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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변(便)의 변(辯)
이성은 이기주의를 섣부르게 정당화할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도 비이성적인 자연에서는 그것이 가질 수 없는 힘을 이성에게 준다. 자연에서는 그것이 가질 수 없는 힘을 이성에게 준다. 인간의 자기의식은 이성의 산물이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 및 환경과 관련시켜 바라봄으로써 자기를 의식하게 된다. 이 자기의식은 생명을 보존하고 연장하려는 충동을 강화시킨다. 동물의 경우에 자기보존본능은 자연이 제공해주는 필요성 이상을 넘어서지 않는다. 동물은 배고프면 죽이고, 위험을 느끼면 싸우거나 달아난다. 반면에 사람의 경우에는 자기보존의 충동들은 쉽게 세력강화에의 욕구로 전환된다.
-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Reinhold Niebuhr
"너 왜 말하다 말고 갑자기 입으로 똥을 싸?"
함께 저녁식사를 하던 3년 된 여자친구에게 던진 말이다. "뭔 개소리야 씨팔"이라고 맞받아치는 여자친구의 입에서조차 똥이 푸드덕하고 뿜어져나왔다. 나는 놀래 뒤로 자빠졌고, 그 길로 도망을 쳐버렸다.
길거리에 나와보니 모든 사람들의 입가에 똥이 묻어있었다. 나는 황급히 내 주둥이를 어루만져보았다. 다행히 똥이 묻어나오진 않았다. 나도 모르는 어떤 바이러스가 모두에게 퍼진 것인가? 그렇다면 왜 나는 걸리지 않았을까? 슈퍼 면역자인가? 나에게서 항체를 얻기위해 어딘가에 감금되어 똥을 주입 당하는 것은 아니겠지? 별별 망상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중요한 건 무엇보다 드럽고 혐오스럽다는 점이다. 어느덧 이 야밤의 길거리는 똥의 향연으로 가득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입으로 똥을 싸재꼈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그 더럽고 악취나는 오물이 입으로부터 퍼부어졌다. 하지만 그들은 마치 본인들이 입으로 똥을 싸는지도 모르는 듯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입에서 똥이 나오지 않는 나를 배려하지도 않았다. 그들이 튀기는 똥쪼가리들은 내 음식, 내 책, 내 컴퓨터 등에까지 퍼져나가더니, 이윽고 내 얼굴과 손에도 묻기 시작했다. 그 똥들의 냄새도 제각각이었다. 마치 본인들 각자의 속에서 나와선 안 될 찌꺼기들이 썩어 발효된 듯 했다. 불쾌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나도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을까 염려도 됐다. 나는 그들과 멀어지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점점 피하기 시작했다. 혼자 지내는 것이 훨씬 나았다. 집에 쳐박혀 유튜브를 켰다. 하지만 유튜브 속 인간들도 입에서 똥을 뱉어냈다. 더 나아가 똥 자체가 콘텐츠이기도 했다. 똥에 대해 아는척하는 인간들, 서로의 얼굴에 똥을 퍼부으며 언쟁하는 인간들, 심지어는 똥의 건강학적 우수성을 역설하며 더욱 입으로 똥 싸기를 장려하는 '똥 전문가'들이 많았다.
사방의 똥으로 인해 피폐해지던 나는 심리 상담가를 찾았다. 심리 상담가도 입으로 똥을 싸긴 했다. 하지만 꾹 참고 내 고충을 털어놓았다. "자꾸 사람들이 입으로 똥을 쌉니다. 그들은 모르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습니다. 저와 제 물건들에 자꾸만 그들의 똥이 묻어져있어요. 하루종일 악취로 인해 머리가 아프고, 입으로 똥이나 싸는 자들과 원만한 대화를 할 수도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심리학 박사는 입에 똥물을 머금은 상태로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들었다. 나를 지긋이 바라보더니 대답 대신 무언가를 책상 위에 탁 하고 놓았다. 접시에 이쁘게 담긴 똥이었다.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건물 밖으로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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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멸과 반목의 반복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축적되며 우울증과 공황장애까지 겪는 나의 삶은 점점 더 피폐해갔다. 학교의 빈 강의실에서 혼자 공부를 하며 지냈다. 잠시라도 똥의 존재를 잊고 공부에 집중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푸드덕' 소리가 문틈에서 새어나와 불안감을 엄습했다. 이윽고 학생 세 명 정도가 들이닥쳤다. 그들은 내가 있는지도 모르는 듯 강의실 앞쪽에 옹기종기 모여 서로 똥을 튀겨댔다. 가관이었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폭발해버렸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들에게 소리쳤다. "씨발! 제발 입으로 똥 좀 싸지 말라고!"
그들은 흠칫 놀라며 뒤돌아봤다. 피폐에 찌든 인간이 혼자 소리지르고 있는 광경이었다. 한 여학생이 휘둥그레해진 눈으로 소스라치며 이야기했다.
"아 씨발 뭐야, 저 새끼 입으로 똥 싸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