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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듀홈마 Feb 10. 2023

소란한 시대에의 가정보육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1. 11


어제 새로 빨아 보송보송한 이불 위에 선크림 뿌려보기. 물이 가득 든 물컵에 식탁 닦은 물티슈를 넣어보기. 이 밖에도 생일 선물로 받아서 아껴쓰느라 두어번 밖에 패이지 않은 엄마의 수분크림을 두 손으로 듬뿍 파서 바닥을 보기, 엄마 아빠 사진 구겨서 쓰레기통에 넣어보기 .. 등등의 수 많은 미션들을 내 아들 J는 하루하루 즐겁게 수행중이다. 아무 편견 없이, 아무 거리낌 없이 마음껏. 이런 그림을 마주했을 때에 나는 일단 멍-해진다.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에는 '기왕지사 이렇게 된거 어디 네 마음대로 끝까지 해보렴'하고 좀 더 봐주기도 하지만 사실 그렇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아. 정말 글을 써야겠다'라고 마음 먹은지는 꽤 되었다. 결혼 전 나는 마음이 어지러울때에 무언가 끄적이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레 힘이 생겼던 경험을 쌓아왔다. 머릿속으로는 늘 글감이 마구잡이로 오고갔다. 초음파로 아기집을 확인한 순간에도 자연분만 실패 후 제왕절개를 한 이후에도 그랬다. 그렇게 미뤄왔던 글쓰기를 하는 지금, 내 아들 J는 28개월차가 되었다.


서울에서 근 30년을 살았었다. 아주 영원히 서울 사람일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이가 걷는것은 나에겐 기쁨이었지만 아랫집 아저씨에겐 분노 유발 요인이었다. 처음엔 인터폰을 통해 경고를 들었다. 다음날 아랫집 문 앞에 손편지와 롤케익을 가져다 놓았지만 소용없었다. 아저씨와 마주할때마다 연거푸 죄송합니다 하며 허리가 꺾어져라 숙였지만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그 뒤로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집으로 찾아오는 일이 많아졌다. 시간대도 아침 저녁할 것 없었다. 문을 두들기는 소리는 날이 갈 수록 점점 강해졌다. 늦봄이 끝나려던 무렵 바깥엔 벚꽃이 휘날렸지만 우리집은 그렇지 않았다. 내 뒤로 엄마 엄마 하며 우는 아이 앞에서 아랫집 아저씨는 더 이상 소리를 내면 나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을 거라며 눈을 부릅뜨고 복도가 울릴정도로 소리를 쳤다. 남편이 일하러 간 사이 아들과 둘만 있는 집은 어느샌가 두렵고 무서운 공간이 되었다. 내가 아이에게 이유없이 소리를 치거나 화를 내는 일이 많아지면서 이사를 준비하게 되었다.


지금 우리는 경기도에 살고 있다. 남편이 발품을 판 덕에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집을 구할 수 있었다. 집을 구하는 조건은 한 가지였다. 무조건 1층일것. 다행히 경기도엔 우리가 가진 조건과 맞는 몇 개의 그런 집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집 바로 앞으로는 넓은 공원이 있다. 비가 오는 궂은 몇몇의 날을 제외하고는 어르신과 아이들, 크고 작은 개들이 산책을 한다. 여름에는 팥중이와 방아깨비를 잡을 수 있다. 아직 이곳에서 겨울을 나지 않았지만 넓은 잔디밭 위로 소복히 내릴 하얀 눈을 상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J는 늘 나와 함께다. 나와만 함께다. 하루 두번의 산책을 제외하고는 또래의 아이들을 만날 일이 없었다. 내가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기 때문이다. 동시에 보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 덕에 이곳에는 늘 아이들이 넘쳐난다. 이사 오기 전 신청해 둔 어린이집은 6개월 넘게 대기번호가 밀려있다. 맘까페에서는 차를 타고 조금 더 가면 어린이집이 없지는 않다고 했다. 하지만 자차도 면허도 없는 상황에서 아직은 어린이집 차를 태워서 멀리 보내는 것이 두려워 집 근처로만 어린이집을 알아봤다. 게다가 우리집은 외벌이에 아이 하나. 맞벌이에 다자녀가 많은 이 곳에서 그런 조건으로는 어린이집 순번이 자꾸 밀리기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어린이집을 당장 보내야 할 이유는 없어서 이대로 가정보육을 쭉 하다 정 안되면 유치원 보낼때는 별 일 없이 바로 되겠지 하고 태평히 생각했다. 그러다 얼마전 만난 다섯살 형의 엄마가 그마저도 밀려 어린이집을 더 보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형의 엄마는 쓴 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보낼 때 되면 체감하실거에요. 얼마나 전쟁같은지"


