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이테 Oct 09. 2024

취학통지서

유년의 은채 이야기-용제살이 2

아이가 살게 된 용제군 장화리 윤씨네 집을 동네 사람들은 탱자나무집이라 불렀다. 산들바람에 쓰아쓰아 소리를 내는 대나무 숲이 뒷마당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곳을 제외하고는 탱자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다. 탱자나무집은 동네 초입에 서서 보아도 한눈에 들어오는 집이다. 집터가 높은 데다 집 뒷마당이 끝나는 곳에 비췻빛으로 빚은 듯한 푸른 대나무가 빽빽하게 작은 숲을 이루고 있다. 초행길 손님 누구라도 탱자나무집을 거듭 물어볼 필요가 없을 만큼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만큼 터가 넓다.


윤씨네가 처음부터 이 집에 살았던 것은 아니다. 윤 씨 원중은 찌그러져 가는 방 두 칸 오두막집에 홀어머니와 나이 어린 동생 명중과 함께 살고 있었다. 식구가 단출하다는 말만 듣고 혼사를 결정한 아버지 뜻에 따라 가을 단풍이 절정일 때 옥순이 원중에게 시집을 왔다. 처자가 마을 초입 여장군처럼 키 크고 떡대가 좋아 종일 일하고도 지친 기색없이 저녁상을 차릴만한 강단이 있어 보였다. 게다가 자손 걱정은 안 해도 될 뒤태였다.


" 중매쟁이 말이 우리 메느리가 안사돈을 탁여서 궁댕이가 안반짝 맹키로 푹 퍼진 것이 순풍순풍 아그는 잘 낳것다고 해 쌌더만. 산고로 죽네사네 헐 일 없시믄 됐지."


시어머니가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다녔다. 내장사 구경 한 번 다녀온 걸로 혼례식을 대신하고 신방을 차렸다. 눈, 코, 입이 따로따로 당장 야반도주할 모양으로 어설프게 들어앉아서 이쁘다고 말할 만한 구석은 한 군데도 없었다. 그래도 정이라는 것이 마음먹은 대로 생겨나는 것을 보면 신통하고 고마웠다. 내 식구라고 생각하니 원중은 들일을 하다가도 색시가 삼삼하게 떠올랐다. 생긴 대로 성질이 사나웠지만 이불속에서는 고분고분 말을 잘 들어 자손 걱정은 남일이 되었다.


옥순은 앉은자리가 따뜻해질 겨를 없이 시집오자마자 품삯 일에 종종거려도 보릿고개 넘기가 빠듯했다. 논 마지기라도 가져보려 안간힘을 썼다. 비탈진 밭뙈기 하나 없다 보니 품꾼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수중에 돈이 좀 잡힌다 싶었다. 그때마다 명중의 뒷바라지와 병든 어머니 탕약재로 나가고 뒤주가 텅 비어가곤 했다. 이렇다 보니 아픈 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겨두고 종일 들판에 나가 있어도 살림은 늘어나지 않았다.


"고등핵교 가리쳐 놨이믄 됐지, 얼매나 더 뒤를 봐줄라고 그런댜? 이제 련님도 밥벌이 헐만헌 나이도 됐응께 언능 군대부터 보내고 제대허믄 바로 구로공단으로 올리보내요."


명중이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자 입암댁은 진작에 품었던 말을 원중에게 꺼냈다.


"어머니가 계신디 그르되겄는가. 어머니랑 의논을 좀 해봐야지."

"아니 이 냥반이... 여적 가르쳐놓은 걸로 됐지 뭔 의논을 헌다요. 한 입이라도 줄어야 논 반필지라도 어찌케 해 볼 거 아니겄어요. 답답헌 양반이네."


