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04. 완벽한 결혼을 위한 조건
정말 결혼은 타이밍일까?
사람들이 하는 말엔 수많은 의미가 숨겨져 있다. 단순히 타이밍이란 짤막한 단어로 응축된 시점과 자격 안에는 무수히 많은 우연과 필연이 응축되어 있다. 그러니까 그 타이밍에 만난 누구라도 결혼했을 거야- 따위의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노력으로 만들어 낸 자격과 시간, 거기에 우연까지 더해져야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결혼을 위한 최소한의 금전적인 준비와 마음가짐을 마친 이후, 이제야 스스로를 조금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 때, 하필 그 타이밍에 기꺼이 나를 내려놓게 만드는 사람을 만나는 우연이 겹쳐야만 할 수 있는 것이 결혼. 그게 나의 결론이다.
1. 결혼할 준비가 된 자아에게 (노력/자격)
2. 기꺼이 충분히 희생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겼을 때 (시간)
3. 그 태도로 임하고 싶은 상태가 나타나야만 (우연)
이 세 박자가 맞아야 비로소 할 수 있는 게 결혼이 아닐까.
내 경우만 보더라도 지금의 남편을 처음 만났던 시점보다 1년이라도 더 일찍 만났다면 결혼은 커녕 연애도 시작하지 않았을 것 같다. 나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 전 약 3년간 비자발적 솔로로 지났다. 그 기간 동안 약 3-40번의 남자를 만났다. 대부분이 다리에 다리를 건넌 생판 남과의 소개팅이었고, 아주 일부는 어디서 귀동냥으로 알게 된 가치관 기반 소개팅 어플을 통해 알게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만남은 보통 2회 이상 넘어가기가 어려웠다.
만남 장소를 정하고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약간의 취향 탐색을 거쳐 만나는 날이 되면, 만나기까지 요상한 설렘을 가져다주던 사람을 실재로 마주하고 나면 그 설렘은 파스스 꺼지고 말았다. 상대가 별로 여서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상대가 날 별로로 여겨서도 아니었다. 지금 와 돌아보면 모두 나의 문제였다. 솔로 기간이 길어질수록 머릿속으로 이상이 더해져 어느새 덕지덕지 괴물처럼 거대한 허상이 되어버린 이상형, 세상에 없을 막연한 존재를 찾아다니게 된 것이다.
키는 커야 해, 마르면 안 되지, 담배도 안 폈으면 좋겠는데, 성격도 좋으면 좋겠어, 음식 가리는 게 많지 않으면 좋겠는데, 그런데 나를 끔찍이 좋아해 주면 좋겠고, 연상인 게 아무래도 좋겠어, 대화가 티키타카가 되어야 할 텐데, 거기에 직장도 번듯하면 좋겠다. 아, 그리고 만나자마자 느낌이 와야 해!
이 모든 조각이 들어맞는 사람을 찾기란 정말 바늘구멍으로 낙타를 통과시키려는 일만큼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거듭 아무나 만나겠다 다짐했지만 그 다짐은 늘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보는 것 없다던 나는 알수록 너무나 많은 걸 따지고 있었고, 주변이들이 하나둘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어지러웠다. 모두들 마음을 편하게 먹으면 금방 너의 짝이 찾아올 거라 말했지만 막연하기 기다리고만 있는 건 내 성미에 맞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반대를 택하기로 했다. ‘아무나 만날 바에야 홀로 죽지’란 생각까지 무르익었던 시점, 그래서 진지하게 홀로 살 준비를 하던 시기 놀랍게도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소개팅이 아닌 자기 계발을 위해 찾았던 모임에서.
놀랍게도 막연히 결혼을 목표로 쫓던 시절에는 그렇게나 어려웠던 연애가, 목표를 던지고 미래를 그리기보단 현실에 충실한 준비가 되어서야 자연스레 동반자로 삼을 만한 사람이 넝쿨째 굴러 들어왔다. 모임에서 만난 우리 둘은 서로가 서로의 외적 이상형에 부합하는 구석이 없어 자연스레 친구가 되었다. 일에 대한 생각이랄지 삶에 대한 태도가 비슷해 함께 일과 관련된 공간을 찾는 동료 같은 존재가 되었으며, 단둘이 만나는 일이 몇 차례 이어지다 남편의 고백 공격으로 연인이 되었다. 지금도 남편 S와 나는 서로 억울해한다. 서로가 서로를 먼저 꼬셨다며 각자의 입장을 피력한다. 이걸 보면 결혼에 이르기까지 약간의 착각이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어떤 미래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고 그저 현실에 충실할 준비가 되어서야, 누군가에게 충분히 날 드러낼 수 있었다. 게다가 나를 완벽하게 포장하지 않아도 되는 상대를 찾으니 내가 나의 약한 부분을 드러내고 기꺼이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덕분에 우리의 연애는 수월하게 진행됐다. 기대 없이 시작된 만남은 되려 다양한 놀라움을 가져다줬다. 그러한 놀라움은 감사함이 되고, 어느새 감사함의 연속은 운명처럼 느껴졌다.
덕분에 나는 잠시간 가졌던 '독신주의'의 마음가짐을 버리고 결혼을 다시 꿈꾸게 됐다. 스스로를 내려놓고 나서야 남을 구할 수 있었달까. (이 구함이 그 구함이었던가) 차마 다 적지도 못한 내 이상형의 기준에서 남편은 어떤 부분은 맞고, 어떤 부분은 다르다. 그런데 역시 생각과 현실은 다르다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삶의 태도', 실제적으로 사는 '삶의 방향'의 결이 비슷한 우리는 결혼 4개월 차가 되는 시점에도 너무나 행복하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결혼할 타이밍이란 [수많은 (소개팅과 연애) 실패를 쌓아 나를 잘 알게 되었을 때], [내가 기꺼이 감내할 수 있는 상대의 단점과 포기할 수 없을 장점을 이해했을 때], [어떤 어려움에도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감내해 볼 각오가 들게 해주는 상대를 만났을 때] 비로소 발현된다. 또 이 결혼의 연속을 위해선 살기 전까진 미처 못 봤던 상대의 면모가 우연히도 나의 마음에 더 쏙 든다던가, 그의 생활 버릇이 나의 심려를 과하게 건들지 않는다는 우연이 힘을 발휘해줘야 하는 일이지만 - 운이 좋게도 우리 부부에겐 좋은 방향으로의 우연이 이어져 꿈같은 결혼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
만약 결혼을 꿈꾸고 있는데 모든 것이 막연한 이들이 있다면 다시 한번 스스로의 자격과 시간을 돌아보고, 이 두 가지가 준비된 상태라면 언제든 우연이 끼어들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의 창을 열어 두었는지 확인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