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발은 말이지

by 꼬드kim

“플립턴을 하는데 말이죠!”

순간 나는 동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의 동그랗게 커진 눈을 본 동료는 “아시는 줄 알았어요.”라고 추가로 덧붙여 이야기했다. 문맥을 유추하건대 ‘수영에 관한 용어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턴 종류인가요?”로 시작한 나의 질문은 궁금증 해결과 함께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그날 아이들과 야외수영장을 가기로 했다. 물론 나의 결정이나 동의에 의해 이뤄진 행사는 아니었다. 나의 역할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수영장 입수 조건을 지키지 않으면 물에 들어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티셔츠와 반바지만 준비해서 갔다. 실습생들이 그런 반응으로 나올 것을 알았던 담당 선생님은 수영복을 빌려 오셨다. 하는 수 없이 수영복과 함께 준비해 간 옷을 덧입었다. 물이 무섭기도 하고 눈이 나쁘기도 한 나는 바짝 긴장된 상태로 수영장 주변을 서성였다. ‘누가 누구를 지킨다는 건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방심했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한순간 다리가 꺾였고 내 몸은 누군가에 의해 하늘을 향해 붕~

다시 한순간 내 몸은 물속에서 가라앉고 있었다. ‘죽었다고 생각했을까’ 어디선가의 소리가 들려온다.

“선생님! 일어나세요!!!”

‘아직 안 죽었나?’

영겁의 순간이 얼마인지 모르겠으나 그만큼 흘러간 듯한 시간 후 나는 그들이 나를 부른다는 것을 알았고, 내가 창피함을 느낌으로써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들의 외침처럼 일어나 보니 수영장 물은 생각보다 깊지 않았다. 휘적휘적. 나는 비참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고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화를 내야 하는데도 그 어떤 따짐도 못 할 듯한 이 상황. 다행인 건 안경을 쓰고 있지 않아 나를 쳐다보고 있을 시선들이 덜 날카롭게 느껴질 뿐이라는.

밖으로 나와서 상황을 살피니 나를 포함한 실습생들은 감독 선생님의 장난(?)으로 벌써 물을 한바탕 먹은 상태였다. 그 후로도 몇몇 실습생들은 물속으로 던져졌다. 저녁 식사 이후 감독 선생님은 내게 사과했다. 내가 가라앉아가고 있을 때 정말 사람이 죽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그는 그 이후로 이런 장난을 안 쳤을까. 알 수 없다. 그런데 자신이 집어던진 사람이 죽을 것 같은 공포심을 느꼈다면서 왜 그는 나를 구하러 물에 들어오지 않은 것일까?

어느 날 회사에서 동해안으로 웍샵을 갔다. 동해안은 수심 측정이 잘 되지 않아서 나는 바닷물에 발도 못 담그고 멀찍이 떨어져 바다를 관망하고 있었다. 그러다 방어할 틈도 없이 직원들 힘에 떠밀려 나는 또 바닷물에 곤두박질당해졌다. 발도 닿지 않는 바닷속으로 들어가면서 드는 기분은 ‘내가 누군가에게 들쳐질 만큼 가볍지 않은데 왜 이렇게 나만 이런 일을 겪는지. 오늘이 죽는 날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물속으로 점점 가라앉았다.

정신이 희미해져 갈 때쯤 던진 사람이 중 한 명이 다시 구하러(?) 왔다. “뭐냐고 이런 바닷물도 헤엄쳐 나오지 못하고!”

‘물에 빠진 건 난데 혼나는 것도 나네?’ 기분은 엉망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색할 수 없는 상황이라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면서 나는 다짐을 했다. 누군가가 다시 물에다 내동댕이쳐도 가라앉지 않겠다고.

수영을 가르쳐주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으나 행동으로의 연결은 쉽지 않았다. 물 공포가 심했고 그들과 다투지 않고 잘 배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가까운 센터에 수강 등록을 했다. 몸은 천근만근이라도 되는지 키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라앉았다. 그럴 때마다 살려달라는 외침이 빠져나왔고 그 외침은 수영장을 집어삼켜버릴 것 같았다. 운동신경이 없는 몸도 아닌데 아주 더디게 물에 뜨는 법을 익혀가고 있을 때 즈음 남선생님으로 바뀌었다. 그는 수영장이 떠나가도록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강습을 하다가 어정쩡한 나를 발견한 듯했다. 매미도 아닌데 계속 수영장 벽에 매달리는 나에게 호스로 물을 발사하여 수영을 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깊이가 2미터나 되는 곳에서 벽을 의지 하지 않고 끝까지 가기가 쉽지 않아서 그 물세례를 고스란히 받으면서도 나는 무서울 때마다 벽에 매달렸다. 나의 속사정을 알기나 한 것처럼 선생님은 반드시 나를 물에 띄우고야 말겠다는 각오처럼 물밖에서 소리를 지르며 함께 했다. 결국 선생님 덕분에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몇 개월이 지나고 스타팅이라며 입수 방법을 배워야 하는 날이 왔다. 시범을 보여준 선생님의 입수 시범은 ‘우와~~ 멋있다’라기보다 ‘으아악! 무섭겠다.’로 받아들여졌다.

