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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아도 하는 변호사 Jan 25. 2024

금옥씨 엄마 이야기




"따르르릉 따르르르릉"

'밤이 늦었는데 누구지?'


자정이 다 되어 걸려온 전화에 막 세수를 마치고 나온 금옥 씨가 갸우뚱하며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금옥아."

"엄마?"

"금옥아, 나다."

"엄마, 이 밤에 무슨 일이에요?"


금옥고향 고창에서 첫째 딸 금자와 살고 있는 엄마 분선씨다. 서울에서 애 셋을 키우며 그래도 살아 보겠다고 바득바득 일일 시험지 일까지 하는 바쁜 딸 금옥 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자주 전화하지  분선씨였다. 무슨 일이냐는 금옥씨 물음에 아무 말이 없자 금옥씨는 아까 보다 조금 다급해진 목소리로 무슨 일이 있냐고 재차 물었다. 금옥씨 물음에 정말 무슨 일이 있는지 수화기 너머로 분선씨 숨소리만 조용히 들린다.


"금옥아, 오늘 병원에 다녀왔니라. 근데 의사 신생님이 내가 폐암말기란다. 이제 5개월 남았다고...."


분선씨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고 울음소리만 울려 버진다. 금옥씨는 엄마 분선씨가 폐암 말기라는 이야기에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머리에 삐 소리가 울리고 멍해졌다. 금옥씨 쿵 쿵하는 심장 소리가 수화기 너머까지 들려오는 듯하다. 금옥씨는 분선씨에게 어떤 이야기를 건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 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분선씨에게는 딸이 다섯 아니 넷이 있다. 첫째는 금자, 둘째는 금순, 셋째는 금선, 넷째 금옥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딸 금일이가 있었다.


 금일이가 스무 살이 되던 해였다. 뽀얀 얼굴에 분선씨 딸 중 가장 고왔던 금일이는 읍내에 있는 사무실에서 서무로 일하고 있었다. 아침이면 머리를 단정히 묶고 체크무늬 정장을 입은 금일이는 자전거를 타고 읍내로 일하러 나갔다. 어느 여름날 저녁 금일이는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다가 어지럼증이 일었고 중심을 잡지 못하고 길에 쓰러졌다. 지나가던 사람의 도움으로 금일이는 읍네 차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에서는 빈혈이라며 곧 나아질 것이라 말했다. 그 후 금일이는 점점 야위어 갔다. 다니던 사무실도 그만두고 방에 계속 누워 있었다. 차도가 없었다. 좀 더 큰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았다. 병원에서는 곧 나아진다는 이야기를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대신 금일이가 불치병에 걸렸다고 말했다.


한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다. 이제는 나무에 대롱대롱 달려있던 낙엽마저 모두 떨어졌다.  분선씨네  집 마당 옆에 오래된 작은 우물이 하나 있었는데 우물 안으로 떨어진 낙엽이 수북해졌을 무렵 금일이는 눈을 감았다. 금일이는 갑작스럽게 분선씨와 금옥씨 옆을 떠나갔다. 금옥씨는 동생을 잃었고 분선씨는 딸 하나를 잃었다. 그때 분선씨가 느꼈을 슬픔이 어느 정도 였는지 그 누구도 몰랐다. 금일이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 분선씨는 한 번도 금일이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금옥씨도 그 누구에게도 막내 동생 금일이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현정이도 이모가 세명만 있는 줄 알았다.


분선씨는 금일이를 잃고 다섯을 가진 엄마에서 딸 넷을 가진 엄마가 되었다. 분선씨 배속에서 나온 딸들이었지만 마치 다른 배에서 태어난 아이들처럼 성격 제각각이었다.


