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바늘 뜨개인이 코바늘을 사둬야 하는 이유
뜨개 초보의 고군분투 뜨개 일상
작가소개.
리틀포레스트 같은 삶을 사는 게 소망이었고, 최화정씨 같은 명랑어른이 되는 게 꿈이었는데 그것들에 한 발짝씩 가까워지는 중. 매일 달라지는 계절에 맞춘 작은 미(美)식을 즐기고, 조금씩 나아가는 뜨개에 그 뜻을 두며 살고 있다.
나의 무지를 인정한다.
푸를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 있다고 단언했던 과거의 나는 무지했다. 최소한 그중 일부는 푸르지 않고도 새로 고칠 수 있는 문제들이다. 이번 수업에서 과거에 한참을 지나온 코를 푸르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는 야무진 방법을 배웠다. 코바늘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그러니까 내가 산만하게 이 작품 저 작품 배운 덕에 습득한 기술들을 접목한 완벽한 콜라보레이션 해결책.
대바늘로 뜨는 과정에서 초보가 푸르시오 과제를 맞이하는 지점은 주로 한참 뜨고 나서 특정 면이 고르게 겉뜨기로 떠야야 했음에도 두어 코 안뜨기로 잘못 뜬 것을 확인하는 경우다. 뭐, 역의 경우라도 반대로 뒤짚어 보면 같이 보이니 마찬가지다. 매끈한 표면에서 아주 눈에 거슬리는 티끌 같은 부위를 목도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모든 면이 잘못된 경우는 잘 없다, 늘 겨우 두어 코의 문제다.
지금까지의 나는 ‘에라- 모르겠다’ 하며 몇바퀴를 풀러 다시 뜨고 마는 무식한 방법을 택했다. 나에게 주어진 해결책은 그뿐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날은 왠지 선생님의 확언이 필요했다.
푸르시오! or 푸르지 마시오!
어쩌면 유독 지난하게 동일한 코만 반복되는 목도리라 단 한 줄의 푸르기도 아쉽고 싫었던 참도 있다. 아무튼 선생님의 말씀을 이정표처럼 따를 심산이었다. 제법 독립적인 나도 때론 누군가의 말에 의지하고 싶어질 때가 있으니까.
‘답이 없을까요?’하고 애절하게 쳐다보는 나에게 선생님은 의기양양한 미소를 띠며 코바늘을 꺼내 들었다. 이날 나는 꽈배기가 들어간 목도리를 아주 얇은 캐시미어 실로 3mm 바늘을 이용해 뜨고 있었다. 그녀는 이 굵기에 맞는 얇은 코바늘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다행히도 템빨을 좋아하는 나는 진즉 코바늘 세트를 사뒀다. 이 날을 위해서는 아니었을까? 헤헤.
1. 올이 나간 열(줄)까지 일단 뜨개를 지속한다.
2. 내가 목표하는 올이 있는 열(줄)의 코는 뜨지 않고 바늘에서 살짝 빼낸다.
단, 다른 코들은 놓치지 않고 그대로 바늘에 잘 끼워둔다.
3. 뜨갯감을 양쪽으로 살살 당기면 해당 올이 토도독 한 줄로 내려가며 풀린다.
그때 내가 목표하는 코까지, 또는 이후 1-2코 정도 더 풀어 준다.
4. 이렇게 펼쳐진 상태에서 겉뜨기면 쪽을 내가 보는 면으로 두고 사이즈가 맞는 코바늘을 준비한다.
5. 가장 최하단에 잘 꿰어져 있는 코에 코바늘을 아래(바깥)에서 위(안쪽) 방향으로 넣고 바로 위에 있는 풀려진 실 고리 당겨낸다. 이 방법으로 가장 마지막에 뜨던 윗 코까지 떠낸 뒤, 다시 마지막 코를 바늘에 끼워주면 된다.
