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취미일 뿐이라도 주제를 알자
뜨개 초보의 고군분투 뜨개 일상
작가소개.
리틀포레스트 같은 삶을 사는 게 소망이었고, 최화정씨 같은 명랑어른이 되는 게 꿈이었는데 그것들에 한 발짝씩 가까워지는 중. 매일 달라지는 계절에 맞춘 작은 미(美)식을 즐기고, 조금씩 나아가는 뜨개에 그 뜻을 두며 살고 있다.
어느덧 뜨개 인생 4개월차.
대바늘 뜨개 방법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아메리칸 뜨기 기법으로 4개월 간의 수련을 거쳤다. 대부분의 뜨린이가 그렇듯, 나는 프렌치 뜨기로도 불리는 컨티넨탈 기법에 대한 동경이 생겼다. 뜨갯감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손가락만 빠르게 움직여 겉뜨기도 떠내고 안뜨기도 떠내는 마법같은 뜨개 방법. 그 이름도 멋진 컨티넨탈 뜨기, 너무나 배우고 싶었다.
아메리칸 뜨기로는 이제 얼추 뜨는 법을 익히지 않았나 생각했다. 그 착각에 제법 자신에 찬 나는 홀로 컨티넨탈 기법을 배우기로 마음 먹고 말았다. 몇 날 밤 반복적인 도안의 뜨갯감에 지쳐 제법 홧김에 결심한 걸지도 모르겠다.
결국 선생님 없이 영상 몇개를 찾아보고 새로운 뜨개 방법을 시도하는 용감무쌍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첫 느낌은 제법 좋았다. 영상에서 많은 뜨개 고수들이 알려주는 방법을 찾았다. 모든 뜨개 기법은 처음 기본 틀은 비슷하게 배우지만 손이 익을수록 자신만의 손맛(?)이 생기는지라 조금씩 다른 모양새라는 점을 잠시 망각했다.
아, 손가락은 이렇게 - 아니, 저렇게?
혼란스러웠다. 모두가 분명 같은 뜨개법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 같은데 각자의 손모양이 달라 이 중 내가 어떤 걸 따라야 맞을지 고민하다 대충 몇 명 분의 비법 중간쯤에서 손가락 모양새를 정했다.
어라라? 되는 것 같은데?
당시엔 홀로 또 무언가를 해냈다는 마음에 기뻤지만 지금 돌아보자면 그 감정이 패인이었던 건 아닐까. 알맞지 않은 손동작으로 대충 꼬고 넘어가면 되는줄 알았던 당시의 나, 몇 줄 뜨고나니 중간중간 특정 코들이 숭덩숭덩 머리카락 뽑히듯 비어있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아 망연히 엉망이 된 목도리였던 것을 바라보다 그대로 살살 말아 뜨개 가방에 넣어버렸다. 이 모든 결심은 수업을 가지 않은 겨우 1주, 그 중에서도 이틀 동안 벌어진 일이다.
아직 수업에 가려면 일주일도 넘게 남은 시점, 그냥 보지 않는 방식으로 문제를 덮어두기로 했다.
할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알량한 자신감이 나를 무모하게 만들었구나.
역시 모든 일은 언제나 내가 잘 하는 것 같다고 생각되는 시점을 주의해야 하는 법이다. 돌아보면 늘 그런 순간에 사고가 나고 만다. 스스로의 실제 위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그보다 내가 나은 사람이라고 착각할 때 사고가 난다. 다시금 깨닫는다.
생각해보면 비슷한 실수가
삶 전반에 수시로 있었다.
나는 3년 전 운전 하는 법을 배웠다. 20살이 되자마자 모두가 ‘물시험’이라고 부를만큼 자동차 운전 면허 취득이 아주 쉽던 시절 딴 면허라, 그 존재가 유명무실하게 실제 나의 운전 실력을 증명하지는 못하는 표장일 뿐이었다. 나는 10여년간 이 증명서를 신분을 증명하는 용도 외에는 써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30살이 되던 해, 10년이 넘은 면허라 연장을 할 시점이 도래했다는 안내 문자를 받으며 덜컥 이제는 정말 운전을 해야겠다 마음 먹게 된 것이다.
어떤 친구들은 벌써 자차를 구매해 회사에 오가는 길을 차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들이 세상 무료한 표정으로 겁 먹지 않고 빵빵대는 대로변으로 나서는 모습을 볼때면 동경과 함께 나 역시 가슴이 뛰었다.
서른이 넘었는데, 운전… 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시작된 운전 연수. 10년이 넘은 면허증을 들고, 벌벌 떨며 서울 도로를 밟는 연습을 해나갔다. 겁이 많은 성격이라 워낙 조심조심 운전을 했다. 모두가 30km는 족히 넘게 달리는 도로에서 20km의 속도도 빠르다 생각하며 차분하게 기어간다. 오히려 잘하는 거라는 칭찬을 받으며 점점 달리는 속도를 높이고, 달리던 반경을 넓혔다. 어떤 날은 내가 이 도로 위에서의 규칙을 다 깨달은 것만 같아 우쭐했다.
선생님 없이도 주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어찼던 날 기어코 사고가 나고 말았다. 다행인 부분을 찾자면 다른 사람의 생을 위협하진 않았단 거다. 주차장 기둥에 아주 세게 차 뒷문 한켠에 검은 줄을 남기는 사고를 내어 홀로 아주 대차게 놀랐을 뿐이다. 아무튼 이 에피소드 역시 주제를 모르고 덤비는 나에 대한 경고였던 건 아닐까.
드디어 수요일이 돌아왔고, 짱박혀있던 뜨갯감을 판도라의 상자처럼 꽁꽁 싸매어 들고 수업에 갔다. 선생님 없이는 아직 안 될 것 같다고 볼멘 소리를 내고 만다. 선생님이 재빠르게 문제 되는 부분을 파악해 고쳐주시는 동안 넋놓고 그녀의 손을 바라봤다. 초보라 이런 것도 해주는 사람이 있지, 하고 될대로 좋게 생각해버린다. 주제를 모르고 설치다 벌어지는 실수에서 원래 가장 크게 배우는 법이다.
한동안은 컨티넨탈 기법은
거들떠 보지도 말아야지!
소소한 다짐을 한다. 누군가 내가 뜨는 방법에 대해 평할 것도 아닌데, 조금 더 빠르게 뜨갯감을 뜬다고 해서 내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것도 아닌데 누구를 위한 욕심이었을까. 아직 조금 더 쉬운 난도에서 유유히 머물러야겠다. 홀로 앞서 나가 어른인 척 하고 있을 이유가 없지, 암!
ps. 참고로 이제 운전은 제법 하는 씩씩하고 차분한 어른이 되었다.
얼마 전에도 공유 차량 서비스를 활용해 왕복 5시간이 넘는 거리에 홀로 출장을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