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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아도 하는 변호사 Jan 18. 2024

판매왕이 된 금옥씨

금옥씨와 남편 철이, 삼 남매 종호, 현정, 소연이가 살던 곳은 3층 짜리 주택 왼쪽에 자리한 반지하 집이었다. 반지하이기는 했지만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4평 정도의 마당이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는 공간 있었다. 그 마당 회색 콘크리트 담장이 둘러싸고 있었다. 마당에 서서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면 파란 하늘도 보이고, 저 너머 땅 위 바깥에 있는 공터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래도 반지하 치고는 조금 쾌적한 구석이 있는 집이었다. 작지만 거실과 작은 방 두 개를 가진 반지하에 위치한 빨강 기와집은, 금옥씨가 서울로 이사 두 번째로 살게 된 집이었다


유난히 까맣고 긴 겨울날 밤, 자그마한 거실에서 첫째 종호, 둘째 현정, 셋째 소연이는 언제 올지 모르는 금옥씨와 아빠 철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금옥씨가 시작한 일일 시험지는 배달 구독자가 점점 늘어 가면서 금옥씨 출근 시간은 더욱 빨라졌고, 퇴근 시간은 더 늦어졌다. 삼 남매는 바빠진 금옥씨 얼굴을 보기 어려웠다. 아빠 철이는 산으로 들로 도망간 도둑놈들을 잡으러 다녀야 했으므로 오늘 무사히 집으로 들어올 수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현정이는 빠와 동생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한 명보다는 두 명이 나았고, 두 명보다는 세 명이 더 나았다. 아직 어린아이 세명이었지만 그래도 모이면 심심하지 않았다. 무엇이든 놀면 놀이가 되었다. 그렇다고 항상 웃는 건 아니었다. 치열하게 치고받고 싸우며 울음바다가 될 때도 있었다. 그러다 보면 지쳐서 잠이 오기 시작했고 그러다 눈물 자국을 지우지도 못한 채 잠들었다. 삐죽삐죽 밤송이 같고 자갈처럼 단단한 삼 남매에게 까맣고 긴 겨울밤 무섭지 않았다. 그래도 의지할 수 있는 형제가 있었으니까. 금옥씨도, 아빠 철이도 3남매가 같이 있으니 괜찮을 거야라고 마음을 안심시키며 밤이 깊어서야 집으로 돌아는지도 모른다.




"오빠, 엄마는 언제 올까? 오늘도 늦으신다... 요즘에 엄마가 겨울이면 자주 해주시던 호떡 말이야. 그게 진짜 먹고 싶어. 이제는 엄마가 바쁘니 호떡 해주기 힘드시겠지?"

"그렇지, 오늘도 늦게 오신다고 하셨어. 요즘 시험지 구독자도 많아지고, 책 사겠다고 하는 손님도 많아서 정신없이 바쁘실. 네 친구들도 우리 엄마 다 알지 않아? "

"응, 맞아. 우리 엄마 빨강 옷 선생님으로 이 동네에서 유명하지. 친구들 엄마한테 시험지 구독 시작하면서 성적이 많이 올랐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공부 관리 잘해주는 빨강 옷 선생님이래. 그런 엄마 이라 나 보고도 공부 잘하겠다고 하던데. "

"아, 진짜? 우리는 엄마 얼굴 보기도 힘든데...... "


현정이는 요즘 금옥씨가 일을 시작하기 전, 그러니까 집에서 삼 남매와 함께 했을 그때 만들어 주간식이 자꾸 떠올다. 금옥씨는 겨울이 되면 삼남매에게 달콤한 호떡을 자주 만들어 주었다. 호떡 만드는 법을 어디서 배웠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호떡집 비법을 배워온 것이 아닐까 싶다. 바삭한 반죽을 베어 물면 쏟아지는 달콤한 흑설탕 맛이 느껴지는 금옥씨 호떡 맛은 일품이었다. 금옥씨가 호떡집이 아닌 일일시험지 배달을 선택했는지 의아하게 생각될 정도였다.

 

서울에 매서운 겨울 추위가 찾아오고 겨울방학이 시작되면 삼 남매는 금옥씨에게 호떡이 먹고 싶다는 노래를 불렀다. 삼 남매의 칭얼거림을 견디다 못한 금옥씨는 호떡 만들기를 시작한다. 시작은 항상 그랬다. 금옥씨는 우선 저녁밥을 먹고 나서  커다란 대야에 밀가루를 붓는다.  밀가루가 든 대야에 물과 막걸리를 넣어 반죽을 한 후 커다란 대야를 뜨뜻한 아랫목에 약 6시간 정도 놔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침이 되면 대야 안에 있던 반죽은 막걸리로 푸근하게 발효되어 부풀어 올라 있다. 잘된 발효 반죽 질감은 떡처럼 쭈욱 늘어난다. 그리고 반죽 표면이 매끈하고 반들 반들 윤기를 머금고 있다. 그런 반죽에서는 시큼하면서 달콤한 냄새를 풍긴다.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달콤 시큼한 냄새로 호떡 반죽성공했는지 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