결국 밥 먹는 입을 줄여볼 작정으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명중을 해병대에 자원입대 시켰다. 박정희 정부에서 베트남에 국군병력을 파견하겠다고 미국 정부에 제안하고 미국이 이를 승낙했다. 1965년 명중이 배치된 청룡부대가 베트남 캄란에 파병되었다. 파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명중의 전사 소식이 날아들었다. 시어머니는 참척을 당하고 절골지통에 시름시름 앓다 끝내 병을 이겨내지 못했다. 명중의 목숨값으로 나온 보상금은 고스란히 원중의 주머니로 들어왔다. 논부터 장만했다. 식구들 배부르게 먹는 것은 이제 걱정 없었다. 돈이 돈을 부른다고 논을 종자 삼아서 원중은 돈을 불릴만한 것에 손을 대더니 재산이 차차 늘었다. 정부에서 계화도 간척지 제2 방조제를 착공했다는 정보를 서울 사는 사에게 전해 들었다. 일이 술술 잘 풀릴 모양이었는지 술대접 한 번으로 원중은 뒤늦게 간척지 공사에 뛰어들 수 있었다. 계화도를 끊임없이 드나들다 나중에 따로 혼자 방을 얻어 이태를 머물렀다.  거기서 꽤나 큰 몫을 거머쥐었다. 

계화도 사업이 끝나면서 원중은 입암댁이 살던 살림을 정리하여 수리시설이 잘 되어있는 장화리로 터전을 옮겼다. 원중은 장화리의 논, 밭을 사들이고 동네에서 가장 큰 집을 빼앗다시피 손에 넣었다. 그렇게 해서 살게 된 집이 지금의 탱자나무집이다. 장화리 사람들은 듣기 좋게 원중을 윤사장이라 불렀지만 거나하게 막걸리 잔이나 얻어먹을 요량으로 비위를 맞춰주느라 그런 것이었다




탱자나무집에서는 아이를 경이라 불렀다. 경이 하는 꼬락서니가 탐탁지 않았는지 옥순은 말머리마다 '이런 경을 칠'을 먼저 붙이고 시작했다. 자연스레 아이 이름은 경이되었다. 이쁜 이름도 많은데 하필 경이란다. 경이된 아이에게 옥순은 작두 타는 무당이었다. 비속의 영역을 표출하려고 작두를 타는 충격적인 무당과 다를 바 없었다. 무슨 일이든 옥순의 기분 따라 상황이 달라지니 경의 잘못만은 아닌 일에도 길길이 날뛰었다. 날뛰는 옥순은 속세 영역의 사람이 아닌 듯 보였는데 그럴 땐 눈에서 사람을 옭아매는 기이한 빛이 나와 도망치려 해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입에서는 '이런 경을 칠'이 빠지지 않았다. 옆에서 징이라도 쳐야 딱 맞을 상황을 연출해 냈다.


내장산이 지척인 입암에서 살다 시집을 왔다고 동네 사람들이 옥순을 입암댁이라 불렀다. 입암댁은 그 호칭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렵게 살던 시절을 다 잊었는지 탱자나무집 식구들은 동네사람들과  근본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내심 면장 부인이나 읍내 중학교 이사장 부인처럼 누구에게든지 '윤사장부인'호칭을 듣고 싶었다. 기실, 그들에게 돈이라면 뒤처질 것도 없었다. 그러나 호칭 들을 만한 감투가 원중에게 있는 것도 아니요 교양이나 학식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곳간을 열고 덕을 베풀 위인은 더구나 아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품꾼살이 때부터 불러온 호칭을 대놓고 부인으로 바꿔 불러달라 말 못하는 아쉬워했다.

그럴때마다 죽은 자식 귀 모양이 좋았다고 말해 보아야 소용없는 일을


"우리 석환아부지 가문이 파평윤 씨 소정공파 뼈대 있는 집안여. 6.25 난리 통에 피난 내려오니라 금싸라기 땅, 구중궁궐 같은 집 다 놓고 내려왔응게 그라지. 절대 무시 헐 수 없는 가문이랑께."


큰소리를 쳐댔지만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인근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수완이 좋은 입암댁은 사람들을 잘 끌어모았다.  바쁜 농사철에는 어떤 수를 써서라도 백 마지기 농사에 일손이 마르지 않게 일꾼을 부렸다. 일꾼을 부리다 보니 새참, 점심 준비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 많은 일꾼 뒤치다꺼리를 혼자 할 수 없었다.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덤벙인다고 눈코뜰 새 없이 바쁜 시절에 그때마다 부엌일에 놉을 얻어(전라도 사투리. 농촌에서 일할 사람을 얻는다는 뜻) 쓰려니 돈이 아까웠다. 모내기부터 추수철까지 일할 작자를 온갖 사탕발림으로 행랑채에 들여서 일을 부렸다. 그러나 추수가 끝나기 바쁘게 입동즈음에는 야멸차게 행랑채 사람을 쫓아내듯 내보냈다.

