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는 일 년 내내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다섯 살 아래 후배,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다.
"에휴, 내가 요즘 바빠서. 언제 한 번 만나서 밥이랑 먹어야 하는데. 조금만 기다려봐요. 내가 시간 내볼 테니."
처음에는 만나자고 통사정하는 사람 대하는 듯한 말투에 살짝 기분이 야릇했다. S의 스타일을 알게 된 이후에는 개의치 않았다.
존댓말과 반말 사이를 넘나드는 말투는 확실히 친근감을 주는 긍정 효과가 있지만 격에 어긋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안면을 튼 지 얼마 되지 않는 분들에게 무례하다는 뒷소리를 듣기도 한다. 거리낌 없이 활달하고 어려운 사람 없는 성격이라서 그렇다는 것을 그들은 잘 모른다.
키가 많이 작다. 키가 작아서 못할 일은 없다. 주방 개수대 앞에는 이동식 발판이 있어 설거지 할땐 발판에 올라선다. 살림이 반질반질 엄청난 부지런쟁이다.
진정한 멋쟁이는 black & white라고 했던가. 그녀가 가진 옷의 9할은 검정, 나머지는 흰색과 베이지가 차지한다.
S에게는 지름신이 자주 임하는데 대개의 원인은 스트레스다. 최신폰 출시 때마다 민감하게 폰매장으로 달려간다. 그녀의 폰은 언제나 출시 2년을 넘기지 않는 최신 사양인데 폰으로 온라인 거래나 웹서핑은 하지 않는다. 은행 창구 대기의자에 앉아 진득하니 기다리고, 지역 상권을 살리는데 기여하는 오프라인 매장 마니아다.
남편 C는 성실하고 부지런하다. 말수가 적고 수줍음이 많다. 고집이 세다고 S는 푸념하지만 고집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술은 거의 입에 대지 않으니 친구들 모임에 대리기사 역할을 한다.
첫 직장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하고 있다.
솜씨가 얼마나 좋은지 여러 곳에서 두루 나타난다. 계절마다 손수 장아찌를 담근다. 마늘종, 매실, 고추, 두릅... S가 외출한 사이 소리 없이 뚝딱 해놓는다. 단추가 떨어지거나 꿰매야 할 일은 C가 한다.
지금 당장 목공소를 차려도 좋을 만큼 소품을 잘 만들어 낸다. 그의 작품은 내게도 두 점이나 건너왔다. 토치로 그을음을 만들어 문양까지 낸 커다란 좌탁의 견고함이 기성품과 비교할 수 없다.
4형제 중 막내지만 부모님 농사일 도와드리러 주말마다 시골에 간다. S는 이런 남편에게 불만이지만 어느 댁 남편 못지않게 가정일에 적극적이다.
아이들과 아내가 원하면 분위기 맞춰주는 자상한 가장이다. 다정하고 살뜰한 부부다.
세상 부러울 것 없을 부부에게 아픔이 있다.
아들, 딸 두 자녀 모두 장애를 갖고 있다.
아들은 쌍태아였다. 한 아기는 사산아로, 한 아기는 왼쪽 다리에 장애를 입고 태어났다. 혼자서 보행은 가능하지만 굽어진 다리가 여러 번의 수술과 숱한 재활치료에도 여전하다.
아들이 초등학교 시절 사건들이 꽤 많았다. 그때마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팔짝팔짝 날뛰며 분통을 터뜨리는 S를 이런저런 말로 달래느라 옆에서 애를 먹었다. 한 아들을 잃고 한 아들은 장애로 살아가는 엄마의 마음앓이를 짐작이나 할 수 있겠나.
그럼에도 크리스천으로서 관용의 미덕을 잃지 말자고, 그게 결국 이기는 거라고 다독이고 독려했다.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마음을 끝내 도교육지청까지 쫓아가서 해결한 것은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관용 없다고 누가 S를 손가락질하겠는가. 애끓는 부모마음인 것을.
감사하게도 아들은 건강한 마음으로 대인관계도 원만하고 쾌활하다. 특히 엄마를 닮아 누구보다 패션으로 계절을 앞서고 깔끔한 자기 관리를 한다.
아들은 클라리넷을 전공하며 댄디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대학생이 되었다.
딸은 초등 저학년까지 무탈하게 자랐다. 또래보다 더디 자라 키 작은 엄마를 닮아 그런가 싶어 성장호르몬 치료를 고려했다. 3차 병원에서 2박 3일 입원해서 진행하는 검사를 받았다. X염색체 이상이 원인인 **증후군 진단이 내려졌다.
