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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병원에서의 새해 인사

사랑해요, 사랑해.

by 체리

나는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투박하지만 고집 센 할머니, 당시의 그녀를 묘사하자면 그렇다. 그녀는 강단이 있어 엄마와 마찰이 잦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야무진 손길을 믿고 엄마는 나를 맡겼다. 제 자식들보다 총기 넘치는 정신을 가졌던 그녀는 언제고 단단하게 그 곳에 있어줄 거라 생각했다.



그건 착각이었다


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이들과 차단된 채 사는 삶이 제법 외롭고 힘드셨나보다. 다들 위험한 병이라는데 그 실체는 없는데, 모든 복지관과 노인정이 문을 닫는 동안 그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온전한 정신과 신체에도 꽁꽁 싸매고 갇혀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지내야 하는 시기만큼 힘든 것이 있을까.

어릴 적 매체에서 보던 치매의 모습은 꽤나 섬뜩한 것이어서, 그녀의 치매 소식을 믿기 어려웠다. 아주 조금의 증상만 지니신 건 아닐까 - 믿고 싶은 대로 믿으며 살았다. 몇 년을 그녀의 치매 사실을 알면서도 여러가지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소통이 아예 불가해진 그녀와 마주하는 일을 외면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작년 가을쯤 할머니는 매일 출근하듯 들르는 요양센터에 갈 준비를 하다 넘어지셨다. 예전처럼 다양한 근육이 촘촘히 지탱하지 않는 육신의 뼈는 참 우습게도 나약했다. 할머니의 대퇴골, 그러니까 골반과 허벅다리를 잇는 뼈가 댕강 하고 부러진 것이다. 그 나잇대의 노인에게 뼈가 빠른 시일 내에 붙는 건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정신도 온전치 않아 움직임을 예측할 수 없는 노인의 골절 뼈가 자연스레 붙길 바라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덕분에 약 10년 전에도 회복을 걱정해 미뤄두었던 대퇴골 인공 관절 삽입술을 하게 됐다. 전신 마취를 겸해야 하는 수술이라, 그 후 어쩌면 그녀가 눈을 뜨지 못할수도 있다고 했다. 그 말에 덜컥 겁이 났다. 우리 할머니, 나의 할머니와 다시는 눈을 마주하지 못하게 되는 일은 나에게 너무나 큰 공포였다.

덤덤한 척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 순간의 공포감을 생각하면 왈칵 눈물이 날 것 같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리에 끝났지만, 전신 마취의 영향이었는지 또는 그저 치매의 악화였는지 그녀의 인지 능력은 자꾸만 나빠지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나를 멍하니 바라보며 누구냐고 물었고, 지금은 그녀의 눈에서 초점을 찾을 수가 없다. 또렷하던 그녀의 검은 눈동자는 더 희끗하고 희미해졌다. 사람들이 말하는 ‘착한 치매’를 겪고 있는 그녀는 아무런 말도, 어떤 행동도 하지 않은 채 병상에 누워 자꾸만 잠을 청하거나 휠체어에 앉아 병동 통로를 오가는 산책을 해드릴 때에도 자꾸만 눈을 감았다.


근 2개월여를 1차 병원에서 치료받은 그녀는 이후 2차 병원에 속하는 재활 겸 요양병원으로 적을 옮겼다. 곧 임종을 맞이한다는 공포에 연달아 방문하던 친척들도 어느 틈엔가 발길이 뜸해졌다. 결국 그녀의 곁을 자주 오래 지키는 건 세 딸의 존재였다. 한 주씩 돌아가며 자신들의 존재를 까무룩하게 잊곤 하는 할머니 옆에 앉아 그녀의 다리라도 주물렀다. 부드럽고 달달한 것을 사가서는 입을 앙 다문 할머니 입에 밀어 넣으며 시간이 속절없이 갔다.



마주하면 마음이 무너질 것 같아서
상황을 외면하던 나도,
민족대명절을 피할 순 없었다.


