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무너지는 순간들
신생맘들은 이전에 살아온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 즉 아이와 함께하는 세상을 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일들에 부딪힌다. 특히 아이를 갖고 나서 혹은 아이를 키우면서 자녀와 관련된 어려움이 있었다면 '마음이 무너진다'라는 말을 몸으로 이해하기 시작한다.
교사라는 직업 특성상 여자들이 많다 보니 주변 선생님들의 분만 썰을 들을 기회가 많았다. 나보다 20살 위의 선생님들은 마치 20분 전 경험한 일인 것처럼 온 감정을 담아 그때의 그 순간을 표현하였다.
'아기는 이러다 죽겠는데 할 때쯤 쑥 하니 나와. 그때까지 버텨야 해.'
'나는 딴 것보다 허리가 너무 아프더라고. 두 동강 나는 줄 알았다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무서운 말들인데도 나는 자연분만을 원했다. 뭐랄까 차오르는 고통 끝에서 맞이하는 환희의 순간을 느껴보고 싶었다. 10개월 간 내 안에 품은 것을 세상 밖으로 보내는 과정, 나가려는 아이와 내보내려는 엄마의 에너지가 합쳐지는 순간들을 온몸으로 기억하고 싶었다. 그러나 세상은 내가 원하는 것과 다르게 흘러갈 때가 많다. 자연분만을 위해 SPS운동, 회음부 마사지 등 갖은 노력을 해왔지만 아기는 나올 준비가 되지 않았는지 40주가 넘게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 만삭의 몸을 이끌고 이 동네 저 동네 산을 오르며 아기가 무사히 태어나기만 바랐다. 그저 건강하게 아기를 만날 수만 있다면 방법은 방법일 뿐이라고.
결국 나는 제왕절개를 선택했다.
유도분만을 이틀이나 시도했지만 자궁문은 1.5cm밖에 열리지 않았고, 아기 낳기도 전에 잦은 내진으로 지쳐가고 있었다. 심지어 촉진제를 맞으며 산통을 기다리는 중 아기에게 쇼크가 왔는지 순간적으로 심박이 느껴지지 않는 긴장의 순간도 있었다. 나보다 나중에 들어온 산모들이 먼저 아기를 낳으러 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힘차게 세상에 나왔음을 알리는 아가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올 때 축복과 동시에 부러움이 밀려왔고 그 부러움은 '너 때문이야.'라며 날 꾸짖고 있었다. 내 몸이 임신과는 맞지 않는 몸이라 우리 아기가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고생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수술 후 마취에 깨어 갓 태어난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슬퍼서 나는 울음이 아니었다. 꽃봉오리가 터지듯 자연스러운 울음이었고, 울면서 제일 먼저 '아가'를 찾았다. 내 거친 호흡과 울음을 들은 간호사들은 산모가 깨어났다며 아이를 다시 데려오라고 했다. 이내 수술대 위에 흐느끼고 있는 내 곁으로 남편이 아이와 함께 왔다. 울면서도 제일 먼저 눈에 보인 건 쌍꺼풀 없는 눈이었고, 우습게도 아이를 보며 제일 처음 한 말은 '우리 아기 쌍꺼풀 왜 없지?'였다. 우리 부부가 둘 다 쌍꺼풀이 있어 농담스레 우리 아기는 무조건 있겠다며 했던 말들이 내 무의식에 꽤나 크게 남았었나 보다. 앙앙 울고 있는 아기의 얼굴을 보니 그동안의 감정들은 사라지고 가벼운 웃음이 흘러나왔다. '아기 만지셔도 돼요.'라고 일러준 간호사 덕에 나는 좀 더 아기를 느껴보기 위해 손을 뻗어 아기 얼굴을 살짝 가리고 있는 속싸개를 내렸다. 속싸개에 가려져 있던 얼굴에 무언가 달랑거리고 있었다.
이게 뭐지 하는 찰나의 순간, 마음이 무너지고 있음을 감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