발칵 뒤집혔다. S가 두문불출하지 않았다. 간신히 통화가 되면 울기만 했다. 그 가정을 위해 잠잠히 기도했다. 점차 평정심을 찾아갔다.
성장호르몬 치료에 들어갔지만 적정시기가 늦어 길게 받지는 못했다.
딸은 점점 말수가 줄어들고 인사를 건네도 대답이 없었다. 입가가 짓무르고 뽀얀 피부 군데군데 아토피가 심해졌다. 몸이 힘들어한다는 걸 얼핏 보아도 알 수 있을 만큼 생기가 없고 거칠어졌다.
학교 선생님과 면담을 다녀온 S의 얼굴이 어두웠다.
교회학교 내 담당 부서 학생이었기에 나도 관심을 더 기울였다.
웃음을 서서히 되찾고 예전 모습으로 돌아오기까지 2년쯤 걸렸다.
중학교에 입학했다. 또래들은 교복 위로 제법 가슴도 봉긋해지고 뒷모습만 봐도 중학생티가 났다. 언니 교복 입은 초등학생 같은 딸도 여느 여학생들처럼 올. 영(화장품을 주로 파는 스토어)을 드나들었다. 입술에 립글로스가 반짝였다.
우리 모두 딸의 2차 성징이 오기를 학수고대했지만 어느 누구도 섣불리 묻지 못했다. **증후군을 가진 여자의 경우 저신장과 사춘기 지연-불임이 가장 특징적이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1학년 생활이 다 끝나가던 어느 날 S의 흥분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쌤, 드디어 우리 딸이 초경을 했어."
우리는 전화기 너머 양쪽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S와 함께 울었다.
누구의 초경을 이토록 기다린 적이 있었던가. 내 딸의 초경 때 기쁨에 비할 수 없었다.
이후 불규칙하던 주기를 지나고 안정기에 들어설 즈음 엄청난 출혈로 응급실을 거쳐 입원치료를 받는 상황이 생겼다. 가슴이 철렁하던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제 키는 더 이상 자라지 않고 멈췄다. BTS에 열광하고 1.8리터 텀블러를 늘 손에 쥐고 다니는 여느 여학생들처럼 발랄하다. 배란 조절에 관한 약을 지속적으로 투여하고 있지만 전신거울 앞에서 패션쇼 옷잔치를 벌이는 고2 여고생이다.
그녀는 고백한다.
이 지난한 과정들을 거치면서 S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두 아이의 미래를 근심으로 보면 우울한 상황이다. 그러나 눈앞의 현실을 감사한 마음으로 누리려 노력한다.
그들의 가정은 여전히 화목하고 카톡 프사는 온 가족 이벤트 사진으로 주말마다 업로드된다.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졌다. 계절따라 어김없이 찾아오고 소리없이 사라지는 것들, 때가 되면 자연스레 마주하는 것들에 대한 감사를 잊고 지낸다.
이만해서 다행인 기적을 오늘도 수없이 만나지만 내 마음은 기적과 무관한 사람처럼 살아갈 때가 많다.
거저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들풀 하나도 새끼손톱만 한 꽃을 피우기 위해 앙칼진 동부새에 싹을 내고 지루한 태양볕을 온몸으로 견디었다. 요란하던 꽃잔치가 끝나갈 즈음 여린 풀잎을 달고 새초롬한 꽃을 피웠다.
꽃잎이 작다고 해서 보잘것없다고 말할 수 있으랴. 꽃잔치를 훌쩍 지나 늦었다고 향기가 없는 것이 아니다. 무서리를 뒤집어쓰고 이른 아침 오들오들 떨면서 피는 꽃에 누가 '겨우'라고 낮춰 말할 수 있나.
모든 것이 기적이다.
안개가 뿌연 새벽길을 달려 용케 목적지에 도착한 것도 기적이고 아픈 곳을 치료할 수 있으니 기적 아닌가.
가로막힌 산 앞에서 주저앉아 통곡할 마음도 기적이고 인정머리 없는 세상의 질곡을 등짐처럼 지고 바위산을 오를 여력도 기적이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도착해야 할 곳을 향해 걷는 게 인생 아니겠나.
운전석에 앉았다. 전면유리창에 가득 내린 이슬이 크고 작은 물방울로 맺혔다. 순간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 와이퍼로 한 번 밀면 흔적 없이 사라질 것들이 애틋했다.
단 하루도 기적 아닌 날이 없다. 이만하면 족하다고, 이만해서 다행이라고 토닥인다. 푸석거리는 마음에도 와이퍼로 기적같은 이슬방울을 쓰윽 쓸어내려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