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와 동반자의 상관관계
뜨개 초보의 고군분투 뜨개 일상
작가소개.
리틀포레스트 같은 삶을 사는 게 소망이었고, 최화정씨 같은 명랑어른이 되는 게 꿈이었는데 그것들에 한 발짝씩 가까워지는 중. 매일 달라지는 계절에 맞춘 작은 미(美)식을 즐기고, 조금씩 나아가는 뜨개에 그 뜻을 두며 살고 있다.
앗, 추워라!
벌써 겨울 비스무리한 날씨가 찾아왔다. 주마다 추위에 대한 감회가 새롭다. 아직도 10월 한바탕인데 10월에만 날씨가 얼마나 자주 바뀐 걸까. 갈수록 중간 없이 혹독한 더위와 추위만 반복될 거라더니 정말인가 보다. 트렌치코트는 입을 엄두도 못 내고 벌써 누빔이 들어간 점퍼를 입고 집을 나섰다.
오늘도 아이 등원까지 마치고 나보다 아침을 일찍 시작한 친구 유진은 수업 시간 전부터 근처 카페에서 책을 읽다 온다고 했다.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유진이만 기다린다. 그녀가 사다 주는 맛있는 아이스커피를 받아 들자마자 꼬리를 신나게 흔드는 강아지 마냥 반갑게 인사말을 건넨다.
왔어? 오늘 진짜 춥다-
유진이 제대로 자리를 잡고 앉기도 전부터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한다. 이제는 익숙해진 나의 수요일 일과. 우리는 이제 10회의 수업 중 8회차를 듣는 참이다. 중간에 끼어있던 이런저런 연휴까지 헤아리면 10주가 넘도록 함께 뜨개를 배우고 있다. 처음 뜨개를 배우던 날들의 희열은 어디 가고 이제는 반복적으로 같은 작업을 한다는 무료가 찾아왔다. 다만 그 곁에는 늘 즐거운 수다가 있었다.
수업에는 보통 혼자 수업을 들으러 온 분들이 많다. 실과 바늘만 오가는, 뜨는 소리마저 작아 적막한 강의실을 채우는 건 주로 우리의 ‘아, 진짜?’, ‘대박’ 따위의 추임새다. 아, 물론 가끔 강의실을 가로질러 ‘어휴! 못하겠어요!’하는 소리가 터져 나오곤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느덧 느끼고 있는 무료는 모든 뜨개인이 지나는 과정일 것이다. 그 무료한 시간을 충만하게 채울 수 있었던 건 단연 친구 유진의 존재였다. 확고하게 말할 수 있다, 그녀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까지 뜨고 있지 않았을 거다. 목도리를 뜨다 만 실타래만 집에 뒹굴고 있었을 거란 확신이 있다.
유진과 나는 각자 조그맣게 자신의 브랜드를 운영할 때 만났다. 나는 비건 원료를 베이스로 한 요거트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었고, 그녀는 발리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자연 원물로 만드는 스무디볼 브랜드를 운영했다. 당시 그녀의 브랜드는 그래놀라까지 사업을 확장하고 있었는데 마침 우리 요거트를 자주 드시는 인플루언서분의 레시피에서 서로를 발견했다.
우리는 서로의 팬이 됐고,
어쩌다 친구로까지 진화했다.
친근하고 사근사근한 성격이라 남들은 내가 사람들과 쉽사리 친구가 되리라 믿었다. 그 상냥한 겉모습과 달리 나는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 선이 확실한 편이다. 성인이 되고서는 누군가를 그 선 안으로 들이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오랜 타지 생활이 그 핑계가 되곤 했는데, 어떻게든 진하게 친해져 보려던 서울깍쟁이들과의 관계가 이어갈수록 공허해 어느 순간 홀로 서는 게 익숙해져 그렇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내가 유진을 만나던 시절은 내가 굉장히 깊고 긴 터널을 지나던 시기였다. 그 시기에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던 유진과 친구가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서로 브랜드를 유사한 시기에 접게 되며, 이후 우리의 삶이 크게 달라졌다. 나는 바쁜 회사로 들어가 자처해 일에 매달려 지냈고, 유진은 결혼을 하며 비교적 단조로운 일상을 가졌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그대로였다 한들 나는 나대로 그녀에게 저녁에 연락하는 게 조심스러웠고 주말이면 안온한 가정이 있는 그녀가 또 한 번 멀게 느껴졌다. 그녀는 평일과 낮이면 대답 없는 나에게, 또 그러다 사라져 버리는 나에게 서운함을 느꼈다. 아무튼 이런저런 오해가 쌓여 제법 진한 갈등이 있었다.
