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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계절이 나란할 때

by 라이테

질척였다. 여름이 끈질기게 늦더위를 풀어놓았다. 지겹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추위가 질병인 나는 여름은 견딜만하지 그랬었는데 이번엔 백기투항했다.

8월이 지나려면 한참인데 이상훈 작가님의 사랑 시가 쓰인 9월 탁상용 캘린더를 미리 넘겨보곤 했다.


큰 비 두어 번에 거짓말처럼 더위가 가버렸다. 비가 자주 내렸다. 하루 비, 하루 맑음.

맑은 날 하늘은 어느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도 인도 조드푸르나 모로코 셰프샤우엔 푸른 벽의 도발 같았다. 하늘을 오래 응시하다 거둔 눈은 샘물에 행군 것처럼 개운했다.




예민한 편이다.

새벽 알람을 듣기 위해 협탁에 둔 핸드폰에서 울리는 진동 소리에도 잠이 깬다. 알람을 못 듣고 일어나지 못한 일은 한 번도 없다. 수면을 방해할 일이 근래에 없었다. 어깨까지 이불을 끌어올리게 되는 서늘한 바람에 풀벌레 소리도 새초롬하니 들려오고 근심이 크게 들어앉은 것도 아니었다.


밤이면 살랑이는 바람이 찾아왔고 감미로운 김동률, 김광진, 유재하들이 언제든 스마트폰에 검지손가락만 문질러도 꿈결 같은 세레나데를 불러주었다. 스무스한 재즈가 듣고 싶을 땐 척 맨지오니의 플루겔 혼, 빗소리가 은근한 날엔 이은미언니가 검은 밤을 뚫고 찾아왔다. 젊은 테너 황현한과 이해원 소프라노가 하모니를 이루는 성악곡으로 섣부른 가을 마중을 했다. 마음이 좀 울적할 땐 딱딱하게 굳은 마음밭에 조리개로 물을 살살살 흩뿌리고 조물조물 다정하게 만져주는 CCM으로 영원한 사랑 슈퍼스타를 만났다. 뜨거운 물이 베개로 흐르면서 곤고한 마음이 평온으로 기울어져 가곤 했다.




큰 일 앞에서는 쫄보라서 날 밤을 꼴딱 새운다.

수면유도제를 처방받은 적이 있었다. 그날들이었다. 점차 더 깊은 질병의 수렁으로 빠져드는 그 이 옆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때. 밤새 몽롱하고 낮에도 말끔하지 않은 상태. 먹고 자는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던 때. 막바지 투병하는 제부를 보러 서울에서 내려온 언니 손에 이끌렸다.

"이러다 다 죽을래. 먹고 자야 간병도 하고 뭐든 해. 너만 정신 똑바로 차리면 괜찮아."


수면유도제도 각성상태를 이겨내진 못했다. 효과가 없는 약봉투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온몸으로 버텼다. 음식을 씹고 삼키고 해야 할 턱과 치아와 잇몸이 그 기능보다는 악물고 고통을 꿀꺽 삼키는 일에 지독히 열심이었다. 봄이 원숙하던 끝머리에서 시작해 가을느낌이 제법 나던 그 아침까지 그랬다.




더운 여름을 보내느라 그랬는지 다가오는 가을을 맞느라 노곤했는지 몸에 탈이 났다. 뭔가 삐걱거렸다.

눈에는 결막염이 왔고 치아는 조금 심각했고 급기야 좀 춥다 싶었던 밤이 지나고 다음 날 아침 목소리가 컹컹거렸다. 굳이 원인을 찾아보아도 뾰족한 게 없을 땐 만만한 게 스트레스. 전체적으로 면역력이 떨어졌나 보다. 강원도 심산에 사는 6촌 언니가 풀어놓아 키운 흑염소에 온갖 약재를 넣어서 먹기도 좋게 파우치로 만들어 보냈는데 먹다 중단한 게 그제야 생각났다. 서늘한 바람이 스몄으니 슬슬 다시 먹어야 하나. 약은 도무지 꾸준히가 안된다. 제대로 챙겨 먹는 것도 없이 큰 탈이 안나는 걸 보면 타고났다.


사람마다 고통을 견디는 방법은 다르고 고통총량, 오래 참음 총량도 다 다를 것이다.

그중 급한 건 구강치료였다. 어쩐 일인지 내 몸은 꼭 구강안에서 스트레스를 와작와작 씹어 분해하는지를 모르겠다. 이번에도 치아였다.

그걸 알기에 해마다 스케일링과 잇몸치료는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받는다.

나도 치과가 무섭다. 그러나 탈이 나면 버티지 않고 바로 간다. 그래서 제일 친근한 곳이 또 치과이다. 그만큼 가장 많이 방문한 의료기관이다.


한 사람의 생애 막바지를 함께 버티고 견디는 일은 참 어렵고 아프다. 그 일 이후에 구강이 다 무너졌다. 생니가 뽑히고 임플란트를 두 개나 해 넣었다. 그러고도 한 번 탈이난 구강은 회복이 어려웠다. 해마다 여름이 물러가는 이맘때쯤 '그 일을 잊었소?' 하면서 신호를 보낸다. 참 얄밉다.

내 몸인데 어쩌겠나. 이리저리 최대한 토닥거리며 달래서 남은 날들을 써먹어야지.