금옥씨가 호떡을 만드는 겨울날 아침 식사 구운 호떡다. 대신 금옥 씨뿐만 아니라 삼 남매 모두 일어나 호떡 만들기 작업에 참여해야 한다. 금옥씨는 우선 손에 반짝이는 식용유를 바르고 반죽 상태를 확인한 후 손 위에 반죽을 얹는다. 그리고는 납작한 모양의 반죽 안에 숟가락으로 흑설탕을 듬뿍 넣은 후 반죽을 동그랗게 만든다. 동그랗게 빚은 반죽을 호떡 굽는 동그란 철판에 놓고 누르개로 납작하게 누르면 집안에 '치지지지직' 호떡 굽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달콤한 흑설탕 냄새와 빵 굽는 냄새가 호떡 구워지는 소리와 아주 잘 어울린다. 아침부터 종호, 현정이, 소연이도 금옥씨 옆에 동그랗게 둘러앉아 흑설탕을 듬뿍 은 동그란 반죽을 하나하나 만들고 금옥씨는 굽는다. 그런 작업이 한 시간 정도 계속된다. 추운 겨울 어느 날 금옥씨네 집은 맛있는 호떡집이 다. 금옥씨와 삼 남매는 그렇게 한 100장 정도 호떡을 만들고 굽는다. 접시에 호떡이 만큼 쌓인다.


이렇게 호떡 굽기가 마무리가 되면 종호, 현정, 소연이에게 마지막 과업이 남아있다. 과업이라 함은 바로 호떡 배달. 노릇하게 구워진 호떡을 들고 집 앞 슈퍼 종근이네 집에도 가져다주고, 2층집, 3층집까지 배달을 마치면 금옥씨네 호떡집 영업이 끝나게 된다. 이 집 저 집으로 호떡 배달을 모두 마치고 소연이, 종호, 현정이는 금옥씨와 둘러앉아 차가운 우유를 들이키며 끝없이 달콤한 호떡을 먹는다. 배가 터지도록 먹던 호떡은 삼 남매에게 특히 현정에게 포근한 겨울날 기억으로 남아있다.

  


"금옥 선생님, 요즘 시험지 구독자 실적이랑 책 판매량이 무섭게 오르고 있네. 비결이 뭐?"

"아, 사장님. 뭐 그냥 열심히 하니까 그런 거 아니겠어요?"


금옥씨는 일일 시험지 아이템플 송파지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송파지사 대표 박사장은 최근 들어 금옥씨가 담당하는 오금동 구역에 구독자 수가 점차적으로 늘어나자 금옥씨 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박사장은 금옥씨에게 어떻게 구독자 수를 그렇게 늘렸는지 궁금해서 묻고 또 물었다. 하지만 금옥씨는 박사장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그냥 열심히 하고 있어서라는 말뿐이었다.


"엄마! 저기 빨강 옷 선생님 오세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금옥씨에게 일일 시험지를 구독하는 진철이는 금옥씨를 빨강 옷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진철이 뿐 아니라 진철이 옆집에 사는 윤아, 하윤이 모두 금옥씨를 빨강 옷 선생님이라 부르고 있었다. 금옥가 일하는 오금동 사람들 전부 금옥씨를 빨강 옷 선생님이라 부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금옥씨는 일일 시험지를 배달하는 옷차림부터  눈에 띄었다. 쨍한 빨간색 투피스에 검은 구두를 신고 바구니가 달린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구두를 신고 무거운 시험지를 싣고 있는 자전거를 타는 것이 힘들 법도 한데 금옥씨의 옷차림은 언제나 그러했다. 금옥씨는 단정하고 말끔한 옷차림으로 일일 시험지 배달 아줌마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전문 학습지 선생님처럼 보이려 노력했다. 그것이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신뢰를 주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옷차림은 불편하더라도 정장을 갖춰 입고 구두를 신고 시험지 배달나섰다. 덕분에 금옥씨 다리는 퉁퉁 부어올라 가라앉을 줄 몰랐다. 금옥씨 발바닥은 가뭄에 갈라진 땅바닥처럼 찢어졌고, 잘 때면 발바닥이 뜨겁게 타오르는 통증느껴다. 그래도 금옥씨는 해가 밝으면 빨간색 정장과 구두를 신고 시험지와 책가득 실자전거에 올랐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윤아가 이번주에는 빠짐없이 시험지 숙제를 다 했네요. 이건 숙제를 다한 아이에게 주는 선물이에요. 윤아에게 잘했다고 말씀해 주시고 전해주세요."