근동에 입암댁 소문이 구들장에 불길 스미듯 퍼져나갔다. 이상 행랑살이를 하려는 이가 나서지 않았다. 농사철은 다가오는데 밤낮으로 험하게 부릴 일손을 구하지 못하자 궁여지책으로 어린아이를 데려다 식모로 부릴 작정을 했다. 농사를 한 두 해 하고 말 것은 아니었다. 당장은 어린아이가 추장스러울지 몰라도 이태만 가르치면 얼추 부엌일은 것이라는 속셈이었다.

무슨 일이 생겨도 달려올 부모가 없는 아이, 까끌한 일이 생겨도 책임 운운 안 할 아이, 고아나 다름없어서 야반도주를 없는 아이, 먹고 재워주는 것으로 품삯을 잇댈만한 아이가 제격이었다. 읍내 별다방 천마담에게 봉투를 건네고 소개받았다. 그렇게 들어온 아이가 경이었다.

경이가 탱자나무집에 들어온 지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




돈이면 뭐든 다 될 것 같던 원중과 입암댁에게도 근심이 있었으니 자식 문제였다. 세상 일, 더구나 자식 일이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걸 어쩌겠나. 배우지 못한 설움에 앙갚음하듯 자식들을 줄줄이 대학까지 보내서 한을 풀고자 했다. 원중은 큰 아들 석환을 판검사 만들어 볼 원대한 꿈을 갖고 하숙까지 시켜가며 도청 소재지 강주있는 신흥고등학교에 보냈다. 그러나 묶여있던 망아지는 줄이 풀리자마자 강주 시내를 날뛰었다. 그때부터 노름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밤이면 하숙집을 나와 거리를 배회하고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렸다. 학교에서 결석했다는 연락이 올 때마다 중은 논에 삽을 팽개치고 득달같이 강주로 나갔다. 잡듯이 하숙집 근처를 뒤져 찾아내면 석환은 다방이나 놀음방에 앉아 담배꽁초를 손에 들고 있었다.


"아버지 논 한 필지만 팔아줘요. 공부는 애초에 글러먹었잖아요. 판검사는 아무나 하는 줄 아시나 본데 그건 석민이 시키고요. 난 용제역 쪽에 오토바이 센터나  차려야겠어."


이 따위 말로 원의 애간장을 녹였다.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입암댁은 큰아들 감싸기에 급급해서 금세 들통날 온갖 핑계로 원의 불같은 화에 기름을 들이부었다. 돈으로 하숙집을 도배하고 남을 정도로 뒷바라지를 했건만 졸업장도 못 받을 상황에 놓여있어 원중은 날마다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졸업은 어떻게든 시켜야겠는데 학교에서 정학을 밥 먹듯 당하고 결국 출석일수를 채우지 못했다.


 "석환아부지 그려도 장남인디 고등핵교는 졸업시키야 허지 않겄어요?"

"누가 그걸 몰라서 그려? 맘 같어선 서울대라도 보내고 싶지. 그런디 저 놈이 학교를 안 다닌 걸 어쩌겄어. 벼룩도 낯짝이 있지 선생님을 어찌 찾아가겄냐고"

"아니 그람 윤 씨 가문 장손을 이대로 반거챙이 만들랑가? 이때 돈 쓰야지 은제 쓸라요. 아들 졸업장 맨들라믄 어쩔 수 없응게 낼은 돈 좀 챙겨서 교 교장이랑 이사장양반 좀 만나보랑께요. 돈  싫어 허는 위인 없습디다. 안 줘서 한이지."


원중은 옥순의 마지막 말에 힘을 얻었다. 소금 먹은 놈이 물켠다고 풍남문 근처 고급 요릿집에서 걸판지게 먹여놓고 양복 안주머니에 두둑이 찔러주면 못 이기는 척하고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땅한 감투가 없긴 해도 정 안되면 향토장학금 명목으로 졸업생에게 장학금도 후하게 내놓겠다고 할 작정이었다. 그쯤 되면 석환의 졸업장은 문제도 아닐 터, 원중은 심호흡을 크게 한 후 수화기를 들었다.