 첫째 금자는 다소 무뚝뚝한 성격이었지만 동생들을 살뜰하게 챙기는 맏언니였다. 나중에 신성일 닮은 남자와 결혼하는 게 꿈이라던 금자는 고향 고창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 창수를 만나 결혼했다. 창수는 시골 남자 같지 않게 금자에게도 분선씨에게도 다정했지만 두 얼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술만 마시면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다정하지만 술을 마시면 이 세상을 증오했던 사람처럼 금자도 때리고 집에 있는 살림살이도 때려 부수었다. 그리고 술에서 깨면 다정한 남자가 되어 금자에게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술을 좋아하는 남편 창수 덕분에 금자네 집도 분선씨 속도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술에 취한 창수에게 맞던 금자는 본래 가진 좋은 본성을 벗어던지고 악에 받쳐 살아가는 여자가 되어갔다. 


시끄럽지 않은 날들이 일상이 된 어느 날 금자 남편 창수는 동네에서 누군가와 추문에 휩싸여 경찰 조사까지 받게 되었다. 조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창수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술을 마시고 또 마셨다. 그리고 집으로 쓸쓸히 돌아왔다. 그날은 금자를 깨워 개 패듯이 패지 않았고 살림살이도 깨지 않았다. 처음으로 금자네 집이 이상스레 고요했던 날이었다. 고요한 적막 때문이었을까. 창수는  다음 날 아침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금자는 사랑했는지 모르는 남편 창수의 죽음 앞에서 목놓아 울고 또 울었다. 남편을 잃은 금자에게는 스무 살이 넘은 딸 두 명과 중학생 아들 한 명이 있었다.


분선씨에게는 똑똑한 둘째 딸 있었다. 둘째 금순은 어릴 적부터 새침하고 깍쟁이 같은 성격이 도시 아이 같았다. 그런 금순은 시골 구석 고창을 너무나도 싫어했다. 시골을 싫어해서였는지 모르지만 금순이가 집안일을 하거나 분선씨 돕는 모습을 그 누구도 보지 못했다. 금순이는 손에 물을 묻히는 일들이 딱 질색이었다. 꼭 서울에 가서 살 거라며 집안일하며 분주한 금옥씨를 잡아두고 매일 같이 이야기했다. 금순에게 다행인지 불행인 것인지 알 수없으나 금순이는 머리가 좋은 아이였다. 그렇게 부유하지 않았던 금옥씨네 집안에서 금순이를 어떻게 서울로 유학 보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금순이는 서울로 유학을 갔다. 그리고 유일하게 서울에서 대학교까지 졸업하였다. 그렇게 금순이는 분선씨네 집 아니 고창 시내에서 유한 엘리트였다.


시골 구석이 지긋지긋하다고 노래를 부르던 금순이는 서울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금순이는 서울에 살림을 차렸고 결혼 후에는 어릴 적부터 지긋지긋해하던 촌구석 고창에 발 한번 디디지 않았다. 그런 금순이를 보며 사람들은 서울 남자를 만나 서울에서 돈을 뿌리며 떵떵거리며 살 것이라고 모두들 이야기했다. 하지만 서울 동네문에 있는 종갓집으로 시집간 금순이는 어릴 적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살아온 업보를 갚는 듯 종갓집 살림 속에 치여 누구보다 손에 물을 묻히고 또 묻히며 살림 속에서 살아 나가고 있었다.


셋째 금선이는 둘째 금순이와 다른 성격의 아이였다. 유난히 마음씨가 푸근한 아이였다. 얼굴도 볼이 포동포동 하니 웃는 모습에서 우아함이 엿보였다. 금선이는 손 맛도 있어 금옥씨와 부엌일을 도맡아 하곤 했다. 금옥씨는 셋째 언니 금선씨가 좋았다.  예쁘고 착한 언니 금선이는 학교 선생님과 결혼을 했고, 고창 근처 장성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금선이의 남편 하준이는 깔끔한 성격에 바른 사람이었다. 금옥씨는 형부 하준이 같은 사람과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하준이는 본래 병약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금선이와 하준이가 결혼한 지 5년이 되던 해 하준이는 많이 아팠다. 어떤 병명이었는지는 잘 모른다. 하준이는 금선씨와 아이 5명을 남긴 채 미안하다는 말을 하며 금선씨가 30살 되는 때에 세상을 등졌다.