내 생애 요양병원 방문은 처음이다. 어릴 적 동네에서 제일 가는 관광 호텔이었던 곳이 요양병원이 되었단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치며 매일을 지나던 화려한 터가 흰머리 쇤 노인처럼 그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서있었다. 어떤 기골이 장대한 존재의 노화와 변화를 또 다른 형체로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모든 곳이 회색과 하얀색으로 점철된 건물로 들어서자 왜인지 소름 끼치는 냄새가 났다. 어떤 노인의 냄새랄지, 퀘퀘한 냄새가 아니다. 아무것도 그 곳에 머무르지 않는 듯한 공백의 냄새가 가득했다. 나의 할머니는 7층 2인 병동에 있다. 행운의 7이니 다행이라 생각한다. 왜인지 그녀에게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막연하고 멍청한 기대를 해본다. 엘레베이터가 도착하며 내는 ‘띵-’하는 소리 외에는 모든 소리가 어디에 잡아먹히기라도 한 듯 소란스런 소리도 도란거리는 소리도 없는 무채색의 복도에 다다랐다.


7층 끄트머리에 자리한 병실로 들어서자 화사한 샴푸 냄새가 풍겼다. 할머니에게 단독으로 배정된 간병인 분께서 살뜰히 그녀의 머리를 감기고 얼굴을 씻기고 있었다. 할머니는 나와 엄마, 그러니까 그녀의 손녀와 딸의 등장에도 휠체어에 몸을 맡기고 자꾸만 눈을 감았다. 그녀의 정신 속 어딘가에선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녀를 만나면 ‘할머니 - 손녀 왔어. 사랑해’ 자꾸만 속삭여본다. 깜박깜박이는 정신 속에서도 사랑의 말의 강렬함은 그 안에 숨겨진 진짜 그녀에게 다다를 수 있지 않을까.


그녀가 새로운 환자복으로 갈아입는 동안 한참을 다른 생각을 하려 애쓴다. 당장 그녀와 영영 헤어지는 것도 아닌데 그녀를 만나면 자꾸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예전과 다른 그녀와의 마주함도 두려웠고, 헤어짐도 두려운 말도 안 되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였다. 그녀가 나를 알아봐주면 좋겠다고, 다른 사람은 다 못 알아봐도 나만큼은 ‘우리 똥강아지 왔냐’고 반겨주면 좋겠다고 이기적인 상상을 한다.



바깥 바람이라도 쐬어드리고 싶은데
뜻밖에 펑펑 쏟아지는 눈이
그 마저도 허락하지 않는다



방심하면 눈물이 흐를 것 같아서 어떠한 감정도 비치지 않는 그녀를 휠체어에 앉혀 40m 남짓 될듯한 복도를 가로 질러 걷고 또 걷는다. 문이 활짝 열려있는 다른 병실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시선이 쫓아온다. 명절인데도 어느 병실에도 찾아온 사람들이 없다. 부러움일지, 번잡함일지 모를 시선들을 외면한 채 나는 하얗게 쇤 할머니의 머리를 쓰담는다. 모든 것이 온전하지만 아무도 찾지 않는 그들과, 모든 것이 온전치 않지만 매일 자식들이 찾는 할머니의 신세를 두고 우리 할머니의 처지가 조금 더 낫다고 괜히 생각해본다. 약 30년 전 내 머리를 쉼없이 쓰담아 주었을 할머니의 손길을 기억하며 온종일 누워있느라 가마 모양 그대로 눌려버린 그녀의 머리를 자꾸만 쓰담으며 걷는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다보면 다들 너무 아파하지 말라고, 이제는 덤덤히 받아들여야할 시기라고, 어떠한 최선도 없는 때라고, 이제 딸들도 적당히 쉬어가며 할 때라는 말을 건넸다.



그런 말은 겨우 분기에 한 두번
얼굴을 비추는 내게는
위안이라기 보단 경고로 느껴졌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면 어떡하지, 병동에서 돌아온 이듬날까지 생각이 꼬리를 문다. 한 평생 나의 결혼식에 그녀는 당연히 자리할 것이라 생각했다. 누구보다 고운 한복을 입혀드리겠노라 생각했다. 이제 그런 거창한 소원은 빌지 않기로 한다. 새해엔 그녀에게 복 대신 그녀의 딸들이 찾아온 순간 아주 찰나라도 좋으니 강렬한 의식이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빌어본다. 그녀가 그녀의 자식들과 제대로 된 인사를 나눌 수 있는 기회라도 있으면 좋겠다. 아쉬움 없는 이별이라는게 있겠냐만, 왜 이렇게도 마음이 아린지 모르겠다.

사랑해, 할머니. 새해엔 조금 더 행복한 기억을 만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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