고드름이 햇빛에 녹아 슬레이트지붕 처마에 뚝뚝 떨어지는 물소리가 얌전하게 들렸다. 찬바람만 나면 더하는 해소기침에 밤새 잠을 설친 옆집 노인네의 아랫목 졸음을 부르는 한낮이었다.


"경아, 놀자."


 행랑채에 경이를 부르는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써금써금한 부위를 발라낸 물고구마베어 먹으려던 경이가 창호문을 비끗 열었다. 방안으로 살얼음 같은 공기가 앞다투어 들어왔다. 경이는 순간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고드름물 밖으로 격자무늬 빨간 외투에 방울 달린 분홍색 귀달이모자담뿍 쓴 영란이가  눈을 초승달처럼 접고 있었다.


" 경아, 나 이따 읍내 장터 나가서 가방이랑 신발 사기로 했다. 좋겠지? "

"어제 말했잖아. 좋겠네."

"언니 쓰던 거 물려 쓰라고 했는데 내가 싫다고 울었더니 새 걸로 사준댔어."

" 넌 좋겠다. 난 울면 할머니한테 등짝 맞는데."

"경아, 넌 학교 갈 준비 안 하지? 음... 우리 엄마 말이 너 학교 못 갈거라 하던데?"

"왜? 너랑 나이 같은데  왜 못가?"

"으응, 지난번에 이장 아저씨가 이름 쓰여 있는 종이를 줬거든. 근데 그 종이 받아야 학교에 갈 수 있대."

"종이? 그게 뭔데? 너는 받았어?"

"난 받았지. 내 이름 쓰여 있다고 엄마가 보여줬어. 너 그거 못 받았어?"

"모르겠어."

"그 종이 없면 학교 못 가는 거야."


 영란이는 있고 경이는 없는 그 종이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종이 한 장으로 학교를 입학할 수 있다는 것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걸 못 받았다면 이장 아저씨한테 가서 가져오면 되는 게 아니었나. 종이가 없다면 어떻게든 종이를 만들어서라도 영란이처럼 학교에 가고 싶었다. 종이가 집에 왔는지 당장 입암댁에게 물어보고 싶어도 괜한 것을 물어봤다가 이 추운 날 물벼락을 맞을까 봐 무섭다. 그 종이에 대한 생각덩이가 커져갔다.


입암댁은 요즘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날마다 머리에 무명 띠를 묶고 안방에 누워만 다. 겨울 들어서 뻔질나게 드나들던 읍내 미장원에도 안 나간 지 한참이다. 어제도 별정우체국장 부인이 어찌 뜸하냐고 전화가 온걸 독한 고뿔에 걸려 그렇다고 헛기침을 해댔다.


"으째쓰까,  넘사시러서. 강주  고등핵교 진학 헐 땐 공부 잘하는 갑다고 소문났었는디..

이쟈 으째 낯 들고 돌아 댕기까나. 아이고 넘사시러"


이런 말만 되풀이하며 말린 오징어처럼 온종일 방바닥에 납작이 누워있다.

경이는 어쩔 수 없이 약국집에 놀러 간 석영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 집에 가면 학교도 보내주고 이쁜 구두랑 가방도 사준다고 했어.'


은채는 이모의  말을 단 한 번도 잊은 적 없다. 그것처럼 애착 가는 말이 없었다. 행여 그 말을 잊을까 싶어 기억에 덕지덕지 아교풀을 발라놓고 망각에 날아가지 못하도록 단단히 눌러놨다. 다른 말은 다 희미해져도 그 말은 마음속에 깊게 새겨서 절대 닳아지지 않았다.


종이를 받고도 입암댁이 깜빡 잊을 수도 있다. 나중에 얘기하려고 아직 말 안 한 것일 수 있다. 경이는 바자워서 도무지 가만 앉아있을 수 없는 마음을 이렇게 다독였다. 읍내 나가는 영란이가 부러웠다. 영란이는 가방을 사기 전부터 자랑을 했는데 가방을 사고 나면 또 얼마나 자랑을 할지 심술이 났다. 새 가방을 메고 마루에 걸어놓은 거울을 보면서 이리저리 등을 돌려보며 으쓱 댈 영란이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발등을 건너 지르는 끈 달이 빨간 구두를 신고 팔짝팔짝 마당을 뛰면서 자랑할 영란이가 얄미워졌다.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일은 얼마나 신나고 재미있을까. 부러웠다. 어느새 경이는 영란이가 되어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석영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 약국집에 놀러 간 석영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바로 약국집에 가볼까도 생각했지만 그 집에는 셰퍼드라는 송아지만한 개가 다. 지난가을에 방앗간집 개가 쥐약을 먹고 발광하는 것을 본 이후로 큰 개가 있는 곳에서 경이는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다.


