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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rry Apr 29. 2020

진실된 것들의 노래.

소박한 병원탐방기. 제목은 그냥 떠올라서

팔 통증으로 두달째 병원을 다니고 있다. 2월 말부터 시작된 이 증상의 명칭은 다양하게 진화했다. 처음 간 정형외과에서는 "테니스 엘보 증후군", 두번째로 간 한의원에서는 "근육 염증", 그리고 지금 다니는 한의원에서는 근본적 원인은 바로 내 골반 틀어짐에 있다는 진단을 받고, 당장 급한 팔 치료부터 시작해서 어깨, 목, 이제 하체 치료까지 내려가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감기도 걸려본 적 없는, 나의 부주의로 인한 몸의 상처나 과식으로 인한 급체 등을 제외하고는 난 매우 건강한 편에 속했다. 어느 한 부위가 장기간 아파본 것은 오랜만? 아니 거의 처음인 것 같다. 가족과 떨어져 낯선 도시에서 혼자 살 때, 몸이 아픈 순간 어디를 가야할지 고민하게 된다. 


당연히 정보가 없는 나로선 그 지역에서 어딜 가나 광고를 통해 귀에 익은 병원을 떠올렸고, 광고의 힘을 인정하며 단지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내 마음 속에서는 이미 그 병원을 신뢰하고 찾아가게 된다. 그러나 비싼 돈을 지불하며 여러 차례 치료를 받음에도, 전혀 호전되지 않는 통증, 그럼에도 선택권이 없는 환자로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시 찾아가지만 돌아오는 것은 2분도 되지 않은, 마치 내가 어디가 아픈지 이미 해답이 나와있다는 듯 쏜살같이 진단을 해주고 물리치료실로 보내는 의사와의 대면은 점차 그 신뢰를 잃게 했다.


현대 의학기술은 마치 모든 것의 해결사마냥 칭송받고 있다. 물론 과거에 비해 기술력이 좋아지면서 난치병도 점차 치료가 되고 있고, 환자에게 희망을 주는 헌신적인 의사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의학을 공부하지 않은 일반인들은 의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했든, 그렇지 않든 그 정보의 접근성은 동일하다. 마치 거대한 벽과 대면하는 것처럼 일방적인 지식 전달이다. 그 지식 앞에서 반박도 할 수 없고, 그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며 그럼에도 치유가 되지 않았을 때는 다른 병원을 찾는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좋은 의사선생님이 있다고 하는 병원. 큰 병원. 서울에 있는 병원. 등등.


섣부른 판단일수도 있고, 부족한 경험과 지식에서 나오는 좁은 식견일지도 모르나, 나는 그것에 의존하지 않기로 했다. 두 번의 실패를 겪고 여전한, 아니 더 심해지는 듯한 통증을 치료하고자 그냥 집에서 멀지 않은, 목과 어깨 전문 한의원이라는 정보만 보고 무작정 찾아갔다. 


간절하기는 했는지, 카운터에 앉은 간호사에게 "저 이번이 세번째에요. 이번엔 꼭 낫고 싶어요"라는 말부터 했다. 그리고 내 증상을 정확히 알아내기 위한 다양한 검사를 했다. 바로 의사와 대면하여 내 말을 듣고 팔을 몇번 만져보고 3초만에 진단하던 이전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검사 후 의사와의 대면. 단순히 내 팔 만이 아니라 목과 어깨 등의 신경을 하나하나 눌러보고, 내가 귀찮을 정도로 내게 많은 질문을 했다. 나 같이 나조차도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정확히 말하기 어려운 경우가 제일 어려운 케이스라고 하며 신중히 진단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이제야 환자로서 대우받고 있다는 안심이 든건 왜일까.


팔이 아니라 어깨라구요? 근육통이 아니라 신경- 아니 그 근본은 골반 틀어짐이라고요?


"환자분 이거 만성인것 같은데, 2월 말이 아니라 예전에도 아픈적이 있었죠? 분명 그랬을 거에요.

