우리 아이들이 못해도 그나마 덜 재촉하고 내려놓는 것 같다. 어긋나도 제정신만 똑바로 차려 공부할 수 있는 기초만 닦고 있는 것. 난 오늘도 진이 빠지고 분통하고 속이 타들어가지만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조금씩 조금씩 거북이처럼 꾸준히 가기를 소원해 본다.
너네 덕에 우리 집 아이들이 득을 보는구나 조금 느려도 괜찮아 힘들어도 꾸준히 천천히만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