"아잇, 하필이면 세빠뜨가 있어서 약국집에 갈 수도 없고 왜 이렇게 안 와? 저녁 군불 지펴야는데."


아직 남아 있는 눈 위에 발자국꽃을 만들며 마당을 서성였다. 발자국꽃이 점차 대문 쪽으로 늘어갔다. 꽃을 너무 많이 만들었나 보다. 발이 시려 감각이 차차 둔해지기 시작했다. 주머니에 넣은 손도 파고드는 찬바람에 자꾸 꿈틀거린다. 종종거리다 대문밖으로 나왔다. 대문 앞은 눈이 모두 녹아서 질퍼덕거렸다. 탱자나무 울타리 밑에 쪼그리고 앉았다. 뉘엿뉘엿 떨어지는 해의 끄트머리를 잡고 해바라기를 하다 보니 울타리 밑 마른 덤불사이로 연한 순이 보였다. 덤불을 살살 헤쳐보았다. 봄까치풀이다. 겨우내 추위와 겨루느라 바깥쪽 잎은 누렇게 바랬지만 안쪽잎은 연초록 꽃망울을 옹동 그려 감싸고 있었다. 눈길 주는 사람에게만 소식을 알리려는 듯 전령사가 거기 있는지 모르게 봄을 준비하고 있었다. 겨울과 봄의 징검다리 같아서 기특했다. 경이는 주변의 덤불을 긁어모아 다시 꼭꼭 덮어주었다. 봄이 멀지 않았는지 해 질 녘 흔들바람이 땅거미 진 대숲에 일어 쑤와아쑤와아 소리가 요란하다. 석영이 돌아올 동네 초입 길에는 빈 바람만 갈길을 잃고 하릴없이 헤매고 있었다.



메주에 핀 곰팡이 같은 얼굴빛을 하고 강주에 나갔던 원중이 돌아왔다. 비틀비틀하다 주저앉을듯한 모습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대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술기운이 잔뜩 올라서 뭉툭한 콧구멍을 벌름벌름 거리며 볼웃음을 짓는다. 자세히 들으니 고래고래 소리는 노래였다.


"고향에 찾아와도 그 사람은 어디 가고 싸늘한 밤바람에 눈물짓는 해변에 달빛에 깨어지는 파도소리 구슬퍼~~~"


세상에 노래는 이것인 줄 아는지 매번 취기 오른 얼굴로 목에 핏대를 세우고 부르는 단곡골이 '사나이 우는 마음'이었다.


"아버지, 술을 왜 이렇게 많이 드셨어? 우리 아버지 기분 좋아 보이네?"

"오호! 우리 딸. 오늘 이 애비 기분이 끝나버려. 이제 다 잘 되얐어. 이 윤원중이가 못하는 일이 없지. 암만. 그럼."

"아버지, 좋은 일 뭐야? 뭐가 잘 됐어?"

"우리 윤 씨 집안 대들보 어디 갔냐, 윤석환! 우리 집 기둥 윤석환 졸업장은 이제 문제 읎어. 하하하."


졸업도 못하게 된걸 간신히 이사장과 뒷거래로 졸업장을 얻게 되었다. 기십만 원을 졸업장학금으로 통 크게 내놓고 그중 일부를 석환이가 수여하도록 부탁도 해놓았다. 판검사는 애초에 글렀고 엇나가는 아들 구슬려서 면서기라도 시켜볼까 하고 오토바이를 졸업 선물로 대령시켜 놓을 심산이다.


다음 날부터 입암댁은 근심거리를 쌀가마에 붙은 바구미 털듯 털어내고 희희낙락하여 미장원에 다시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이거 좀 잡숴보랑께요. 우리 석환이가 이번 졸업식에서 그 거이 뭐이냐, 응 황토장학금을 타게 되어부렀어. 그리서 내가 한 턱 쏘는 거여. 많이들 잡숴요."

"석환엄마, 황토가 아니고 향토 아냐? 향토장학금. 석환이랑 같은 학교 다니는 우리 친정 조카가 그러는데 석환이 졸업이 어렵다던데 아닌가 봐?"  


