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3 - 삘딩 싸장님 일심합체
양희은 님의 노래 [가을아침]이 딱 맞는 날을 기대했다.
불금이 다 뭐야 하며 내 세상이 아닌 듯 일찍 잠자리에 들고 다음날 가뿐하게 알람 없이 일어나서 좋은 컨디션으로 서늘한 햇살 쨍하게 비치는 창문 열고 기분 좋게 샤워를 시작하는 그런 아침.
두어 달 전부터 날짜를 잡아놓았다.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단다. 기상청 예보는 정확했다.
富欄値(부란치)에서 알게 된 다정하고 사근하고 향내 나는 작가 L이 언니, 언니 했다. 동생이 생긴 기쁨을 소소하게 누렸다. 우린 택도 없이 삘딩을 세우자며 진반농반 독립서점을 꿈꾸는 비공식자매가 되었다. 게다가 B작가까지 합류해서 엄청난 200억 삘딩 댓글놀이를 했다.
L과 브런치 담장을 벗어나 카카오톡으로 소통했다. 발행글에 달린 댓글소통보다 카톡소통이 더 빈번했다. 이 귀여운 동생이 어찌나 살가운지 어느 날엔 하루 세 번쯤 연락한다. 고마웠다. 누가 내 안부를 하루 세 번이나 물어 줄 것인가.
앞다투어 화려한 모습 드러내기 좋아하는 SNS 세상에서 자랑할 수 없는 해프닝들은 딴 세상 이야기인 듯 숨기는 세태인 걸. 이 귀요미는 애완견에게 물린 손가락 사진도, 산책하다 삐끗해서 붕대를 감고 있는 발 사진도, 빼어난 풍경도, 세컨드하우스 정원에서 뽑혀 나뒹구는 풀들도 죄다 알려줬다. 감출 게 없고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마치 적적한 할머니에게 손주가 생겨 바쁘고 생기 있고 즐거운 날들 같았다.
내가 사는 지역 국립박물관 탐방하러 L이 왔다. 주일이라 교회에서 바쁜 날이었다. 건네줄 게 있으니 잠깐만 보자 했다.
세상에나. 지나버린 언니 생일을 기어코 챙긴다고 좋은 화장품에 프릴 달린 앞치마와 이것저것 다정한 손길이 쇼핑백 안에 가득했다.
박물관 앞에서 겨우 10분 정도 감질나게 만났다.
온종일 만나서 놀자고 날을 잡았다.
너무 기뻐서 B작가에게 L만나기로 한 걸 자랑질 했다. 마침 여름휴가를 미뤄뒀는데 마나님 고향이 서쪽지방 어디라며 고향도 방문할 겸 우릴 만나러 지방까지 내려오신다 했다. 그리하여 우리가 선택한 장소는 곡성. 그곳 뚝방마켓에서 만나 놀기로 했다. L과 B에게 허락을 얻어 단톡방을 열었다.
작년에 혼자 걸었던 섬진강 둘레길이 욕심났다. 이른 시간 기차표를 끊고 그들과 합류하기 전에 혼자 한 시간 정도 일부구간 침실습지까지 걸어 환경해설사의 해설을 좀 들어 볼 생각이었다. 작년 가을에 받아놓은 명함에서 그의 밴드를 찾아 댓글을 남겨두었다. 그날 그 시간에 해설 약속이 성사되었다.
예보가 비였다. 열흘 넘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예보를 체크하며 기다렸지만 날씨는 일방통행이었다.
전국적으로 큰 비가 예보되어 둘레길 걷기를 포기했다. 섬진은 큰 비에 약해서 순식간에 물이 불어나고 다리가 잠기는 강이다. 섬진강 인근 지반이 약하단다. 놀러 갔다가 혼자 강물에 떠내려갈 순 없다. 환경해설사 약속을 취소하고 기차표를 변경했다. 가이드 겸 운전기사를 얼떨결에 맡게 된 L이 변경된 계획을 단톡방에 올렸다. 우린 모두 뭐든지 OK였다. 무조건 L을 따르리라. 그래도 '당일에 날씨가 달라질 수 있을지 몰라' 하는 기대는 놓지 않았다.
새벽 알람 없이 눈이 떠졌다. 창 밖이 환했다 어두워졌다 번쩍번쩍 빗소리가 요란했다.
아, 뚝방마켓은 틀렸구나. 아쉬웠다.
새 우산을 꺼냈다. 연재북 프롤로그를 읽자마자 '그 따위 허술한 우양산은 내다 버려' 하며 L이 보내온 구름그림이 예쁜 양면우산이다.
집을 나서는데 비가 그쳤고 하늘에 먹구름이 서서히 물러가는 게 아닌가. 기차역엔 우산 없는 승객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곡성의 날씨도 이랬으면.
무선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창밖 풍경을 바라보다 브런치 앱을 열어 친애하는 시인님께 기차 타고 여행 간다 자랑댓글을 올렸다. 시즌 1-브스삼남매 우리 포도송이 작가님의 댓글이 자꾸 아른거렸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내 기필코 우리 둘째를 만나러 서울에 상경하리라.
