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All-S
여고시절에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즐겨 들었다. 깊어지는 가을밤에 격자문양의 이중창문을 살짝 열어두면 달빛을 타고 미끄러지듯 풀벌레 소리가 방 안으로 쏟아지곤 했다. 체온으로 데워진 이불의 따스한 감촉과 방안을 서늘하게 맴돌던 밤공기가 불협화음처럼 마주치는 그 경계를 꽤나 즐겼다.
기껏해야 일 년에 한두 번 길에서 마주쳤을까. 마주쳤다 한들 눈인사도 나누지 못한 사이였는걸. 국민학교 동창을 짝사랑하던 마음은 시작도 없이 혼자 그렇게 5년 반 남짓한 시간들을 열여덟 여름과 함께 쫑내버렸다. 아무 걱정도 없던 그 시절에 괜히 그 녀석 얼굴이라도 떠올려야 할 것 같은 그런 밤.
어쩐지 마음 한 구석 알싸하던 기운이 스멀스멀 코끝까지 매캐하게 올라오던 그때 나를 캡슐처럼 에워싸던 노래는 별밤지기 이문세 오빠의 노래들이었다.
한창 공부에 열중해야 할 2학년 여고생은 손만 뻗으면 닿을 머리맡에 교과서나 참고서 대신 라디오를 두었다. 달팽이 더듬이처럼 긴 안테나를 의기양양하게 높인 빨간 스테레오 라디오. 매일 밤 라디오에서 흐르는 노래들은 그 시절의 꿈이었고 이루지 못한 짝사랑이었고 먼 세계로 띄우는 연서였다.
독특한 동아리가 있다. 라디오 애청자 모임이다.
멤버 모두 평일 아침 7시부터 8시까지 진행되는 라디오 복음 방송 지사에서 송출(91.1 MHZ)하는 방송을 듣다가 번개모임이 한 번 있었고 이후 오프라인 모임으로 이어졌다. 유튜브 보이는 라디오 방송 댓글창에서 소통하던 우리는 오프라인 첫 모임을 겨울이 시작되던 12월 초에 했다. 그 뒤로 매일 아침 댓글창에서 안부를 묻고 치열하게 소통했다. 단톡방은 매일 밤늦도록 뜨거웠다.
라디오 듣는 풍경은 제각각 다르다.
출근길에 이동하면서, 아침 식탁을 차리면서, 꽃단장을 하면서, 침대 이불속에서, 사업장에 도착해 청소를 하면서.
상황은 제각각 달랐지만 방송엔 모두 진심이었다.
14명 멤버 직업이 모두 다르다. 나이는 89학번부터 막내 00학번까지. 그 중심에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방송 아나운서 겸 프로듀서 B가 있다. 그는 아침마다 세 시간에 걸쳐 정갈하고 따뜻한 아침밥을 차려낸다. 그러면 애청자들은 그의 밥상을 유튜브 보이는 라디오 방송으로 맛나게 먹으며 하루의 에너지를 가득 충전한다. 모임의 목적은 B가 진행하는 프로그램 및 방송지사 제반 행사를 지원하고 더 나아가 지역사회를 섬기는 것이다. 그렇게 B를 구심점으로 라디오애청자 모임이 결성되었다.
멤버 각자 소속된 교회는 제각각 다르고 직분도 달랐지만 복음방송을 평일 아침마다 듣고 단톡방에서 일상의 사소한 일까지도 나누며 서로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 요즘 Gen-Z 세대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뉘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 세어 볼 친밀감으로 멤버들이 뭉쳤다.
멤버 중 이름 세 글자가 모두 시옷 자음으로 시작되는 All - S 이야기를 하려 한다.
S는 40대 후반의 남성인데 큰 눈을 휘둥그레 뜨고 웃는 모습이 소년 같다. 그의 입술은 노상 노란 스마일 스티커처럼 웃고 있는데 표정으로 보아하니 어릴 때 장난꾸러기라는 말을 들었을 듯한 분이다. 여전히 장난을 좋아하고 재치 있는 선한 분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조곤조곤 차분하게 말하고 상대방의 얘기를 충분히 들어준다. 멤버 중 S와 동갑 나기가 있는데 그녀 생일이 두 달쯤 빠르다고 대뜸 '누나' 호칭을 불쑥 내놓는 소탈하고 다정다감한 분이다. 그의 살포시 짓는 웃음 앞에서, 장난기 많은 웃음 앞에서, 남의 이야기를 내 것처럼 공감하며 박장대소하는 웃음 앞에서 어느 누구도 행복 바이러스에 전염되지 않고는 못 배긴다.