뇌물을 겁나게 쓰고 간신히 다독여놓은 입암댁 자존심에 별정우체국장 부인이 항아리 깨지는 소리를 했다.


"헹님, 뭔 소리여? 우리 석환이 아부지가 교장슨상님헌티 직접 들은 긴 디. 우리 석환이가 서울로 대핵교를 갈라 혔는디 글씨 이 눔 아가 즈 아부지 혼자 농사일 힘팽긴 다고 고향을 지킨다 안혀요. 어디서 그런 효자가 났는지 참 얼매나 기특 혀요. 그려서 석환아부지가 오토바이 한 대 사주기로 허고 강주 나간 김에 둘러보고 왔당께요. 핵교 졸업식 때 가보믄 알것지."




경이는 애가 탔다. 학교 갈 수 있는 그 종이는 어찌 된 건지 빨리 알고 싶었다. 어젯밤에는 술 취한 윤 씨 때문에 소란스러워 그럴 수 없었고 아침에는 입암댁이 미장원에 갖고 갈 음식 기느라 덩달아 숨 쉴 틈도 없었다. 입암댁 내외가 기분 좋을 때 물어봐야 일을 그르치지 않을 것이니 기다릴 수밖에 없다.

해거름이 다 되도록 입암댁이 돌아오지 않는다. 종이에 대해서는 석영도 알지 못하는 일이다. 그 종이가 취학통지서라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석영과 함께 저녁 설거지를 다 마쳤을 때 입암댁이 돌아왔다.


"시방 뭐 허는 거여? 석영이가 설거지했냐? 아부지 알믄 날베락 날라고 그려? 경이 이년은 뭐혔고 설거지를 석영이가 댜?"

"엄마 아냐. 경이가 다 했는데 내가 물 마시러 나온 거야."

"암만, 그려야지. 주인 부리는 짓거리 허기만 혀봐. 다리 몽댕이를 분질러 놓을 텨."


석영은 안방으로 들어가는 입암댁을 따라 들어가며 물었다.


"엄마, 엊그제 이장 아저씨가 경이 또래들 취학통지서 나눠줬다던데 경이는? "

"뭔 소리 허는거여? 경이가 왜 그걸 받는댜? 그건 핵교 갈 애기들이나 필요헌 것이지."

"경이도 여덟 살이잖아. 영란이도 받았다는데 경이 올해 학교 안 가?"

"경이 그 쪼매난 모지리가 핵교나 댕기게 생겼냐? 코 찔찔에 멍충이라 올 해 핵교 못 가. 더 묵혀야지."

"그럼 내년에 보내려고?"

" 아이고, 엄니 고된께 그만 건너가그라. 쓸데없는디 참견 말고."


대청마루에 앉아 안방 얘기를 모두 들은 경이는 눈 한 번 껌벅이면 주르르 흘러내릴 만큼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얼른 마루 미닫이 문을 닫고 창고방으로 왔다. 오늘따라 초저녁 군불을 넣지 못해서 방이 언 논바닥처럼 차갑다. 이불을 담쏙 뒤집어썼다. 서럽고 야속했다. 영란이처럼 울고 떼를 쓸 수도 없다. 그래봤자 얻는 건 대나무 뿌리 회초리가 온몸에서 사정없이 춤을 추는 일뿐이니까. 영란의 떼쓰는 울음과 경이의 울음은 그 간극이 천지 차이다. 영란의 울음은 엄마의 사랑을 끄집어내는 것이었고 경이의 울음은 고달픈 식모살이 설움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그간 온갖 구박에도 학교 다니고 싶은 마음으로 이태를 참았는데 한 순간 학교의 꿈이 우르르 산사태로 변했다.