그리고 허리를 곧게 펴려고 배에 힘주고 긴장하는 자세 안좋아요. 목에 무리가 가고 그 통증이 어깨로 팔로 내려오는거에요. 겉으로는 자세 예쁘고 건강해보이는 필라테스 강사, 요가강사, 헬스 트레이너분들이 다 그래요. 알고보면 다 여기서 치료받아요"

....


생각해보니 정말이었다. 이미 오랜 시간 내 구부정한 자세 때문에 골반 틀어짐은 당연했고, 그래서 나는 남들보다 더 허리 펴는 것에 신경썼다. 주위에 허리 통증으로 아파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그렇게 조언했고, 그래서 등받이는 커녕 의자 끝에 걸터앉아 무작정 허리를 펴려는 습관이 굳어졌고, 이는 내 목을 항상 긴장하고 힘이 들어가게 한 것이다. 


내 예상을 넘어, 예상을 깨는 말씀을 하셔서 처음엔 조금 의아했다. 정말 제대로 짚는거 맞아?


"허리를 구부리고 있으라는 게 아니에요. 배에 힘주고 억지로 펴려는 자세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배에 힘을 살짝 풀고 등이 부드럽게 등받이에 기댄 자세를 해야해요. 환자분 등받이 꼭 하세요"


내 예상과 달리 근본 원인은 훨씬 더 깊숙히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어디가 아픈지 하나하나 짚어보시는데 정말 다 맞는 말이었다. 철저한 관찰을 통해서 내가 정말 어디가 아픈지 알아내려고 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틀에 한번은 와야 해요. 잘 낫게 협조좀 해줘요,

세 네번 갔는데도 팔저림이 계속 느껴지자 여기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 더 이상 돈낭비는 그만 하고 싶은 생각에 내원일을 건너뛰었다가 다시 참을 수 없는 통증이 밀려오자 그제야 갔다. 왜 제때 안왔냐며 한소리 들었다.


치료 받아도 계속 아픈데 어떡해요. 진짜 안 낫는거 아니에요

"아직 어린데 왜 못 나아요, 나을 수 있어요. 꾸준히 와야해요"

.. 별 것 아닌것 같았는데, 그 말 한마디를 듣자 힘이 났다.


"가끔씩 꼼수 쓰는 병원도 있어요. 어떤 한의원에서는 엄청 독한 약 줘요. 그럼 당장은 통증이 나아지기는 하니까. 근데 잠시 뿐이에요. 근본 해결을 해야죠." 


몇 번의 치료 끝에 신기하게도 팔 저림, 어깨 통증이 조금씩 사라지고, 이제 통증이 목으로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뒷목과 가슴 앞쪽이 턱 막힌듯 굳어져있었다. 명치를 살짝 누르는데도 참을수 없이 아팠다. 


"팔 저림은 이제 없죠? 목 아픈것도 금방 나을거에요. 낫고 있다는 증거에요. 축하해요. 이제 목 통증도 줄어들 때쯤 하체치료로 내려갈거에요. 골반을 치료해야 완전히 낫는거에요."



 "나도 계속 공부하고 진단하지만 생각대로 금방 낫지 않는 경우도 있고, 환자가 협조를 잘 안해줘서 계속 재발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럴때는 속상하죠. 그래도, 계속 더 공부하고 노력하면 낫게 할 수 있겠죠?

신기하게도 환자에게 힘이 되는건 어떤 독한 약, 주사가 아니라 의사의 '말' 인것 같았다. 단순히 언어만이 아니라, 환자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태도, 비언어적 표현에서 느껴지는 보이지 않는 신뢰감. 


오늘은 내원하러 가는 중, 자전거에서 넘어져 무릎 한쪽이 심하게 까졌다.

한의원에 도착해서 넘어져서 무릎이 까졌다며 소독해주실 수 있냐고 물어보는 것도 웃겼지만, 본인이 가지고 있는 약과 밴드를 가지고 직접 상처 치료를 해주시는 간호사의 정성에 놀랐다.


의사에게는 역시나 한소리 들었다:)


"나는 환자가 다쳐서 피흘리는거 보면 못참겠어 으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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