10시 10분. 곡성역에 도착하니 플랫폼으로 [라붕이 투어] 깃발을 들고 L과 B부부까지 마중을 나와 환호성을 질렀다. 우린 그렇게 시즌 3 - 삘딩 싸장님 일심합체를 이루었다.
우리의 발이 되어 줄 리무진 레고를 타고 가차마을 근처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카페로 이동해서 비가 긋기를 기다렸다.
한 시간쯤 지나니 정말 비가 긋고 구름이 산 머리에서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학교 다닐 때도 안 했던 예습을 유튜브 링크까지 올려주며 숙제검사 하겠다는 L의 애교 듬뿍 엄포에 윤스테이 -소개 편 정주행 두 번이나 한 구례 쌍산재(해주 오 씨 고택)로 이동했다. 비는 보슬보슬 내리고 대청마루는 눅눅했지만 고가옥에서 뿜어져 나오는 옛 물건의 냄새는 아련하니 마음의 파동을 조율했다. 나를 뺀 세 사람의 톡톡 튀는 말재간 케미가 지리산 자락에 포진한 피톤치드만큼 상쾌했다.
한 우산을 쓰고, 미끄러운 돌계단을 다정히 손 잡고 오르는 부부의 뒷모습이 찡하게 고왔다.
부부의 뒷모습이 그렇지 않은가. 함께 견디며 살아왔을 시간들. 누구보다 더 깊게 이해하고 속속들이 아는 속내들. 복장 터지는 순간들을 지나 모서리는 닳아지고 서릿발같이 선명했던 삶의 지문들은 어느새 수굿해졌다. 그 요소들이 뭉뚱 그려진 채 뒷모습으로 뿜어져 나오는 한 폭의 인생스케치. 앞으로 만만치 않은 날들이 오더라도 지금처럼 손을 맞잡고 어깨를 어긋맞게 안으며 우산을 상대방 쪽으로 기울이는 애잔하고도 측은한 마음이라면 걸어볼 만하겠다.
내가 오랫동안 꿈꿨던 부부 모습이 연출되고 있는 뒤편에서 조용히 핸드폰을 꺼냈다. 사진 한 장면으로 그들의 모습을 멈춤 했다.
독채로서의 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나무가 사면으로 빽빽해서 바람이 드나들만한 숨구멍이 좀 부족하다 싶었다. 여름을 지나면서 자유롭게 뻗어나간 나무와 풀들이 주인 손을 타지 못해 우거졌다.
언젠가 글친구가 숙제로 내줬던 차경(借景)과 시경(詩景)이 떠올랐다. 산수정원엔 담장이란 게 있을 수 없고 별서에는 낮거나 터져서 풍경과 바람과 물과 소리가 드나들어야 한단다. 지리산을 든든하게 뒷배로 하여 들어앉았으니 앞이 툭 터졌으면 좋으련만 서로 어긋나게 자리 잡은 한 옥 세 채가 끼고 있는 정원에 는개(안개비보다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는 비)는 하염없이 이어졌다. 끌어올려도 계속 내려오는 긴팔 소매와 목으로 흘러내린 잔머리카락이 눅눅한 기운에 조금 성가시게 느껴졌다. 살랑살랑 한지 부채로 일으키는 조각보만 한 바람이 못내 아쉬웠다.
대문간의 다닥다닥 열린 대추나무와 대봉시나무의 다정한 인사를 뒤로하고 L이 이끄는 대로 식당으로 향했다.
뽕잎전 메인요리에 나물과 된장찌개로 밥상을 받았다. 시골 출신이고 지방살이하는 내겐 익숙한 밥상을 B마나님께서 몹시 흡족해하셨다.
눈앞에 펼쳐진 산이 모두 지리산자락이라며 여기까지 왔으니 화엄사는 한 번 가봐도 좋겠다는 가이드님의 말씀에 깊게 공감하며 졸래졸래 이끄시는 대로 따랐다. 중학교 수학여행 코스에 있던 곳이라 딱 40년 만에 찾은 곳이다. 그 시절의 사찰도 아니지만 옛 기억이 전~~ 혀 없다.
불자가 아니기에 불심은 없고 산과 절이 이루어내는 절경과 우렁찬 계곡물소리가 온몸을 맑은 기운으로 헹궈주는 듯했다. 절 규모도 엄청 큰 데다 나무며 풀, 꽃, 기와에 핀 이끼까지 눈여겨볼 게 너무 많았다.
L의 무남독녀 태권소녀가 국무총리배 대회에 나갔는데 마침 수상 소식이 날아들었다. 새삥 레고 리무진을 턱 하니 내주고 게다가 도슨트에 상냥하면서 재치 넘치는 입담에 뭐 하나 빠질 게 없는 손님접대에 진작부터 힘을 쏟은 엄마의 갸륵한 맘씨가 하늘을 울렸구나 싶었다.
나이는 나보다 어리지만 L에게서 사람 아끼는 비법을 늘 배우곤 한다. 말로도 행동으로도 그렇다.
