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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핸드폰을 물려받았나

쐐기벌레 조심하세요.

by 라이테

갤 s20폰은 작동도 잘 되었고 수없이 떨어뜨렸어도 고장 한 번 없이 사용하던 것이다. 매번 삼성 갤럭시 시리즈를 구매하는데

"삼성이 핸드폰은 정말 견고하게 잘 만들어."

감탄하며 사용했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 갑작스러운 강추위가 몰아쳤고 오랜 실외활동으로 곱아진 손에서 벗어난 폰은 보도블록 위에 떨어지고 말았다.

아뿔싸. 왼쪽 하단 모서리가 파손되었다. 거기서 시작한 세 개의 실금이 나선형을 그리며 액정의 1/3 지점 높이로 퍼져 나갔다. 새 제품으로 구입해서 꼬박 5년을 썼으니 쓸 만큼 썼다. 언제 고장 날지 모르는 폰을 액정교체 하자니 고민이 되었다. 액정교체에 드는 비용도 상당해서 차라리 새 폰으로 바꾸라고 아들이 권유했다.


새 폰으로 쉽사리 바꾸지 못했다. 남편이 마지막으로 사용하던 폰이었다. 투병 중 최신형으로 구입했지만 병원, 집, 병원, 집, 호스피스병원만 맴돌았던 4개월 남짓 남편이 사용할 일은 거의 없었다. 당시 나는 갤 s6을, 아들은 갤 s8을 사용하던 때였다.

이후 남편폰을 물려받는 문제로 아들과 엄마가 실랑이를 벌였다.

"엄마 폰 기종이 더 구리니까 엄마가 좋은 걸 써요."

아들이 극구 사양하는 걸 등 떠밀고 나는 아들폰을 물려받았다. 아들은 물려받은 최신폰으로 수시접수한 대학교를 오가며 1, 2차 시험을 치렀다. 서울 오가는 기차 안에서 교체한 최신폰의 좋은 기능을 이것저것 탐색하느라 아빠 잃은 우울감을 덜어내는 듯했다.


실기시험을 보러 서울 다녀오던 날 핸드폰대리점 앞 버스정류장에서 아들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갑작스러운 아빠의 발병소식, 투병기간이 길지 않아서 오래 준비할 수 없었던 이별, 겹친 고3수험생활의 무거웠던 짐을 막 벗어놓기 시작하던 때였다. 어떤 표정도 드리우지 않았던 아들 얼굴에 밝은 기운이 스며들었다. 정류장 앞 핸드폰대리점 유리창에 붙어있던 광고사진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기종이 같은 핸드폰 광고사진에 검지 손가락을 가리킨 동시에, 다른 손에 쥔 핸드폰을 들어 보이며 엄마를 향해 어깨를 으쓱했다. 함박웃음의 모든 이유가 소유한 최신형 폰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웃음의 마중물이 되었던 것이다.




아들이 다음 학기엔 6인 1실 학군단 기숙사를 벗어나 딱 한 학기만 자취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1교시 수업 없는 날에는 점호 없는 곳에서 자유롭게 기상하고, 끓인 라면과 계란부침, 김치볶음밥을 잘해 먹을 수 있다고 엄마와 누나를 설득했다. 이미 1년 기숙사 생활 후 탈락되어 어쩔 수 없이 원룸생활 3년을 누렸던 딸은 자취가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조목조목 따져가며 맞서고 일어섰다. 게다가 서울 월세가 얼마나 비싼지, 임관 후에 자대발령받으면 얼마든지 혼자서 방을 쓸 수 있다고 설득했다. 두 여자의 반대에 아들이 백기를 들었다.(지금은 아들 부탁 들어주지 않은 걸 후회한다)

최신형 아이폰을 사주는 것으로 자취문제는 자취를 감추었다.

아들이 2년 반을 쓰던 갤 s20폰이 내게로 왔다. 아들이 폰을 교체하면서 쓰던 폰은 늘 내 차지다. 자취의 꿈은 물 건너갔지만 첫 아이폰으로 바꾸면서 아들은 다음 학기 기숙사를 신청했다. 농반진반 드디어 아이폰 대열에 합류했다고 희희낙락 즐거워하면서도 매번 새 폰을 쓰지 못하는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지금 사용하는 핸드폰은 갤 s25. 올 2월 하노이 여행을 하루 앞두고 깨진 폰을 들고 갈 수는 없다고 아들이 성화여서 바꿨다. 드디어 엄마도 새 폰을 사게 되었다고 몹시 즐거워하며 새 폰에 필요한 앱을 깔아주고 사진을 옮겨주었다. 한여름 땡볕과 한겨울 시린 손만 조심하면 앞으로 4년 이상은 너끈히 쓸 것이다.