쇠머리찰떡이 들어왔다. 교우가 딸 결혼식 마치고 감사하다고 떡을 냈다. 찰떡은 나도 좋아하지만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떡이다. 예배를 마치고 말랑말랑 아직 온기가 남은 떡을 챙겼다. 아버지한테 간다 하니 교우가 자기 몫을 얹어준다. 가는 길에 대형마트에 들러 과일과 과자, 빵을 보탰다. 장바구니가 가득 찼는데 반찬은 한 개도 없어 텅 빈 것 같다.

치과 치료가 여간 성가신 게 아니라서 요즘 시골집에 뜸했다.

벌써 들판의 벼들이 노랗게 익어서 깜짝 놀랐다. 이삭 없는 초록벼를 본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뜸했나 싶었더니 한 달 가까이 사흘에 한 번씩 비가 내렸고 게다가 아들이 집에 온 주말은 아들 뒤치다꺼리 하느라, 급히 들어야 할 온라인 교육에, 치과 치료로 욱신거리는 통증에, 주변 경조사 챙기고 나들이도 한 번. 핑계는 끝도 없이 나온다. 이렇게 무심한 딸이라니.


대문 앞에 주차를 하려는데 벌써 대문간 안쪽 그늘에 주황비닐이 깔리고 이름도 모르는 풀이 누워있다. 아버지가 안 보인다.


"아버지~~ 이?? 아버지~~~~~~이!!!"


아버지가 집 뒤꼍에서 나오신다. 대문간에 누워있는 풀이 손에 또 들려있다.


"아버지, 그거 뭐예요?"

"응, 약초."


영혼 없이 묻는 질문을 간파하셨던지 이름을 안 가르쳐주신다. 그렇지. 이름을 알려주시면 뭐 할 건데.

녹내장으로 눈이 불편하신 거 빼곤 지병이 없으니 '울아버지는 건강하시니까 뭐든 잘 드시면 돼'

하면서 아버지 건강은 겨우 칼슘제와 비타민제에 맡겨놓은 무심한 딸이다. 꾸중하는 사람도 없는데 혼난 얼굴이 된다.


아버지가 돌아 나오시는 뒤꼍으로 갔다. 무화과, 대추, 대봉시가 드문드문 열렸고 돌보지도 않는 은행나무는 다갈다갈 쏟아질 듯하다.

대추나무 아래서 제일 잘 생긴 대추를 골라 손에 쥐었더니


"그거 병들어 못 먹는다."


하신다. 겉이 덜 탱글 하기에 혹시나 싶어 깨물어 보니 속에서 벌레가 나온다. 아버지 나무는 농약을 안쳐서 다 비실비실하다. 약까지 뿌려가며 따먹지는 않겠다는 농부의 생각을 귀차니즘이 아닌 자존감으로 높이 추앙하며 나도 찬성표 한 개.


가을배추는 벌써 자리를 잡았다. 고구마 줄기 걷어낸 자리에는 마늘이 긴 잠에 들어갔단다.

그 옆에 동그란 잎, 노란 꽃.

앗! 결명자다.

후다닥 손으로 코를 쥐고 저 멀리 달아났다.


"아버지 결명자 왜 심었어요?"


지 싫다고 심지 마라 하는 고약한 딸이다.


"물 끓여 먹으려고 심었지."


아차! 결명자가 눈에 좋다는데 눈이 아픈 아버지 생각을 못한 싹수없는 딸이다. 결명자가 싫지만 고맙기는 해서 슬금슬금 다가가 사진 몇 장 찍었다.

텃밭 감독관처럼 한 바퀴 둘러보고 사진 좀 찍고 간식을 꺼냈다.


"아버지, 간식 드시고 하세요."


부추도 손대야 하고 콩깍지도 벗겨야 하고 고추도 따야 하고... 속으로만 생각한다. 외출복 입었다는 핑계로 손에 흙 한번 안 묻히고 대문간을 다시 나온다.


"아버지 저 갈게요."


대답이 없다. 빈 장바구니에 지난번 반찬그릇을 정리하고 차 시동을 켜는데 간식 드시는 줄 알았던 아버지가 대문 밖으로 나오신다. 손에 봉투가 들려있다.


"치과 다닌담서? 입 껄끄런 게 부드러운 거 사 먹어라."


그 말씀 뒤로 **동 어디 어디 식당 전골이 맛있는데 내가 먹어보니 부드럽고.... 이어지는 아버지 말씀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눈물이 핑 돌았다. 아버지 사랑을 고스란히 받았다.


"아버지 독감주사 꼭 맞으세요."


대답대신 엉뚱한 말이 튀어나온다. 풋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었다.

사이드미러로 보니 아버지가 그대로 대문 앞에 서 계신다.

아버지는 딸의 아픔을 헤아리는데 딸은 아버지의 불편함을 헤아리지 못했다.


'아버지, 큰고모처럼 백수는 꼭 채우셔야 해요.'


불효하는 딸은 염체도 없이 세상 효도는 혼자 다 하는 것처럼 중얼거린다.


들판을 가로지르는 길로 방향을 돌렸다.

논에 물이 가득 차 재난지역을 선포하네 마네 하던 일이 무색하게 큰 비에도 용케 들판은 풍요롭다.


엊그제 다시 1년이 보태졌다. 그러느라 몸도 마음도 티를 냈나보다. 지나고 나니 후련하다.


잘 견뎌낸 모든 것들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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