산에서 내려와 흙탕물이 엄청 불어난 섬진강변을 거슬러 올라갔다. 벚꽃길로도, 가을 단풍으로도 근사한 드라이브 코스 길이다. 섬진에 올 때마다 자갈이 보이고 작은 모래톱도 보이고 잔잔하고 맑은 물만 보았던지라 가장자리까지 꽉 차서 난간 없는 다리가 잘람잘람 물에 잠길듯한 강은 낯설었다.
똑같은 섬진인데 두 모습이다. 강이라고 별다를 수 있나. 상류에서 거친 물살로 흙을 싣고 오면 그저 잠잠히 받아내고 하류로 흘려보내는 수밖에. 우람한 바위를 만나면 돌아가다가 바위보다 더 큰 물이 되어 다 삼키고 벌건 흙물을 일으켜 강바닥을 숨겨버리는 것을. 강이나 사람이나 매한가지다.
구름다리가 있는 가정역에 도착해서 부부는 증기기차를 타고 L과 나는 레고 리무진을 타고 곡성기차마을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 먼 곳에서 반가운 마음으로 온 글벗과 함께 하는 하루가 이렇게 저물어 간다.
타고 갈 버스와 기차 시간에 맞춰 저녁식사를 설렁탕으로 하고 곡성천 둑길을 산책했다. 비가 내린 날의 저무는 시간이 고즈넉하게 내려앉는다. 이런 낯설고도 한가롭고 조용한 곳에서 노년을 보내고 싶은 바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노년은 병세권이라는데 배우자도 없이 아플 땐 혼자 어쩌려고 가당키나 한 일인가 싶어 들판 건너 우뚝 솟아있는 지리산을 쳐다보았다.
B부부는 시외버스터미널로, 나는 곡성역으로 향했다.
역사 안에까지 들어와서 잠시 앉아 아쉬운 마음의 인사를 나누고 돌아간 우리 L.
L이 막내인데 젤 어른 같았다. 손님 접대는 어른이 아랫사람 챙기듯 하는 거라는 걸 L에게서 배운다.
딸은 직장 동료와 함께 한국컴패션 2025 나눔 콘서트 '꽃서트'에 갔다.
아들은 연속된 훈련과 국군의 날 행사 대비로 이번 주가 아니면 10월에나 올 수 있으니 빗길을 서둘러 아침 7시도 안 되는 시각에 집에 와 있다. 꼭 와야 할 이유가 있었다.
아들을 집에 혼자 두고 온 외출이었다. 딸은 점심값 2만 원을 동생에게 던져주었고 나는 지인에게 받았던 치킨쿠폰으로 미안함을 대신했다. 누나에게 받은 거금(?)으로 기분 좋아진 아들은 엄마의 기차역 배웅과 마중을 흔쾌히 약속했다. 스물넷 청년도 이럴 때 보면 어린애가 맞다. 본인이 큰 턱으로 쏘는 건 생각 안 하고 작게 받는 것에도 마냥 좋아하는 아들. 대책 없는 엄마를 닮은 것 같아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루 종일 밖에 나와있어도 핸드폰이 조용하다. 찾는 사람이 없다. 괜히 민망해서 브런치 앱만 열었다 닫았다 했다.
딸은 동료와 함께하는 일정으로 분주할 것이고 아들은 전날 저녁 전출자 송별회식과 이른 아침 빗길 운전으로 피곤했으니 단잠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아무도 찾지 않아 호젓해서 좋기도 하고 허전하기도 하다. 이 무슨 두 마음인가. 다 컸으니 엄마를 찾을 일이 이제 별로 없다.
주말에 아내가 없으면 집 지키는 댕댕이 신세가 되는 남편 모습 같은 건 우리 집에 애초에 없었다. 남편을 잃고도 크게 허전하지는 않았던 이유다. 부모의 자리에서 감당해야 할 일들은 거의 혼자 해냈으니 크게 흔들릴 일도 없었다. 이제 자잘한 도움은 오히려 엄마인 내가 아이들에게 부탁한다.
비는 그치고 양면구름우산을 곱게 접어들고 플랫폼으로 나섰다. 철로가 휘어지는 저 멀리 지리산이 어둠 속에서 가물가물하다. 읽다가 겁먹고 팽개친 최명희 선생님의 혼불이 생각났다. 한 번 뵌 적도 없는 분, 오래전 타계한 분이 어쩐지 그리워진다. 글친구는 그분 자필 원고 앞에서 눈물이 났다는데 이런 마음이었을까.
기차에 올라탔다. 올 때도 옆자리가 비었더니 갈 때도 옆자리가 비었다. 좋은 자리를 예매하는 재주가 있다. 생각해 보니 섬진을 만나는 길은 항상 옆자리가 비어서 편히 오갔다. 혼자 걷는 길에 익숙해지라는 기운이 몰렸나 피식 웃음이 났다.
종일 혼자 집에 있었을 아들 생각에 핸드폰을 꺼내 가족 단톡방에 들어갔다.
이모티콘 한 개를 고른 후 메시지를 입력했다.
" 내일 예배 끝나고 아빠 성묘 가자. "
남편 기일이 곧 다가온다.
군인 아들은 그날 집에 올 수 없단다.
혼자서도 꿋꿋한 모습을 가끔은 벗고 싶을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