넷째 금옥이는 네 명의 딸 중에서 분선씨에게 가장 편한 딸이었다. 부모라고 해 모두 똑같이 자식들을 사랑할 수는 없다고 한다. 부모도 인간이기 때문. 분선씨에게 금옥이가 가장 편했던 것은 금옥이 어릴 적부터 분선씨를 많이 생각해 주는 딸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분선씨가 새벽에 장터에 가는 날이면 금옥씨는 분선씨 보다 먼저 일어났다. 새벽길 나서는 분선씨가 따뜻한 국으로 빈 속을 달랬으면 하는 마음에 분선씨의 아침을 챙겼다. 분선씨가 집을 나서면 푸르스름한 새벽녘 금옥씨는 해진 작업복을 입고 밭으로 나가 소에게 줄 여물을 베어 리어카에 한가득 싣고 돌아왔다. 여물을 소에게 준 후 언니들 아침을 챙기고 출근했다. 그때도 지금도 금옥씨는 바빴다. 분선씨를 자기를 생각해 주는 어린 금옥씨가 고마웠다. 티를 내지 못했지만 금옥씨는 그런 딸이었다.


분선씨는 폐암 말기라는 의사 선생님 말을 듣자 막내딸 금옥씨가 생각났다. 곧바로 금옥씨에게 전화하려 했지만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고민하다 어느덧 자정이 되었다. 자명종 소리에 분선씨는 금옥씨 집 버튼을 하나하나 눌렀다.




분선씨는 젊었을 때부터 담배를 줄곧 피워왔다. 세상 노곤할 때 종이에 담배 속을 넣고 침으로 종이와 종이를 붙여 담배를 후우 하고 피웠다. 뿌연 연기 속으로 고민이 흘로 나오는 것 같았다. 담배를 피우면 머릿속이 맑아지면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기분으로 한대, 두대 피우던 것이 벌써 40년째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렇게 담배를 피워대니 폐가 당해낼 리 없었다. 이미 분선씨는 5년 전 폐결절 진단을 받았고 긴 치료를 마친 상태였다. 치료를 마치며 의사 선생님은 분선씨에게 다시 담배를 피우기 시작할 경우 폐암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몇 번을 강하게 경고했다. 금옥씨와 손을 잡고 병원을 나오던 분선씨는 금옥씨에게 약속했다. 다시는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분선씨에게 담배를 권했다. 첫째 사위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던 그날 분선씨는 사위가 있던 건넌방에 있었다. 정신 나간 늑대처럼 날뛰던 사위였지만 사위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분선씨가 일상생활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저 놈팽이 같은 녀석만 없으면 첫째 딸 금자가 허리를 피고 살겠다고 생각했지만 사위가 생을 마감해 버리자 금자는 허리가 끊어지듯 고통스러워했다.  분선씨는 담배를 다시 피우지 않고 오늘을, 내일을 견딜 수 없었다. 그렇게 분선씨는 금옥씨 몰래 금옥씨와 멀리 떨어져 있는 고창 시골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고 또 피웠다.


그렇게 다시 3년이 흘렀다. 겨우 건강을 되찾았던 분선씨의 폐는 엉망진창으로 찌그러지기 시작했고, 암세포가 분선씨 마음처럼 폐에 퍼지기 시작했다. 분선씨는 폐암 말기를 선고받았다. 이미 다른 장기까지 깊게 퍼진 상태였다. 분선씨는 의사에게 앞으로 5개월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분선씨는 금옥씨에게 전화를 걸어 소식을 알렸다.


"엄마, 우리 집에 와있어."


금옥씨는 분선씨가 이제 살 날이 5개월 남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분선씨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금옥씨는 일일 시험지도 하고 있었고, 철이와 종호, 현정, 소연이도 책임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금옥씨가 고창으로 내려가 분선씨를 돌봐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금옥씨는 분선씨에게 서울로, 서울에 있는 우리 집으로 오라고 말했다. 분선씨도 그러고 싶었지만 금옥씨 말대로 할 수는 없었다. 분선씨는 생각했다.


'내가 너한테 해준 게 없는데 짐덩어리가 될 수는 없다.'   