내가 배운 팁을 글로 전수해 본다. 누누이 말했듯 뜨개는 글만으로는 잘 와닿지 않는다. [코바늘로 중간 코 수정하기] 등의 키워드로 유튜브에 검색해 보면 조금 더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선생님의 보조 하에, 경탄으로 가득 찬 새로고침을 경험했다. 마음속에 꼭꼭 새겨두려 입으로 종알종알 ‘겉뜨기 쪽에서 코바늘로~’라 되뇌며 뜨개를 이어나갔다. 집에 돌아오고 몇 일이 지나도록 다행히 종전 배운 새로고침 방법을 시도할 기회가 없었다. 비교적 단조로운 도안이라 뜨갯감의 코 모양을 보고 다음 코가 쉽게 예측되기 때문이었다. 신경을 곤두서고 뜨는 날에는 실수가 없었다. 그러다 마침 어제 바로 그 사건이 벌어졌다.
꽈배기 부분을 이루는 코하나가 실 한 부분 올이 낱낱으로 풀려 다른 코에 낑겨 들어가 꿰어져 눈에 거슬리게 된 것이다. 분명 이론으론 숙지가 된 것 같은데 혼자 실행하려니 덜컥 겁이 났다.
지루한 도안이라 무려 3~4주간 지난하게 뜬 뜨갯감이 한순간의 실수로 실뭉치가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그럼, 정말 포기하고 싶어질 것만 같은데 이걸 참았다 수요일 수업까지 기다려볼까, 아니면 내가 직접 해볼까
갈등 X 10회 반복
그 마음을 애써 무시하고 뜬 것도 10단 정도, 곧 다음 꽈배기 꼬기를 해야 할 참이었다. 만약 다음 수업까지 기다리려면 더 뜨지 못하고 그대로 보관한 채 가야 한다. 뜰 것인가, 푸를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그래, 아싸리 오늘 실패해 보자!
참고로 맞춤법 검사기는 내게 ‘아싸리’라는 말 대신 ‘산뜻하게’ 사용을 권했다 한껏 어두워진 거실에 앉아 한 가지만 바라보고 있다 보면 사람이 아싸리 과감해진다. 실패하기에 오늘이 가장 이른 시점이니까 조금 더 많이 뜨기 전 해보자고 결심한다. 원래 이론을 배울 때보다 홀로 실전으로 경험할 때 가장 크게 성장한다. 늘 직접 행하고 실패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였다.
내가 실패하고 나면 선생님도 구해줄 수 없는 문제면 어쩌지?
그 고민도 아주 찰나, 숨을 꾹 참고 한 올 한 올, 아주 신중하게 문제의 부위까지 풀러 나갔다. 푸르면서도 조금씩 후회가 찾아왔다. 누가 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온 몸에 촉각을 세우고 무릎에 놓인 뜨갯감을 쥐어 잡았다. 두어 차례 연장을 바꾸어 가장 얄상한 코바늘을 가지고 대책 없이 풀려진 실 몇 단을 한 올 한 올 어떻게든 꿰어내다 보니 결국 해결됐다.
계속해서 눈에 걸리던 코 하나가 사라지니 마음이 놓였다. 겨우 작은 방법 한 가지를 익히고, 다시금 뜨개로 한 단계 성장했다는 큰 희열이 찾아왔다. 부분적으로 과거의 일을 고치는 방법을 배우니, 꼭 포토샵에서 내가 원하는 부위만 골라 스팟 브러쉬로 톡톡 고쳐낸 것 같았다.
우리의 어제도 코바늘 하나만 있으면 작은 부분 하나하나 고쳐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우스운 생각을 한다. 돌아보니 자꾸만 마음에 밟히는 나의 티끌같은 부분들만 톡톡 지워낼 순 없을까. 그런 바보같은 생각은 금세 지워낸다.
그게 아니라도 뭐, 나는 뜨개의 어제만큼은
새로고침 할 수 있게 되었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