그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 이웃도시인 도청소재지 이비인후과 원장으로 있다. 공식모임이 아니면 오프라인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생활반경이다. 입원실이 있는 이비인후과는 규모가 제법 크고 네 명의 원장이 공동운영한다. 네 개의 진료실 중 유독 그의 진료실 대기환자는 계절마다 문전성시를 이룬다.
가끔 그의 얼굴을 볼 겸 일부러 시간을 내서 그의 진료를 받으려 접수하다 보면 한산한 진료실의 몇 곱절이나 대기인원이 많은걸 여실히 체감한다. 이러한 이유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그의 자상한 마음씀과 웃는 인상도 한 몫하지 않을까 한다.
한 번은 관리하기 쉬운 작은 화분을 창가에 두고 보라고 가져갔는데 창문이 없어 당황했다. 진료실마다 창문이 없는지 물었다. 가장 좁고 창문이 없는 곳을 자신의 것으로 선택했단다.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선택했어도 상황은 마음과 하나 되지 못할 때가 있다. 밀려드는 환자를 진찰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올 때가 있다고 한다. 그럴 때 창 밖 한 번 바라보고 심호흡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니 진료실 앞 복도를 왕복으로 여러 번 오가서 답답함을 해소한다고 특유의 미소년 웃음을 짓는다.
좋은 마음을 변치않게 품는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랴. 더구나 매일 아픈 사람들의 호소를 듣는 직업이니.
복도를 서성이며 풀어내는 그의 발걸음마저 아름답게 보인다.
S는 한국누가회 소속 멤버이다. 자신이 온-오프라인으로 어떤 선행을 하는지 전혀 말하지 않는다. 침묵해도 그의 선한 향기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널리 오래 퍼진다.
유독 측은지심과 눈물이 많아 진료실에서 자주 운다. 진료실에는 늘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대부분은 가스펠과 라디오 방송이다. 방송 내용에는 어찌할 바 모르는 아픈 사연 소개와 마음을 모아 함께 기원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프로그램을 청취하다 너무 많이 울어서 진료를 중단하는 일이 잦다고 한다. 그는 심장이 뜨거운 최고 의사다. 그의 심장은 인정(仁情)으로 가득 차서 살짝 터치만 해도 뜨거운 눈물이 쏟아지는 댐과 같다. 그의 눈물은 약한 자로부터 비롯되지만 큰 힘을 가진다. 그의 주머니는 항상 그런 곳을 향해 열린다. 누가 그를 눈물 많은 연약한 사람이라고 하겠나. 내가 아는 그는 약한 것을 높여주는 최고의 강자이다.
오프라인 모임으로 그를 첫대면하게 된 지 3주쯤 지나 성탄절이 다가왔다.
밤새 눈이 소복이 내렸다가 아침 햇살이 쨍하게 비치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단톡방에는 멤버들이 섬기는 지교회 성탄 풍경 사진과 동영상을 품은 이야기들이 업로드되었다. 나도 호기롭게 교회에서 나눠준 가래떡 네 가닥이 일회용기에 포장된 성탄선물 사진을 올렸다. 교회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햇살은 비쳤지만 내린 눈으로 길이 미끄러웠다.
근처 프랜차이즈 커피집에 들렀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라서 그런지 매장이 분주했다. 핸드폰을 열어 남아있는 디저트 쿠폰으로 조각케이크 몇 개와 음료를 픽업했다. 인스턴트 사골국물 봉지를 쭈욱 뜯어 소고기 없는 떡국으로 간단히 점심을 먹고 픽업한 디저트로 딸과 성탄 분위기를 좀 냈다. 소소하게 성탄을 즐겼다고 소식을 단톡방에 올린 후 뒹굴뒹굴 여유 있는 오후를 보낼 참이었다.