'이모는 욕하고 때리긴 했어도 거짓말은 안 하는데... 여기 살면 정말 학교 보내주고 구두도 사준다고 했는데'


어린 속내로도 약속을 안 지키는 건 누군지 것 같았다. 천산지산한 입암댁의 말본새를 떠올렸다. 입암댁 말대로라면 코를 찔찔 안 하고 키가 조금 더 커야 학교에 보내주겠다는 말이다. 영란이는 경이보다 키가 더 작은데 학교에 갈 종이를 받았다. 입암댁 말이 미덥지가 않고 억울했다. 그렇다고 영란이 키가 더 작다고 말했다간 욕지거리만 듣고 씨알도 안 먹힐게 뻔하다. 게다가 멍텅구리에게 학교는 가당치 않고 똑똑해야만 갈 수 있는 곳인데 뭘 해야 그리 되는지 방법을 알지 못했다. 감기 콧물은 다 말라가니 그건 문제없다. 키를 더 키우면 되겠다. 밥을 많이 먹어야 키가 클 텐데 늘 부족한 밥이 문제다. 밥 양이 적어 늘 허기진다. 말라비틀어진 고구마라도 입암댁이 인심 좋게 내주면 좋으련만. 이 궁리 저 궁리 이불 뒤집어쓰고 생각하다가 대나무 언덕배기에 있는 배추밭이 떠올랐다. 마른 삭정이 긁으러 갈 때 보니 눈 녹은 양지쪽 밭에 봄동배추가 보였었다. 그거라도 캐러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뭐든 먹을 만한 게 있는지 찾아봐야 했다. 겨울채비 때 순자네가 새 이엉을 엮어 지붕갈이를 하던데 거기서 벗겨낸 묵은 지붕이 아직 남아있는지 마음이 급해졌다. 썩은 볏짚 안에서 가끔 굼벵이가 꿈틀대는 걸 봤는데 그거라도 구워 먹을 작정이다.




며칠 후 석환의 졸업식 날이다. 석환은 입암댁 말대로 졸업식장에서 윤 씨가 뇌물과 함께 내놓은 향토장학금을 탔다. 장거리 3년 통학의 노고를 치하하는 장학금으로 집이 가장 먼 학생에게 주는 장학금이라고 했다. 졸업생 중 가장 먼 거리에 사는 학생이 누구인지는 알 필요도 없이 석환이 받았다.


졸업식 전날에 석환이 기다리던 오토바이가 탱자나무집 행랑채 한 칸에 위풍당당 세워져 있었다. 윤 씨는 석환에게 오토바이를 사 주는 조건으로 3월부터 면서기 밑에서 일을 배우는 것으로 다짐을 받아놓았다. 석환은 마뜩잖아했으나 오토바이가 탐나 울며 겨자먹기로 대답했다.

졸업식날 석환은 친구들에게 자랑할 요량으로 용제에서 강주까지 오토바이를 몰고 가겠다고 새벽 댓바람부터 야단이었다. 윤 씨 부부도 자식 이기는 부모는 아닌지라 술 마시고 오토바이를 타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결국 허락했다. 석환이 동도 트기 전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로 먼저 출발했다.

졸업식이 끝나고 입암댁과 윤 씨는 장학금을 탄 석환의 모습에 흡족해서 졸업장을 품에 안고 용제로 돌아왔다. 석환은 아버지 윤 씨의 오토바이 걱정 따위는 훅 불면 꺼지는 성냥불처럼 여겼다. 친구들과 어울려 통 크게 영흥관으로 가서 백주 대낮부터 술을 잔뜩 마셨다.

그날 밤 석환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윤 씨와 입암댁이 대청마루에 환하게 불을 켜놓고 개 짖는 소리만 들려도 안방문을 뛰쳐나가곤 했다. 벌써 새벽을 향하고 있었다. 입암댁이 마른 입을 적시려고 자리끼를 한 모금 마셨던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윤 씨는 도립강주의료원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미친 듯이 날뛰었다.

오토바이로 밤길을 달리다 천변을 향해 날아든 석환은 뒤늦게 발견되었다. 가장자리 물없는 곳에 떨어져 목숨을 건진 것이 기적이라고 했다. 그 사고로 영영 오른쪽 다리를 절뚝이게 되었다.


경이가 여덟 살 되던 해 일어난 일들이었다. 그때부터 매 해마다 지리멸렬한 학교 입학 몸부림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경이는 굼벵이와 봄동 배추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모두 학교에 다니는데 구정물통에 손 넣고 학교 가는 친구들이나 바라보고 싶지 않았다. 해가 갈수록 어떻게든 배워야겠다고 온갖 궁리로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경이에게 용제에서의 입학은 끝내 이룰 수 없는 환상이고 잡을 수 없는 오로라였음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대문사진 이미지 출처 - 한국저작권위원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