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반장 짝꿍

by 꼬드kim

한 해의 계획을 세우는 날이면 새로 쓸 다이어리에 꼭 기록하는 계획이 있다.

영어 정복하기

경기든, 인생이든 싸워 이겨야 한다는 신념에 늘 '꼭 그래야 할까'하고 갸우뚱하는 나의 성격에 이 계획-영어 정복하기-은 대단히 이율배반적이다. 실천 안 할 뿐만 아니라 더불어 즐기고 살기도 버거운 인생을 왜 싸워야 하냐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싸워 이기는 상황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내게 주는 나름의 합리화이다.

배움에 있어서 열망으로 시작하는 사람을 제외하면, 그것을 누구와 시작하였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흥미를, 그리고 잘할 수 있는 자신감을 주는 사람이 그 누구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영어를 시작해서 국어보다 영어를 잘하는 경우도 많지만, 나의 시절엔 중학교에 들어가면 배우는 타국의 언어였다. 1학년 그 타국의 언어는 너무 낯설었다. 선생님은 Phonics 대신 문장과 단어를 읽어주면서 따라 읽으라고 했다. 한번 들으면 기억할 수 있기엔 연관성이 너무 낮아 우리는 책에 끝도 없이 불러주는 발음을 한글로 받아 적었다. 호명당한 아이들은 영어문장을 읽기보다는 깨알같이 적어놓은 한글만 읊어댈 뿐이다. 그러나 그러고 있는 우리를 보고 선생님은 혼만 내셨고, 스토리가 없는 영어에 흥미를 다들 점점 잃어갔다. 우리는, 시작하는 누구(with whom)를 어찌 보면 잘못 만난 것이다.


그렇게 1년이 지나가고 2학년이 되었다. 부실한 아이들 중에도 별도의 과외를 받는 아이들의 성적은 빛났다. 나는 부실한 아이들 중에 한 명이었고, 나의 짝꿍은 빛나는 아이 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 그리고 날렵한 안경을 쓴 선생님이 앞문으로 들어오셨다. 1학년 때를 어슬렁하게 보냈던 우리로써는 빠르게 진행되는 수업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깨알같이 책에 발음을 적어놓을 수 있는 시간이란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왜 하필 미국이 아닌 한국에 태어나 이 고생인지를 억울해하는 능력을 발휘했다.

그래도 첫 번째 시간이라 양호했음을 두 번째 수업시간에 깨달았다. 1학년 때 선생님과의 수업전략이 달랐다. 어차피 자꾸만 한글 발음을 읽어대는 아이들에게 문장을 읽히는 것은 소용이 없다는 것을 첫 번째 시간에 간파하신 것 같다.

수업의 일부 시간은 교단 앞으로 나와서 단어 받아 쓰기를 시키겠다고 하신다. 그러고 나서는 반 아이들을 휙~ 둘러보셨다. 우리는 모두 타조가 머리를 모래 속에 처박듯이 고개를 푹 숙였다. 최대한 선생님의 시선을 피해보겠다는 심산이었다. 나 역시 책을 뚫어져라 보고 있을 뿐이다.

"반장, 그리고 반장 짝꿍 나와!"

한국어로 말씀하셨는데,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여기서 반장 짝꿍은 누구인 것인가...

어느새 반장은 칠판 앞으로 나가 있다.

"반장 짝꿍 안 나올 거니??"

그 순간 나는 달팽이가 되었다. 최대한 느리게 느리게 걸어서 쉬는 시간이 올 때까지 걸어가겠다는 마음으로 걸었다.

'대체 이게 무슨 봉변이란 말인가? 억울하다. 반장도 아니고 그냥 선생님에 의해서 정해진 나의 자리가 반장 옆자리인 것을...'

곧 억울해서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난 칠판 앞에 섰고, 선생님은 교탁에서 아이들을 향해 단어를 말씀하셨다. 아는 단어는 썼지만, 긴장감에, 공부를 하지 않아 생각나지 않는 단어는 반장의 옆구리를 찌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두 번째 시간이 지나가고. 나는 그 이후로도 숱하게 반장 짝꿍이라는 이름으로 칠판 앞으로 호명되었다. 그럴 때마다 뒤통수에 눈이 없던 나는 뒤돌아서 반장을 쳐다보는 일이 잦아졌고, 그러다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면 선생님의 안경 너머 레이저에 눈이 멀 지경이 되었다.

결국 선생님이 이기셨다. 그날 이후 여전히 "반장 짝꿍"이라고 부르면 달팽이만큼은 아니더라도 최대한 시간을 벌겠다는 심산으로 느릿하게 걸어 교탁 앞으로 나갔고, 걸어가는 동안 전날 외워둔 단어를 한번 더 외워보려고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내 실력은 달팽이가 걸어간 만큼 향상된 기분이다. 또 하나 달라진 점이라면, 영어를 정복하면 해보고 싶은 것이 생겼다는 것 이다. 미국 드라마든, 외화든 자막 없이 감상하면서 그들의 연기력에 대해 감히 논평해 보고 싶다. 같은 한국인끼리는 연기를 잘하네 못하네라고 열변을 토하고 사는 우리들이지만, 정작 외국 배우들이 하는 연기에 대해선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왜일까?

올해의 반년이 지나갔다. 다시 영어 정복하기를 실천하기 위해서 치밀한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반장 짝꿍이라 불러주셨던 카리스마 최강의 선생님에게 다시 수업이라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