갤 s8은 시골 아버지께서 잘 사용하신다. 아버지께서 사용하시는 기능은 전화 송수신이 거의 대부분이라 불편함 없다 하신다. 적당한 기종으로 새 폰을 사드리겠다고 하니 낭비라고 필요 없다 하셨다. 사용하던 게 고장 나면 그때 사드리기로 하고 아버지 의견을 존중해 드렸다.

언젠가 주변 지인분들이 인터넷쇼핑을 자랑하셨나 보다. 방법을 물으시기에 데이터 사용가능 요금제로 변경하고 앱 사용방법을 알려드렸다. 그러나 눈이 많이 불편하신 아버지께서 사용하시기엔 무리가 있었다. 물건을 고르는 것이며 결제방식 등 번거롭다 생각하셨는지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말씀하셨다.


갤 s20은 액정하단 모서리에 살짝 실금이 생긴 채로 서랍 속에 넣어두고 가끔씩 꺼내본다.

의정부성모병원에 입원한 남편을 혼자 두고 코로나 검사 때문에 간병하러 바로 들어갈 수 없어 애태우던 일, 가산디지털단지 핸드폰 매장에서 새 폰을 구입하느라 종종거리던 일들도 이제는 색이 바래져 간다.





명절 연휴 잘 보내고 계신가요?

제가 사는 지역은 날마다 비가 끊이지 않았어요. 오늘 아침까지요.


어제는 오후에 잠깐 비가 그쳐서 시골 쪽으로 더 들어가 밤 줍기 다녀왔어요.

시골출신이지만 농사일을 해 본 적 없는 올케언니가 워낙 밤 줍기, 고구마 캐기 이런 일들을 좋아해서 저는 옆에서 장단 맞춰주러 함께 나섰답니다. 사실, 운전자들이 모두 점심으로 반주를 해서 저는 운전기사 노릇하러 간 거였어요. 시골출신이라도 벌레, 모기를 아주 싫어하고 무서워하거든요.(달팽이, 무당벌레, 붕어 이런 거 제외요. ㅎㅎ)

인적이 드문 길가에 밤나무가 서너 그루 있었는데 워낙 크고 높아서 가지가 손에 닿지 않았어요.

옆에 있는 나무의 굵은 나뭇가지를 꺾어 밤나무 가지를 툭툭 쳐서 바닥에 떨어진 것만 주웠어요.

알밤 줍기 재밌더라고요. 밤을 거의 다 주울 때쯤 왼쪽 정강이 부분이 엄청 따끔거리고 아팠어요. 잡풀에 가시가 많아서 가시에 찔렸나 하고 청바지를 걷어올리고 살폈으나 가시는 없고 여전히 따끔해서 팔짝팔짝 뛸 정도였어요. 밤송이 가시가 바지를 뚫고 들어왔나 살펴도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았고요. 맨다리를 살펴보니 군데군데 뭐가 물린 것처럼 부풀어 오르더라고요. 모기소리처럼 앵~~ 하더니 모기에 물린 건지 쐐기벌레에 쏘인 건지. 아마도 쐐기벌레에 쏘인 것 같아요. 모기가 그렇게 아플 리가 없거든요. 밤그늘을 벗어나면서 보니 밤송이보다 쐐기벌레가 더 많더라고요. 밤 주울 생각에 쐐기벌레도 못 보고 눈이 밤에 어두웠던 것이지요. 크록스 신발 구멍으로 벌레가 들어오지 않은 게 다행이었어요.


제 얘기를 들으시던 아버지께서

"지네에 물렸을지도 몰라. 나도 지네 여러 번 물려봤다. 약 발라."

저는 아버지 말씀에 그냥 웃을 수밖에 없었어요. 설마 지네에 물렸을까 싶네요.

아, 내 다리를 누가 물었을까. 발열은 없어요.


작가님, 독자님들도 풀숲에 들어갈 땐 쐐기벌레 조심하세요.

저는 오늘 아들 가을 옷을 정리하고 작가님들 발행글에 댓글을 좀 달았어요.

연재 요일인데 한 주 쉬어갈까 하다가 짧은 이야기 한 편 올립니다.

그러니 댓글 부담은 싸~~ 악 날려버리시길요.


장거리 이동하시는 분들 안전 운행하시고요.

남은 연휴 안온한 시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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