"야, 아니다. 나 그냥 고창에 있으련다. 금자도 옆에 살고 말이다. 절에 가서 스님 뵙고 그러다 갈란다. 그래도 조만간 니네집 한번 갈거라."


그렇게 분선씨는 곧 금옥씨네 집에 잠깐 놀러 갈 거라고 말하며 금옥씨 제안을 거절해 버렸다.


분선씨가 앞으로 살날이 5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소식이 곧 나머지 딸들에게도 퍼졌다. 네 명의 딸은 앞으로 분선씨를 어떻게 모실지 이야기해보았지만 고창에 계속 있겠다는 분선씨를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분선씨는 원래 살던 대로 금자네 근처에 위치한 분선씨 집에서 남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대신 금자가 분선씨 상태를 종종 확인하며 돌봐줄 것을 나머지 딸들에게 약속했다. 금옥씨는 형부가 죽고 난 후 엄마 분선씨에게 분풀이하듯 엄마 분선씨에게 냉소적이고 본인 밖에 모르게 변해버린 금자언니가 못 미더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언니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 나왔어. 할머니 괜찮아요? 많이 아프시다면서요?"

"오구, 내 새끼들. 서울서 일한다면서 여까지 왜 왔누?"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 2개월이 지나자 분선씨 정신이 조금 오락가락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금자 딸 정미와 정은이가 분선이를 찾아왔다. 서울에서 일하고 있다는 정미와 정은이가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알 수 없었지만 손녀들을 본 분선이는 반가웠다. 정미와 정은이는 분선씨가 좋아하는 유과며 식혜며 맛있는 것들을 손에 한가득 들고 왔다. 어깨도 주물러 주고 다리도 주물러 주는 정미와 정은이를 보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할머니, 내일 나랑 어디 좀 갈까?"

"에구, 내 새끼. 어디 가려고 그랴?"

"할머니, 인감도장이랑 집문서 어디 있어? 서류 처리할 거 있거든. 아까 내가 찾아봤는데 안 보이네."

"아, 그거 저기 반짇고리 안에 숨겨놨제. 근데 그건 와?"

"동사무소에서 문제가 있다고 들고 할머니랑 오라고 연락이 와서 그렇지. 할머니, 내일 나랑 같이 가."

정미와 정은이는 다음날 아침 부산을 떨며 분선씨를 모시고 시내에 있는 동사무소로 향했다. 동사무소에 도착한 정미와 정은이는 서로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할머니, 여기에 도장 찍고 여기에도 도장 찍고 하면 돼요. 할머니 신분증도 잠깐 주세요."

"여기? 도장은 왜 찍는 거여?"

"응, 동사무소에서 찍어야 한다네. 할머니 우리 이거 어서 찍고 집에 가서 할머니 좋아하는 가래떡 구워 먹자."

 

사실 정미와 정은이가 서울에서 분선씨를 보러 온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금자의 계획에 따른 것이었다. 금자는 정미와 정은이에게 분선씨가 폐암 말기로 이제 5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계획을 이야기했다.

"정미야, 정은아. 너희들 당장 고창으로 와라. 와서 할머니 집 있잖아. 그거 너네 명의로 돌려놓아라. 이제 죽을 늙은이한테  집이 필요하겠냐, 땅이 필요하겠냐."

"엄마, 그거 금옥이 이모가 처 때 할머니 사준 거잖아. 괜찮을까?"

"할머니 명의로 되어 있으면 할머니 거지 언제 적 이야기하니?"