J가 외동이어서인지는 몰라도 바깥에서 또래를 만나면 너무 반가워한다. 맞잡은 내 손을 뿌리치고 오늘 처음 본 형이랑 같이 논다고 뛰어간다. 어쩌다 형이 받아주어 조금 놀다가 이제 형이 갈 시간이 되면 세상 서럽게 울음을 터뜨린다. 마스크 밖으로 눈물 콧물이 다 쏟아져 나온다. 그럴 때에 나는 가지 않으려는 아이를 들쳐메고 집으로 돌아오곤 한다. 이런 일이 몇번 반복되고 나니 이 근처 사는 형들과 그의 엄마들이 J를 먼저 알아봐주고 인사해준다.


엊그젠가는 산책길에 어린이집에 등원하려던 형아와 마주쳤다. 전에 같이 놀았던 아이였다. J는 잰 걸음으로 뛰어가서 "형아 숨바꼭질" 하고는 저 멀리 뛰어갔다. 형은 J를 쫓아갔다. 멋쩍은 듯한 표정으로 나와 형의 엄마는 두 아이를 따라나섰다. 그렇게 한참 놀다 형의 엄마가 형에게 이제 어린이집에 가야 한다고 했다. J는 그대로 헤어질 수 없었는지 이제 두어번 본 형의 손을 꼭 잡고 어린이집 문 바로 앞까지 따라갔다. 손인사 하며 어린이집으로 들어가는 형과 그대로 따라 들어가려는 J를 겨우 막아섰다.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집 근처 작은 놀이터에서 그네를 태우며 J에게 물어봤다. "어린이집 가고 싶어?" J는 망설임 없이 "응"한다. "엄마랑 노는 거 보다 형이랑 노는 게 좋아?" J는 또 대답한다. "엄마랑 좋아. 형 좋아." 다행이다. 나랑 노는게 아주 재미없지는 않은가보다. 둘 다 각자의 재미가 있다는 뜻이려니 하고 생각했다.


사실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에서 제일 망설여지는 것은 아무래도 아이가 아플까봐서이다. 코로나 말고도 감기나 수족구, 구내염 같이 단체생활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하는 질병이 두렵고 무섭다. 돌 즈음 아이가 독감에 걸려서 긴 면봉으로 아이 코 깊숙히 넣었다 빼어서 검사를 한 적이 있었다. 심약한 나는 그 자리에서 그만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었다. 접수대에 있던 간호사가 어머니 울지 마세요 진정하세요 하고 말릴 정도로. 엄마는 강해야 한다던데 그게 잘 안됐다. 집으로 돌아와서 밤새 아이 열을 내리려 젖은 수건으로 몸을 닦아줄때도 아이가 기력 없어 젖을 잘 먹지 않을때에도 눈물이 그쳐지지 않았다. 아이는 아프면서 크는 거라지만 안 아프고 잘 클 수는 없는건가 하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꽤 긴 시간동안 가정보육을 하고 있다. 하지만 늘 고민은 된다.

내가 아이에게 과연 최선의 것을 주고 있는 걸까? 에 대한 것이 그것이다.

 

가령,

J가 또래와 즐겁게 놀 시간에 대해 내가 기회조차 주지 않는건 아닐까? 집에서 J와 있을때에 나는 과연 아이와 최선을 다해 놀아주고 있는 걸까? 늘 같은 놀이 같은 방식으로만 놀아주고 있지는 않나?어린이집을 보내는 아이들은 잘 먹고 기저귀도 빨리 뗀다던데 J가 가면 그런걸 배울 수 있지 않을까? 근데 그건 과연 진짜 J를 위한걸까? 아니면 내가 편하기 위해서일까?

...

이렇게 내 안에서 이렇게 끝 없는 고민을 하다보면 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정말 글을 써야겠다'하고.


사실 고민해도 각자의 환경과 또 그에 따른 선택에 대한 값일 것이라 이게 옳다 저게 그르다 말할 수는 없는 문제다. 뭘 선택해도 아쉬운 부분은 늘 있기 마련이니까. 어린이집을 보내는 가정도 그렇지 않은 가정도 그의 이유가 있고 그만의 고민이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이 말을 참 좋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해보는 것 아닐까하고 오늘을 버텨보기로 한다.


어제보다 오늘 J가 더 크게 더 많이 웃으면 된거 아닐까 하고.

나 역시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덜 후회했으면 된거 아닐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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