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내 꽈배기 뜨개가 기특해!
뜨개 초보의 고군분투 뜨개 일상
작가소개.
리틀포레스트 같은 삶을 사는 게 소망이었고, 최화정씨 같은 명랑어른이 되는 게 꿈이었는데 그것들에 한 발짝씩 가까워지는 중. 매일 달라지는 계절에 맞춘 작은 미(美)식을 즐기고, 조금씩 나아가는 뜨개에 그 뜻을 두며 살고 있다.
나는 어릴 적부터 관심사가 참 많았다. 데생, 수채화, 종이접기, 페이퍼아트, 유화 등 보통은 손으로 하는 무언가를 정신없이 탐닉했다. 외가에는 손재주가 많은 인물들이 대별로 두어 명씩 있었는데 이런 유전 덕인지 손을 쓰는 분야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보다 습득이 좋았다. 덕분에 배우기 시작하면 남들보다 이른 시일 내에 제법 높은 수준까지 실력이 올랐다. 예를 들어, 남들은 1년 정도 걸릴 종이접기 자격증을 4개월에서 6개월이면 수월하게 따내는, 손을 사용한 작업에 있어서는 칭찬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아이였다.
남들은 서서히 올라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늘어야 할 실력이, 나는 J자에 가깝게 가파르게 오르다 보니 어느 순간이 되면 이전과 달리 급격하게 성장이 더뎌지는 순간을 마주하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시기만 마주하면 어김없이 고꾸라졌다.
기나긴 능선처럼 유지되는 고도를 버텨낼 힘이 없었다. 그러니까 단기 전에선 제법 강했던 내가 장기전에선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하지만 삶은 시간의 가치를 가장 높은 환율로 쳐주기에 늘 마지막 순간에는 장기전에 강한 사람의 손을 들어주고 만다. 오래오래 한 분야를 어떻게든 해온 사람이 결국엔 닿는 종착지들을 보며, 또 몇 차례 내가 먼저 놓은 일들에 대한 자신의 미련을 마주하고 나자, ‘끈기 없음’ 내지 ‘지구력 부족’으로 정의될 내 성향을 부정하고 싶었다.
이런 성향을 단점으로 자각한 시점부터는 어떻게든 이 악물고 버텨내는 것을 목표로 삼곤 했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적어도 이번 겨울, 또는 내년 여름까지는 해야지’하는 목표를 잡고 간신히 꾸역꾸역 그 ‘언제’까지는 힘을 내 버텨냈다. 그렇지만 여러 차례의 작은 버티기 업적에서 결국 내가 깨달은 건, 짧고 강하게 무언가에 제대로 빠지고 사랑할 수 있는 일에 있어 반작용처럼 식는 것도 빠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뜨겁게 사랑하는 걸 오래오래 지속하는 건 웬만한 연료로는 불가능한 일이었고
‘시간이란 가치’를 앞세우려면 나의 강점인 ‘강도’를 조절할 수밖에 없었다.
오랜 시간 이 강도와 시간의 비균형은 나에게 숙제 같은 일이었는데 어느 날 의외의 순간에 답을 찾았다. 어처구니없게도 손과 가장 먼 취미, 달리기를 하다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순간에 퍼뜩 떠올랐다.
아, 인터벌처럼 고강도로 달리고 잠시 쉬고 달리고를 반복하면 되는구나!
결국 우리 모두가 닿을 수 있는 지점은 무한한 저편이 아니기에, 삶으로 정의된 정해진 거리만 달려내면 된다면 그 안에서 내 페이스를 조절하면 되는 거였다. 이 간단한 깨달음 덕분에 난 치열하게 부딪히고 또 실패하는 것을 애써 즐기는 법을 배우게 됐다.
일부러 처음 시작부터 주에 1번만 느슨하게 수업하는 반에 찾아갔다. 수동적으로 듣는 수업으로는 미처 해소되지 못한 열정과 애정을 집에서 한껏 쏟아붓고 다시 몇 일간의 기다림을 즐기다 수업을 들으러 가면 됐다. 그러니까 주 1회 뜨개를 하는 건 나만의 작은 고강도 인터벌이다.
내가 손으로 만드는 무언가를 좋아했던 이유는, 부단히 움직이는 손과 순간 집중해야 하는 과업 덕분에 늘 말도 안 되는 걱정으로 가득한 머리를 잠시라도 비울 수 있다는 데 있었다. 뜨개는 아주 잠시 한 코만 생각을 놓쳐도 종종 ‘푸르시오’로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를 던져 버리는 느슨하지만, 긴장감이 팽팽한 취미였다.
그러니 일주일 동안 새롭게 쌓인 고민들을 다음 뜨개 수업에서 한 땀 한 땀 뜬 코에 하나씩 걸어 내고 오면 됐다. 또 다른 공예와 달리 한 단계씩 실력이 향상되어야 소화할 수 있는 도안이 있었고, 코잡기만 배운 사람에게는 안뜨기와 겉뜨기라는 다음 미션이 쥐어졌다. 그 다음에는 꽈배기를 꼬는 법을 배워야 했고, 하나씩 나아가야만 하는 목표 지점을 쥐여줬다. 사실 오늘 꽈배기 하는 법을 배웠다. 전문가나 할 수 있을거라 느꼈던 패턴을 하나 배우자 성취감이 제법 컸다.
그래서 난 내 꽈배기가 참 기특했다.
거기에 나를 우리 엄마보다도 예쁘고 곱게 봐주는 친구 유진과 함께 부질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 있는 안온한 공간이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끊임없이 어떤 대답을 바라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며 손을 놀릴 수 있다는 건 심리치료와 같은 시간이다.
그래서인지 언제든 뜨갯감을 무릎 위에 펼치는 순간에는 마음마저 폭닥한 느낌이 든다. 뒤엉킬 것만 같았던 날실들을 어떻게든 헤쳐 풀어내고 예쁜 생김새의 매듭으로 만들어내는 일, ‘그러면 그냥 푸르면 되죠’ 또는 ‘제가 봐드릴게요’하고 봐주는 따스한 버팀목을 만날 수 있는 곳, 오늘도 수업에 들어갔는데 따스한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서는 자리에 앉아 계절에 비해 과분한 안온함을 느끼며 뜨개를 떴다.
우리의 삶이란 그런 것, 아무리 많은 기를 쏟아부어도 7할의 운이 손가락 튕기듯 앞날을 좌우하는 일상의 반복이다. 그러니 실패란 없다. 포기만 있을 뿐이다. 반대로 말하면 포기하지 않으면 실패도 없다. ‘결과를 기대’하지 않음으로써, ‘언제든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어떤 일을 더 오래오래 뭉근하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을 부정하지 않고 어떻게든 찾아내 만난 취미,
앞으로도 널 실패하지 않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