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를 하는 순간, 나만의 무대 시작!
뜨개 초보의 고군분투 뜨개 일상
작가소개.
리틀포레스트 같은 삶을 사는 게 소망이었고, 최화정씨 같은 명랑어른이 되는 게 꿈이었는데 그것들에 한 발짝씩 가까워지는 중. 매일 달라지는 계절에 맞춘 작은 미(美)식을 즐기고, 조금씩 나아가는 뜨개에 그 뜻을 두며 살고 있다.
어떤 대상에 심취해 무아지경으로 하는 상태
이런 상태를 제삼자가 보면 어떤 느낌일까? 이렇게 무언가에 취해 있는 사람을 보면 마치 춤을 추는 걸 보고 있는 것 같다. 속세의 번뇌와 잡음을 잊고 자신만의 리듬에 맞추어 손과 발, 때로는 몸짓을 놀리는 모습이 어떤 예술의 실현으로 보이는 걸까. 이 심취의 대상은 뜨개이기도, 요리이기도, 하다못해 매일 반복되는 엑셀 표를 만드는 모습일 수도 있겠다.
요즘 나에게 가장 경이로운 무희는 무언가를 반복적이고 매우 빠르게 떠내는 사람이다. 손에 익은 디자인을 도안 없이 반복해서 뜨다 보면 자신만의 리듬이 생겨난다. 아주 아주 작고 귀여운 인형 소품을 뜰 때도 마찬가지고, 목도리나 스웨터처럼 제법 부피감이 있는 뜨개감을 뜰 때도 마찬가지다. 어렵지 않아 보여도 이런 리듬감은 하루아침에 툭하고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제법 많은 단련을 거쳐야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대바늘을 앞으로, 또 뒤로 움직이며 나만의 페이스를 찾는 그 순간이 유레카!
이게 춤추듯 유려하게 뜨는 모습이구나
비로소 몸으로 이해하게 된다. 처음 리듬감을 느꼈던 날, 비로소 스스로 ‘뜨개인’ 혹은 ‘뜨개중수인’이 됐다고 생각했다. 때는 아주 늦은 밤이었다. 하도 같은 위치에만 앉아, 엉덩이 모양대로 중앙부가 살짝 꺼진 연회색 소파에 걸터앉아 여느 때처럼 뜨개감을 무릎 위에 펼쳤다. 두런두런 소리만 들어도 적당한 넷플릭스 영상을 하나 틀어두고 뜨개를 해나갔다. 내가 뜨고 있던 목도리는 앞면에서 보면 꼭 격자무늬처럼 보이는데 뒤에선 벌집 모양의 패턴이 형성되는 기가 막힌 모양새를 자랑했다. 다행히도 복잡하고 화려한 생김새와 달리 도안은 8단이 반복되는 형태였는데, 이런 도안 대부분이 공식 안에서 나름의 규칙성을 가진다. ‘겉-안-겉겉’하고 입모양으로 공식을 되뇌다 보면 어느 순간 멜로디처럼 들려온다.
그날 두 번째로 동일한 단을 반복하던 순간, 앞전에 되뇌던 규칙적인 패턴이 내 손과 호응을 하며 리듬감을 만들었다. 손으로 왈츠라도 추는 것처럼 빠르고 규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들려오던 TV 소리가 아득해지며 이 세상에서 뜨개감과 나만 남아 손을 꼭 잡고 춤을 추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전율이 온몸을 타고 흘러 발끝이 찌릿하고 저려왔다. 그날은 꼼짝 않고 4번도 넘게 8단을 떠냈다. 32번의 줄을 오며 가며 신나게 뜬 것이다. 평소 같으면 한 줄 걸러 한번은 발생하던 실수도 없이! 어느새 처음 소파에 앉은 때로부터 1시간 반이나 지나 있었다.
이런 게 무아지경이라는 거구나!
이 세상의 모든 일이 아무 상관이 없는 것 같은 순간이었다. 이 신나는 장단 덕분에 목도리를 얼추 끝냈다. 목도리 도안은 '정해진 길이'가 있다기보단 내가 원하는 길이가 될 때까지 뜬 뒤, 각 목도리 디자인에 맞는 마감 방식으로 끝맺음하면 된다.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목표하던 길이, 그러니까 내 목을 두어 번쯤 뚤뚤 감을 수 있을 만큼 기다란 길이의 8할까지 떠버린 것이다. 뜨개를 하다 보면 늘 이 7-8할쯤 뜬 순간 고비가 오기 마련이다. 나머지를 채우는 게 이전의 길이를 만들어 온 노력보다 더한 집중과 인내를 요구한다. 그런데 이럴 때 뜨개를 즐거운 춤으로 인식하는 비결을 알게 되자 모든 고민이 사라졌다. 마음 같아선 당장 끝내고 싶었지만 시간은 이미 새벽 2시가 된 참이었다. 결국 뜨개감을 소파에 고스란히 둔 채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서둘러 같은 자리에 앉아 목도리를 완성했다.
나는 쉽게 오해받는 생김새와 달리, 제대로 유흥을 즐겨본 적이 없다. 신나게 춤을 추고 즐기는 모습을 보면 늘 부러웠지만 세상 시름을 덜어두고 음악에 몸을 실을 수 있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움직이면 뭐든 삐그덕 대는 듯 보여 엇비슷하게 즐기는 법도 몰랐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정신을 잃고 몸을 맡길 수 있는 자신만의 춤이 필요한 법이다. 성인이 될수록 맨 정신이 아닐 기회가 줄어드니까, 운동이든 뜨개든 나만의 춤을 찾는 게 일상으로부터 날 보호하는 방법이 아닐까. 그러니까 뜨개는 30년이 넘도록 춤출 줄 모르던 내가 선택한 방식의 가무, 아무리 무아지경으로 춰도 세상의 손가락질은커녕 칭찬만 받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오늘은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는 자신만의 춤이 있는지, 당신이 시름도 잊고 부끄러움도 잊고 그저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이 있는지 묻고 싶다. 없다면 어떤 것이어도 좋으니 자신만의 춤을 찾으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어쩌면 당신의 춤도 뜨개일지 모른다는 영업 멘트를 더하며.
작년에 한동안 배우던 테니스를 그만뒀다. 매일 같은 패턴의 서브를 몇 초 단위로 공을 던져대는 기계와 대응하며 치는데도 도통 감이 오질 않았다. 강사님은 자꾸만 ‘춤추듯 움직이세요’, ‘리듬을 타세요’라 쉽게 말했는데 그 리듬감이 나에겐 없었다. 한 손의 무브를 익히면 발목이 고장 난 것처럼 삐그덕 댔고, 발목의 무브를 알았다 싶을 때는 어김없이 손의 리듬을 잊어버렸다. 그러니까 열심히 한다고 해서 모든 대상이 나의 춤이 될 수는 없다. 혹여나만의 춤을 찾아보려는 시도에서 무참히 실패했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다른 대상을 시도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