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당옥수수를 드셔보셨나요?

EP 05. 제철행복으로 가득한 삶

by 체리

올여름엔 태어나 처음으로 초당옥수수를 맛봤다. 먹리어답터라고 자부하는 나, 거기에 옥수수 귀신인 엄마 밑에서 자랐음에도 초당옥수수는 처음 먹어본다니 이에 대한 스토리를 올리자 DM으로 믿을 수 없단 메시지가 쏟아졌다. 하지만 놀랍게도 사실이다. '초당옥수수 케이크', '초당옥수수 솥밥' 등 초당옥수수를 베이스로 한 요리는 먹어봤어도 제철 열매인 초당옥수수를 별도로 먹어본 적은 없었다.


처음 맛본 초당옥수수는 지금까지 먹어온 옥수수와는 차원이 다른 유형의 무언가였다. 갓찐 초당옥수수는 분명 따스한데, 한입 베어 무는 순간 수분이 팡 터져 나오며 마치 과일의 과즙처럼 입안을 산뜻하게 채워서 처음 느껴보는 3미를 전해주는 오묘한 놈이었다. 진하고 달큰하게 자극하는 후각, 수분감으로부터 오는 촉각, 샛노랗게 탱탱한 과육의 시각적 자극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낱알이 어쩜 그렇게 탄탄하고 수분으로 가득 차 있는지 '여름의 맛이란 이런 맛이구나' 자연스레 인정하게 되는 맛이었달까. 옆에서 똑같은 옥수수를 집어 든 남편도 몇 번을 감탄사를 내지르며 순식간에 뼈대만 남겼다. 우리는 몇 번이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무해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쩜, 서른 중반이 되도록 아직도 세상엔 처음인 것들 투성이다.


IMG_0847.HEIC 보관을 잘못해 쭈굴해져버린 초당옥수수지만, 그래도 너무 맛있다!


혼자 살 때에도 종종 제철 과일이나 제철 채소라는 것을 먹어보려 시도했다. 특히 '이제 나를 더 아껴주며 살 거야!'하고 다짐하는 날이면 무언가 당연한 결론으로 도달하듯 조금 값비싼 과일을 찾아 구매하곤 했다. 대체로 그런 결심은 오랜 기간 그 결심을 유지할 것 같은 착각을 수반하기에 한 묶음을 사두고는 결국 반 이상을 묵혀 버린 경험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언젠가부터는 제철과 담쌓고 살았다. 한 두 개 낱개로 사기도 애매한 것이 과일과 채소다. 유독 한두 개씩 낱개로 살 때보다 묶음으로 사야만 합당한 가격대가 되는 이 신선식품들은 자취생에겐 선뜻 손이 가질 않는 종류의 것이다. 게다가 제철에 반짝 나오는 과일과 채소는 하나둘씩은 판매하지도 않는다. 종종 편의점에 기획 상품으로 나오는 제철과채들은 그 가격이 말도 안되게 높았다. 초당옥수수를 사용해 만든 완성된 케이크 한 조각이 8,000원인데 편의점에서 초당옥수수 1개만 단독으로 파는 것을 사려면 4,000원 언저리라거나 - 이런 식의 수식이 맞지 않는 시장 논리에 제철 OO이란 단어를 까무룩 잊고 살 수밖에. 어딘가에서 누군가 '요즘 A가 제철이래요~'해도 그 말이 꼭 나에게는 허공에 흩뿌려지는 말 같아서 제철행복을 잊고 살던 나는 남편과 함께 살고 나서야 매철을 온몸으로 즐길 수 있게 됐다.


결혼을 하고 자연스레 요리에 자부심이 있는 내가 식사 담당이 된 다음부터는 자꾸만 마트와 온라인 몰의 주요 매대를 채운 제철 무언가들 앞에서 한참을 서성인다. 제철이라 이름 붙인 것이 그저 상술인 줄 알았는데, 제철음식을 맛보고 신기해할 남편의 표정이 떠올라서 그 시기에만 보이는 과일과 채소 앞에서 한참 머리를 굴려 먹을 계획을 세워본다. 이걸 좋아할까, 저걸 좋아할까, 또 이걸 어떻게 예쁘게 조리해서 내놓을까. 남편이 못 먹는 이런저런 재료를 제외하고 어떤 요리로 만들어낼까. 자연스레 여러 가지 생각이 줄이어 따른다. 아무래도 나는 제철 과일 그 자체보다, 그걸 남편과 함께 즐기는 그 순간을 더 기다리는 것 같다. 내가 내지른 탄성에 어김없이 메아리로 들려오는 그의 감탄사가 좋다.

7월 폭염이 시작되기 직전엔 햇감자를 몇 번 시켜 먹었다. 제철을 맞은 햇감자는 확실히 일반적인 시기에 먹는 그것보다 더 싱그럽고, 산뜻했다. 잠시 찌기만 해도 분이 잔뜩 나와서 더 포근한 맛을 내어줬다. 감자만 홀로 구워도 맛있고, 카레 재료로도 훌륭하고, 찌개에 넣어도 환상의 맛 서포터즈가 되어줬다. 이런 발견 덕에 여름에만 햇감자로 만든 감자칩을 만든다는 포카칩도 내 돈 주고 처음 사 먹어 보았다. 또 지난달에는 시댁에서 전해주신 체리 세 봉지를 몇 주간 달게 먹었다. 체리는 제철이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 맛있는 때 잔뜩 구했다면 그게 제철 아닐까!


반면 제철이어도 영 감동이 없던 것도 있긴 했다. 신비복숭아 소문을 듣고 호기롭게 한 박스를 샀는데 어느새 난 딱복파가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비복숭아는 딱복과 물복 중간쯤의 식감에 자두향이 언뜻 스치는 맛이라 복숭아 답지 않아 아쉬웠다. 제철 과일 중에서도 내 취향에 맞는 녀석이 있고, 아닌 녀석도 있다는 걸 알아가는 것도 놀랍다. 아직도 나의 세세한 취향지도에 내가 몰랐던 구석이 있다니! 최근에는 복숭아에 대한 애정을 회복하기 위해 이탈리아 신혼여행에서 맛봤던 납작 복숭아를, 아주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시켜 먹었다. 가장 맛있게 먹으려면 집에서 3-4일을 살펴보며 후숙해 먹어야 하는 과실, 납작한 모양새 덕에 베어 물때 한입 가득 안정적으로 입에 달라붙으며 쫀득한 과육과 싱그러운 복숭아 맛이 얼마나 달디 단지!


끔찍하리만치 더웠던 여름이 지나간다. 대신 지난여름을 돌아보자면 그 더위 뒤에 숨어있던 싱그러움과 산뜻한 제철 음식들의 환희가 더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다. 아마도 다음 1년여간 우리는 지난 더위를 까마득히 잊고 즐거웠던 순간과 반짝였던 이 시간의 우리를 여러 차례 그리워하며 살리라.


결혼을 하고 나니 사계절을 조금 더 담뿍 느끼고 즐기는 법을 알게 됐다. 이렇게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에서 살면서, 주 단위로 변하는 제철 과일의 맛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살았던 지난 시간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다. 이렇게 제철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삶이 얼마나 풍성하고 다음 계절을 기다려지게 하는지 신혼을 핑계로 배운다. 덕분에 다음 계절까지, 또 그다음 계절까지 함께 알차게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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