나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철저히 믿었고 나의 상처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 누군가와 갈등을 마주하고 해결하기보다는 갈등을 눈앞에 목도한 순간 관계를 놓아 버리는데 익숙했다. 그렇지만 유진은 어떻게든 관계를 이어가고, 어떻게든 상대방의 좋은 점을 봐주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그 갈등 이후로는 왜인지 모르게 사뭇 서먹한 듯한 관계가 되어버렸는데 이렇게 10주 넘도록 매주 서로의 일상을 들여다볼 일이 생기며 다시 서로의 든든한 청자가 되어준 것이다.
지금에 와서 글이라는 방식에 숨어 고백을 해보면,
나는 친구 유진을 동경했다.
그녀는 내가 운영하는 브랜드보다 훨씬 멋진 브랜드를 운영했다. 늘 한 주 한 주 과제에 쫓기듯 허덕이는 나와 달리 그녀의 브랜드는 고고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신제품의 만듦새가 그랬고, 가끔 올라오는 글 한 구절 한 구절이 그랬고, 그녀가 가꾸고 있는 일상의 소품이 보여주는 감도가 동경할만한 무언가였다. 그런 친구가 반대로 날 존중해 주고 멋지게 봐준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걸 유지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자의로 브랜드를 종료하고 나는 나를 빛나게 하던 무언가를 잃은 기분이었다. 회사 일을 통해서라도 멋진 모습을 뽐내고 싶었는데, 막상 매일 자정이 넘도록 야근을 하며 나에게 남은 건 그저 너덜너덜해진 마음뿐이었다. 그걸 드러내는 게 두려웠다. 그녀가 좋게 보던 나의 멋짐은 이미 사라져 있었으니까. 사실 당시엔 어디라도 이런 이야기를 쏟아냈어야 했을 텐데 그걸 못했다. 내 브랜드를 접은 게 너무 아리다고, 그런데도 난 생계를 위해 다시 달려야 하는 것도 힘들다고. 그냥 난 그걸 하지 못했다.
돌고 돌아 그녀와 와인을 한바탕 들이키던 날 술기운을 빌려서야 눈물까지 뚝뚝 흘리며 고백하고 나서야 속이 시원해졌다.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그날 이후로 우리 관계는 제법 건강하게 발전했다. 친구 사이에도 이런 갈등과 화해, 드라마가 더해져야 하는 거였구나. 얼음이 녹고 굳는 과정에서 더 단단해진다는데, 결정이 더 맑고 투명해진다는데. 그걸 알게 해 준 은인 같은 사람이 친구 유진이었다.
오늘도 서로의 뜨개감은 얼마나 떴는지 참견하며, 또 이번주 일상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떠들며 뜨개를 마무리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서로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매일 한 번도 빠짐없이 나오지 못했을 것 같다며 이번 10회 강의가 끝나도 계속 같이 뜨자는 약속과 함께 헤어졌다.
우리는 뜨개, 삶이란 지루한 여정에서 제법 많은 ‘푸르시오’ 신호를 마주한다. 누군가는 그 풀러야 할 지점의 실수를 대충 눈 감고 넘어가기도, 화가 나서 가위로 뚝뚝 끊어버리기도, 또 누군가는 풀러 다시 곱게 떠내기도 한다. 어떤 성향의 사람이든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건 그 곁에 든든한 얽히고 얽힌 동반자가 있어야 버텨낼 힘이 생긴다는 거다. 그녀 덕에 나의 뜨개 생활은 12주 더 연장될 참이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