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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rry Sep 22. 2020

아무튼, 수영

다 잊고 동동. 그것 하나로 행복해.

물속을 자유롭게 누비며 신나게 헤엄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는다.

어렸을 때 엄마와 수영하며 뭐가 그리 즐거웠는지 나도 저렇게 해맑게 웃고는 했는데.


한의원에서 강력하게 권유한 “재활운동”이라는 명분으로 오랜 시간 잊고 있었던 수영을 다시 시작했다.

다리저림으로 고통받는 나를 구원해줄 유일한 운동이라는 것이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물속에서 한 발 한 발 내딛는 순간만큼은 행복하다. 

일상에서 받는 크고 작은 스트레스가 물과 함께 흘려보내지고 있는 느낌이랄까.  


이상하게 수영장 물 안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를 감싸는 물이 따스한 엄마품 속에 있는 것 같아서일까.


넓고 깊은 물 안에서는 모두가 아이 같다. 

맞은편 레일에서 거칠게 수영하는 덩치 큰 아저씨도, 

엄숙한 얼굴로 아이들을 지도하는 강습반 선생님도. 모두가 물속에서는, 조금 작아져있다.


몸은 커져버렸지만 여전히 누군가에게 한없이 어리광을 부리고 싶을 때,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무언가에 가만히 몸을 담그는 것은,

나를 위한 작은 위로였다.

힘을 빡 주고 살아가는 다른 일상과 달리, 여기서만큼은 내 몸에 힘을 쭉 뺄 수 있다.

그리고 가만히 물을 느껴보는 것.


그동안 왜 잊고 있었을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이것을.


수영을 마치고 개운한 몸으로 밖에 나오자 익숙한 모양의 농구골대에서 농구를 하며 뛰노는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선선한 밤공기에 울려 퍼진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그리고 아들딸까지 온 가족이 다 같이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온 듯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산책을 하며 내 옆을 지나간다. 

내가 사는 곳에서는 잘 들릴 수 없던 찌르르 귀뚜라미 우는 소리도 들려온다.


어렸을 적 맨날 가던 동네슈퍼와 닮은 어느 가게에 들렀다. 

가족들과 둘러앉아 한 알도 놓치지 않겠다는 속도로 야무지게 집어먹던 그 보랏빛 포도를 발견했다. 

요즘은 청포도나 적포도, 그밖에 신품종들도 많이 나와 오히려 예전에 많이 먹던 그 보라색 포도가 어렸을 때만큼 자주 눈에 띄지 않는 듯 하다. 그래서 그런지 더 반가웠다.

그때 내 별명 중 하나는 바로 포도 귀신일 정도로 포도를 잘 먹었다. 

함께 달려들어 포도를 먹던, 지금은 모두 성인이 된 동생들의 얼굴이 떠오르며 갑자기 보고 싶었다.

떠올리면 잔잔한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어릴 적 기억들이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찬란한 해질녘의 노을을 감상하는 그 순간을 만끽하고

선선한 바람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에 젖어있을 수 있어서,

그리고 이 모든것이 당연함이 아니라는 것을 오랜만에 깨달을 수 있어서,

또한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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