오후 두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같은 지역에 사는 멤버 J에게 전화가 왔다. S가 20분쯤 후 도착할 거니 이파트 후문 쪽 커피집으로 잠깐 나오라는 것이었다. 눈길 아니더라도 50분 정도의 거리였다.
깜짝 놀랐다. 예정에도 없는 외출, 게다가 화이트 크리스마스 아닌가. 성탄절 예배 후 가족끼리 근사한 식사를 하고 영화나 공연이라도 즐겨야 마땅한 날. 남편의 계획 없는 외출에 그와 성향이 정 반대인 아내분의 곱지 않았을 시선을 어찌하고 왔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의 아내분은 그의 적극적인 교회활동이나 우리 모임 활동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걸 잘 알기에 불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J가 남편과 함께 와 있었다.
"J 씨, 갑자기 S가 여길 오신다니 무슨 일이에요? 가족과 함께 할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마나님은 어쩌고."
"언니가 단톡방에 올린 사진을 보자마자 울컥했대요. 그래서 위로해 주러 온다는 거예요."
S는 그런 분이었다. 측은지심과 공감의 대왕.
성탄절에 라이언은 학생군사학교 동계훈련 준비하느라 서울에 있는 상태였고 딸과 단 둘이 쓸쓸하게 보낼 성탄절을 안타깝게 여겼다. 게다가 다른 멤버들의 화려한 성탄선물 사진 사이에서 풀 죽은듯한 가래떡팩이 S의 마음에 결정타를 날린 것.
그는 성탄예배가 끝나고 가족에게 양해를 구한 후 식사도 하지 못한 채 바로 선물매장으로 갔던 것이다. 스틱향수세트를 준비해서 눈길을 달려 불임부부인 J와 나를 위로했다. 누나들 보러 왔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말이다.
그는 남들에게 잘 공개하지 않는 이야기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주었다.
시골학생인 그가 부모님을 전도하기 위한 약속으로 좋은 성적을 올리겠다 결심했던 일, 결국 모의고사 전국 6위를 달성, 약속대로 부모님께서 신앙생활 시작하셨다는 이야기. 건축가가 되고 싶어 연세대 건축학과에 입학했지만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아 자퇴한 후 다음 해 의과대학에 진학한 이야기. 중 3 때 벌초하시다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이야기. 나를 보면 그때 홀로 되어 3남매를 키우신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면서 끝내 눈물을 보였다. 위로 같은 그의 이야기는 우연히 발견한 보석 같았다. 점심도 굶고 먼 길을 달려온 그가 풀어놓는 뜻밖의 이야기에 우린 모두 아픈 보따리를 꺼냈다. 커피집 한 구석이 눈물로 젖어들었다.
빈 속에 홍차 한 잔을 마시고 S는 기다리는 가족을 향해 서둘러 일어섰다. 그의 뒷모습이 그렇게 든든할 수 없었다.
나는 남녀 가리지 않고 눈물 많은 사람을 좋아한다. 꺼이꺼이 부둥켜안고 우는 사람도 좋고 찔끔, 울컥해서 눈이 벌게지는 사람도 좋다. 눈물을 참지 않고 흘리는 사람이 좋다. 눈물의 힘을 잘 알고 또 내가 울보이기도 하기에 눈물 많은 사람에게 마음 실타래가 풀린다. 게다가 재미있고 눈물 많은 사람은 더 좋아한다. 바로 S와 같은 사람.
지천명(知天命)이 가까운 나이에 자주 운다는 것은 모진 세파에도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있지 않고 몽글몽글 부드럽다는 말이다. 촉촉하고 부드럽게 밭갈이해서 무엇을 뿌려도 싹을 틔울 수 있는 마음.
어쩌면 세상을 따스하게 움직이는 힘은 인정(仁情) 많은 사람에게서 비롯되는 것 같다. 뭐든 저장하기 딱 좋게 내리쬐는 부드러운 가을볕 같은 사람.
내가 속한 세상에서는 그렇다.
지난 월요일(27일)은 그의 생일이었다.
축하의 마음을 전할 선물로 교보문고에 들러 이웃작가님 책 두 권을 모셔왔다.
덧)
대문사진은 그 해 성탄절에 눈길을 헤치고 달려온 그 분에게 받은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