금옥씨에게는 다른 일일 시험지 배달사원과는 다른 판매 전략이 있었다. 보통 일일 시험지 배달 사원은 독자들 우편함에 일일 시험지를 넣어 놓 것으로 끝이었다. 그것도 그런 것이 배달만 해도 하루가 금방 가버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금옥씨는 달랐다. 구독자 우편함에 일일 시험지를 넣어 놓는 것이 시작이었고, 아이들이 배달받은 일일 시험지를 끝마쳤는지, 난이도는 어땠는지,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까지 부모님과 아이에게 하나하나 묻고 체크했다. 그리고 부모님이 모두 일을 하고 있는 아이들이 있으면 부모처럼 더 꼼꼼하고 살뜰이 챙겼다. 또 일일 시험지를 구독한 후에 성적이 오르지 않을 경우 백 프로 환불해 주는 조건 내걸었다. 사실 일일 시험지 배달에 아이들마다 진도 체크까지 더해서 하려니 금옥씨 일은 다른 배달 사원이 하는 평균 업무량 두 배를 넘어섰다.


그런 금옥씨가 집안일과 바깥일을 함께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집안은 손볼 시간이 없어 항상 엉망이었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금옥씨는 일일 시험지 일이 즐거웠고, 스스로를 찾은 것 같아 기뻤다. 금옥씨가 일일 시험지에 쏟은 노력에 보답이라도 하듯 일일 시험지를 구독하는 구독자가 늘어났고 구독하는 아이들 성적도 같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금옥씨 일일 시험지에 대한 입소문이 동네 엄마들 사이에 퍼져 나갔다. 금옥씨가 하는 일일 시험지를 구독하면 관리가 철저해 성적이 오르지 않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사례를 실제로 본 엄마들하나 둘 금옥씨를 찾았다. 그러면서 금옥씨 자전거 뒤에 실려져 있는 책을 구입하는 구독자도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금옥씨는 오금동 빨강 옷 선생님으로 불리며 다른 구까지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금옥씨가 담당했던 오금동 일일 시험지 구독자 실적  최하위였지만 곧 상승형 곡선으로 점점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금옥씨가 오금동 구역을 맡게 된 지 10개월 즈음 금옥씨는 송파지사에서 가장 많은 일일 시험지 구독자를 보유하게 되었다. 책 판매량도 압도적 1등으로 올라서면서 세일즈 여왕이 되었다. 금옥씨의 놀라운 성과에 박사장뿐만 아니라 금옥씨에게 일일 시험지 자리를 소개해 주었던 김 선생님까지 그 누구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 안 자고 뭐 해?"

"현정아, 아직 안 잤어? 엄마 스피치 대회에 나가게 되었어."

"엄마, 스피치 대회가 뭐예요?"

"응, 이번에 송파지사에서 엄마가 판매왕이 됐거든. 근데 전국 지사 판매왕끼리 하는 스피치 대회가 있대. 엄마도 거기 나가게 되었거든."

"아, 그럼 거기서 발표 같은 거 하는 거예요?"

"응, 엄마가 어떻게 판매왕이 되었는지 사람들에게 말해주는 거야. 엄마도 이런 건 처음이라 떨리네. 그래도 연습해서 잘해볼게."


금옥씨는 밤늦게까지 일일 시험지를 배달을 하고 집에 들어와서는 다시 새벽까지 판매왕 스피치 대회를 준비했다. 거기에 모자라 주말에는 스피치 학원까지 다니기 시작했다. 현정이는 금옥씨의 열정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금옥씨를 집에서 자주 그리고 오래 볼 수는 없었지만 현정이는 금옥씨 얼굴에 새롭게 나타난 자부심 어린 표정이 좋았다. 그 표정 안에는 꿈이 있었다. 40이라는 나이지만 늦지 않았다는 믿음이 있었다.   현정이는 어렸지만 그런 금옥씨가 앞으로 잘 되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금옥씨는 몇달 동안 치열하게 스피치 대회 준비했다. 스피치 대회 당일, 금옥씨는 그날도 빨간색 투피스에 검은색 구두를 신고 집을 나섰다. 자신을 판매왕으로 만들어준 그 복장으로. 현정이는 스피치 대회에서 판매왕이 되기까지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말하는 금옥씨 모습을 직접 볼 수는 다. 하지만 금옥씨가 그 누구보다 감동적인 이야기로 스피치 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하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날 저녁 금옥씨는 예상대로 스피치 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했고 받은 상금 200만 원과 반짝이는 커다란 황금열쇠를 들고 집으로 멋지게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금옥씨는 탄성을 지르며 스피치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을 현정이에게 종호에게, 소연이에게 보여주었다. 사진 속에는 빨간 투피스를 입고 빛나는 눈빛으로 말하는 금옥씨가 있었다. 사진 속 금옥씨 얼굴에처음 보는 아주 예쁜 꽃이 활짝 피어 있다.

현정이는 앞으로 금옥씨가 만들어 준 호떡을 먹을 수 없도 이제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달려가며 환하게 웃음 짓는 금옥씨가 옆에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미지 출처:pintet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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