분선씨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금옥씨가 시집가기 전에 엄마 분선씨와 아빠 현규에게 사준 것이었다. 금옥씨는 평생 허리도 못 피고 살아온 분선씨와 현규가 항상 안쓰러웠다. 그래서 시집가기 전 반드시 분선씨와 현규에게 집을 사주고 싶었다. 그래야 금옥씨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시골 땅이라도 금액이 컸다. 더욱이 어린 금옥씨에게는 큰돈이었다. 금옥씨는 당시 월급 모은 돈으로 병아리들을 샀다. 새벽마다 병아리에게 모이를 주고 경찰서로 출근했다. 그렇게 매일매일 키워 큰 닭을 만들었다. 그리고 토실 토실해진 닭들을 팔아 돼지 몇 마리 샀다. 돼지우리에서 돼지를 키웠다. 새벽에 일어나 돼지에게 밥을 주고 경찰서로 출근했다. 금옥씨 손에서 키워진 돼지는 쑥쑥 자랐다. 돼지는 송아지로 송아지는 소가 되었다. 그렇게 소 몇 마리를 키웠다. 소 두 마리를 남기고 모두 팔았다. 마침 소값이 금값일 때라 금옥씨 통장에는 큰돈이 들어왔다. 그렇게 8년 동안 돈을 모았다.  금옥씨는 결혼식을 앞두고 엄마 분선씨에게 집을 사주었고, 철이에게는 빈손으로 시집갔다.


8년 동안 금옥씨가 어찌나 악바리 같이 돈을 모았던지 금옥씨의 억척스러움은 딸들 뿐 아니라 조카들 사이, 고창 동네에서도 유명했다. 결국 금옥씨가 10년 만에 분선씨에게 집을 사주었을 때 동네 사람들은 그런 딸이 없다며 분선씨를 부러워했다.   

하지만 금옥씨가 8년 동안 고군분투해서 분선씨에게 사준 집은 분선씨가 생을 마감하기 2개월 전 아무렇지도 않게 조카 정미 것이 되었다.




"오빠, 엄마랑 아빠 언제 오실까?"

종호, 현정, 소연이는 이불 위에 함께 누워 뒹글거리고 있다. 이미 새벽 1시가 넘어간 시간이다. 금옥씨는 분선씨가 임종을 앞두고 있다는 이야기를 금자에게 전해 듣고 이미 고창으로 향하고 있었다.


"오빠, 나 졸려."

잠이 많은 현정이는 벌써 눈이 감기려 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이야기할머니 분선씨 이야기를 하며 잠들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새 스르륵 잠이 들어 버렸다.


"어, 여기는 어디지? 할머니네 동네네."

현정이가 눈을 떠보니 익숙한 고창 할머니 집 골목길이다. 주위를 휘 둘러보니 흙바람이 날리는 거리에 사람이 얼마 없다. 갑자기 옆으로 예쁜 꽃으로 장식한 상여가 지나간다. 곡 소리가 울려 퍼진다. 어디서 장례가 있는가 의아하게 생각한 현정이는 할머니가 보고 싶어 진다. 조금 걸어 할머니 집으로 들어갔다. 할머니 집은 좁은 골목길을 지나면 파란 대문이 있는 집이다. 파란 대문은 페인트칠한 적이 언제인지 알 수없게 갈라져있다. 문고리에는 지금이라고 어흥하며 달려 나올 것 같은 사자가 달려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예전에 소가 살았던 소외양간이 보인다.  그리고 그 옆으로 작은 우물이 있다.


"할머니."

현정이는 할머니를 부르며 우물을 돌아 마당에 들어섰지만 마당에는 아무도 없고 조용하다. 할머니를 찾아 부엌으로 들어가 본다. 나무 문을 끼익 열고 들어서는 순간 찬장 문이 모두 열려 있고, 아궁이에는 나무 장작도 없다. 그때 바람이 휘 불어오며 누구나 뒤에서 현정아! 부르는 소에 현정이는 잠에서 깨어났다.


"따르르르르릉"

마침 전화벨이 울리고 옆을 보니 오빠도 소연이도 모두 잠들어 있다. 눈앞에 보인 시계를 보니 시계가 마침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다. 자리에서 부스스 일어난 현정이는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현정아, 엄마야. 할머니 임종 하셨어. 아빠랑 고창으로 오렴. 있다보자."


이미 많이 울었는지 쉰 목소리로 금옥씨가 현정이에게 말한다. 현정이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이야기 속에 작가가 만들어낸 상상력이 가미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이미지 출처:pinterest (Aimee Y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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