“입수를 이제 배워볼 거예요. 입수해서 마지막까지 수영하고 다시 여기로 오는 것입니다.”

맨 뒤에 서서 입수를 안 할 수 있는 방법을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나 선생님의 시야를 벗어나 수영을 안 하고 집을 가는 방법은 없는 것 같았다. 찰나의 시간이 지나간 것 같은데 벌써 나의 차례가 되었다.

“회원님 빨리 오세욧!”

다리가 빨리 움직여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멀 것 같았던 출발선에 서게 되었다.

“허리를 수그리세요.”

허리를 수그리기도 전에 피가 거꾸로 솟으려는지 심장은 터지기 직전이었다.

“자 다리를 구부리고 팔을~~”

그러나 언제부터 내 다리는 뻗쩡다리였는지 선생님 주문에도 꼼짝을 않자 결국 선생님의 힘에 의해 다리가 껶여졌다.

“입수!!!”

‘응???’

“아니 이 회원님이?, 입수!!!”

나는 그 자리에서 돌이 된 듯하였다. 밀리지 않겠다는 내 다리와의 사투 끝에 선생님은 나를 집어던지다 싶게

수영장 물속으로 밀어 넣었다. 물이 주는 마찰력을 온몸으로 맞으니 고통이 함께 밀려오는 듯했다. ‘그냥 집에 가리라’ 하는 마음에 허우적거리며 앞을 향해 가고 있는데 내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처럼 뒤에서 외침이 들린다.

“회원님! 빨리 오세요!!!”

‘아 오늘 집으로 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최대한 늦게 수영하는 방법을 강구하며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고 종료 시간에 맞춰서 맞춰서 물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모두가 가고 선생님은 내게 특별연습을 하겠다고 하셨다. 스스로 입수할 수 있을 때까지 집에는 못 간다고.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개인 레슨 아니고 새벽이라 출근해야 하는데 설마?’ 그러나 선생님은 다시 입수 자세를 잡으라고 하셨다. 하는 수 없이 입수 자세를 취하자 수경 속 공포의 눈물로 앞은 흐려졌다. 그렇게 선생님은 계속 입수 훈련을 시켰고 난 수경을 단 한 번도 벗을 수가 없었다. 개인 연습은 다음 타임 수강생이 들어올 때까지 계속되었고 나의 눈은 토끼 눈이 되었다. 락커실에서 나의 눈을 본 아주머니들은 무슨 일이냐고 걱정을 하셨으나 창피해서 얘기할 수가 없었다. 남들 다 하는 입수 그게 뭐 무섭다고 이러는 건지.

한동안 다시 물공포가 떠올라 수영장을 갈 수 없었다.

그래도 오리발은 착용해보고 싶은 마음에 용기 내어 다시 수영장을 갔다. 그날의 토끼눈을 보셨던 아주머니께서 오랜만에 보는 내게 말을 하셨다.

“ 아이구! 그날 선생님이 혼자 남겨서 엄청 입수를 훈련시켰다며? 그래 힘들어서 운겨?”

‘아 놔! 오늘 왜 왔지?’ 이 창피함을 어째?’ 민망함에 헛웃음만 나왔다.

“그건 아니고요. 제가 물 공포증이 심해서 저도 모르게… “

“우리가 선생님 혼내줬어! 애가 얼마나 울었는지 토끼눈이 되어가지고 들어왔다고. 그런데 선생님도 알고 있었는데 차마 울지 말라고 할 수는 없었대. 더 울까 봐 무서웠다고.”

사실 내가 공포에 울었다는 걸 선생님은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뭔가 더 민망해졌고 이 창피함을 극복할 수 있는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가씨, 아가씨가 화 풀어! 선생님은 입수를 못 하는 게 안타까워서 그랬을 거니.”

선생님에게 화가 난 것은 아니다. 그저 그 상황이 무서웠고 극복이 안 되었을 뿐. 그날 수영 강습에 들어가니 나만 느껴지는 어색함이 감지되었다. 며칠 빠진 레슨에 모두들 자연스럽게 입수 자세로 물속에 뛰어들었고 나는 또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었다.

“회원님! 지금은 그냥 들어가시고 용기 날 때 뛰세요. 대신 스스로 입수하실 수 있어야 오리발 끼고 수영하는

방법 알려드릴 거예요.”

선생님이 전략을 바꿨다. 나의 킥이 약해서 남들보다 빠르게 못 나간다고 접영과 평형을 접목한 영법을 알려주시면서도 오리발은 가져오라고 하시지 않았다. 내 소원은 나의 약한 킥을 보완할 수 있는 오리발 착용하고 수영하는 방법인데 말이다.

결국 출근 시간이 1시간 당겨지면서 오리발 착용은 다음 기회로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이제는 누가 나를 집어던져도 어지간하면 살아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생겼는데도 스타팅 라인에 설 자신은 없다. 그런 내게 직원의 플립턴이라는 단어는 재워두었던 나의 오리발 수영 소망을 다시 깨웠다.


다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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